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타 :
변산반도 국립공원 :
변산반도국립공원은 동경 126°37′40″∼126°44′20″, 북위 34°21′40″∼34°47′20″에 위치하고 있으며 공원면적은 157㎢이다. 변산구릉을 중심으로 1971년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는데 1988년 6월에 국립공원으로 승격되었다. 변산반도는 산과 바다를 탐방할 수 있는 수려한 자연풍경지로 각종 문화유적자원이 분포되어 있다.
최고봉인 의상봉(508.6m)을 비롯해서 쌍선봉(雙仙峰, 459m)·옥녀봉·선인봉 등 크고 작은 산들, 울창한 삼림과 사찰, 게다가 바다와 섬, 모래사장, 해식애(海蝕崖) 등이 어우러진 명소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산이 겹겹이 쌓여 높고 깍아지른 듯하며 바위와 골이 그윽하다.”고 하였다. 『택리지』에도 “많은 봉우리와 골짜기가 있는데 이것이 변산이다.”라고 묘사하고 십승지(十勝地)의 하나로 꼽았다.
『삼국유사』에는 “백제땅에 원래 변산(卞山)이 있으므로 변한(卞韓)이라고 한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변산은 호남 5대명산의 하나로 능가산(楞伽山)·영주산(瀛洲山)·봉래산(蓬萊山)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려왔다.
변산반도국립공원은 내변산 지역과 외변산 지역으로 크게 나누어진다. 최고봉인 의상봉을 중심으로 신선봉(486m)·삼신산(486m)·쌍선봉(459m)·옥녀봉(432.7m)·관음봉(424.5m)·상여봉(395m) 및 직소폭포·봉래곡·선녀탕·분옥담·와룡소 및 가마소 등 산악지형과 하상지형이 어루려저 있다. 전체적으로 동·북·서쪽은 비교적 완만하나 경사가 가파르다. 최대 하천은 백천내로서 변산반도중심부 주변에 위치한 구릉 사이에서 발원하여 중계계곡, 희양계곡, 봉래계곡 등을 따라 북류하여 해창만의 변산교에서 서해안으로 유입되고 있다.
외변산은 변산해수욕장, 고사포해수욕장 및 격포해수욕장의 해안가를 일컫는다. 해안은 암석해안과 니질해안(뻘갯벌), 사질해빈 및 자갈해빈으로 구분되는데 이 지역의 대부분은 암석해안을 이루는데 대표적으로 채석강과 적벽강이 있다. 백악기 말 화산분출암이 강하게 수중에 퇴적·암석화한 후, 해식을 받아 층리가 잘 관찰된다. 고사포 해수욕장 사질해안의 배후에는 해안사구가 발달한다. 이러한 사빈해안과 암석해안을 따라 해식애, 파식대, 해식동 등의 해안경관들이 나타난다.
변산반도국립공원은 지리적으로 서남해안에 위치하고 있어 해양성 기후의 영향을 받는 지역으로 온난다우하며, 산악지형인 내변산과 해안인 외변산은 지역에 따라 온도차가 큰 편이다.
변산반도국립공원 내 포유류는 21종, 조류는 95종, 곤충류는 832종, 양서류는 11종, 파충류는 14종, 어류는 24종이 살고 있으며 관속식물상은 굴참나무, 소나무 등을 포함하여 881종류가 분포한다.
내변산은 백악기에 분출된 유문암 등의 화산암류로 이루어져 있으며, 구릉지는 중생대 쥐라기에 관입한 화강암에서 발달한 지형이다.
변산에 우금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를 기점으로 남쪽과 동쪽으로 3㎞ 남짓한 석성의 자취가 있는데 이 성이 우금산성(주류성)이다. 나당연합군은 660년(의자왕 20) 백제사비성을 공략하여 함락시켰다. 이후 주류성에 백제 장군이었던 도침과 중복신의 지휘 아래 백제 부흥운동 세력이 결집하였다. 나당연합군은 663년 주류성을 공략했고, 『일본서기』에 의하면 663년 9월 7일 주류성이 함락되었다고 한다.
이 지역은 삼림이 울창하며 특히 훤칠하게 자란 송림이 유명한데 고려 때부터 궁실과 배의 재목을 여기서 얻어갔다고 하여 이를 변재(邊材)라고 한다. 몽고가 고려를 침입한 뒤 일본정벌을 꾀하였을 때 변재로 전함을 만든 일이 있다. 또한, 격포진(格浦鎭) 등지에서는 잦은 왜구의 침입을 격퇴한 바도 있다.
변산반도는 크게 산쪽의 안변산과 바다쪽의 바깥변산으로 구분된다. 안변산은 고찰인 내소사(來蘇寺)와 전나무숲, 봉래구곡과 아름다운 직소폭포(直沼瀑布), 옥녀담, 우금산성(禹金山城, 전라북도 기념물 제20호)과 개암사(開巖寺), 낙조가 장관인 월명암(月明庵)과 낙조대가 명소로 꼽힌다.
진서면 석포리에 있는 내소사에는 내소사고려동종(보물 제277호)·법화경절본사본(보물 제278호)·내소사대웅보전(보물 제291호)·내소사삼층석탑(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124호)·내소사 설선당과 요사(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25호) 등 많은 문화재가 있는 명찰이다.
