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두 수레바퀴
빌1:29 묵상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구원받았음을 기뻐한다면, 하나님이 당신의 아들을 세상에 내어주셨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은혜에 감격하며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의 구원을 위해 당신의 아들에게 행하셨던 일을 당신의 자녀들에게도 동일하게 행하시지 않을 이유가 없다. 우리를 부르신 이유는 첫째는 구원이며, 둘째는 아직 구원에 이르지 못한 세상에서 당신의 뜻을 현실로 옮겨놓으려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은 세상을 얻기 위해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세상에 내어주셨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양자로 삼은 당신의 자녀들을 결코 아끼지 않으실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의 구원을 위해서라면 하나님은 나까지도 세상에 내어줄 수 있는 분이다.
세상을 얻으시기 위해 하나님은 자녀인 나를 세상에 내어줄 수도 있다. 세상은 나를 짓밟고 더 높이 올라서고, 나를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 나를 배신할 수 있다. 심지어 자신을 관철시키기 위해 나를 제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셨듯이,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위해 버림받아 죽은 나를 하나님은 반드시 부활시키실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오직 구원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자녀로 확실하게 인침을 받은 자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다. 그 뜻이 먼저 자신 안에서 이뤄지고, 자신에게 일어나도록 하는 것, 그리고 자신을 통해 이뤄지도록 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반응으로서 예배이며 신앙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면 그것이 어떤 삶일지를 충분히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믿는다는 것,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인해 마땅히 기뻐할 일이나 또한 고난의 길일 수밖에 없다. 사실 믿는 자로서 사는 것 자체가 고난이다. 고난은 하나님의 뜻이 내게 일어나고 또 나를 통해 이뤄지도록 순종함으로써 겪는 아픔이기 때문이다. 순종이 아픔을 수반하는 이유는 나는 다른 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과 일치하고, 또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내가 원하는 것과 일치할 때, 그 때는 언제가 될 것인가. 공자 선생님이 ‘종심소욕불유구’라고 말한 나이 70이 되면 그렇게 될까? 아니면 나이와 상관없이 일어나는 일일까? 그때 느끼게 될 기쁨은 어떤 것일지 정말 궁금하다. 나도 언젠가 그런 적이 있었을 텐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기억은 흐릿해져도, 반드시 부활할 것에 대한 확신만은 흐릿해지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