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시켜서 피는 꽃
이서화
파란시선 0149
2024년 10월 20일 발간
정가 12,000원
B6(128×208㎜)
137쪽
ISBN 979-11-91897-88-3 03810
(주)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
•― 신간 소개
자두가 여름에게 바람을 물으면 꼭지라고 대답한다
[누가 시켜서 피는 꽃]은 이서화 시인의 네 번째 신작 시집으로, 「두 개의 별 사이」 「중간이라는 말」 「여름 속에는」 등 56편이 실려 있다.
이서화 시인은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났고, 2008년 [시로 여는 세상]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굴절을 읽다] [낮달이 허락도 없이] [날씨 하나를 샀다] [누가 시켜서 피는 꽃]을 썼다.
좋은 시인에 대해 이야기할 때 관찰력은 그가 갖는 주요한 미덕으로 흔히 거론되곤 한다. 대상을 자세히 살펴본 후에야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한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일까, 세상의 비의(秘義)는 밝은 눈을 통하지 않고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고 여기기 때문일까. 정확하게 하나의 이유를 들기는 어렵지만 이러한 잣대는 이서화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여서 그간 이서화가 펴낸 세 권의 시집들에 함께 수록된 해설들이 각기 세심히 다룬 것 역시 세계를 관찰하는 그의 태도였다. 그의 시를 통해 “시의 기본이 관찰력과 상상력의 소산임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는 직접적인 언급(이홍섭)만이 아니더라도, “온몸의 신경을 집중시키는 감각적 사유의 융기”에 의해 이서화의 문장이 써졌다는 설명(박성현)이나 관찰에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긴 시간 동안의 인내를 나타내듯 그가 “내면이 무르익기를 기다리”고 난 후 비로소 시를 썼다는 서술(정재훈) 등이 그러하다. 그런데 이번 시집 [누가 시켜서 피는 꽃]의 경우 그의 관찰하는 행위에 주목하여 시의 좋음을 가리키는 일은 어쩐지 조심스럽다. 이서화는 여전히 관찰자로서의 탁월한 역량을 드러내지만, 사물이나 현상을 자세히 살펴본다는 ‘관찰’의 사전적인 의미를 생각해 볼 때 이 말은 이번 시집이 품고 있는 너른 세계를 가리키는 데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판단은 무언가를 오래 관찰하며 깊이 파고드는 이가 너른 시야까지 확보하기란 상대적으로 어려우며, 아무리 살펴보는 범위를 넓힌다고 하더라도 결국 ‘나’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한 그 너머로 나아가기 어려우리라는 추정을 근거로 삼는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서화는 이번 시집에서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해낸다. 그러니까 그는 관찰하는 자이지만 자신이 보는 세계에만 갇혀 있지 않으며, 그의 시는 미시적인 세계와는 거리가 멀다. 아니, [누가 시켜서 피는 꽃]에서 그가 다루는 유달리 넓은 세계는 오히려 대상을 오롯이 바라보는 일에서부터 비롯된다고 말하는 것이 보다 정확한 설명일지 모른다. (이상 송현지 문학평론가의 해설 중에서)
•― 추천사
이서화 시인의 시를 읽으면 우리의 생이 아주 슬픈 것만은 아니라는 안도와 위안을 새삼 얻을 수 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누구든 자신만의 아름다운 세계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시인의 시선이 닿는 곳은 일상적이고 가깝지만 가려지고 소외되어 쓸쓸한 곳이다. 그곳에서 만나는 다양한 자연과 사물, 그리고 우리 삶의 모습들은 때로는 견딤으로 때로는 슬픔으로 제 몫의 생을 묵묵하게 감당하고 있다. 시인은 그것을 정직하게 바라본다. 작고 아픈 것들에게 스스로 맨살이 되어 고스란히 그 말을 듣고 닿으려 한다. 그런 시인의 시선은 섬세하고 무심한 듯 따뜻하다. 그리하여 시인이 말하는 “서로 같은 처지를 곁에 두고/희끗희끗 위로하고/위로받”는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보여 준다(「세상의 군락지」). 또한 중간은 이도 저도 아닌 것이 아니라 “그곳 또한 각자에겐 앞”이라는 놀라운 통찰을 보여 주고 있으며(「중간이라는 말」), “맑고 흐린 날/그 속의 바탕은 다르지 않다”는 발견에 이르기까지(「별일」) 시인은 선하고 따뜻한 마음을 끝까지 내려놓지 않는다. 그리하여 어떤 끝이든 그것은 “다시 시작되는 날들이란/어느 날짜의 끝에서 생겨나는 것”임을 무심하게 보여 준다(「곰팡이의 날」). 사람마다 시의 본령을 다르게 말하지만 이서화 시인의 시를 읽으면 그것이 진심 가득한 이해와 ‘위로’에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승희 시인
•― 시인의 말
어딘가에 집 하나를 두고
늘 걱정한다
집이란 걱정을 모아 놓은 곳
또 무슨 걱정을 하려는지
집을 보러 다닌다
마당에 사과나무가 있는 집
떨어진 사과를 줍는데
파랑과 빨강 둘 다 머뭇거린 색이다
모두 성급했거나
제철을 잊은 것들만 같다
걱정으로 들어가
걱정을 잊으려 한다
•― 저자 소개
이서화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났다.
