불교의 수행에서 중생이 차지하는 위치에 대하여, 손자병법의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얺다'[지피지기 백전불태]에 비유하여 다음과 같이 말할 수도 있겠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을 싸워도 위험하지 않다.
적을 모르되 나를 알면 한 번 이기고 한 번 진다.
적도 모르고 나도 모르면 매번 싸움마다 위태하다.
(손자병법, 모공편)
부처님의 눈으로 보면, 중생은 제도의 대성이다.
부처님의 중생 제도는 중생에게 중생의 성품을 이해시키고 스스로의 힘으로 그러한 중생의 성품에서 벗어나 바른 길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부처님은 당연히 중생의 모든 것을 다 알고 다 보신다. (여래의 10력)
그리고 부처님은 중생에 대하여 자애로운 마음과 불쌍히 여기는 마음, 기쁘게 하는 마음, 보호하는 마음을 내신다. (4등심)
그러므로 중생을 제도하고자 하는 이는 먼저 중생을 알아야 하고 또 중생을 사랑하는 마음을 내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중생이 부처님의 말씀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불교의 수행의 측면에서 보면, 중생은 바로 ‘나‘이면서 또한 넘어서야 할 적이다.
그러므로 불교의 수행에서는 먼저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중생의 성품을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중생을 알아야 수행의 동기와 묙료가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또 중생을 모르면 무엇 때문에 수행하는지조차 알기 어렵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스로의 힘으로 그러한 중생의 성품에서 벗어나 바른 길로 나이가고자 노력해야 한다.
아함경의 수행의 방법은 부처님께서 중생을 위해 말씀하시고 행하신 바를 마음에 새겨 한시도 잊지 않고 실천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6념처, 4념처, 8정도 등의 37도품)
중생에 관한 경들
중생에 관하여 간결하고 명쾌하게 서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