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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York Philharmonic
뉴욕 필은 세계 금융 중심지인 뉴욕의 부호와 기업들로부터 많은 후원을 받고 재정적으로 풍족함을 유지하고 예산상으로
미국 오케스트라들 중 LA 필하모닉, 보스턴 심포니,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다음으로 네번째의 위치에 있고 (5위는 시카고
심포니) 단원들의 연봉이 (기본급 주당 3 ,200달러) 16만 6천달러의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와 LA 필과 거의 대등한 세계
오케스트라에서 가장 많은 위치에 있다. 지휘자의 연봉도 시카고 심포니와 더불어 세계 최상을 유지하고 모든 공연은 유료
관객으로 항상 만석을 이루어 재정적 도움을 받고 있다.
독일 오케스트라는 등급이 있어 A/F1, A/F2, A, B/F, B, C, D 의 단계로 나뉘어 등급순으로 연봉의 차이도 있다. 공립
오케스트라에 속한 오케스트라들은 ‘공립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을 위한 연봉계약기준(Tarifvertrag für Musiker in Kultur
orchestern-TVK)’에 따라 연봉이 결정된다. 독일의 연봉계약 현황의 살펴보면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 오케스트라는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이다. 그 뒤를 뮌헨 필하모니 오케스트라가 근소한 차이로 따르고 있고, 세 번째 뮌헨, 쾰른,
슈트트가르트, 함부르크의 방송교향악단들이 받고 있다. 이들을 일컬어 ‘최고 연봉 그룹’이라고 부른다. 최고 연봉그룹에
이어 두 번째 그룹에 속하는 오케스트라들은 연봉계약기준(TVK)의 최고 단계인 A/F1을 받는다. 여기에 속하는
오케스트라들로는 슈타츠카펠레 베를린, 도이취 심포니 오케스트라 베를린, 바이에른 슈타츠카펠레 뮌헨,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라이프치히, 슈타츠카펠레 드레스덴, 드레스덴 필하모니, 밤베르그 심포니, 함부르크 필하모니, 앞에서 언급
하지 않은 방송교향악단들이 있다. 이러한 차례로 공립오케스트라들이 등급별 그룹을 이루며 D등급의 연봉계약기준까지
분류되어 있다. 연봉기준을 다른 직업군과 비교했을 때 같은 음악을 전공한 음악교사와 비교한다면 대략 연봉등급 B등급의
오케스트라는 초등학교 교사의 수준(월 2,500유로 -)이고 A등급의 오케스트라는 중·고등학교 교사(월 3,500유로 -)와 비슷
하며 A/F1등급의 오케스트라는 대학교수 (월 5,000유로 - )정도의 대우를 받는다고 볼 수 있다. 독일에서 가장 많은 보수를
받는 베를린 필 경우에도 초봉이 월 7,000유로이고 수석의 보수도 1만 유로 정도밖에는 되지 않지만 잘 정리된 사회
보장제도에 의해 미국 오케스트라들보다 더 큰 사회적 혜택을 누리고 있다.
2009년 뉴욕 필은 160년 역사상 처음으로 뉴욕 출생이자 부모가 뉴욕 필 단원인 42세의 Alan Gilbert를 로린 마젤 후임
상임지휘자로 선임한다. 그는 2017년까지 상임 지휘자로 있으면서 콘설바티브한 정공법적 해석으로 초반 큰 우려를
떨쳐내고 오케스트라를 성장시켰고, 지휘자 자신은 뉴욕 필 8년간 엄청난 성장을 하여 2017년 독일의 NDR Elbphil에
수석 지휘자로 지명받는다. 뉴욕 필이 성장했다기보다 뉴욕 필이 뉴욕 출신 지휘자를 세계적 지휘자로 성장시켰다는
표현이 적합할 정도로 길버트는 뉴욕 필 8년간 뉴욕 필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고 매해 눈에 띄게 성장한다. 길버트 이후
네덜란드 rco 악장 출신 지휘자 Jaap van Zweden이 2018년부터 상임 지휘자로, 2026/27 시즌부터는 두다벨이 상임
지휘자를 맡을 예정이다.
