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향교(江陵鄕校) 탐방<3>
송담서원 / 송담사(松潭祠) / 묘정비각(廟庭碑閣)
강릉향교 산하(傘下) 관리(管理) 기관으로 두 곳의 서원(書院)과 열 곳의 사우(祠宇), 한 곳의 영당(影堂)이 있다. 서원(書院)은 한 명, 혹은 몇 명의 성현(聖賢)을 모시고 제향을 올리는 것은 물론 유생들의 교육도 담당하던 곳이다 보니 향교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고, 사우(祠宇)와 영당(影堂)은 교육은 하지 않고 영정(影幀)을 모시고 제향(祭享)만 올리는 사당(祠堂)이다.
<1> 송담서원(松潭書院)-강원도 유형문화재 제44호
강릉시 강동면(江東面) 언별리(彦別里)에 있는 송담서원(松潭書院)은 율곡(栗谷 李珥)의 위패(位牌)를 모시고 있는 서원으로, 원래는 조선 인조 2년(1624년) 강릉부사(江陵府使) 윤안성(尹安性) 외 30여 명의 유생들이 구정면(邱井面) 학산리(鶴山里) 왕고개 위에 석천서원(石川書院)을 세웠는데 1630년에 당시 강릉부사였던 이명준(李命俊)이 이 석천서원에 율곡을 모셨다고 한다. 그 후 효종 10년(1659년)에 송담서원(松潭書院)이라는 사액(賜額)을 받은 후 현종 9년(1668년)에 현재의 위치인 강동면 언별리로 옮겼다고 한다.
이곳에는 1726년에 세운 묘정비(廟庭碑)가 있는데 당시 영의정(領議政)이었던 정호(鄭澔)가 글을 지었고 우의정(右議政) 민진원(閔鎭遠)이 글을 썼다고 하는 비석이다.
그런데 순조 4년(1804년), 이 부근에 대형 산불이 일어나 건물과 소장되어 있던 신사임당초충도병(申師任堂草蟲圖屛)이라는 8폭의 병풍이 소실(燒失)될 위기에 처했는데 다행히 이웃 주민이 건져내어 강릉시에 기증하였다가 지금은 오죽헌(烏竹軒)에 소장되어 있다.
그런데 내가 경기도 파주(坡州)에 있는 율곡기념관(栗谷紀念館)에 갔다가 내 눈에 너무도 익숙한 사임당의 초충도(草蟲圖) 8폭 병풍(屛風)이 세워져 있어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사임당이 낳은 셋째아들 율곡은 너무나 유명하고, 큰 딸 매창(梅窓)과 막내아들 우(瑀)가 사임당의 재능을 이어받아 그림을 잘 그렸는데 병풍아래 단매로 그림들이 쭉 놓여있는데 매창(梅窓)과 우(瑀)의 그림이었다.
우리나라 최고액권인 5만 원권 지폐의 앞면에는 사임당의 초상화와 포도그림이 배경으로 들어가 있고 뒷면에 있는 매화도(梅花圖)는 바로 큰 딸 매창(梅窓)의 그림이다.
그런데 무엇보다 의문이 가는 것은 사임당의 초충도(草蟲圖) 8폭 병풍(屛風)으로 내가 예전 분명히 강릉 오죽헌에서 보았는데 어찌하여 이곳에 와 있는 것일까? 혹시 모작(模作)이 아닐까, 사진이 아닐까 아무리 뜯어보아도 분간이 가지 않는다.
파주 율곡기념관의 작품전시(사임당의 8폭 초충도병(草蟲圖屛), 매창(梅窓)의 그림, 우(瑀)의 그림)
<2> 오봉서원(五峯書院)-강원도 유형문화재 제45호
오봉서원(五峯書院) / 오봉강당(五峯講堂) / 기적비각(紀跡碑閣)
강릉시 성산면(城山面) 오봉리(五峯里)에 있는 오봉서원은 조선 명종 11년(1556년), 강릉부사 함헌(咸軒)이 사신으로 중국을 다녀오면서 중국 당대(唐代)의 대 화백(畵伯) 오도현(吳道玄)이 그린 공자(孔子)의 진영(眞影)을 가져와서 명종16년(1561년), 이곳에 서원(書院)을 세우고 모셨다고 한다.
