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4:1 이제 내가 말하노니 상속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아이일 때에는 전혀 종과 다르지 아니하고
갈라디아서 4:2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가정교사들과 감독하는 자들 밑에 있느니라.
갈라디아서 4:3 이와 같이 우리도 아이였을 때에는 세상의 초등 원리 밑에서 속박 당하였느니라.
갈라디아서 4:4 그러나 충만한 때가 이르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있게 하셨나니
갈라디아서 4:5 이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구속하시고 또 우리가 아들로 입양되게 하려 하심이라.
갈라디아서 4:19 나의 어린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께서 형성되실 때까지 내가 다시 너희를 위해 해산하는 수고를 겪노라.
갈라디아서 4:20 내가 이제 너희와 함께 있어 내 목소리를 바꾸기 원하노니 나는 너희에 대하여 의심하노라.
갈라디아서 4:21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 있고자 하는 자들아, 너희가 율법을 듣지 아니하느냐?
갈라디아서 4:22 기록된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하나는 노예 여종에게서 났고 다른 하나는 자유로운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느니라.
갈라디아서 4:23 그러나 노예 여자에게서 난 자는 육체를 따라 태어났고 자유로운 여자에게서 난 자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갈라디아서 4:24 그것들은 풍유니라. 이들은 두 언약인데 하나는 시내 산에서 나와 속박 당하게 하는 자니 곧 하갈이라.
갈라디아서 4:25 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이요, 지금 있는 예루살렘에 해당하는 곳으로 자기 아이들과 더불어 속박 중에 있느니라.
갈라디아서 4:26 그러나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로운 자니 곧 우리 모두의 어머니라.
갈라디아서 4:27 기록된바, 수태하지 못하는 자여, 너는 기뻐할지어다. 산고를 치르지 못하는 자여, 너는 소리 지르고 외칠지어다. 황폐한 자가 남편 있는 여자보다 더 많은 아이를 두느니라, 하였느니라.
갈라디아서 4:28 형제들아, 이제 우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아이들이니라.
갈라디아서 4:29 그러나 그때에 육체를 따라 태어난 자가 성령을 따라 태어난 자를 핍박한 것 같이 지금도 그러하도다.
갈라디아서 4:30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 기록이 무어라 말하느냐? 노예 여자와 그녀의 아들을 내쫓으라. 노예 여자의 아들은 자유로운 여자의 아들과 함께 상속자가 되지 못하리라, 하느니라.
갈라디아서 4:31 그런즉 형제들아, 이처럼 우리는 노예 여자의 아이가 아니요 자유로운 자의 아이니라.
히브리서 6:1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교리의 기초 원리들을 떠나 완전함으로 나아가서 죽은 행위들로부터의 회개와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히브리서 6:2 침례들에 관한 교리와 안수와 죽은 자들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의 기초를 다시 놓지 말지니라.
히브리서 6:3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
히브리서 6:4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선물을 맛보고 [성령님]께 참여한 자가 되고
히브리서 6: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오는 세상의 권능을 맛본 자들이
히브리서 6:6 만일 떨어져 나가면 다시 그들을 새롭게 하여 회개에 이르게 함이 불가능하니 그들은 자기들을 위해 [하나님]의 [아들]을 새로이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그분을 모욕하느니라.
종교에서 나오고 난후...갈라디아서 4장 말씀이 우리들의 신앙 여정에도 그대로 나타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교리의 기초 원리들 아래서...본래는 모든 것의 상속자이나 종이나 하인과 다름없이 지냈다는 걸...
종교 형식에 속해있는 우리들이 무릎꿇은 신은 하나님을 섬기는 신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섬기는 우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종교의 영...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기독교에서 행하고 있는 모든 것들에서 떠나야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교리의 기초 원리들을 떠나 완전함으로 나아가서 죽은 행위들로부터의 회개와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침례들에 관한 교리와 안수와 죽은 자들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의 기초를 다시 놓지 말지니라."
