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생 선생님 17주기에 함께 읽고 싶은 글입니다.
1996년에 남북어린이어깨동무 캠페인 때 북녘 아이들에게 쓴 편지글입니다.
이 글을 읽으니 <얘들아 우리는>이라는 시가 생각납니다.
시도 함께 덧붙였습니다.
함께 읽어보세요
17주기에도 남과 북을 생각하면 참 쓸쓸한 5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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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어린이 어깨동무 캠페인 1-7
어깨동무가 보내는 편지3 / 북녘 아이들에게
남북 어린이 함께 안녕? 친구야
권정생(아동문학가)
북쪽 아이들아!
처음으로 이렇게 편지를 쓰는구나.
올 여름은 별스럽게 빨리 찾아와 이곳 남쪽엔 벌써부터 섭씨 30도를 웃돌고 있다.
이렇게 더우니 우리 동네 뒷산 참나무 숲이 푸른 잎으로 꽉 우거져버렸다.
그쪽 산과 들은 어떠니? 지금쯤 그쪽 들판엔 모내기가 다 끝났겠지?
여기 경상도는 아직 양파랑 마늘을 거두지 못해 모내기가 열흘이나 더 걸릴 것 같구나.
얼마 전 큰길갓집 영구는 군내 태권도 시합에서 2등를 했단다.
그쪽 애들도 이런 태권도 경기 자주 하니?
향나무집 상민이는 올해 초등학교 1학년에 들어갔는데 어른들께 인사를 해서 모두 귀엽다 그런다.
상민이는 김치하고 밥하고 먹는데도 몸이 아주 튼튼하고 어머니 아버지보다 할머니가 더 좋아서
학교 갔다 오면 할머니부터 찾는대.
자전거를 잘 타는 태복이는 지난번 중간시험에 평균 50점 밖에 못 받았는데도 하나도 걱정 안 한다.
태복이는 커서 자동차 운전수가 되고 싶단다.
옥이네는 작년에 소가 새끼를 낳아 금방 죽어버려 언짢았는데,
올해는 아주 튼튼한 송아지가 태어나 잘 자라고 있다.
얘들아, 북녘 어린 동무들아! 우리들이 헤어져 오고 가지 못한 지도 벌써 50년이 지났구나.
참으로 슬프다.
어떻게 우리끼리 앞으로 소식이라도 서로 전하면서 살 수는 없을까?
그래서 기다리고 기다리다 못해
남쪽 어깨동무 아이들이 너희들에게 그림도 보내고 선물도 보내려고 한단다.
똑같이 단군할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은 우린데
서로 기쁜 일 슬픈 일 함께 나누면서 살아가면 얼마나 좋겠니?
어른들은 모두 고집쟁이여서 여태껏 서로 미워했지만 앞으로 너희들은 절대 그러지 말아라.
옛날 우리 한반도가 푸른색으로 하나였듯이 우리는 함께 살아야 한다.
어깨동무 남쪽 아이들이 예쁜 얼굴을 그려 보내거든 너희들도 답장 꼭 보내줘.
알았지? 안녕!
한겨레신문, 1996년 6월 26일자 2면
얘들아 우리는
권정생
백두산 산바람 마시고 사는 애들아
대동강 강물에 멱감는 애들아
이곳 산바람을 아니?
낙동강 물 빛깔을 알고 있니?
니네들도 모두 모두 보고 있겠지
밤하늘에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
보름달 두둥실 보고 있겠지
얘들아, 얘들아
우리는 어른들을 닮지 말자
백두산, 금강산, 태백산, 한라산
우리들의 산에 나무가 자라듯
푸르게 나무들이 자라듯이
우리는 한 빛깔
높지도낮지도 길지도 짧지도 않은 아이들
어른들은 담을 쌓고 등을 돌리고
어른들은 높은 자리가 좋다고 하지만
사람을 부리는 게 좋다고 하지만
얘들아, 우리는 어른들을 닮지 말자
어른들은 빛깔이 다르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단군 할아버지의 손자들
백두산 산바람 밑에도
귀순이란 애가 살고 있겠지
깜돌이란 애가 살고 있겠지
태백산 산바람 밑에도
혜순이란 애가 살고 있단다.
또식이란 애가 살고 있단다.
모두 눈이 새까만 애들
모두 입술이 빨간 애들
설날이 오면 널이 뛰고 연을 날리고
썰매 타고 제기 차고
여름엔 미역감고 씨름도 하고
보리밥 먹고 팔뚝이 굵고
고추장에 김치 먹고 야무진 애들
보리싹처럼 싱싱하고 인정 많은 아이들
우리는 어른들을 닮지 말자
해는 천만 년을 지나도 해이듯이
달은 만만 년을 지나도 달이듯이
우리는 단군 할아버지의 같은 손자들
얘들아, 우리는 어른들을 닮지 말자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