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도생의 세계와 지정학』(피터 자이한. 김앤김부스. 2022)
<미국 없는 세계에서 어떤 국가가 부상하고 어떤 국가가 몰락하는가.
2020년대에 중국은 추락하고 미군은 동반구에서 철수하며 세계질서는 붕괴한다. 에너지, 시장, 안보가 결핍된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국가들의 각축이 시작된다.>
제14장 앞으로 닥칠 혼란상 (415~422p)
맥락 2 : 세계질서의 잔재
(1) [원문] 소련과 수만 기의 핵탄두의 존재에 의해 보장된 상호 문명파괴의 위험으로 인해 냉전은 통상적인 생존 투쟁 이상의 상황이 되었다. 정신 집중을 요했다. 미국처럼 물리적으로 거대하고 경제적으로 다채롭고 인종적으로 다양한 나라에서 국론을 통일하고 국민을 동기 유발시키는 그런 요인은 정책에 지침을 제시하고 실행하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비판] 그래서 미국은 항상 도발적인 의제를 시대의 정책으로 제시한다. 미국은 동적인 국가 이다. 한시도 조용히 있지 못한다. 군수산업을 근간으로 하고 군사력을 도구로 한 군사적 긴장과 도발이 가장 선택하기 쉬운 정책이다. 그런데 좋게 말해서 역동성이지 비판적으로 말하면 침략성이다. 미국은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침략주의 국가이다. 미국은 예로부터 그것을 ‘뉴 프론티어, 개척정신’이라고 미화하고 있다.
(2) [원문] 미국의 전략적, 외교적 정책에 대한 전권은 사실상 오로지 단 한 사람에게 집중된 다. 바로 대통령이다. 그리고 대통령은 늘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비판] 그렇다면 미국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대통령부터 온건 평화주의자가 당선되도록 해야 한다. 미국은 이민국가다. 세계의 모든 것을 흡수, 약탈하여 자기들의 삶을 풍요롭게 유지하는 것을 모든 국가 정책의 최우선 순위로 삼는다. 국익을 위해서는 어떤 악역이라도 결코 사양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앞으로 미국도 역사가 쌓이면 이민국가 성격이 완화되면서 정착국가 성격이 향상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미국인들은 세계와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조금씩 하게 될 것이고, 대통령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을 선출할 것이다.
(3) [원문] 냉전이 종식되자 미국의 외교정책과 안보와 정보조직의 머리 위에 언제 떨어질지 모를 핵이라는 암석 덩어리가 제거되었고, 그와 더불어 국론을 통일시키는 집중력도 사라졌다. 소련이 사라지자 세계에서 미국의 패권 유지가 미국의 전략적 정책을 추진하는 사실상의 목표가 되었다.
[비판] 소련이 붕괴된 이후 미국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여유만만했다. 그러나 중국이 개혁개방정책을 펴면서 서서히 부상하자 미국의 표적은 중국으로 이동했다. 십여 년 동안 동, 서 남의 3면에서 중국을 포위하는 포위망을 형성하는데 공을 들였다. 그러나 러시아가 다시 부상하여 2022년 봄에 우크라이나를 침략하자 중국과 러시아 두 나라를 표적으로 삼게 되었다. 하지만 표적이 두 개면 집중력이 분산되는 법, 앞으로 미국이 어떻게 표적의 순위를 부여할지 관심사이다. 러시아가 우크라니아 침략에서 실패하면 중국이 제1표적이 될 것이고, 성공하면 러시아가 제1표적이 될 것이다.
(4) [원문] 냉전 시대에 미국과 동맹을 맺은 나라는 하나같이 누가 악당이고 어떤 이해가 걸 려있으며, 누구든 동맹으로서의 자세가 흐트러지는 대상은 미국 대통령, 핵심적인 직책을 맡은 대사, 정보요원과 군 관료들이 주저하지 않고 정신이 번쩍 나게 만들었다.
