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타령
이 세상에 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마는 나도 젊은 시절 그 점에 관해서는 별로 남에게 뒤지고 싶지 않다고 자부해 왔다.
1975년 여름에 낡은 한옥을 털고 새 집을 지을 때 분수에 넘치는 온실도 한 칸 마련했다. 이 지방에서는 웬만큼 재력이 있는 사업가들도 엄두를 못내는 일을 졸때기 훈장이 저지른 것이다. 저질렀다는 말이 어폐가 있을는지 모르지만 겨울철마다 보온에 신경을 쓰다 보면 화노(花奴)라는 말이 너무도 적절한 표현인 듯싶다. 사실 사람이 꽃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꽃을 상전처럼 떠받드는 입장이 되었으니 하는 말이다. 그래도 한겨울에 얼어붙은 밖의 세상을 외면한 채 햇볕 바른 푸른 공간에서 그야말로 꽃밭 속에 묻혀 지내는 기분은 형언하기 어려웠다. 단연 이웃간의 화젯거리가 되어서 부러운 듯 기웃거리는 불청객들을 대할 때는 조금은 마음이 우쭐해지기도 하고.
그렇다면 말인데 그동안 내가 40년간이나 글줄이나 쓴다고 떠벌이면서 과연 꽃이 얼마나 글의 소재가 되었는가 하고 손을 꼽아본다. 초창기의 ‘백합이 피면' 을 필두로 최근의 ’한 떨기 야생화‘에 이르기까지 겨우 7~8편을 넘지 않는다. 그나마 제목은 ‘꽃' 이로되 내용은 엉뚱한 상징적인 경우가 반 수가 넘는다. 가령 '겨울꽃'은 내가 만년에 이르기까지 노익장을 과시하며 테니스코트를 누비는 것을 비유해서 표현한 글이다. 그 글 속에서 나는 솔직하게 승부에 집착하며 살았다고 술회했다. 그리고 “당당하게 싸운 패배가 비열하게 이긴 승리보다 값지다”는 어느 스승님의 말씀도 회상했다. 오래 전의 글이지만 이는 어느 시대, 어느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교훈일 듯싶다. 그리고 “패배가 죄가 아니라 좌절이 죄다”라는 어느 석학의 말씀까지도 상기했다. 두 구절이 다 이 사나이의 처세에 적지 않은 교훈이 된 듯싶어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지는 뜻에서 여기서 재탕을 해본다.
‘한 떨기 야생화'는 최근에 쓴 글이다. 여생이 내다보이는 시점에서 나의 일생도 야생화처럼 겸허하고 성실하게 마무리지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하여 미미한 발자취에도 불구하고 나의 '생애’가 생명력을 지닌 한 떨기 이름 없는 야생화로나마 평가받기를 간절히 소망한 것이다. 순수하게 꽃을 주제로 한 글 가운데 하나인 '백합이 피면' 은 내가 젊은 시절 새로 이사한 언덕배기 한옥의 뜨락이야기였다. 그 무렵 매스컴에 찰스 다윈의 '자연도태설' 이며 드 브리이스의 '돌연변이설' 등이 근거가 희미한 것으로 보도가 된 듯하다. 그렇다면 그동안 유인원을 조상으로 모시던 우리 인류가 이제사 올바른 족보를 찾게 되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한 떨기의 꽃은 말할 것도 없고 한 포기의 풀이나 한 그루의 나무까지도 조물주의 표현이 아닌 것이 없다는 절대 무한의 신앙 쪽으로 굳어지는 듯하다. 그러나 나 같은 속물의 메마른 가슴에는 항상 벅차는 느낌이다.
그건 그렇고 그때 나는 향기 짙은 백합이 뜨락 가득히 피면 먼저 노래(老來)에 고향에서 가업에 골몰하시는 부모님을 마음먹고 모실 생각이었다. 그때부터 쳐서 40년의 세월이 흐르고 보니 이제는 양 위분이 다 이승을 하직하셨고 평생의 동반자인 내자까지도 얼마 전에 내 곁을 떠나고 말았다. 고독이 무엇인지를 절감한다고나 할까. 그밖에 인생의 신산고초를 다 겪은 이 늙은이에게 무슨 얼어 죽을 꽃타령이며, 온실이고 나발이고 다 무의미한 환상이 되고 말았다. 이제는 꽃보다는 잡목이 우거진 고향 숲 같은 인생의 오솔길을 걷고 싶다. 그리하여 분수에 맞게 여생을 살아가는 것이 간절한 소망이라고나 할까.
(2006)
첫댓글 저질렀다는 말이 어폐가 있을는지 모르지만 겨울철마다 보온에 신경을 쓰다 보면 화노(花奴)라는 말이 너무도 적절한 표현인 듯싶다..여생이 내다보이는 시점에서 나의 일생도 야생화처럼 겸허하고 성실하게 마무리지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하여 미미한 발자취에도 불구하고 나의 '생애’가 생명력을 지닌 한 떨기 이름 없는 야생화로나마 평가받기를 간절히 소망한 것이다. ... 고독이 무엇인지를 절감한다고나 할까. 그밖에 인생의 신산고초를 다 겪은 이 늙은이에게 무슨 얼어 죽을 꽃타령이며, 온실이고 나발이고 다 무의미한 환상이 되고 말았다. 이제는 꽃보다는 잡목이 우거진 고향 숲 같은 인생의 오솔길을 걷고 싶다...(본문 부분 발췌)
화노(花奴)... 무언가를 기른다는 것은 그것의 노예가 되는 일이기도 합니다. .. 온실을 마련하고 한겨울 꽃 속에 사는 즐거움을 느끼지만.. 곁에 있는 이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날 때... 인생의 신산고초를 겪은 이에게 꽃이며 온실이 더이상 무슨 의미가 있는지 묻고 있습니다.
좋은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열심히 퍼오신 조성순 선생님의 수고로움에 감사드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