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의 주장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대일강화조약)에서 독도는 한국영토에서 제외 되었으며 1951년 7월 한국은 한국 영토 조항에 독도를 기재 해 달라고 요구 했으나 미국이 이 요구를 거절(러스크 서한)했다. 즉 독도는 일본 영토로 남았다.
● 삼국사기에 ‘우산도’는 없다, 주장
<반론>
한국은 역사적으로 독도를 우산도(于山島)로 불렀다.
► 삼국사기 - 512년 신라는 우산국(울릉도 + 독도)을 합병했다.
※나라는 주변 땅을 포함한다.
► 1454년 세종실록 지리지 - 우산(독도)와 무릉(울릉도), 두 섬은 (중략) 서로 거리가 멀지 아니하고 날씨가 맑으면 바라 볼 수 있다.
●울릉도에서 2km 떨어진 섬, 죽도(竹島)가 우산도이다, 주장
<반론>
독도의 원래의 이름은 우산도이며, 죽도(竹島)에는 산봉리가 없다.
► 한국에서 산이 그려진 지도는 많지 않지만 19세기 초 해동여지도(海東與地圖)와 19세기 중반의 ‘해좌전도(海左全圖)’ 우산도에는 산봉우리가 표시 되어 있다. 또한 그림지도의 거리는 상징성을 가질 뿐 거리는 무시된다.
예) 고지도에는 울릉도가 한반도와 약 130km 떨어져 있으나 붙어있고, 직경이 약 10km 밖에 되지 않는 울릉도가 크게 그려져 있다.
●조선은 태종의 공도(空島) 정책으로 1511년부터 1694년 울릉도에 관리를 파견할 때까지 약180년 동안 울릉도를 공식적으로는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이었다. 이때 일본 돗토리 사람들이 1660년경부터 1693년까지 약 30년간 울릉도와 독도를 왕래 했던 공식 기록이 있다. 일본은 이 기록을 가지고 조선은 스스로 독도를 영토에서 포기했기 때문에 독도가 일본 영토라 주장
<반론>
공도정책은 수토(守土)정책, 쇄환(刷還)정책이라는 영토를 관리하는 방법으로 조선왕조실록에 영토관리 증거가 있다.
► 1693부터 수년 동안 ‘안용복’이 도일 활동으로 일본 관백(關伯)의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땅이라는 서계(書契:한일간 외교문서)를 받았고 일본은 도해(渡海)를 금지 했다.
◉ 한, 일 문서상의 독도 확인
● 조선의 공문서
► 1770년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 1808년 만기요람(萬機要覽)/ 1907년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울릉, 우산, 모두 우산국의 땅, 우산은 즉 왜가 말하는 송도(松島)이다.
●일본의 공문서
► 1870년 대원군 시절 일본 외무성의 첩자 보고서 ‘조선국 교제 시말 내탐서’에 송도(독도)가 ‘숙종 말에 조선의 부속이 되었다’ 확인 하고 있다.
► 1877년 일본정부(태정관도)는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 영토가 아님을 공식 확인 - “일본해(동해)내 죽도와 그밖에 있는 한 섬(독도)은 (중략) 원록5년(1692)년 조선인이 입도한 이래(숙종 때 ‘안영복’사건) ~ (중략) ~ 드디어 본방과 관계가 없다는 것을 명심 할 것” - 현재는 이 자료를 숨기고 있음
※ 밖에 있는 섬은 많은데 왜 한 섬이 독도인가? - 과거 이 문서에는 약도(略圖)가 있었으며 독도(송도)가 2개의 섬(동도, 서도)으로 그려져 있었다.
► 1785년 삼국접양지도(三國接壤之圖)에 죽도(울릉도) 아래쪽에 있는 섬이 송도(독도) 이며, 이 두 섬이 일본 땅이 아니라 조선의 부속이라고 일본 정부는 결론을 내렸다.(2007년 이후 없애버렸다)
※ “17세기에 일본의 영토로 만들었다”는 완벽한 거짓말이다.
◉ 2차 대전 이후 연합국 문서
●1946년 6월 연합국들이 독도 및 한반도를 한국영토로 취급한다는 ‘scapin(연합국 최고 사령부 지령) 677호’를 일본에 하달하여 독도를 한국 영토로 규정
●1951년 9월 1일 미국을 포함 연합국 48개국이 일본과 모여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승인. - 조약 초안 작성과정에서 미국은 전략상 독도를 일본 영토로 바꾸려 했다.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서 독도가 사라지기까지의 과정
① 조약 초안 작성 1차에서~ 5차까지 독도는 계속 한국영토로 기재됨
(1951년 6월 - 한국 영토조항 확정: 제 2조 a항, ”일본국은 조선의 독립을 승인하여 제주도, 거문도 및 울릉도를 포함한 조선에 대한 모든 권한 및 청구를 포기 한다“ - 약도(略圖)에는 독도가 일본 밖에 있다)
② 6차에서 미국과 일본의 로비로 독도를 일본 땅으로 기재(이때는 미국이 일 본을 지배하고 있었고 군사 전략상 독도를 자신들의 지배하에 두고 싶어 했다. 6,25 전쟁 중이었으므로 전쟁에서 지게 되면 독도를 빼앗기게 되니 까 일본 땅으로 인정하기로 함 - 독도에 레이더 기지 설치 계획이 있었음)
③ 7차에서 연합국의 합의로 다시 한국 영토로 기재.