[비판] 1979. 10. 26 김재규에 의한 박정희 암살과 1997년의 구제금융 사태를 당했다. 한국 에서 미국을 보는 관점은 거대하지만 미국에서 한국을 보는 관점은 사우스 코리아로 작은 관점이다. 미국에게 한국은 장기판의 말이다. 말 중에서도 卒이다. 대륙을 향해 미사일을 겨누는 불침 항공모함일 뿐이다.
(5) [원문] 미국이 곧 이 모든 사태를 바로잡는다는 뜻이 아니라 미국이 세계질서에서 손을 떼게 된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면 미국은 가장 먼저 유럽 안보 부담부터 털어버리게 된다. 적극적으로 손을 떼든 수수방관하든, 제 기능을 하는 동맹체제로서의 NATO는 종말을 고하게 된다. 그러면 세계질서 시대에 구축된 그 어느 지역, 어느 동맹국과 미국이 맺은 어느 관계가 현재의 세계질서가 무너진 후에도 지속될지가 관건이다.
[비판] 피터 자이한은 미국이 구축한 기존의 세계질서가 붕괴하면, 동북아에선 중국이 약화되 고 일본이 패권국가가 되며, 중동에선 터키가, 유럽에선 독일이 패권국가가 된다고 한다. 미국은 이미 중동에서 철수했고, 유럽에선 나토에서 철수할 기회를 엿보고 있다.
나토가 유명무실해지거나 해소되면 한미동맹도 반드시 영향을 받는다. 한미동맹이 약화되거나 해소되면 한국은 어떻게 될까. 당장 북한이 남침하고 중국이 침략할까? 일본과 러시아가 넘볼까? 천만에, 북한이 침략할 까닭이 없다. 중국이 한국을 침략해도 실익이 없다. 북한과 중국이 침략해도 승패가 불분명하고, 설사 성공한다 해도 이미 자유와 번영을 맛본 5천만이 넘는 한국인들을 통제하며 먹여 살릴 수 없다. 3백만은 죽이고 5백만은 투옥하고 2천만은 감시 대상이 될 것이니, 그것만 해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반대로 미국이 위축되고 한미동맹이 약화 또는 해소되면 동북아 전체에 해빙 기운이 일어날 수 있다. 남북 관계가 완화되면서 중국과 한국의 관계가 본격화될 것이다. 일본 역시 과거와 같이 침략팽창주의보다는 지역 패권국가 정도에 만족하며 동북아의 새로운 질서 구축에 한 축을 맡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동북아 해빙이 가능하기 위해선 우리 한국이 막강한 자주국방력을 갖고 있어야 하며, 북한 역시 일정한 자위력을 구비한 상태여야 한다. 청일전쟁과 노일전쟁에서 보듯이 한반도가 약하거나 불안하면 동북아 전체가 영향을 받는다.
(6) [원문] 대부분의 미국인은 미국이 중동에서 완전히 손을 떼기를 바란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리고 경제적으로는 셰일 혁명 덕분에 미국은 바로 그런 결정을 내리기가 수월하다. 미국인들은 대부분 사우디와 이란이 서로 치고받다가 유가가 치솟아 대기권을 뚫고 성층권에 진입해 아시아 연안국들의 경제가 박살나게 되어도 팝콘 한 바구니 옆에 끼고 앉아서 신나게 구경이나 할지 모른다. 석유가 풍부한 작은 나라들에 대해 미국이 안보를 한층 더 보장해줘야 한다니 미국인들이 생각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비판] 미국은 셰일 혁명 덕분에 웃고 있다. 이제 중동산 석유가 화급하지 않으므로 중동에서 철수하고 있다. 석유가 필요할 땐 무자비하게 탄압하여 독점하더니 필요 없으니 중동 여러 국가들이 서로 싸우든 말든 개의치 않는다. 중동이나 세계적으로는 미국의 셰일 혁명이 다행이다. 미국은 중동산 석유가 고갈되거나 끊겨서 한국, 중국, 일본의 경제가 박살나고 빈곤에 허덕이기를 은근히 희망하고 있다. 자이한의 표현을 보면 ‘은근히’가 아니라 ‘적극’이다.