23, Jänner, 2024. Noisy-le-Grand. franciscopaik.
단원 구성: 1.Vn. 2Vn. Viola. Cello. K.Bass.
악장1, 14명. 16명. 12명. 10명. 8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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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 Ob. Cla. Bn. Hr. Tp. Tb. Tu. Tim. Pe. Hf. Pi. 총인원.
4명. 4명. 4명. 3명. 4명. 4명. 4명. 1명. 2명. 3명. 1명. 3명. -97명.
"한국계 단원으로는 바이올린 부수석에 Michelle 김과 바이올린 뚜띠에 함혜영, 리사 지혜김, 박수현, 김은수, 권수현, 최한나,
정다솔, 이현주, 민경지, 유진숙 그리고 한국인 최초 목관파트 단원으로 플륫에 손유빈이 있다."
목관 파트: *** 직책, 출신국, 입단 시기, 약식 경력. ***
fl.
Robert Langevin – Principal, *2000 (캐나다) Montreal Jean-Paul Major Aurèle Nicolet Hochschule Freiburg,
Alison Fierst – Associate Principal *2019 Manhattan School
Yoobin Son *2012 (대한민국) Curtis, master of music degree from Yale University
Mindy Kaufman *1979 Eastman School of Music, James Galway.
ob.
Liang Wang – Principal, *2006 (중국) Curtis Institute Richard Woodhams
Sherry Sylar – Associate Principal *1984
Robert Botti – *1992 Juilliard School Manhattan School
Ryan Roberts *2019 Juilliard School San Francisco Conservatory Ryan Roberts
cla.
Anthony McGill – Principal, *2014 Curtis Institute
Benjamin Adler – Associate Principal *2023 Colburn School, Yehuda Gilad
Pascual Martínez Forteza – *2001 (스페인) Yehuda Gilad Southern California
Barret Ham *2023 Yehuda Gilad Southern California
bn.
Judith LeClair – Principal, *1981
Julian Gonzalez – Associate Principal *2023 Carlos Felipe Viña
Roger Nye *2005
Music directors.
1842–1849 Ureli Corelli Hill, Henry Timm, Denis Etienne, William Alpers,
George Loder, Louis Wiegers and Alfred Boucher
1849–1854 Theodore Eisfeld, 1854–1855 Theodore Eisfeld and Henry Timm
1855–1856 Carl Bergmann, 1856–1858 Theodore Eisfeld
1858–1859 Carl Bergmann, 1859–1865 Carl Bergmann and Theodore Eisfeld
1865–1876 Carl Bergmann, 1876–1877 Leopold Damrosch
1877–1878 Theodore Thomas, 1878–1879 Adolf Neuendorff
1879–1891 Theodore Thomas, 1891–1898 Anton Seidl
1898–1902 Emil Paur, 1902–1903 Walter Damrosch
1906–1909 Wassily Safonoff, 1909–1911 Gustav Mahler
1911–1923 Josef Stránský, 1922–1930 Willem Mengelberg
1928–1936 Arturo Toscanini, 1936–1941 John Barbirolli
1943–1947 Artur Rodziński, 1947–1949 Bruno Walter (music advisor)
1949–1950 Leopold Stokowski (co-principal conductor)
1949–1958 Dimitri Mitropoulos, 1958–1969 Leonard Bernstein
1969–1970 George Szell (music advisor), 1971–1977 Pierre Boulez
1978–1991 Zubin Mehta, 1991–2002 Kurt Masur
2002–2009 Lorin Maazel, 2009–2017 Alan Gilbert
2018- Jaap van Zweden (2018 ~ )
Gustavo Dudamel (designate, effective 2026)
역사;
1842년에 유렐리 코렐리 힐이라는 바이올리니스트가 뉴욕 시를 거점으로 한 '필하모닉 협회' 를 결성했는데, 이것이 시초로
여겨지고 있다. 첫 공연은 같은 해 12월에 아폴로 룸즈라는 소규모 공연장에서 개최되었는데, 빈 필보다는 좀 늦은 셈이었다.
