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시간 제 설교의 주제는 "공의"에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우리 삶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였지요.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치기준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설교의 내용은 사람들은 불편하게 만들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내가 이해하고 깨달은것을 고백하는 과정으로서의 "공의"지만 그것이 현실에서 적용되어질때는 많은 다름이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각자의 다름속에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가치를 말합니다.
흔한말로 내 고백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서로 주장하지요. 하나님이 나와 함께한다고 고백하곤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가치, 또는 가치관은 누구나 같을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사람이라해도 같은 가치관은 없습니다. 비슷할수는 있겠지요.
삶의 자리가 비슷하고 과정이 비슷하고 환경이 비슷한 사람들이 비슷한 가치관을 가질수는 있겠지요.(혈연, 지연, 학연의 현실이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이겠지요)
지난 몇달간 감리교회 목사로서 내가 가지고 있는 가치기준이 무너지는 아품을 반복적으로 경험했고 이것은 나로하여금 가치중심적으로
설교하게 만들었던 것이지요.
문제는 이것이 성도들을 불편하게 만들수 있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특히 나와 다른 가치 기준을 가진 성도들에게는요.
우리 장로님은 김국도 목사님과 가깝지요. 감독회장 문제가 나왔을때도 저에게 솔직히 말씀했지요.
감리사 문제가 나왔을때도 제에게 솔직히 말씀해 주었지요. 그분이 왜 그런 생각을 갖게 되었는지도 저도 대강은 짐작하고 있고요.
그러니 제 설교가 얼마나 그분을 힘들게 했을까 생각할때 부족한 나를 고백하게 됩니다.
제 가치가 무너지고 존중받지 못한것 때문에 내가 다른이의 가치를 무시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과정을 격으며
주님의 사랑에대한 말씀을 이번주에 나누었습니다.
이제는 가치중심적인 생각, 가치중심적 신앙에서
관계중심적 신앙, 관계중심적 생각을 하려 합니다.
가치관을 강요할수 없습니다, 강요해서 될 문제가 아니니까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치기준을 제시하며 그 가치를 나의 가치관으로 굳게 세우라 말씀합니다.
그 가치관에 따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가라 말씀합니다.
하지만 그 가치관이 관계를 파괴할수는 없음을 생각합니다.
나의 가치관이 성도를 괴롭힐 권리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나의 가치관이 관계를 파괴함으로 교회를 무너뜨리거나 혼란에 빠지게 만드는것도 하나님이 기뻐할 일을 아니라는 마음이 듭니다.
개인으로보면 가치관은 하나님이 주신 기준에따라 분명하고 확고하게 세워져야 하겠지만
개인을 넘어 우리로 만나게되는 많은 사람들과 가치관때문에 적대적 관계를 맺거나 파괴적 관계를 형성하기를 하나님은 원치 않으심을
깨닫고 고백하게 됩니다.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
하나님 사랑이요 이웃사랑이라면
하나님을 근본으로 가치관을 세우고 이웃과의 관계에서 나의 가치관이 소중하듯 그의 가치관도 소중하다는 가장 기본적인 진리를 고백하게 됩니다. 그 바탕위에 행복한 관계를 만들어가야 하겠지요.
하나님은 자신의 가치관으로 나를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기다리며 기회를 주셨지요. 무지막지한 손해를 보시면서.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법이이요 나에게 요청하는 사랑법이라 여겨집니다.
내 인생에서 중요하다고 여겼던것들이 깨어지고 부서져서 화가나고 속상하고 괴로웠던 시간을 넘어
내게 세우게 만드신 가치관을 바탕으로 관계속에 하나님의 뜻을 만들어 가보려 합니다.
긴장과 갈등의 시간속에 참아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함께하게될 나의 주변 사랑하는 이들에게 나의 평안이 여려분의 평안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