그러나 자이한의 말은 맞는 말이다. 한국, 일본, 중국은 함께 중동산 석유에 의존한 석유문명국가들이다. 중동 석유가 끊기면 경제가 박살난다. 미국인들은 그것을 즐기고. 그러므로 지금부터 그에 대비한 경제구조와 본질을 조성해야 한다. 에너지 문제에서 석유 의존도를 최소화 하고, 생필품을 절제하며 재활용해야 한다. 국내 생산 원료를 이용한 물품을 생산할 기초를 준비해야 한다. 소비문화의 개선과 혁신이 필요하다. 더불어 동양삼국은 중동산 석유를 안정되게 받을 수 있는 루트를 수호할 군사력을 함께 준비해야 한다. 석유는 동양삼국의 생명줄이다. 생명줄 앞에 지역 패권주의는 불필요하다.
(7) [원문] 현재 미국의 공포의 대상은 중국이고,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중국의 기를 꺾어놓는 조치라면 무엇이든 찬사를 보낸다. 그러나 중국은 지금으로부터 한 세대 안에 동아시아 연안을 지배하는 강대국이 될 가능성이 없다. 아시아에서는 재무장을 하고 거의 확실히 핵전력을 갖추게 될 일본이 아시아 연안 전역의 나라들을 자국의 경제적 영향권 하에 두고 그 나라들로 이루어진 동맹체제를 지배하게 된다. 과거에 일본이 비슷한 시도를 했다가 제2차 세계대전 태평양 전역에서 패했는데, 그때와 달리 이번에는 미국이 일본으로 하여금 그것을 성취하도록 부추길까?
[비판] 중국과 일본이 얼굴을 마주한 같은 동북아 국가들인데도 미국인들은 왜 중국을 싫어 하고 일본을 편들까? 미국은 일본과는 태평양에서, 중국과는 한반도에서 큰 전쟁을 치루었다. 일본은 승리한 대상이고 중국은 휴전한 대상이기 때문일까? 그러나 만약 앞으로 다시 전쟁을 한다면. 일본은 미국에 대해 과거에 쌓인 원한을 갚으려 독을 쓸 것이지만 중국은 그렇게 철저한 복수를 하진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왜 미국인들은 중국을 그렇게 싫어할까. 유전자에 몽골족에게 당한 황화론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릴 적부터 학습한 중국인 혐오증 때문이다. 중국이 나오는 영화와 드라마가 온통 혐중이다. 중국인은 더럽고 교활하며 음흉한 악한으로 등장하고, 미국 서부의 건맨은 그런 악당들을 처치하는 정의의 사도로 등장한다.
그러나 중국은 1978년 개방개혁 이후 무섭게 성장하여 2022년 현재로는 어엿한 G2 반열에 올랐다. 또한 10년 안에 미국을 추월하여 G1이 될 것이라고 세계적 석학들이 예측하고 있다. 미국은 추월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을 꺾어버리려고 온갖 정책과 술책을 동원하고 있다.
(8) [원문] 이 세 전역 유럽, 중동, 동아시아에서 지금부터 20년 후에는 훨씬 막강한 경쟁자 들이 훨씬 치열하게 경쟁하게 될 씨앗이 뿌려지고 있다. 이 세 지역 모두에서 지금 미국이 신경을 쓰지 않으면 그러한 경쟁의 싹을 잘라낼 수 있을 만한 동맹국들을 대거 포기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미국이 세계로부터 원하는 게 뭔지 분명히 표명하지 못하면 미국은 앞으로 일련의 갈등들에 휩싸이게 된다. 쉽게 예방할 수 있고 미국 혼자 싸울 필요도 없는 갈등들 말이다.