우리는 어릴 때에 전혀 종과 다르지 않았고, 그리스도 교리의 기초 원리들, 죽은 종교의 행위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라고 하는 행위들, 침례들에 관한 교리와 안수 등등 종교적 행위들 밑에서 종 노릇했고, 우상을 숭배했고, 교리의 기초 원리들 밑에서 압제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떠나 완전함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해야지 종교 행위를 하여서는 안됩니다.
그리스도를 섬기는 우상은 우리를 언제든 율법 아래 놓이게 하며, 형식과 제도에 얽매이게 해서 우리를 다시 넘어뜨리려 할 것입니다.
종교는 혈과 육의 씨름을 하게 하고 육체의 더러움을 씻으려 하고, 죽은 시체를 만지게 할 것입니다.
종교 행위는 사도 요한이 어린 자녀들에게 그토록 경계한 "우상들을 멀리하라"는 권면을 무색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고 율법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섬기지 않아야 합니다.
의문의 묵은 것으로 섬길 때 우리는 다시 율법 아래로 들어가게 되고 하나님께 영적 간음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원하는 심령, 생명의 성령의 법, 영의 새로운 것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형식과 제도와 종교는 우리를 다시 의문의 묵은 것으로 섬기게 하고 세상의 초등원리로 돌아가게 할 것입니다.
새 피조물들은 그리스도의 생명이 밖으로 나오는 삶을 살아야 하며, 영의 새로움으로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종교의 속박을 당하게 되면 우리 생명은 답답함을 느끼게 되고 곧 죽은 행위들처럼 될 것입니다. 그것은 우상숭배이기 때문입니다.
연합의 진리를 깨달았다고 하면서...
부활 생명을 산다고 하면서....
다시 목사교로 들어가 종교 생활을 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참...마음이 아프고 심령이 상합니다.
분별력이 없는 것은 담장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도둑도 들어오게 하고 강도도 들어오게 하는....
자발적으로 행치 않는 자는 율법의 통치를 받게 됩니다.
내주하시는 성령께서는 율법에서 자유케 하십니다.
"내 법을 그들 심중에 두며 그들 마음 속에 기록하겠다"
우리는 우리들 내부에 정하신 법칙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것과 같은 새로운 약속을 전적으로 받아들인 사람입니다. 우리는 마음 속 성령의 법에 의해 자원하는 마음으로 행하는 자들입니다.
마음 속의 성령께서는 마음 밖의 율법에 얽매이지 아니하십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나를 해방하였음이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진리 자체이신 그분이 우리 안에 계셔 우리를 자유케 하십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주님을 찬송합니다.
첫댓글 나는 만왕의 왕과 결혼한 사람입니다. 나는 왕족입니다.
그리고 주 예수께서는 우리를 그의 하나님과 아버지를 위하여 왕들과 제사장들로 삼으셨습니다(계 1:6)
나는 노예였으나 예수께서 나를 왕과 제사장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니 다시 초등원리 밑에서 종노릇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다스리게 하자…”(창 1:26)
우리는 다스리기 위하여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꼬리가 아니라 머리가 되라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역할은 어두움의 영향 아래 있는 그러한 지역에 승리자와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질병과 악한 영, 그리고 원수의 모든 일들을 통치하여 온 땅에 주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으로 채워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와 연합하여 하나 될 때, 우리로 하여금 주님과 함께 하늘에서 왕 노릇하게 하시려고 주께서는 우리를 자신과 함께 일으키셨습니다. (엡 2:6)
믿음으로 사는 것은 은혜 속에 사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고 싶다면, 주님의 은혜 속에서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주께서 이미 공급하신 것을 받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주께서 해 달라고 구걸하는 일일랑 멈추고, 주께서 이미 하신 일에 대해서 생각하기를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은혜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면서 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인간이 만든 종교의 굴레를 짊어지고 위협의 영에게 손쉬운 먹잇감이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은 다른 사람들이 부리는 사탄 같은 통제 아래에 빠지게 될 수도 있습니다.
