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의 품격
홍승숙
비가 오락가락 변덕스러운 날씨엔 양산이 우산대용으로 매우 유용하게 쓰인다. 날이 개면 양산으로의 기능도 가능하니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가. 오늘은 비가 개일 것 같기도 하고 한때 비가 온다는 예보도 있어 양산을 넣고 나오며 양산에 대힌 빛과 그림자를 올린다.
외국여행에서 역사 깊은 고궁과 아름다운 정원을 관광할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옆 사람의 커다란 양산에 시야가 가리어 제대로 볼 수 없어 정말 화가 났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관광할 때조차 양산을 애용하는 사람은 한국인뿐이다. 여행지에서는 모자를 쓰더라도 챙이 넓은 모자는 자기 시야를 가리기 때문에 모자선택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 것 아닐까. 모자를 쓰고서도 그 위에 또 양산을 펼쳐들고 다니는 사람들은 보나마나 우리나라 여행객이다. 피부보호를 위해서라지만 좋은 경치, 아름다운 건축물이나 예술품 등 보고자 하는 것들이 가리어져 반 토막 관광을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진정 보고 싶어 왔는지 다녀왔다는 기록을 남기려는 것인지 부끄럽고 민망할 때가 많다. 때와 장소에 따라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 또한 문화수준의 척도일 것이다. 그토록 얼굴피부를 아껴야 한다면 여행도 삼가야 되지 않을까.
보통 자외선은 피부의 노화나 화상으로 인한 발진, 피부암발생 등 위험요소가 많다고 알려져 있다. 자외선 차단제는 거의 전 국민의 필수품이 되었고 무조건 햇볕을 두려워하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 사실 자외선지수가 보통일 경우 한낮에 햇빛에 노출되는 시간이 한 시간 이상 반복되는 경우에 피해의 위험이 있을 수 있다. 특별한 여행이나 외출이 아닌 일상생활에서는 차량을 이용 하거나 건물 내부에서의 만남이나 업무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실제로 강한 햇볕에 노출되는 시간이 한 시간 이상 계속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나는 양산을 열심히 챙기지 않는다. 멋 내기에 익숙지 않기도 하지만 근본이유는 건강유지를 위해서다. 햇빛은 어느 음식보다도 비타민 D의 흡수율이 높아 뼈 건강에 좋고, 밝고 긍정적인 마음에 심장을 튼튼하게 하며 혈압을 낮추어주는 등 건강의 보고다. 살균력도 강할 뿐 아니라 건선피부 치료효과 등 건강에 좋은 요소가 훨씬 더 많다. 어두운 곳에 사는 사람이 우울증에 걸리거나 심신이 허약해지는 등 많은 문제가 발생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햇볕이 약한 북유럽 사람들이 따가운 햇살을 찾아 여행 다니는 모습을 보며 모든 게 갖추어진 우리나라에 태어난 것에 늘 감사하고 있다. 그럼에도 요즘 젊은 직장인들 중에는 대낮에 야외활동이 전혀 없거나 지나친 자외선차단제의 남용으로 햇볕을 접하지 못해 골다공증에 걸리는 예가 많아 안타깝다.
최근 유난히 외적인 미에 민감하여 피부보호에 집착하거나 성형수술이 만연하고 있다. 고급화장품 사용이 세계적이라는 보도를 접할 때마다 나는 아쉬운 생각이 든다. 그 노력과 열정을 내적실속을 채우고 꾸미는데 조금씩이라도 할애하면 좋을텐데……. 책을 읽거나 운동을 하거나 주위에 널려있는 전시회나 음악회를 찾아다니며 예술적 소양을 기르고 정서를 순화시키는데 마음을 쓴다면 얼마나 좋을까. 눈을 돌려 몇 발짝만 걸으면 볼거리, 배울 거리, 즐길 거리가 즐비하다. 이렇듯 자기 계발에 힘써 보다 높은 지성과 교양을 갖춘다면 경제성장에 버금가는 문화시민으로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을텐데.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양산은 햇볕을 가려주는 유익한 존재지만 주위에 시야를 가리면 많은 것을 놓치게 하는 폐단이 있다. 통행이 복잡한 곳이나 사야를 넓혀야 될 때는 양산사용에도 품격을 지켰으면 한다. 아침저녁 햇빛이 강하지 않은 시간임에도 온 얼굴을 괴물처럼 가리고 산책로를 걷는 사람들을 보면 이해하기 힘들다. 자기 멋에 사는 세상이라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폐가 되거나 혐오감을 주지 않도록 사려 깊은 마음을 가져야겠다. 강한 햇볕이나 갑작스런 비에 고마운 역할을 감당하는 양산이 누구에게나 귀한 존재로 애용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양산에 대한 여러 가지 폐단을 경험 한 후로 나는 양산을 잘 이용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는 점점 강해지는 햇빛과 갑작스런 국지성호우 등 기상이변으로 인해 양산을 애용해야 될 기회가 많아질 것 같다. 여름에 또 하나의 필수품으로 등장하게 될 양산은 때와 장소, 사용방법에 따라 사람의 품격과 더불어 양산의 품격을 반영하는 척도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앞으로는 양산에도 멋진 품격이 곁들여지기를 기대한다.
첫댓글 무심히 빽에 넣고 다니며 애용하던 '우산 겸 양산'도 앞으로는 조심해야겠어요
홍샘의 경험으로 읽는 우리에게 교양을 넓힐 수 있는 좋은 글입니다, 고맙습니다
간결하고 재미잇는 작품을 이제야 읽었네요..
제 작품쓰기도 이젠 짧고 간결한 변화의 필요성을 다시 느낍니다. 습관이 잘뭇 되어 고치기 어렵네요.
요즘 수필의 진수를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