[비판] 자이한은 미국이 세 전역으로부터 철수할 것이란 전제를 하면서도 뒷배치로는 미국의 대응을 주문하는 이중적 문장 구조를 제시하고 있다. 미국이 없으면 이러이러하게 될 것이라 실컷 말해 놓고는 미국으로하여금 경쟁과 갈등의 싹을 잘라내는 동맹국들을 포기하지 말라고 한다. 그렇지만 미국의 퇴조를 확신하는 어법이다.
그렇다면 미국이 세계로부터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패권의 연장인가 먼로주의의 부활인가. 그러나 다극화가 본격적으로 심화하면서 미국 단독의 패권은 어렵다. 물론 남북 아메리카 대륙을 중심으로 한 지역 패권과 세 전역에 일정한 패권을 행사하고 있겠지만 말이다.
20년 후의 세계는 자이한의 말대로 각 대륙과 지역마다 중심 패권국가가 등장할 것이다. 그러나 동아시아는 자이한의 예측대로 일본이 아니라 중국일 것이다. 일본은 국토와 인구, 지하자원 등 모든 면에서 중국에 뒤처진다.
그렇다면 우리 한국은 20년 후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 것인가. 뭐니뭐니 해도 빨리 통일하는 게 가장 좋지만 현실은 불가능이다. 그렇다고 20년 후까지 남북이 지금처럼 갈등과 대립을 계속해서는 동아시아의 문제아로 다시 전락한다. 그러므로 몇 년 안에 갈등과 대립을 지양하고 선의의 경쟁 구조로 진입하는 게 급선무이다. 그렇게 되면 20년 후에는 남과 북이 서로 협조협력하게 되어 한반도가 중국과 일본에게 뒤지지 않는 위치와 무게를 차지하여 동아시아 발전의 한 축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미국이 퇴조하고 한미동맹이 완화되거나 해소될 경우엔 남북한 관계에 새로운 지평이 전개된다. 북한은 체제 붕괴에 대한 위험도가 낮아지면서 정상국가화 될 것이고 한국은 민주주의와 경제가 본격적으로 발전할 것이다. 중국은 안보 불안이 사라지면서 지역 맹주로서 대동소이 포용하는 자세를 갖게 될 것이다. 일본은 북한과 중국에 대한 경계와 불안이 해소되면서 본격적인 경제국가로서 발전할 것이다. 러시아를 끌어들여 평화체제를 갖춘다면 동아시아가 지구에서 경제와 문화 등 모든 면에서 가장 앞서가는 지역이 될 것이다.
이것이 좋은 미래상이지만 어디까지나 이상이다. 현실은 반대로 미국은 NATO와 중동에서는 퇴조하더라도, 중국이 제1경계 대상국가로 존속하는 한에는 한미동맹과 일미동맹만은 끝까지 유지하려고 할 것이다. 즉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의 미래는 미국이 중국을 어떻게 대하고 다루느냐에 달렸다. 또한 미국의 군수산업은 동아시아 긴장만큼은 놓칠 수 없는 시장이다. 다른 지역은 무관하지만 미국의 앞마당인 태평양을 수호하는 긴장라인인 동북아에서는 미국의 이해가 예민하다. 중국과 일본 모두 과거 한 번씩 혈투를 벌인 전쟁 대상국이다. 일본이야 70여 년 동안 길을 잘 들였지만 중국은 치고 올라오는 G2국이다. 일본 역시 고삐가 풀리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안 대상이다.
이러한 미국의 이해와 전략에 맞서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어떻게 도모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한국, 중국, 일본 세 국가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미국이라는 사자에게 방울을 어떻게 달 것인가, 방울을 넘어 고삐를 어떻게 맬 것인가 하는 문제가 동아시아 생존 문제에 직결된다. 극우로 흐르는 윤석열 정권의 정책 방향에 맞춰 바이든 미국의 호응이 거세다. 한반도 남과 북에서 연일 벌어지고 있는 무력시위가 훈련으로 끝나면 천만다행이지만, 만에 하나라도 열전이 된다면, 그러나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될 참화이다.
2022년 11월 5일 열락연재에서
송계 박 희용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