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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뒤에도 풀을맺어 은혜를 갚다"
결초보은(結草報恩) 한국판 결초보은을 쓰기에 앞서 "결초보은"이라는 실제로 있었던 사연을 먼저쓰고 한국판 결초보은을 나중에 쓰기로 한다. 주정왕 18년경의 일이다.(周定왕"서기전 BC 540년쯤) (年度로 봐서 孔子님이 15歲 쯤이다.) 진(晋)나라 경공(景公)은,초군(楚軍)이 송나라 도성을 포위한지 1년이 넘도록 물러가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고 송나라를 초군에게 뺏기지 않으려고 구원군을 보내기로 했는데, 이때,노(潞)나라에서 밀서가 도착했다. 밀서를 읽어본 경공은 진노했다.
노(潞)나라는 오랑케 종족으로 성(姓)을 "외"라고 했다. 주평왕(周平王:서기전 770년경)노나라 임금은 싸움을 좋아해 이웃의 작은 나라들을 침략해 자신의 영토로 삼아 강대한 나라가 됐다. 오죽하면 진헌공(晋獻公:(重耳<後에 晋文公의 아버지>)도 사절을 보내 노나라와 친선을 맺을 정도였다.
그로부터 약 100년후,그때의 노나라의 임금은 "영아"이다. 영아는 진(晋)나라에 장가를 들었다.그는 진나라 경공의 누님 백희(伯姬)를 부인으로 데려 왔었다.그러나 임금 영아는 나약한 사람이다. 그틈을 타 대장이자 정승인 풍서란 者가 전권(專權)을 잡고 나라일을 제맘대로 했다.풍서는 원래가 진(秦)나라와 친교를 맺고있는 者로써 어떻게하든 진(晋)나라와우호를 끊어야 했다. 그래서 임금에게 백희를 모략중상해서 억울한 죄명을 뒤집어 씌어 임금에게 백희를 "교수형에 처하라"고 강요했다. 그래서 진(晋)경공의 누님이자 임금 영아의 부인인 백희는 못난 남편과 간악한 풍서의 협박에 몰려 목을매 자살했다.
풍서의 횡포는 이것으로 그치지 않고 날이 갈수록 더-했다. 그해 봄에 영아는 신하들과 사냥을 나갔다. 술들이 취하자 신하들끼리 탄환으로 나는 새를 잡는 시합을하기로 했는데. 풍서는 일부러 탄환을 임금에게 겨눠 영아의 한쪽눈을 맞췄다. 천행으로 죽진 않았으나 임금 영아는 애꾸눈이 됐다. 정말 있을수 없는일이다. 신하들은 모두 당황해 어쩔줄 몰라 했지만, 정작 풍서는 탄궁(彈弓)을 던지며 껄껄껄 웃어댔다.
"실수를 했습니다.신은 그 벌로 벌주(罰酒)를 마시겠습니다." 풍서는 단숨에 벌주를 들이키곤 더욱 호쾌하게 웃는다.
임금 영아는 풍서의 횡포에 견딜수가 없었지만.그렇다고 더 더욱 그를 막을수가 없었다. 어느날 영아는 밀서(密書)를 써서 처남인 진(晋) 경공에게 보냈다. 자기로선 더 아무런 방법이 없으니 진군(晋軍)이 와서 풍서를 잡아 그 죄를 다스려 달라고...참으로 못난 임금이다.
그렇잖아도 진경공은 제 아내하나 보호하지 못하고 목매 죽게한 지지리도 못난 영아를 처벌하고 억울하게 죽은 누님의 원수를 갚아야 했다.
밀서를 보고 진노하고 있는 경공에게 신하들이, "이참에 풍서를 잡아 죽이고 노나라는 물론 그 주변의 오랑케족을 모두 평정 한다면 우리 진나라는 유리한 점이 많습니다.기회를 놓치면 노(潞)나라는 진(秦)나라가 합병할것이오니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요" 이에 경공은 순림부를 대장으로 위과(魏顆)를 부장으로 삼아 *병차 3백승(三百乘)을 주어 노나라의 풍서를 치게 했다. (당시 兵車 一乘은 군졸이 72명 정도로 지휘관은 지금에 중대장급 이다.)