동시에 힐이 지휘자로 전직해 1847년까지 악단의 기초를 닦아놨고, 뒤이어 테오도어 아이스펠트, 칼 버그만, 레오폴트
댐로슈 등의 독일계 지휘자들이 자리를 이어받았다. 하지만 독립 악단의 특성상 열악한 재정 형편으로 인해 단원들의 봉급도
상당히 적었고, 그것을 충당하기 위해 너무도 여유가 없는 연주 일정에 시달린 나머지 퇴단하는 단원들도 속출했다. 이처럼
암담했던 상황에서 벗어난 것은 시어도어 토머스가 지휘자로 부임한 1877년에야 가서였는데,이 때부터 외부 기금을
적극적으로 끌어모으고 단원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등의 시도가 행해졌다. 토머스의 후임이었던 안톤 자이들은 드볼작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를 세계 초연하고, 바그너나 브루크너의 작품을 미국 초연하는 등 곡목을 당대 최신곡까지 확장
시켰고, 이 때부터 미국을 대표하는 관현악단으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1909년에는 말러가 상임 지휘자로 초빙되었고, 동시에 단원 증원과 운영권 재정비 등의 개혁이 단행되었다. 1921년과
1928년에는 각각 내셔널 교향악단과 뉴욕 교향악 협회의 관현악단을 합병해 뉴욕 시에서 유일한 연주회 전문 관현악단으로
거듭났으며, 빌럼 멩엘베르흐와 아르투로 토스카니니가 차례로 상임 지휘자 직을 맡아 악단의 명성을 한층 드높였다.
토스카니니 사임 후에는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를 영입하려고 했으나, 나치스의 압력과 푸르트벵글러 자신의 거절 등으로
무산된 뒤 존 바비롤리가 임명되었다. 그러나 바비롤리는 운영진들과 후원자들의 인기를 얻지 못해 1941년에 물러났으며,
약 2년 간의 공백 후 임명된 아르투르 로진스키도 특유의 가혹한 연습 방식 등으로 인해 단원들과 불화를 빚어 1947년 사임
했다. 로진스키 사임 후에는 브루노 발터가 음악 고문이라는 직책으로 잠시 준상임 역할을 수행했고, 1949년에는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와 디미트리 미트로풀로스가 공동으로 상임 지휘자 직책을 맡아 활동했다. 1958년에는 시어도어 토머스
이래로 약 60년 만에 최초로 미국인인 레너드 번스타인이 직책을 이어받았으며, 번스타인은 CBS(현 소니 클래시컬)에 방대한
양의 레퍼토리를 녹음하고 '청소년 음악회' 등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해 악단의 명성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번스타인이 1969년에 유럽 활동을 위해 사임한 뒤 조지 셀이 브루노 발터처럼 음악 고문 직책을 잠시 맡았고, 이어 피에르
불레즈가 상임 지휘자로 발탁되었다. 불레즈는 동시대의 현대 음악이나 기존 작품들의 파격적인 해석 등으로 젊은 층이나
진보적인 애호가들의 관심을 끌었으나, 보수적인 운영진과 단원들 사이의 갈등과 청중 동원의 미흡함 등으로 인해 1977년에
사임했다. 불레즈의 후임으로는 주빈 메타가 기용되어 1991년까지 재임했으나, 악단의 연주력이 점차 하락세에 접어들고
있다는 비판이 계속되었다. 메타 이후에는 쿠르트 마주어와 로린 마젤이 차례로 상임 지휘자를 맡았으며, 마젤은 2009년까지
활동했다. 마젤의 후임으로는 당시 41세의 앨런 길버트가 상임 지휘자를 맡아 동반 성장을 이루었고 2018년 네덜란드 출신
Jaap van Zweden을 임명하고 현악 파트의 강력하고 깊이있는 사운드를 비롯하여 유럽 스타일의 소리를 오케스트라에 요구
하여 짜임세 있는 앙상블로 변화시키고 있다.
