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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글>에 실린 남기심 국어연구원장과의 대담 내용입니다. 글을 보니 남 원장님의 진보적 사고가 곳곳에 물씬 풍깁니다. 다 읽기에는 부담스런 양입니다. 대충 훑어볼 분들을 위해서 관심 둘 만한 부분을 파란 색으로 표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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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상대를 의식해야 합니다. 따라서 표현은 분명하고 정확해야 합니다. 이를 알고도 지키지 않는 것은 상대를 무시하는 일입니다. 우리의 언론은 독자, 시청자를 얼마나 배려합니까, 언론의 생명인 말과 글을 과연 중시합니까. 그런 점에서 책임의식을 느끼지 않는 현실을 탓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남기심 국립국어연구원장. 그가 진단하는 언론의 말과 글 실태는 명쾌하고도 단호했다. 취임한 지 3년째. 그동안 우리의 어문정책은 전환기를 맞아 새로운 방향을 틀었다. 그 변화의 흐름을 선도하는 이가 바로 남기심 원장이다.
한국어문교열기자협회는 지난 10월 12일 남 원장을 만나 신문 방송언어를 중심으로 전반적인 우리 어문의 실태와 나아갈 방향을 들어봤다. 이날 대담에는 임승수 본회 회장(서울신문 교열팀장), 홍성호 남북어문교류위원장(한국경제 부장), 이경우 <말과 글> 편집장(서울신문), 우제근 사무국장이 자리를 함께했다.
남 원장은 ‘현실적’으로 교열기자들의 위상이 지금보다 훨씬 높아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말문을 열었다. 신문사에서 편집국장에 버금가는 교열국장도 당연히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언어에 대한 인식이 극히 낮은 우리나라의 문화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며 언론 종사자들의 인식 전환을 위한 노력을 당부했다. 이를 위해 교열기자들이 적극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남 원장이 추구하는 ‘대중 속으로 들어가는’ 어문정책과 언어 현실, 국어교육의 문제 등 이날 오간 주요 내용을 요약한다.
― 그동안 신문․방송 언어 향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쳐온 <말과 글>이 1977년 여름 창간호를 낸 이래 이제 100호 발간을 앞두고 있다.
“신문은 ‘말’로 하는 거다. 말 그대로 ‘언론’이다. 말이 엉망이면 기사 내용이 허물어지고 독자들의 신뢰를 잃게 된다. 결과적으로 신문방송 언어의 혼란은 일상생활의 그것으로 이어지는 것이고 그 사회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
교열은 맞춤법 등 표기 차원만이 아니라 표현 전체에 관여해야 한다. 언론의 생명은 말이다. 신문을 비롯한 언론이 사는 길도 여기에서 찾아야 한다. ‘말이 엉터리’라는 말의 진원지는 언론이라고 생각한다. 외래어나 속어 등 걸러야 할 것들을 앞장서서 쏟아낸다. 말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결여돼 있다. 개인이 하는 말이 퍼지는 데는 제한이 있다. 유행어가 생기고 전파되는 데 큰 역할을 하는 게 언론이다. 이런데도 현실적으로 책임의식을 느끼지 않는 것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언론의 ‘말’이 중요한 것은 국민들의 언어생활하고 직결되기 때문이다. 14세기 유럽에서 흑사병이 퍼져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갔다. 언론은 나쁜 병균 같은 말들을 쉽게 퍼뜨릴 수 있다. 기자들의 인식 전환이 중요하고 필요한 시점이다. 그 계기를 <말과 글>이 만들어 줬으면 한다.
― 우리는 언어 문화 자체가 일본이나 서양 등과 차이가 난다고 본다. 그들이 말을 중시하는 것과 달리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서양 사람들은 말에 대해 엄청 민감하다. 학교에서는 글쓰기 강의를 별도로 한다. 선생님들이 부단히 많은 지도를 하는 체제가 갖춰져 있다. 미국의 예를 들면 대학이나 고교 기숙사에 말을 고쳐 주는 문장상담사가 따로 있을 정도다. 그래서 학생들이 쓰는 글을 수시로 보고 지도한다.
20살 된 외국의 한 부두노동자가 있다고 치자. 이 사람이 구사할 수 있는 단어는 1500개다. 나이가 같고 같은 일을 하는 우리나라 사람은 1000개의 단어를 사용할 수 있다고 할 때, 그것은 노동의 질, 기술력의 차이로 나타난다.