왕들은 확신에 차 있으며 그 확신은 당신이 의롭다는 사실을 아는 지식으로부터 나온다. 하나님께서 당신 편이시라는 것을 당신이 안다면, 즉,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시며, 용납하시며, 당신을 기뻐하신다는 것을 당신이 안다면, 모든 것을 달리 보게 될 것이다. 당신은 더 이상 사기꾼처럼 왕국의 변두리에서 망설이지 않을 것이고 은혜를 죽이는 종교를 더 이상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왕 노릇 하기 시작할 것이고, 당신은 지존자의 자녀처럼 행동하고 말할 것이다. 당신은 당신의 운명을 벗어나 살기 시작할 것이다.
평민들을 당황하게 하는 문제들은 왕들을 기도하게 한다. “주님, 저는 가야 할 길을 모르지만 주께서는 아십니다. 제게 그 길을 보여주소서.” 일을 살피는 것은 왕의 영광이요(잠 25:2), 그들이 일을 하는 방식은 원칙적으로 지혜와 영감을 구하는 것이다. 여호사밧 왕처럼, 안개와 같은 불확실성 앞에서 다음과 같이 기도함으로 반응한다, “주님, 우리는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오니, 우리는 주님만을 바라보나이다”(대하 20:12).
왕들이 주변의 사람들을 축복하는 방법은 땅의 필요에 대한 하늘의 자원을 풀어주는 식이다. 우선 한 차원의 이야기를 하자면, 그들은 가난한 자들과 궁핍한 자들, 아픈 자들과 눌린 자들을 해방시킴으로써 마귀가 하는 파괴적인 일들에 맞선다. 그러나 왕들은 또한 그 누구도 있어보지 않은 백성들의 자리에 섬으로써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미술과 과학, 산업과 정치 등의 영역에서 창조적인 표현을 함으로써 왕들은 하늘의 문화를 땅으로 가져온다.
은혜는 믿음을 통하여 오며, 믿음이 어떤 유익이 되려면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 믿음을 나타내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것을 말하는 것이다. 말에는 능력이 있다. 말이 사용되는 곳은 세우거나, 무너뜨리거나, 길을 인도하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데, 그리고 분명하게 하거나 혼동하게 하는데 사용된다. 올바른 때에 사용한 적당한 말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왕들은 일차적으로 말을 함으로써 통치권을 수행한다. 전도서 8:4로 바꾸어 말하자면, “왕의 말에는 권능이 있다.” 하나님의 왕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할 때, 하나님께서는 능력으로 그것을 뒷받침하신다.
어떤 분이 저에게 "기도하지 않느냐?"고 묻더군요. 저는 무릎꿇고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고 몇시간씩 하는 그런 기도는 하지 않지만..."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모든 일에서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너희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니라. 성령을 억누르지 말라, 대언하는 것을 멸시하지 말라. 모든 것을 시험해 보고 선한 것을 굳게 붙들라"
불가능한 것일 줄 알았던 이것이 가능해진 사람입니다....하고 대답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런 세계로 오게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그들이 말하는 오래 기도하는 것이란 무엇인지 정말 궁금합니다.
당신이 종교의 속박을 당해야 하고, 목사교에 더 배워야 한다던 어떤 분과도 교제를 단절합니다. 마음이 아프지만 교제를 단절합니다. 나비는 나비로서 나비답게 살아야 하니까요. 저는 제 영을 억압하고 스스로가 아닌 억지로 자유를 제한하려고 하는 어떤 사람들로부터라도 늘 떠날 것입니다.
종교를 떠나와도 우리 마음 속에는 늘 종교적 속박의 관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것으로 주위 사람들을 옭아매고 제한하고 판단하고 험담하고 정죄합니다. 그러니 새영이라고 하면서 예전의 종교 행위를 고집하고 있습니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부대에 넣어 포도주도 망치고 가죽부대도 망칩니다. 슬프고 슬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