④ 8차에서 다시 미국이 독도를 일본 영토로 기재 - 영국 뉴질랜드 등, 특히 호주(2차 대전 당시 일본의 폭격을 받은 반일 감정)가 미국 초안에 극열 반 대하여 51년 4월 독도가 한국령으로 된 영국초안을 발표
⑤ 이에 미국(일본을 자유주의 국가로 빠른 독립을 원함)과 영국이 7차에 걸쳐 비밀회담을 가져 극동위원회 11개국이 냉전을 고려하여 일본이 ‘샌프란시 스코조약’을 수용하기 쉬운 초안을 채택 조문 안에 땅은 일본 것이 절대 아니지만 ‘독도’ 명칭을 뺐다
※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 ‘독도’ 언급이 없는 것은 ‘scapin 677호’ 지령을 그대로 계승한 것으로 간주되어 ‘독도’는 한국 영토라 인정했기 때문이다.
※ 1951년 9월 독도가 사라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이 조인되었지만 마이니치신문사는 1952년 4월, <대일 평화조약 해설서> 책자에서 독도를 일본에서 제외된 한국 령으로 표기하여 발간했다. 여기에 실린 ‘독도가 다케시마’로 표시된 일본 영역지도는 일본은 ‘독도’라는 이름을 알고 있었으나 ‘모른다.’ 속였다. - 이때 한국 정치 상황은 6,25 전쟁으로 인하여 일본의 술수를 신경 쓸 수가 없었다.
◉ 일본의 최대 왜곡 주장 < 러스크(Rusk documents)서한>
1951년 8월 10일 미국 극동 당담 국무 차관보 딘 러스크가 양유찬 주 미국 대한민국 대사에게 보낸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비밀외교 서한.
우리의 정보에 의하면 독도, 혹은 리앙쿠르 암초나 다케시마에 관해서, 이 사람이 살지 않는 암초는 한국의 영토로 취급받은 적이 없으며, 1905년 이래로 일본 시마네 현 오키 섬의 관할 구역이었다. |
일본은 1998년 처음 공개된 이 서한을 근거로 가장 강역하게 ‘독도’가 일본영토라는 자신들만의 주장을 전 세계에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고 많은 나라들이 동화되고 있다.
1951년 9월8일 조인되고 1952년 4월 28일 발효된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대일강화조약)이 체결되기 2개월 전 한국정부는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독도가 적시되지 않은 것을 알게 되어 1951년 7월 19일 당시 주한 미국대사 양유찬을 통하여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독도’를 한국영토 삽입을 요구(한국은 비조인국)
이때 한국 대사 양유 찬은 어릴 때 미국으로 이민한 교포로 독도의 위치를 몰랐었고, 함께한 ‘한표욱’ 일등서기관이나 한국 대사관 직원들도 잘 몰랐다. 또한 당시는 6,25 전쟁 중으로 독도가 다케시마(竹島죽도)로 다루고 있었던 사실도 몰랐다. 이런 이유로 한국 영토로 넣어 달라는 과정에서 혼돈이 있었고, 한국정부는 부산 피난 시절이라 독도에 대한 연구 자료가 별로 없었다.
미국은 한국 사람들이 잘 모르자, 무초 주한 미국 대사에게 물었고 ‘다케시마’가 ‘독도’ 이며 일본 영토가 아니라 한국 영토라 답변 했다.(공식문서)
<반론 >
‘러스크 서한’은 미국이 1953년 7월 22일 까지도 일본에게 알리지 않고 오직 한국에만 전달한 비밀문서이며, 미국 정부가 연합국에도 비밀로 했던 공포하지 않은 미국의 입장 표명으로 연합국 공통 견해가 아니므로 아무런 효력이 없다.
대한민국은 1948년 8월 15일 미국, 일본을 포함한 세계연합에 독립을 인정받은 주권국가로 일본이 “러스크 서한”을 알기전인 1952년 1월 18일 이승만 대통령이 ‘해양주권선언’을 통해 독도를 한국 해역에 포함 시켰다.
일본은 1945년 8월 9일 포츠담 선언을 받아드렸고 제8항에 “일본 영토가 될 작은 섬은 극동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로 되어 있어, <러스크 서한>의 “포츠담 선언을 따를 필요가 없다”는 미국의 일방적 견해는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결론으로 볼 수 없다.
또한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미국 책임자였던 덜레스 대사가 후에 미 국무성 장관이 되어 “독도에 대한 미국의 견해는 평화조약에 대한 많은 서명국중 하나의 견해일 뿐이다”라고 밝혔다.
※※ 2011년 8월 1일 일본 자민당 국회의원 3명이 우리정부에 ‘독도’ 항의 차 울릉도로 가기위해 김포공항에 입국하여 <러스크서간>을 주장 했으나, 그 자리에 있던 대한민국 기자들은 일본의 대부분의 학생들도 알고 있는 <라스크서간> 내용을 단 한사람도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하는 ‘독도’에 대한 무지를 들러냈다,
<러스크서간>주장은 세계 주요 언론을 통해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이미지를 부각 시키는 결과를 남겼다. 우리 스스로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광고를 해 준 것이다. 한국정부도 한미관계에 신경을 쓰면서 아직 까지도 <러스크 서한>에 대한 명료한 비판과 논리를 주장한바 없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독도’에 관한 현실이다.
일본이 독도를 일본 땅이라 주장하는 가장 큰 이유는 < 1994년 국제협약에 의해 배타적 경제수역 200해리>가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독도' 섬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국의 영토로 부터 경제수역 200해리가 가져다주는 가치를 중요시 하는 것이다. |
첫댓글 좀더 간략한 정리를 하려하다 강의 내용 순서 대로 정리 했다.
읽어 주시는 분들이 쉽게 이해 할 수 있기를 기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