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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미 시집 <거룩한 식사> 해설(2012. 3. 22)
인생에 대한 거대한 긍정의 시
영국의 비평가 매슈 아놀드는 “시는 인생에 대한 비평이다”라고 말했다. 시가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답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정의이다. 사실 시가 무엇인가를 정의하기도 쉽지 않지만, 인생이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도 그 못지않게 까다로운 게 사실이다. 혹자는 아예 시와 인생을 같은 것으로 등치시키기도 하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나날의 평범한 일생이 인생일 수 있고,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실존적 고민을 인생의 요체로 생각할 수도 있다. 더 나아가 공동체의 공공선에 이바지 하는 헌신적인 삶의 과정을 참다운 인생으로 요약할 수 있고, 신에 대한 경외나 수행자처럼 자신의 삶을 묵묵히 일구는 것을 인생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인생을 ‘비평’하는 것이 시라면, 비평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문학공부 하는 과정에 흔히 비평이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이 때 비평은 탐구의 대상이 되는 텍스트의 본질을 분석하고 해석하여 진리를 밝혀내는 작업을 말하다. 그렇다면, 인생에 대한 비평은 십인십색인 사람들 각각의 삶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여, 그 속에 들어있는 삶의 근원적인 진실을 끄집어내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박영미 시인의 시집 『거룩한 식사』에 실린 시편들은 시인 자신의 인생에 대한 폭넓은 비평이자 진리를 탐구하는 치열한 지적 노력의 산물이라 할 만하다.
동양문화권에서 오래 전부터 ‘글이 곧 사람이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시인의 자기표현이 시라는, 시에 대한 일종의 표현주의적 관점과 성정론(性情論)을 대변한다. 시는 말 그대로 시인의 인간적인 품격을 드러내는 도구라는 뜻이다. 일찍이 공자가 중국의 시집 <시경>에 대해 그 유명한 “시삼백 이언이 폐지하니 사무사(子曰, 詩三百 一言以蔽之 曰 思無邪)”라고 했다는 ‘사무사’와도 통하는 말이다. 품성에 사특함이 없고 순정한 상태를 이르는 이 말은 동양문화권에서 문학의 오랜 교범 역할을 해 온 것도 사실이다. 시는 자기 자신을 닦는 도구이기도 하지만, 타인을 훈육하는 도구이기도 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시는 시인 자신의 사상이나 감정을 언어라는 통로를 통해 표출하는 기제이면서, 또 달리는 그 표현된 시를 통해 어두운 세상을 재도(載道)해야 한다는 효용론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박영미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오래 전에 공부한 매슈 아놀드와 동양의 문학관이 떠오른 것은 어쩌면 자연스런 일인지도 모른다. ‘삶과 문학’ 이라는 둥지 안에서 함께 시 공부를 한지가 10여 년이 넘지만 언제나 맑고 흐트러짐 없는 단정한 품세와 헌신성은 존경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 그러니까 사무사(思無邪)와 ‘사람이 곧 글이다’는 명제가 박영미 시인에게 와서 비로소 맞춤옷을 입은 것처럼 자연스런 모습이 된 셈이다.
사실 시를 자기표현의 관점에서 보면 독창성이나 개성적인 면이 강조되고, 남에게 영향을 미치는 효용론적인 관점에서 보면 시는 인격수양이나 휴머니티를 가진 헌신적인 인간을 구현하는 데 있다. 이 경우 좀 더 나아가면 사회제도 때문에 고통 받고 있는 민초들의 정서를 반영해 사회악을 고발하거나 사회변혁을 통한 이상적인 세계를 구현하는 데 가지 나아갈 수 있다. 박영미 시인의 이번 시집에는 이런 인생에 대한 비평의 잘 빚어진 시가 가득해 읽는 나를 감동시켰다.
구체적으로 시를 몇 편 읽어보자.
靑路의 겨울에 눈이 내렸다
눈 속에 난 작은 길은
먼 옛날로 뻗어있다
눈 속에 잠긴 마을에는
도회로 나간 맏아들 대신
가로등 몇 개가 빙 둘러서서
말없이 지키고 있고
검게 그을려 투박한 손속에 감추어진
따스하고 정겨운 말들이
눈 빛 속에 조용히 흐른다
추수가 끝난 들녘
막막한 들판에
말없는 하늘이 내려와 잠겨
휴식을 취하고
같이 젖어드는 곳
고만고만한 기쁨과 아픔들이
함께 지붕으로 이어져
수십 년을 내려온 곳
靑路의 겨울에 눈이 내렸다.