진군(晋軍)이 노나라로 쳐들어오자,풍서는 500승의 병차를 동원해 위과와 맞섰지만,적은 숫자를 가진 위과의 탁월한 전략과 힘에 대패한뒤, 위(衛)나라로 달아났다. 그러나 위나라는 진나라와 친한 사이여서 도망온 풍서를 사로잡아 함차(檻車)에 태워 진나라로 보냈다. 결국 풍서는 진(晋)나라까지 끌려가서 참형을 당했다.
순림부와 위과는 단숨에 노나라를 함몰, 노나라 임금 영아를 결박해 군부에 가뒀다. 그날밤 자결했다. 승리한 순림부는 본국으로 돌아가 진경공에게 승전을 알렸다. 그러니까 대장 순림부는 본국으로 귀환했고 위과는 남아 다음 임무를 수행하기위해 대장이 되어 노나라에 남아 있으면서 근처에 오랑케 땅을 하나하나 점령, 안정시키고는 군사를 거느리고 본국으로 향했다. 떠난지 이틀이 되던날, 문득 아득한 저편에서 누런 티끌이 일어나며 점점 하늘에 해를 가렸다. 그러면서 그곳으로부터함성이 지축을 흔들듯 요란했다. 분명히 군사들의 함성이어서 어느나라 군사들인지 위과(魏顆)와 군사들은 당황했다. 이때 척후병이 달려와서 급히 보고했다. "큰일났습니다. 저것은 진(秦)나라 대장 두회(杜回)가 우리에게 쳐들어 오는것 입니다." 보고를 받은 진(晉)나라 위과는 부대를 정지 시키고 전투 준비를 했다.
진(秦)나라 환공(桓公)은 풍서와 서로 짜고 노(潞)나라를 치기로 했었는데, 풍서의 급보를받고, 군사를 출동 시킬려고 하는데 또 급보가 오기를, 풍서는 이미 참형을 당했고 임금 영아도 자결 했다는 소식이 날아 들었다. 그래서 환공은 사태가 급박함을 알고 두회(杜回)에게 군사 300승을 주고는, "지체하지 말고 속히 가서 노(潞)나라를 진(晋)나라에 뺏기지 않도록 하라!" 그렇게 당부했다.
두회는 진나라에서 그 누구도 당적하지 못할 유명한 장사였다. 그는 태여날때 부터 이(齒)가 전부 나 있었고 강철 같았다. 점차 자라면서,툭 불거져 나온 눈동자는맹수의 눈이었고, 함지박 같은 주먹은 쇠망치 같고 뺨도 쇠로 만든것 같고 수염은 어디가 턱이고 머리인지 모르게 머리털까지감겨 올라갔고 키는 2미터가 넘고 힘은 능히 2천근을 들어 올렸다. 그는 평소 개산대부(開山大斧:큰 도끼)를 쓰는데 무게가 80근이나 됐다.
두회는 그의 나이 18세때 험하기로 유명한 청미산에서 하루 동안에 대호(大虎:큰 호랑이) 다섯 마리를 맨손으로 잡아 그 껍질을 벗겨온 일도 있었다. 두회의 용맹을 들은 진환공은 그를 불러다가 파격적으로 *차우 장군을 삼았다. (*차우장군(車右將軍:지금으로 말해서 보병 사단장)
그후,두회는 그가 특별히 훈련시킨 부하 300명만 거느리고 차아산에 근거하며 민심을 혼란 시키던 산적 만여명을 쳐부셔 그의 이름이 세상에 크게 알려졌다. 그는 이제 대장이 되어 진(晋)의 대장 위과와 서로 싸우게 됐다.
두회는 진나라 군사와 마주치자 마자 진을치고 말것도 없이,말도 병차도 타지않고 다만 평소에 데리고 다니던 용사 300명만 거느리고 그냥 뚜벅뚜벅 걸어서 거칠것없이 진군(晋軍)의 진 속으로 쳐들어 갔다. 두명의 군사가 들고 다니는,80근 이나 되는 개산대부를 수수깡 처럼, 가벼히 휘두르며 닥치는대로 콩,타작하듯이 말 과 진군(晋軍)을 찍어댔다.