그 후, 정조 6년(1782년)에는 주자(朱子)의 영정(影幀), 정조 13년(1813년)에는 우암(尤庵 宋時烈)의 영정(影幀)을 모셨는데 고종 5년(1868년)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서원철폐령(書院撤廢令)으로 폐쇄되어 공자(孔子)의 영정은 강릉 향교로, 주자(朱子)와 송시열(宋時烈)의 영정은 경기도 연천 임장(臨漳)서원으로 옮겼다.
기적비(紀蹟碑)는 순조 6년(1806년)에 건립한 것으로 판서(判書) 이만수(李晩秀)가 찬(撰)하고 제학(提學) 조윤대(曺允大)가 썼으며, 묘정비(廟庭碑)는 철종 7년(1856년)에 건립했는데 영의정(領議政) 조두순(趙斗淳)이 찬(撰)하고 판서(判書) 이종우(李鍾愚)가 썼다고 한다.
<3> 원사(院祠- 祠堂, 祠宇)
원사(院祠)는 일반적으로 사당(祠堂), 사우(祠宇)라고 칭하는데 성현(聖賢)들의 위패(位牌)을 봉안하고 제향(祭享)을 올리는 곳을 말하며, 제향(祭享)은 강릉향교에서 장의(掌議)를 파견하여 올린다.
강릉향교에서 제향을 주관하는 원사(院祠)는 10곳, 보다 작은 규모의 영당(影堂)이 1곳이다.
청간사(淸簡祠) / 경양사(鏡陽祠) / 덕봉사(德峯祠) / 황산사(篁山祠)
(1) 청간사(淸簡祠)-성산면 보광리(普光里)
◎ 봉안(奉安) :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 제향일(祭享日) : 陰 二月 中丁日
- 강릉 김씨 대종회(江陵金氏大宗會)에서 주관한다.
(2) 경양사(鏡陽祠)-강릉시 저동(苧洞)
◎ 봉안(奉安) : 관설당(觀雪堂) 박제상(朴堤上) ◎ 제향일(祭享日) : 陰 三月 五日
(3) 덕봉사(德峯祠)-강릉시 병산동(柄山洞)
◎ 봉안(奉安) : 최영(崔瑩) 장군 ◎ 제향일(祭享日) : 陰 三月 八日
(4) 황산사(篁山祠)-강릉시 난곡동(蘭谷洞)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58호
◎ 봉안(奉安) : 최필달(崔必達) ◎ 제향일(祭享日) : 陰 三月 中丁日
- 대부분의 사당 제향은 후손(後孫)들이 주관하여 올린다.<최필달(崔必達)은 강릉 최씨의 시조이다.>
전충사(全忠祠) / 문성사(文成祠) / 충정사(忠正祠, 華東書院) / 칠봉사(七峰祠, 五峯書院 內)
(5) 전충사(全忠祠)-강릉시 저동(苧洞)
◎ 봉안(奉安) :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 제향일(祭享日) : 陰 四月 上丁日
- 1967년, 영일정씨(迎日鄭氏) 후손(後孫)이자 강릉유도회 회장이었던 학산(鶴山)출신 정주교(鄭冑敎)씨의 주선으로 왕산면(王山面)에 있던 것을 강릉시 저동(苧洞)으로 옮김
(6) 문성사(文成祠)-강릉시 죽헌동(竹軒洞) 오죽헌 내에 있음
◎ 봉안(奉安) : 율곡 이이(栗谷 李珥) ◎ 제향일(祭享日) : 陽 十月 二十六日
(7) 충정사(忠正祠)-구정면 제비리(濟飛里) - 화동서원
◎ 봉안(奉安) :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경포산인(鏡浦山人) 최수성(崔壽峸)
◎ 제향일(祭享日) : 陰 八月 中丁日
- 충정사(忠正祠)는 문충공(文忠公) 정몽주(鄭夢周)와 문정공(文正公) 최수성(崔壽峸)을 배향하고 두 분의 시호(諡號) 중 가운데 자를 따서 충정사(忠正祠)라 하며, 일명 화동서원(華東書院)이라고도 한다.
(8) 칠봉사(七峰祠)-성산면 오봉리(五峯里) - 오봉서원 내
◎ 봉안(奉安) : 칠봉(七峰) 함헌(咸軒) ◎ 제향일(祭享日) : 陰 九月 上丁日
- 칠봉(七峰) 함헌(咸軒)은 강릉 함씨(咸氏) 칠봉공파(七峰公派)의 파조(派祖)라고 한다.