우리는 이러한 것을 생각지 않는다. 어휘력이라는 것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실제로 쓰는 단어와 보거나 듣고 이해하는 단어가 있다. 어휘력에 있어서 우리나라의 어린이가 다른 나라의 어린이와 차이가 있다면 나중에 창의력에서 큰 차이를 가져오게 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언어생활에서도 여러 문제가 있다. 말은 상대를 의식해야 하는데, 우리는 많이 부족하다. 상대를 의식하지 않는 것은 대우의 문제다. 또 표현은 명확하고 정확해야 한다.
예를 들어 지하철 플랫폼에 노란 안전선이 있다. 지금은 고쳐졌지만 전에는 지하철이 들어올 때 ‘안전선 밖으로 물러나 주십시오.’라고 안내방송을 했다. 이런 문제를 가지고 몇 번 여기저기 기고를 하기도 했다. 그 당시 화가 나서 알아보니 역마다 사무실에서 방송을 하는 게 아니라 열차에서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까 ‘밖’이 된 것이다. 열차 기준으로 방송을 하는 우를 범했다. 상대를 생각하면 그렇게 할 수 없는 일이다. 듣는 사람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 이건 하나의 예일 뿐 수도 없이 많다.
또 하나 안전시설들의 표현들을 보면 이해하기 힘든 게 적지 않다. 소방 호스가 있는 곳에 ‘불난 지점까지 호스를 전개하여…’라고 돼 있는 것을 보았다. ‘전개’가 도대체 무슨 말인가. ‘끌고 가’라고 하면 되는 거다.
문화재 안내 표지판도 가관이다. 어렵고 기본적인 맞춤법 표기까지 엉망이다. 읽는 사람이 누구냐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렇게 안 써놓을 것이다. 상대를 배려하려는 노력이 부족한 게 여실히 드러난다. 이런 게 언어생활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상대를 배려하는, 정확하고 명확한 언어생활이 되면 삶 자체도 개선될 수 있다. 언론이야말로 말로 사는 것이다. 그러려면 교열의 위상이 높아져야 한다는 건 당연한 이치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그런 인식전환을 위한 노력을 더 해달라.”
― 아픈 얘기를 비롯해 뼈가 되고 살이 되는 말씀을 해 주셨다. 신문언어의 변천 가운데 중요한 것이 한자의 감소다. 한자는 어휘력의 근원이라 할 수 있다. 한자가 사라지면서 한자어도 사라지는데, 어휘력도 약해진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한자를 안 쓴다고 한자어가 줄어들지는 않는다. ‘학교, 선생, 책상…’ 다 없어지지 않는다. 한글로 쓴다고 해서 없어지는 게 아니다. 이걸 다 한문으로 적을 필요가 무엇인가. 말은 소리가 기본이다. 소리를 적은 것이 글이다. 지구상에 문자는 20개 정도이고, 언어는 5000여개다. 말이 먼저이고 글은 부차적인 것인데 거꾸로 생각한다.
예전에는 초등학교에서 ‘꽃잎’을 ‘화판’, ‘암술’ ‘수술’을 ‘자예’ ‘웅예’라 가르쳤다. 이게 쉬운가. ‘마름모꼴’은 ‘능형’이었다. 한자는 궁극적으로 남의 것이다. ‘천(天)’ 하면 우리는 번역해야 한다. 우리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훈이 있다는 것은 그 한자에 해당하는 우리말이 있다는 것이다. 이미 우리 국어에는 한자어가 많이 들어와 있다. 그렇다고 한자로 적을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학교, 입학, 학생’ 등에서 사람들은 ‘학’을 한자로 몰라도 무슨 의미인지 안다.
다른 예를 들면, ‘컴맹’은 젊은층이 만든 말인데 ‘맹’이 어떤 의미인지 다 안다. ‘몸치’ ‘길치’ 등도 이 말은 만든 사람들이 한자 ‘치’를 몰랐어도 ‘치’의 의미를 파악하고 말을 만들었다. 말은 글자 없이 소리로 알아들어야 한다. 한자 없는 미국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가.”
― 우리의 언어 인식이 낮은 것은 역사적으로 우리글을 ‘언문’이라 해 낮춰본 데에도 까닭이 있겠지만, 학교 교육이 부실한 것도 자주 지적되고 있는데.