그야말로 흉악한 죽음의 악마가 하늘에서 나타난듯 했다.진군(晋軍)은 이토록 무시무시한 거인을 상대하기는 처음이고 우선 겁이나서 모두 달아나기 바빴다. 진군을 무자비하게 찍어대는 두회에 큰 도끼..도끼날의 길이만도 60센티에 이르고 지칠줄 모르고 휘두르는 도끼날에 사람의 몸 만큼 굵은 생나무도 단숨에 잘라지고 시뻘건 상대의 피를 담뿍-뒤집어쓴채 짐승의 울부짖음 같은 소리를 연신 질러대며 거칠것 없이 쳐 들어오는 두회의 모습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죽음의 흑살신(黑殺神)과 어찌 다르랴...!
진군은 그날 많은 군사를 잃고 대패했다. 위과는 영루를 굳게 쌓고 아무도 나가서 싸우지 못하게 했다. 군사를 재 정비하고 이틀이 지나..다시 두회와 싸웠건만,또다시 많은 피해를 보고 대패했다. 두회의 저 엄청난 힘,온몸을 철갑으로 감고 있으니 화살을 아무리 쏴도 소용없고 그가 거침없이 찍어대며 전진 하는곳엔 대적할자 아무도 없다.
그로부터 70 여년후에 이름난 난영(欒盈)의 부하장군 '독융'이 있다해도 그를 당할수 있을까. 또한 이로부터 300여년후에 초나라 태생의"힘의상징"이라는'항우'가 있다해도 두회를 "이길수없을거"라고 후세에서 말하는이도 있다. 위과는 20세가 되기 훨씬 전부터 아버지 위주(魏주)를 따라 수많은 전쟁터를 누비고 다녀 봤지만,저렇게 엄청난 적장을 보기도 처음이다. 한낱...두회를 꺼꾸러 트리기 전엔 이 싸움을 이길수 없다는 판정을 내렸다.
그렇게 열흘이 지나 군사를 거의 다- 잃었으니 위과가 본국으로 돌아가도 부하를 그렇게 많이 잃었으니 자결을 하거나 군법에 의해 처형 당해야 한다. 3백승의 병차를 이미 반수 이상 잃고 사기도 다- 떨어진 지금에 이르렀다. 그날밤,위과는 군영(軍營)안에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두회를 이길수 있는 방법을'찾느라고 고민 했다. 그러나...이렇게 이리도 생각해보고 저리로 생각해봐도 이길수 있는 계책 이라는게 도무지 없다. 삼경(三庚)이 되어서야 위과는 너무도 피곤해서 혼곤히 잠이 들었다. 그때,누군가.자기 귓전에서 속삭인다. "청초파(靑草坡! 청초파.....! 청초파.......이렇게 들리는 세마디!!?" 위과는 자다말고 이 소리에 깜짝놀라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장막(帳幕)안엔...아무도 없었다. (분명..? 누가 내 귓가에서 청초파 라고 했는데...이게 무슨 뜻일까?...?) 다시 잠이 들려고 하면 귓가에서 또 청초파!라는 소리를 거듭 세번이나 들었다.
날이밝자 측근을불러. "군사들 중에 청초파에 대해 아는 군사가 있으면 불러오라!" 그렇게 말하자.불려온 군사가 말하길... "이곳에서 三十里 떨어진 곳에,예전에 군사 훈련장으로 쓰였던,청초파로 불리우는 곳이 있습니다.!" ".....알았다.물러가라!" (청초파..? 청초파라...! 무슨 뜻이 있는건 아닐까.!좌우간 그곳으로 두회를 유인해 싸워보자..) 어차피 이래도 저래도 싸움에 지면 위과의 목숨은 끝이다.
위과는 군사들에게 후퇴 명령을 내리고 청초파 쪽으로 향했다. 진군의 후퇴를 알게된 두회는 떠나가는 진군을 추격했다. 위과는 일변 싸우며,또 달아나면서 진군(秦軍)을 청초파로 유인했다. 청초파에 이르자 위과는 후퇴하다 말고 秦軍에게 달려 들었다. 삽시간에 진군(晋軍)은 두회를 둘러싸고 앞뒤로 협공했다. 그러나 두회는 조금도 두려워않고 친히 개산대부를 수수깡 휘두르듯 가벼히 휘두르며 晋軍을 찍어대며 전진한다.