상서면 감교리에 있는 개암사에도 개암사대웅전(보물 제292호)·개암사동종(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26호) 등이 있다. 개암사 북쪽에 우금암(遇金巖, 또는 울음바위)이 있고 우금암 동쪽으로 우금산성이 60m 가량 뻗어 있다.
바깥변산에는 따뜻하고 맑은 물과, 평균 수심 1m의 유명한 변산해수욕장이 있고 북쪽에는 전국 최대 규모인 계화도(界火島) 간척지가 펼쳐져 있다. 하섬[蝦島]은 한달에 두번씩 바다가 갈라지는 현상으로 유명하고 위도(蝟島)는 띠뱃놀이로 유명하다. 변산 제일의 경치를 자랑하는 채석강(彩石江)과 적벽강(赤壁江)은 강이 아니라 중국의 지명에서 따온 이름으로 바닷물에 침식된 퇴적암의 층리가 수만권의 책을 쌓아올린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하서면 석상리일대에는 신석기시대의 유물인 고인돌이 100개가 부안구암리지석묘군(사적 제103호)으로 지정되있고, 보안면 유천리일대에는 고려자기를 구워낸 도요지가 부안유천리도요지(사적 제69호)로 지정되어 있다.
공원내의 천연기념물로는 변산면에 부안도청리호랑가시나무군락(천연기념물 제122호)·부안격포리후박나무군락(천연기념물 제123호)·부안중계리꽝꽝나무군락(천연기념물 제124호)·부안미선나무자생지(천연기념물 제 370호) 등이 있다.
안변산과 바깥변산 전체를 보면 이곳 만큼 관광지로서의 여건을 고루 갖춘 곳도 드물다. 바다와 산이 이상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곳곳에는 폭포와 사찰이 있고 문화유적과 민속이 풍부하다. 서해안고속도로가 2001년에 완공되면서 서해안 관광의 주요거점이 되고 있다.
채석강:
외변산의 대표적인 명소로 채석강과 변산 해수욕장을 꼽는다. 채석강은 강이 아니라 썰물 때 드러나는 변산반도 서쪽 끝 격포항과 그 오른쪽 닭이봉(200m)일대의 층암 절벽과 바다를 총칭하는 이름이다. 기암괴석들과 수천수만 권의 책을 차곡차곡 포개 놓은 듯한 퇴적암층 단애로, 강자가 붙어 강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중국의 채석강(彩石江)과 그 모습이 흡사해 채석강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닭이봉 한자락이 오랜 세월동안 파도에 깎이면서 형성된 퇴적암층이 절경이다. 이곳의 지질은 선캠브리아대 화강암, 편마암이 기저층을 이루고 있고, 중생대 백악기(약 7천만년 전)에 퇴적한 퇴적암의 성층으로 바닷물의 침식에 의해 마치 수만 권의 책을 쌓아 올린 듯한 와층을 이루고 있어 자연의 신비감을 느끼게 한다.
채석강은 하루 두 차례 물이 빠지면 들어갈 수 있는데, 간조 때는 물 빠진 퇴적암층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바다생물과 해식동굴의 신비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간조 때 해식동굴에서 바라보는 낙조와 노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오랜 세월과 바닷물의 걸작품인 퇴적암 절벽]
전북 부안군 산내면 격포리 해안. 퇴적암이 빚어내는 절경은 부산 태종대와 해남 우항리 등 우리나라 해안 여러 곳에 존재하지만 이곳 해안의 채석강은 이름 만큼이나 경관이 빼어날 뿐 아니라 수천만 년 동안 바닷물에 깎이고 남은 바위절벽 면을 이루고 있는 자갈, 모래 등의 켜(층리)가 수평으로 길게 이어지지 않아 전체적인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채석강의 절벽과 해수면 부근은 검은색의 이암과 실트암으로 이루어져 얇은 책을 연상케 하는 반면, 위는 층리가 다소 두껍게 나타나는 사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곳곳에 얇은 역암층이 관찰된다. 반면 퇴적암 구조상 채석강의 아래층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이는 봉화봉 남쪽은 큰 바위들이 끼어있는 역암층이 두껍게 나타난다. 전체적으로 보면 아래로 갈수록 입자가 크고 위로 갈수록 입자가 작아지는 것이다. 이런 퇴적구조로 볼 때 입자가 크고 불규칙한 역암층이 쌓인 환경은 수심이 깊고 경사가 급한 호수 속이었으며, 층의 두께로 볼 때 그 시기는 비교적 길었다고 말할 수 있다. 입자가 고운 이암과 실트암이 쌓일때는 비교적 평온한 수중삼각주 평원이었으며, 이런 시기는 상대적으로 짧았을 것이라는 게 전승수 교수(전남대 지질학)의 분석이다. 한편 격포항 방파제에는 채석강 절벽의 사암 사이에 모난 돌로 이뤄진 역암층이 끼여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런 모습은 다른 퇴적암 절벽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이는 입체적인 구조로 봐 호수 속 급경사면에 불안정하게 쌓여있던 자갈이나 바위들이 물 속에서 사태를 일으켜 모래가 쌓여있던 더 깊은 호수 속으로 이동해 왔거나 경사가 급한 호수 속의 작은 물길을 따라 실려내려 왔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