“초등학교 5학년 때 경기도 광주에서 서울로 올라와 학교를 다녔다. 중학교에 들어간 뒤에 철이 바뀔 때마다 집에 편지를 썼다. ‘기체후일향만강하옵시고 ….’ 당시 이 말이 뭔지 모르고 사용했다. 그러면 그 편지가 다시 온다. 잘못된 곳을 고쳐서 다시 내게 집에서 부친 것이다. 집안에서 언어교육을 이렇게 했다. 어른에게, 동료간에 말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집에서 교육시킨 것이다.
현재 서양에서는 집에서 많이 가르친다. 예를 들어 어린이를 재울 때 책을 읽어 준다. 우리에게 동화로 알려져 있는 ‘허클베리 핀의 모험’ ‘걸리버 여행기’ 등은 원래 성인용이다. 어린이들에게 맞게 고쳐서 새로 쓰여졌다. 이러한 책들을 그들은 어릴 때, 학창시절에, 성인이 돼서 이렇게 세 번 정도 읽게 된다. 이러한 식으로 언어교육을 한다. 우리가 배울 점이다.”
― 국립국어연구원장으로 취임한 이래 가장 역점을 둔 것은? 또 성과를 거둔 것이 있다면?
“그동안은 국어 규범을 몇몇 전문가들이 모여서 정하고 알려 왔다. 국민들은 일방적으로 따라가야 하는 식이었다. 몇몇 사람들이 언어 현실이라는 것을 제대로 반영하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러한 이중구조, 정하는 사람과 쓰는 사람이 따로 있는 구조는 상식적이지 못하다. 그런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서 만든 것이 신문․방송․출판계 등의 인사들로 구성한 표준어사정위원회다.
해방이 되면서 국어순화 작업을 시작했다. 꽤 오래 했는데 성공적이었다. ‘사라’를 ‘접시’, ‘변또’를 ‘도시락’으로 순화했고 아주 널리 잘 쓰이고 있다. 이때의 순화 작업이 성공한 가장 큰 이유는 해방된 감격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왜말을 뿌리 뽑자는 국민적 공감대가 있었다.
그러나 나중에 순화 대상이 영어를 중심으로 한 서양말이 됐을 때는 잘 되지 않았다. 순화어를 많이 만들어 내도 안 쓰는 것이 현실이다. 이유는 잘못 바꾸었다는 데 있다. 캠퍼스, 와이프 등 외래어를 우리말 대신 쓰는 까닭은 언중들의 욕구가 참신하고 새것을 바라기 때문이다. ‘와이프’를 ‘아내’로 돌려놓아도 소용없는 일이 되고 만다. 언중들이 느끼는 맛을 살려줘야 한다. 심리를 파악해야 한다는 뜻이다.
지금은 병 따는 도구가 ‘병따개’라는 말로 굳어졌다. 이 병따개를 ‘센누키’라고 불렀다. 순화 작업을 하면서 ‘마개뽑이’라 고쳤는데 호응을 받지 못하고 대신 누군가가 퍼뜨린 ‘병따개’가 쓰인다. 순화위에서 만든 ‘마개뽑이’는 사라지고 ‘병따개’가 살아남은 것이다. 사실 ‘딴다’는 말은 좋은 표현이 아니었는데도 이 말이 정착한 것은 순화위의 작업이 너무 기계적이다보니 언어 현실과 동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인터넷 사이트 말터다. 현재는 3000명 정도가 참여하고 있다. 여러 가지 안을 받은 뒤 몇 개로 압축해서 공표한다. 언어 순화 작업의 대중화라 할 수 있다. 이것이 먹혀들어 가는 것이다. ‘웰빙’을 ‘참살이’로 순화한 것이 살지 모르지만 다시 ‘웰빙’으로 안 돌아가면 성공이다. 이것이 소기의 성과이고 의미다.
신문에서 인터넷 언어가 오염됐다고 난리를 치는데, 사실 신문이 더 문제다. 한데 인터넷 언어를 잘 들여다보면 창의적이고 반짝이는 말들이 많다. 그 에너지를 순화어를 만드는 데 끌어들이자는 얘기다. 인터넷 언어를 만드는 것은 에너지의 발산이다. 이 에너지를 살려야 한다.”