2008년 [시로 여는 세상]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굴절을 읽다] [낮달이 허락도 없이] [날씨 하나를 샀다] [누가 시켜서 피는 꽃]을 썼다.
•― 차례
시인의 말
제1부
밀봉 – 11
두 개의 별 사이 – 12
세상의 군락지 – 14
골목이 하는 일 – 16
느티나무에 숨다 – 17
중간이라는 말 – 18
손톱 일기 – 20
붉은 감옥 – 22
화석 – 24
숨을 껴안다 – 26
길을 잃는다는 것 – 28
믿는 것들 – 30
폴리 혼방 – 32
장 씨 – 34
제2부
속을 모르겠다 – 39
별일 – 40
사라진 목록 – 42
당간지주 – 44
거꾸로 울고 싶은 길 – 46
여름 속에는 – 48
같은 값 – 50
예상했던 일 – 52
목련 – 54
눌변 – 56
곰팡이의 날 – 58
벌레 도서관 – 60
이를테면 흙탕 – 62
웃음 고르기 – 64
제3부
벗겨진 힘 – 69
집은 외출 중 – 70
목단 – 72
감자 – 74
어떤 이름 – 76
사람의 온도 – 78
그 방에 나타난 것들 – 80
봄 한 채 – 82
수상한 울음 – 84
파묘(破墓) – 86
그리고 며칠 후 – 88
식전 – 90
뒤집어지는 일 – 92
체념 – 93
제4부
물을 갈다 – 97
방생(放生) – 98
오후의 어시장 – 100
너울 파도 – 102
테우 – 104
온다는 말 – 106
물꽃 – 108
물의 시속 – 110
축산항 – 112
말라 간다 – 113
북어 – 114
달의 시간 – 116
겨울 강 – 118
같은 날의 꽃 – 120
해설
송현지 이종(異種) 군락지 – 122
•― 시집 속의 시 세 편
두 개의 별 사이
별은 우주 공간에
몸을 매어 두고 있다
너무 멀어서 어쩔 수 없는 그쯤
현재라는 시간으로 버려져 있다
멀리 빛나는 두 개의 별 사이에
내가 있다고 생각했다
어른이 된 지금도 그렇다
별이 늘 한자리에 머무는 것은
줄다리기할 때처럼
어쩔 수 없는 두 개의 힘
저 별빛은
아득한 먼 곳에서 온다
먼 곳의 빛 그 끝이나 처음쯤에서
가깝게 혹은 또 멀게 서 있다
멀리멀리 가면서 사라지는
별의 일생
도착도 돌아갈 곳도 없는 빛의 일생이라면
그런 별빛의 종착을
자처하고 싶지만
내가 서 있는 이곳에 내려서지 않는
빛은 내가 살아서는 닿지 못한다
어쩔 수 없는 두 개의 별 사이
그곳은 가만히
서 있기 딱 좋은 곳이다 ■
중간이라는 말
중간은 쉽게 도출된다
쉽게 뭉쳐지고 흩어진다
각자 끌고 온 거리를 버리는 일은
늘 중간에서 일어난다
다 같이 달려온 곳이
중간이라면
그보다 더 긍정적일 수 없다
우리는 모여서
앞과 뒤를 이야기했다
소리에도 중간이 있다면 고요가 앞일 것이다
누구는 옆으로 끼어들었지만
금방 앞이나 뒤가 되었다
누구는 앞을 목전에 두고
또 누구는 뒤에 퇴로를 두고 있지만
뒤쪽에 중간을 숨겨 놓고 있다
우리는 모여서 중간을 나누었지만
깜빡하고 중간을 두고 간 사람과
제 것인 양 들고 간 사람을 흉보기에 바빴다
앞으로 달려온 중간에서 각자 뒤돌아갔다
그곳 또한 각자에겐 앞이었다
앞은 어디를 향해도 앞이었고
또 어디에도 있다 ■
여름 속에는
여름 속은 대부분
신맛이 난다
그곳엔 신맛을 견디는 씨앗이 있다
씨앗에선 풍덩, 물이 놀라 튀는
소리가 날 때가 있지만
빗방울은 알아채지 못한다
비는 대부분 여름의 껍질에서 밍밍해진다
언니 배 속에선 이제 막
신맛을 벗어나는 발이 생기고 있었다
태어나는 아이 중엔
여름을 흉내 내는 울음소리
바람이 묻은 어리둥절한 울음도 있지만
자두가 여름에게 바람을 물으면
꼭지라고 대답한다
자두나 살구는 씨앗이 독자들이다
수박에 씨앗을 물으면
풋풋 소리를 내뱉는다
언니는 오므린 입술로 여름을 뱉는다
으앙으앙 동그란 울음소리가
조금씩 묻어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