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부 삶이 주어질 때….
보살님.().
어느새 노란 수선화가 병아리들처럼 봄나들이를 하고,
일주문 옆 목련이 하얀 면사포를 썼습니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여기저기서 ‘두런두런’ 새봄을 알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세월이 참 빠르지요?
우리들의 삶이 주변 모두의 덕분이고 감사함을 알며,
열심히 정진하시는 보살님을 응원합니다.
3월 초에 스님과 십수 년 학창 생활을 함께하고,
대도시에서 병원을 개업한 자수성가한 의사 친구와 상담 전화를 한 적이 있습니다.
죽마고우 친구의 성품을 아는지라 전화로 다독이며 격려와 위로의 통화를 했지만,
내친김에 짧은 편지를 보냈습니다.
* * *
죽마고우 친구 보시게!
잘 지내시겠지?
삼동겨울 강추위를 이겨내고 묵은 가지 홍매화가 눈을 떴다.
오늘 경칩,
모처럼 하늘이 맑고 햇살이 좋아서,
대전에서 찾아온 지인들과 점심 공양을 끝내고,
‘축산항’ 죽도산 아래 산책길을 걸었네.
이른 봄 오후,
백사장에 젊은 사람들이 빙 둘러앉아서,
“와아” 소리를 내며 박수를 치는데, 무슨 일일까?
먼발치 바라보니 모래더미 가운데 막대기를 꽂아놓고,
돌아가며 모래를 파내는 게임을 하더군, 러시안 룰렛게임처럼.
아슬아슬하게 서 있던 막대기가 누군가의 차례에 넘어진 모양이야.
무상(無常)이란 말이 새삼 피부에 와 닿는 요즘일세.
단 한 순간도 제자리에 머물지 않고 모래를 파내는 게임을 하듯,
조금씩 제 살을 갉아 먹고 있는 우리들의 삶이….
모래에 세워진 막대기가 결국 쓰러지듯 우리 생도 그리되겠지.
그렇게 덧없는 것인 줄 알면서도,
내일 어떤 일이 생길 줄 모르면서도,
우리들은 근심 걱정을 놓지 못하고 살고 있구먼 그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해서, 가지고 있는 것을 잃을까 봐,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내가 죽으면 남아있는 가족들은 어쩌나?
걱정에 걱정이 꼬리를 무는데…. 그것참!
스님 노릇을 하다 보니 장례식에 시다림(염불 공양)을 하게 되는데,
고인이 평소 원했던 것보다 가족의 뜻대로 하는 경우가 더 많아….
그러니까 고인의 생전 걱정은 부질없는 당신의 생각일 뿐,
남아있는 가족들은 새로운 물줄기를 만들어가며 변함없이 잘 살아가더라.
그러니 어찌하겠는가?
잔에 넘치지 않게 차를 따르듯,
적당하게 마음을 비우며 생활해야 노년 생활이 편안해 질 수 있는 것을….
만약,
우리에게 한 달 시한부 삶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어떻게 할 텐가?
난 말일세.
지지난 해에 병원에서 내 몸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해서,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일주일 동안에 주변 정리를 했었네.
모아뒀던 그림과 붓글씨, 책과 여벌의 승복, 신변에 있던 잡다한 것을 태우고, 유서와 연명치료를 안 한다는 서류도 만들고….
불행 중 다행이랄까 이상이 없다 해서 지금 잘 지내고 있지만,
일주일 동안 마음공부를 많이 했지.^^;
잔잔한 마음으로 인연 따라 사노라니,
아직 활동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감사하게 생각되고,
늘 그러하듯 나에게 주어진 지금 이 순간,
불보살님과 함께하는 삶에 만족하며 살고 있네.
세월이 가는데 육체에 병이 왜 없겠는가?
그러나 그것은 약을 먹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 되겠지만,
근심·걱정과 번뇌 망상이 가슴에 쌓이면 마음에 병이 생기는 법.
마음의 병을 키우지 말고 가슴속에 타오르는 탐착심의 불을 꺼야 한다네.
젊은 시절에 불꽃처럼 살았으니,
노년에는 식은 재처럼 살아보는 것도 멋있는 일이 아닌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
인생이란 삶의 페이지를 끝까지 넘겨봐야 안다고 했으니,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까지 건강하시게.
2023년 3월 6일 (경칩) 화창한 날. 효심사에서 옛동무가.
* * *
보살님, 어쩌면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우린 적으면 적은 대로 크면 큰 대로 근심·걱정을 안고 살아가지요.
새봄에는 내 마음에 등불을 밝히고,
정신과 육체가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2023년 3월 15일
효심사 담연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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