#기자 채용시 독서량 보아야
― 국민들의 언어생활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신문 등 언론매체다. 신문(방송) 언어의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지난 3월쯤에 국어연구원 김세중 부장이 10개 종합일간지의 문장을 분석한 <신문 문장 분석>이란 책을 냈다. 주관과 객관이 혼동된다거나 논리적 모순과 비약, 불투명한 지시대상과 근거 없는 단정 등 여러 가지를 지적했다. 문법적인 면에서는 성분 사이의 호응이 제대로 안되는 등의 문제, 어휘 면에서는 적절하지 못한 단어의 선택, 형용사와 동사의 쓰임 혼동 등이 눈에 띄었다.
신문 문장의 가장 큰 문제는 객관적이지 못한 것이다. 기자는 중립적 입장에서 쓰고 독자가 판단하게 해야 한다. 기자가 이미 결론내 놓고 자기판단으로 써나가는 것은 문제다. 외래어 걱정은 신문이 다 하면서 섹션신문 등의 제목은 다 영어로 쓴다.
기자들의 독서량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 역사, 소설 등의 글을 많이 읽어서 언어 감각을 키워야 한다. 기자를 선발하는 데 중요하게 살필 것이 독서량이다. 반드시 읽어야 할 고전, 예를 들어 ‘임꺽정’ ‘장길산’ ‘토지’ 등을 제대로 읽었는지 체크해야 한다. 그래서 다양한 문체를 접하고 글 감각을 갖춰는지 살펴야 한다. 간결체, 만연체 등 여러 문체를 테스트해야 한다. 기자의 수준이 높아야 기사의 수준이 높고, 그래야 독자의 수준도 높아진다.”
― 외국어 남용 문제가 심각하다. 국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 강의실에서도 넘쳐난다. 일반 국민들의 언어생활을 이끄는 이들이 각성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영어 세력 확산은 세계적 추세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지식이 영어를 통해 들어온다. 이 때문에 더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데, 이는 우리말 실력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본다. 실력이 좋으면 덜 갖다 쓸 거다. 전반적으로 교육의 문제다. 책을 읽히는 교육이 아니라 시험 잘 보게 하기 위한 교육이 행해지고 있다.
미국의 대학 1학년 영어과목(우리의 교양국어)의 경우 담당교수가 적지 않은 참고 도서를 제시한다. 그중에 아주 고전인 포크너, 애드거 앨런 포, 헤밍웨이, 펄벅의 작품과 ‘러브스토리’ 같은 작품을 읽히는 것을 봤다. 러브스토리는 아주 통속소설인데 그것까지 읽힌다. 이것을 한 학기에 다 읽어야 학점을 받을 수 있다.
우리의 대학에서는 교과서에 실린 것만 읽는다. 비교가 안 된다. 국어 실력이 엉망이어서 생각을 명석하게 하지 못한다. 기술력의 차이와 사무 처리의 미숙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미국 유학시절에 어느 한 가정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 집 부엌을 둘러보는데, 웹스터 영어사전이 눈에 들어 왔다. 거꾸로 꽂혀 있었다. 주인에게 거꾸로 돼 있다고 지적하자 꺼내 펼칠 때는 바로 된다는 것이었다. 자주 본다는 말이다. 생활화돼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그러지 않는 게 현실이다. 이게 국가 문화 수준의 차이고 국력으로 이어진다.”
― 그동안 남북한 언어에 관한 연구가 학계를 중심으로 상당히 이뤄져 왔다. 지금쯤 북한과의 어문 관련 교류의 성과 내지 반성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북한과는 정보기술(IT) 용어사전 등 합동으로 내놓은 것이 있다. 요즘 들어 좀 교류를 한다고 할 수 있지 걸핏하면 틀어졌다. 여러 어려움이 있다. 아직 허심탄회한 분위기라 할 수 없다. 회의장에서 ‘북한’이라는 말을 쓰면 회의를 제대로 진행하기 힘들다. 현재 북쪽 말을 연구하기 위해 자료를 모으고 있다. 아마 북쪽에서도 남쪽의 자료를 모으고 연구하고 있지 않을까.
남북 사이의 언어 차이는 별 문제가 없다고 본다. 방언 정도의 차이다. 베일에 가려 있으니까 더 차이가 있다고 느끼게 된다. 경상도와 제주도 사투리 제대로 쓰면 못 알아듣는 것과 같다.
