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궁全氏 시조(始祖) 휘(諱) 방숙(邦淑, 龍城府院君) 공(公) 시향제 봉행
용궁全氏 시조(始祖) 휘(諱) 방숙(邦淑, 龍城府院君) 공(公) 시향제 봉행은 지난 11월 7일 오전 11시 전국 각지에서 모인 60여 명의 후손은 화창한 가을 날씨에 경북 예천군 용궁면 시조 공(公) 묘소(墓所)에서 엄숙하고 경건하게 시조(始祖) 공(公) 시향제를 봉행했다. 시조(始祖) 공(公) 시향제는 예천종친회 전재섭 회장, 대종회 전재은 회장, 운영위원회 전재완 회장, 전재덕, 전장홍 원로, 초헌관으로 참석한 중앙종친회 전종득 회장, 후손 등이 제례에 참례했다.
시조(始祖) 공(公) 시향제는
▶헌관 및 제집사 서립
▶헌관 및 제집사·산신제 헌관 및 집사 분방
▶산신제 봉행
▶시조(始祖) 공(公) 시향제 봉행
▶음복례
▶망료례
▶기념촬영
▶오찬 순으로 진행했다.
먼저 산신제는 시조 공(公) 묘소(墓所) 옆에 마련된 산신 제단에서 “시조 묘소를 보우하심을 기원”하며 산신제를 올렸다.
산신제 ▷헌관: 전만석(全萬錫) 후손 ▷집례: 전장홍(全章弘) 후손 ▷축: 전도석(全道錫) 후손 ▷左 집사: 전재홍(全在弘) 후손 ▷右 집사: 전진식(全進植) 후손이 맡아 복무했다.
제례 헌관 및 제집사는
▷초헌관: 전종득(全鍾得) 全氏중앙종친회 회장
▷아헌관: 전보현(全輔鉉) 후손
▷종헌관: 전진석(全進錫) 후손
▷집례: 전장홍(全章弘) 후손
▷축: 전도석(全道錫) 후손
▷찬인: 전재정(全在正) 후손
▷알자: 전부화(全富和) 후손
▷집사: 전재홍(全在弘), 전진식(全進植) 후손이 맡아 복무했다.
이어 시조(始祖) 공(公) 시향제를 봉행했다. 집례 전장홍(全章弘) 후손의 창홀에 따라 진행된 제례는 헌관 및 제집사 분방에 이어
▷초헌관이 예찬을 살피는 점시
▷향을 피우는 강신례
▷초헌관 전종득(全鍾得) 전씨중앙종친회 회장이 시조 공(公) 신위에 첫 작(爵)을 헌작(獻爵)하는 초헌례
▷축 전도석(全道錫) 후손이 축문을 낭독하는 독축 ▷아헌관 전보현(全輔鉉) 후손이 두 번째 작을 신위에 헌작하는 아헌례
▷종헌관 전진석(全進錫) 후손이 세 번째 작을 신위에 헌작하는 종헌례 순으로 봉행 됐다.
이어서 삼헌관의
▷음복 수조례
▷변두을 거두는 철변두
▷축문을 불사르는 망예례를 끝으로 시조 공(公)에 대한 모든 예를 마쳤다.
헌관 및 제집사와 각 지역 시향제 참배 후손 기념촬영을 마치고 준비한 도시락을 시조 공(公) 시향제 참례 후손이 오찬을 함께했다.
용궁全氏 관조는 도시조 전섭(全聶)의 28세손이며, 충렬공 전이갑(全以甲)의 14세손인 전방숙(全邦淑)이다. 全氏 대동보에 의하면 그는 고려 충렬왕 때 한림학사, 문화시중평장사 등을 지냈고 나라에 공을 세워 용성부원군(龍城府院君)에 봉해졌다고 한다. 그 후 방숙의 아들 정민(正敏)이 고려에서 중서사인, 삼중대광, 참의를 거처 태사에 이르렀고, 손자 충경(忠敬)은 전법총랑을 역임하여 가문을 크게 중흥시켰다.
또한 충경(忠敬)의 손자 진(進)은 전서를 지냈으며, 진의 아들 원발(元發)이 고려 말 공민왕때 원나라에 가서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병부상서, 집현전 대학사를 지내다가 귀국하여 조선 태조 때 축산부원군(竺山府院君)에 봉해졌다.
축산은 용궁의 옛 지명이며, 용궁은 지금의 경북 예천군 용궁면이 되므로 후손들이 그곳에서 살면서 정선全氏에서 분적하여 관향을 용궁으로 삼아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선조 때의 학자 삼성(三省)이 임진왜란 때 크게 공을 세웠으며, 오익(五益)은 인조 때의 박학다식(博學多識)한 학자로서 당세에 이름을 떨쳐 가문을 빛냈다.
(자료 : 전장홍(全章弘) 원로, 사진 : 전용태 후손 제공)
기사 작성 및 사진 정리 : 全氏 중앙종친회 종보 편집국장 전남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