화부산사(花浮山祠) / 향현사(鄕賢祠) / 회암영당(晦庵影堂) / 주희영정(朱熹影幀)
(9) 향현사(鄕賢祠)-강릉시 교2동(校二洞)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8호
◎ 봉안(奉安) : 경호(鏡湖) 최치운(崔致雲), 수재(睡齋) 최응현(崔應賢), 삼가(三可) 박수량(朴遂良), 사휴당(四休堂) 박공달(朴公達), 원정(猿亭) 최수성(崔壽峸), 도경(蹈景) 최운우(崔雲遇), 춘헌(春軒) 최수(崔洙), 눌재(訥齋) 이성무(李成茂), 보진재(保眞齋) 김담(金譚), 농헌(聾軒) 박억추(朴億秋), 괴당(槐堂) 김윤신(金潤身), 임경당(臨鏡堂) 김열(金說)-12위(位) ◎ 제향일(祭享日) : 陰 四月 上丁日
- 강릉의 유림(儒林)들이 조정에 탄원을 올려 인조 23년(1645)에 윤허가 내리자 사당을 짓고 경호(鏡湖), 수재(睡齋), 삼가(三可), 사휴당(四休堂), 원정(猿亭), 도경(蹈景) 6현(六賢)을 봉안(奉安)했는데 강릉 최씨(崔氏) 4명, 강릉 박씨(朴氏) 2명이었다.
뒤이어 1682년에는 춘헌(春軒)을 모셨고, 1759년에는 눌재(訥齋), 보진재(保眞齋), 농헌(聾軒) 세 분을 추가 봉안(奉安)하였으며 1808년에 괴당(槐堂), 임경당(臨鏡堂)까지 모시게 되어 모두 12위(位)가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향현사(鄕賢祠)의 현판(懸板)에서 ‘어질 현(賢)’ 자를 쓰면서 신하 신(臣)옆에 또 우(又)를 붙이는 대신 충성 충(忠)자를 붙이고 밑에 조개패(貝)를 붙인 글자로 써 놓아서 신기하다.
향현사(鄕賢祠) / 향현사 현판(懸板) / 화부산사 현판(懸板)
(10) 화부산사(花浮山祠)-강릉시 교1동(校一洞)-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57호
◎ 봉안(奉安) : 김유신(金庾信) 장군 ◎ 제향일(祭享日) : 陰 十月 二十二日과 단오(端午)
화부산사(花浮山祠)는 일명 흥무왕사(興武王祠)라고도 하는데 신라 김유신(金庾信) 장군을 모신 사당(祠堂)이다.
신라시대, 김유신 장군은 이곳 화부산(花浮山) 기슭에 진영(鎭營)을 설치하고 말갈족(靺鞨族)을 막아내었으며 뒤이어 태종 무열왕(武烈王) 김춘추(金春秋)를 보필하여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하자 왕족이 아닌 사람으로는 유일하게 왕(王)이라는 호칭을 하사 받는데 바로 흥무왕(興武王)이다.
<영당(影堂)> 회암영당(晦庵影堂)-강릉시 유천동(楡川洞)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07호
◎ 봉안(奉安) : 회암(晦庵) 주희(朱熹) : 陰 三月 上丁日
- 주희(朱熹, 晦庵)는 남송(南宋)시대 성리학(性理學)을 집대성한 학자로 우리나라에서 율곡(栗谷)과 퇴계(退溪)로 이어지면서 조선의 통치이념으로 받아들여진 학문이다.
회암영당(晦庵影堂)은 주희(朱熹)의 영정을 모신 사당(祠堂)인데 1778년 심상현(沈尙顯)이 충주(忠州) 운곡서원본(雲谷書院本)을 모사(模寫)하여 하남재(河南齋)에 모셨다가 강릉 오봉서원(五峰書院)으로, 다시 연천(漣川) 임장서원(臨漳書院)에 임시 보관 중이던 초상화를 1887년(고종 24) 주씨(朱氏) 문중(門中)이 이곳에 회암영당(晦庵影堂)을 짓고 모셔와 봉안하게 되었다고 하는... 사연이 길다.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