‘세포’ 등 이데올로기 때문에 달라진 말들이 좀 있다. ‘선동한다’도 북쪽에서는 좋은 말이다. 외래어도 북한은 옛 소련이나 폴란드 등에서 들어온 것들이 있어서 좀 다르다. 그 외에는 방언의 차이다. ‘이질화’식으로 접근할 필요는 없다.”
#국어 실력이 사고력, 국력의 차이 가져와
― 한글맞춤법이나 표준어 규정 등의 문제와 관련해 비판이 있다. 개정할 계획은 없는지?
“어떤 식으로 고쳐도 문제는 있고 얘기는 또 나온다. 맞춤법은 단어를 시각적으로 고정시키는 데 목적이 있다. 영어의 예를 들면 ‘나이프(knife)’는 발음이 변했어도 표기는 그대로다. 혜화동도 발음은 [헤화동]이어도 표기는 그대로 놔둔다. 표준어가 있어야 하는 건 분명하다. 1933년에 한글맞춤법 통일안이 나오고 1989년에 개정을 했다. 지금 개정 문제를 꺼낼 시점이 아니다. 괜한 혼란만 부른다.”
― ‘장맛비’니, ‘으스스’니, ‘두루뭉수리’ 등 사이시옷과 어휘의 문제 등 현실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들이 있다.
“규정은 놔두고 사전을 고쳐 나갈 수 있다. 새삼스럽게 고쳐서 혼란을 초래하기보다는 사전에서 해결하면 된다. 법은 현실을 따라가는 것이다. 그렇지만 법은 보수적이고 변화를 제재한다. ‘먹거리’ 같은 것은 과감하게 현실을 따라갈 필요가 있다. ‘먹거리’와 ‘먹을거리’는 조금 의미 차이가 있기도 하다. 우리는 국어 규범이 다른 나라보다 엄격한 편이다.
이제 규범생활을 한 지 50년 정도 됐다. 전에는 언어가 혼란스러웠다. 왕십리와 혜화동 말이 다를 정도였다. 상층 말과 하층 말이 달랐고, 시장에 가면 표기도 ‘있씁니다’ ‘니다’ 등 혼란스러웠다. 맞춤법은 시각적으로 고쳐서 속독을 돕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만들었고 강하게 밀어붙였다.”
― 국어연구원의 가나다전화를 이용해 보면, 규정이나 사전에 근거한 맞다, 틀리다 식의 답변만 돌아오는 것이 대부분이다. 상담 인력을 늘리고 운영 방식에 변화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한마디로 예산 문제다. 학예관 22명 가운데 4명은 행정직이다. 연구원은 외래어, 남북언어, 신어, 외국인 국어교육 등 국어를 총체적으로 관리한다. 일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하루 수천건의 전화가 오는데, 현재는 비정규직을 훈련시켜서 상담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장기적으로 투자해야 한다고 본다.”
― 외래어 심의는 국어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너무 현지음에 집착한다는 지적도 있다.
“신문에서 현지음을 중시하면서 시작된 문제다. 외신을 전하면서 로마자로만 나오면 그대로 적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관용을 더 인정하자고 하는데 그러면 규정이 의미가 없어질 수 있다.”
― 국어기본법이 국회 심의를 기다리고 있다. 이 법이 시행되면 국어 환경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국어 환경이 크게 달라질 거는 없다. 이 법은 지금까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국어와 관련된 법을 하나로 정비한 것이다. 국어를 진흥시키기 위한 국어상담사제 등 제도적인 장치가 현재로선 없는 것이 아쉽다. 국회 공청회가 열리면 관심을 갖고 교열기자들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해 주면 좋겠다. 법이 있어서 국어가 발전하고 환경이 좋아지고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의식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
― 신문과 방송에서 우리말 지킴이 역할을 하는 교열기자들과 아나운서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우리말의 환경은 열악하다. 신문에서는 교열기자들의 위상이 더욱 높아져야 한다. 이것은 신문언어의 질이 좋아지는 것과 직결된다. 나아가 신문의 수준이 올라가느냐 떨어지느냐하는 문제다.
또 일반 기자들이 언어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방송의 영역은 넓다. 국민들의 언어생활에 미치는 힘은 절대적이다. 아나운서들은 우리말의 살아 있는 교과서다. 말과 글을 다루는 한가운데 있는 이들의 의미 있는 도약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