토스카니니 이후 잦은 지휘자 교체로 멩엘베르그와 토스카니니 양대 상임 지휘자 시절의 황금기를 이어가지 못하고
1957년 TV의 발전으로 일약 스타에 오른 레너드 번스타인을 음악 감독으로 지명하여 화려함에 치우친 제2 전성기를
맞이한다. 번스타인 시절 뉴욕 필은 매스컴에 의한 허상의 전성기로 음악의 감상적 표현주의만 남발된, 극도의 정밀성과
냉철한 계산을 필요로 하는 클래식 음악의 실질적 오케스트라 앙상블에는 거리가 먼 시대가 낳은 전성기였다. 당시 뉴욕
필은 재정상으로도 창단 이래 가장 황금기였고 이로 인해 세계 최상급 연주자들이 모여들어 단원들의 화려함에서는
최상의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이들을 통합하여 잘 짜인 앙상블 발전으로는 지휘자의 역량 부족과 단원들의 음악적,
테크닉적 태생적 불합치로 감성에 의존하는 최악의 상황으로 빠진다. 번스타인 시절 보수의 정체성을 가진 클래식 음악의
본질에 대비되는 미국적 사고와 시대적 사고가 결합하여 창출된 뉴욕 필의 실험은 당대 허상의 황금기에 취해 이후 피에르
불레즈와 쿨트 마주어의 양대 전통적 대 지휘자를 상임 지휘자로 모셔와서도 미국적 가치를 앞세운 가치의 충돌로
오케스트라 앙상블 발전에는 실패하고 만다. 1971- 77년까지 6년간의 피에르 불레즈의 지도 후 1978년 임명된 인도 출신
주빈 메터는 아바도와 빈 음악원 동기로 26세의 나이에 LA 필을 맡아 16년간 함께 성장한 차세대를 책임질 유망 지휘자였다.
그러나 그는 뉴욕 필을 맡은 후 이빨 빠진 호랑이로 전락하고 만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아마도 뉴욕 필의 이사회나
오케스트라의 氣에 눌려 자신이 할 수 있는 지휘자로서 음악적 포부를 이루지 못하고 후원자 접대 등 이사회의 요구에
타협하는 모습으로 1991년까지 13년간 장기 음악 감독직을 수행하였지만 이 시기 뉴욕 필의 음악적 성장은 停滯를 보인다.
메타 이후 독일의 거장 쿨트 마주어를 모셔오지만, 독일 시스템과의 괴리있는 뉴욕 필의 운영진 상임 이사 Deborah Borda와
사사건건 대립하고 자기 뜻이 관철되지 못함을 깨닫고 마주어는 재계약을 취소하고 뉴욕 필 연봉에 절반밖에 안되는
계약으로 영국의 런던 필로 떠난다.
“I want to conduct and play the piano. I want to write a symphony, and I want to write music for Broadway and
Hollywood. I want to write a book and a poem. “I think I have the ability to do that.” - Leonard Bernstein
“나는 지휘도 하고 싶고, 피아노도 치고 싶다. 교향곡도 쓰고 싶고 브로드웨이와 헐리우드를 위한 음악도 쓰고 싶다.
책도 쓰고 싶고 시도 쓰고 싶다. 내게는 그럴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 분야만을 위해 평생을 바친 음악인(예술가)에
대한 모욕적이고 자만의 글로, 중심은 스스로 빛을 내지 말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Alan Gilbert의 가족 사진, Royal Stockholm Philharmonic에서 첼로 단원으로 있었던 아내 Kajsa William-Olsson, 2001년 은퇴할 때까지
뉴욕 필하모닉에서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했던 아버지 마이클 길버트(Michael Gilbert)와 뉴욕 필하모닉에서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한
일본 출생 어머니 다케베 요코(Yoko Takebe) 알렌은 1967년 뉴욕에서 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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