晋軍은 도무지 두회를 이길수가 없었고 많은 희생자를 냈다. 그래도 위과는 군사들을 지휘하며 두회를 공격할뿐 한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늘 이 싸움을 이길수 없다..) 위과는 절망했다.그러나 이 싸움에지면 자신이 본국에 살아가더래도 죽는 목숨이다. 마지막 힘을 다해 군사들을 지휘하며 물러서지 않고 사력을 다- 했다.
참으로 처절한 싸움 이었다.죽은 군사들의 흐르는 피가 내(川)를 이루고 해는 서산에 걸렸다. 누가봐도 위과는 대패했다. 적에게 사로잡히느니, 이제 위과가 모든걸 포기하고 자결하려는 순간이다.
그때였다. 오로지 전진만 있을 뿐,성난 호랑이처럼 처럼 밀고 들어오기만 하던 두회가 갑자기 걸음을 옮길때마다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기름을 잔뜩바른 신발을 신고 얼음판을 걷느는 듯한 모습이다. 그러한 두회를 보자 진군(晋軍)은 마지막 힘을 내 두회를 공격했다.
이때,위과의 시야엔 이상한 광경이 보였다. 두회옆에 하얀 베 도포를 입은,한 노인이 마치 농군처럼,푸른풀을 한 묶음씩 갈라잡고 두회가 움직일때마다.그 발을 묶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 두회의 눈엔,그 노인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두회는 더욱 비틀 거렸다. 두회가 묶인 풀을 걷어차고 다닐려니 거추장 스럽고 힘이 많이들어 가만히 서 있으면 더욱 단단히 붙잡아매니 더욱 비틀 거렸다.
뭣이 자꾸만 발을 얽어 매기 때문에 두회는 몸의 중심을 잡지 못했다. 이에 위과는 쏜살같이 달려가 창을 들어 두회를 찔렀다. 두회는 겨우 몸을 피했으나 얽매인 풀에 걸려 큰 소리를 지르며 그냥-나가 자빠졌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진군은 일제히 달려들어 쓰러진 두회를 산채로 사로잡아 결박했다.
진군(秦軍)은 자기네 대장이 사로 잡히는걸 보자,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진(晋)나라 군사들은 사기를 잃고 도망가는 진(秦)나라 군사들을 쫒아가 사정없이 쳐죽였다. 전세는 대역전으로 진(晋)나라 군사들이 대승을 했고 싸움은 끝났다.
위과(魏顆)가 결박을 당한채 끌려온 두회를 굽어보며 물었다. "네 스스로 영웅으로 뽐내더니..어째서 사로 잡혔느냐?" 두회가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쉬며, "이상한 일이다.뭣이 자꾸만 내발을 빗그러 매기 때문에 맘대로 몸을 놀릴수가 없었다. 이것은 하늘이 내 목숨을 뺏음이다.사람의 힘으론 어쩔수 없었다." 그말에 위과가 속으로, (참 이상한 일도 있다) 라며,연신 탄식 했다.
군령대로 한다면 두회를 진(晋)나라로 압송해야 하지만,저-수백마리의 호랑이를 합쳐 놓은것 같은 두회를 이대로 軍中에 억류해 놓았다가 결박이 풀린다면 큰 일이다. 그래서 거인 두회는 결박 당한채로 군전에서 목이 잘렸다.
그날 밤에 위과는 군중에서 오랜만에 편안히 잠을 잤다. 꿈이였다. 낮에 청초파에서 두회의 발을 풀로 빗그러 매던 노인이 나타났다. 노인이 위과에게 정중히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장군은 두회가 사로잡힌 까닭을 아십니까? 이 늙은 몸이 풀을 매어 두회의 자유를 뺏은 때문 입니다.결국 두회는 풀에 걸려서 쓰러진 것입니다. 그래서 장군은 두회를사로 잡을수 있었습니다."
위과는 꿈속에서도 황급히 일어났다. "나는 노인이 누구신지 전혀 모릅니다. 이런 큰 도움을 받았으니 장차 그 뭣으로 이 은혜를 갚아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노인이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조희(趙姬)의 아비 되는 사람이오. 장군은 생전에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을 잘 지켜서 내 딸을 다시 좋은 곳으로 개가(改嫁) 시켜 줬음으로 이 늙은 사람은 저승에서도 여간 감격해 마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장군은 내딸을 다시 살려주신 은인 입니다. 도리어 내가 장군에게 은혜를 갚고자 미미(微微)한 힘이나마 도운데 불과 합니다. 나는 장군에게 은혜를 갚았습니다.감사 합니다." 그렇게 말하고 노인은 사라졌다.동시에 위과도 꿈에서 깨어났다.
그럼 조희(趙姬)는 누군가! 저-유명한 진문공(晋文公)이 군위에 오르기전 19년간을 자객을 피해 전국을 유랑할때 부터.문공이 군위에 등극 했을때도 문공을 도와 그를 춘추오패의 2인者로 만든 일등공신중에 하나이며 산천초목 조차 떨게했던 무시무시한 장군 "위주"라는 대장이 있었다.
그의 큰 아들이 바로 위과이다. 위주는 생전에 전쟁터에 出戰 할때마다 세명의 아들에게 유언을 했었다.
"내가 이번 싸움에 나가서 만약에 죽거든 너희들은 마땅히 趙姬를 좋은 곳으로 개가 시켜라. 결코 조희에게 적막한 일생을 보내지 않게 해야 한다. 그래야만 내가 죽어도 눈을 감을 것이다." 그러니까 조희는 젊고 예쁜 위주의 첩 이었던 것이다. 그러던 위주가 정작 병이 들어서 죽게 됐을때는 태도가 변하여 큰아들 위과에게...
"조희는 내가 평소에 아끼던 여자다. 내가 죽거든 조희를 함께 묻어다오. 조희도 그것을 원할 것이다."그렇게 말하고 위주는 숨을 거뒀다. 그러나 위과는 아버지를 장사 지낼때,살아있는 조희를 함께 끌어 묻지 않았다. 동생 위강과 위기는 형인 위과에게, "형님은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실 때 분부하신 말씀을 잊으셨습니까?" 그 말에 위과가 조용히 말했다.
"효자종치명 부종난명(孝子終治命 不終亂命) 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살아계실때 우리 三형제에게 늘 말씀 하시길 내가 죽거든 조희를 좋은 곳으로 개가 시켜 주라고 말씀 하셨다. 임종때 하신 말씀은 정신없이 하신 말씀이다. 효자는 부모께서 평소에 하시던 말씀을따르는 법이다. 숨을 거두실때 정신없이 하신 말씀을 어찌 따를수 있겠느냐!" 이말에 두 동생도 고개를 끄덕였다.
장사를 마친뒤,위과는 조희를 좋은 선비에게로 개가 시켰다. 이러한 음덕(陰德)이 있었기 때문에 조희의 친정 아버지 혼령이 나타나 풀을 맺어 그 은혜를 갚은 것이었다. 그래서 오늘날도 사람들은 "결초보은(結草報恩) 하겠다"는 말을 곧잘 쓴다. 그러나 지금부터 2.500 여년전에 이런 고사(故事)가 있었다는걸 아는 사람은 드물다. 위에 사연에 대해 당시의 시인이 읊은 옛 詩가 있다.그걸 적어본다. (나도 이詩를 좋아하며 잊지않고 있다)
결초하인 항두회(結草何人 亢杜回) 어떤 사람이 풀을맺어 두회를 잡히게 했는가 몽중명설 보은래(夢中明說 報恩來) 꿈에 노인이 나타나 은혜를 갚은것 이라고 했다 권인광적 음공사(勸人廣積 陰功事) 사람들에게 권 하노니 부디 음덕을 많이 쌓으라 이순심안 복자해(理順心安 福自諧) 이치에 순종하면 마음도 편안 하려니와 또한 복도 받는다
지금도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누군가에게 은혜를 받으며 산다. 은혜를 베픈 사람은 되돌려 받기를 원하지 말고 은혜를 받은 사람은 그것을 잊지말고 반드시 은혜를 갚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