* 靑路; 경북 의성군의 작은 마을
-「靑路의 겨울」전문
이 시를 읽으면 마치 밀레의 그림「만종」이나 박목월 시인의「나그네」를 연상시할 만큼 아름답고 평화롭게 느껴진다. 지난 봄과 여름의 뜨거운 햇살이 가져다 준 추수 후의 너른 벌판이 주는 텅 빈 충만과 붉은 놀이 깔린 석양의 아름다움, 그리고 목월의 나그네가 보여준 당위적 이상향에 대한 정서를 이 시는 복합적으로 보여준다.
청로라는 경북 의성의 조그만 시골 마을의 정경을 이 보다 더 평화롭게 그릴 수 있을까? 그리고 ‘청로’를 반드시 의성의 마을로만 한정지을 필요는 없다. 도회지로 나간 맏아들을 대신하는 몇 개의 가로등과 추수가 끝난 들판의 휴식은 정태적인 평화로움으로 가득하다. 우리의 인생도 언제나 이렇게 평화롭고 그윽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천년왕국이나 유토피아의 모습이 바로 ‘청로’의 본모습이 아닐까? 역설적으로 시인은 청로를 통해 현실의 이상향을 추구한다고 할 수 있다.
어물 전 김씨아저씨가 죽었다.
신천 시장 입구 제일 첫 번째 가게인 어물전
그 아저씨가 세상을 떠났다.
동그랗고 하얀 얼굴에
남자답잖게 손이 날렵했던 그는
생선을 잘 다듬기로 소문이 나
그의 가게엔 늘 긴 줄이 서있어 차례를 기다리곤 했다.
동태나 고등어 어떤 생선도
동해바다 그 짙푸른 생기를 간직하고 있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은, 종일토록 일하다
생선 비린내를 채 씻지도 못한 채
서둘러 먼 길을 떠나버린 것이다.
그가 없는 그 가게는 문을 닫았고
순후한 눈빛의 그 아내도
올망졸망 아이들도 가게를 떠났다.
우리네 삶에 드리워진
그 까닭모를 심연에도 아랑곳없이
어느새 시장 통은 다시 북적이고.
나는 오늘도
살아있음이
진눈깨비 속에 빗금 쳐지듯 내려꽃이는
빗줄기에 다름 아님을,
地上에 닿기까지의
한 순간의 기억뿐임을 아프게 체감한다.
*무릇 모든 인생이 애처로운 것이지만
그의 죽음이 더욱 애처로운 것은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수영 시<도취의 피안>중에서
-「신천 시장 김씨아저씨」전문
팔공산 뒤편 와촌면 산기슭에 앉아
흰 머리가 듬성듬성한 남편과 쑥을 뜯는다
바라다 보이는 건너편 산기슭엔 온통
복숭아 자두꽃 벚꽃이 꿈속처럼 피어있다
흰 빛과 연분홍 꽃 무리 속에
점점이 집들은 떠 있고
그 속에 속절없던 봄날도 누워있고
젊은 남편과 철없는 내가
아이업고 걸어가던 길이 보인다
이제는 돌아갈 길 없는
이 봄날의 환타지
머리가 허연 남편과 나는
하릴없이 쑥만 뜯는다
-「쑥」전문
탑리 제일교회 성도들에게는
詩가 별 필요가 없다
벌써 詩적으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성지 순례를 계획하여 거의 2년이 되도록
매월 10만원씩 적금을 부어 순례 비를 만들고
또 각자 백여만 원 추렴하여 떠나기 사흘 전인데
이 집사님은 키우는 닭 수천 수와
새끼 낳은 어미 소가 달린
소 열 마리 맡길 데가 없어 부인만 떠나고
떡집을 하는 김 집사님은 열흘간이나 떡 방앗간 문을 닫고
어렵게 떠났으나 남편은 수많은 농사일 때문에 그만 두고
이 권사님은 출발 하루 전,
웃자란 마늘 위에 씌워둔 비닐을 뚫어주기 위해
해가 저물도록 밭일을 하고 떠났다
그래도 고되다는 표정 하나도 없이
모두들 환하기만 한 얼굴들 이었다
우리 교회에 내린
이 하나님의 지극한 은총을 무엇에 비할까
-「지극한 은총1」전문
인용한 세 편의 시에는 각각의 인생이 있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죽음의 주인공인 신천시장 김씨아저씨, 흰머리가 듬성듬성한 흰 머리가 듬성듬성한 남편, “닭 수천 수와 새끼 낳은 어미 소가 달”려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가지 못한 이 집사님, “ 열흘간이나 떡 방앗간 문을 닫고 어렵게 떠”난 김 집사님, “ 출발 하루 전, 웃자란 마늘 위에 씌워둔 비닐을 뚫어주기 위해 해가 저물도록 밭일을 하고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 권사님과 같은 탑리 제일교회 성도들의 캐릭터도 흥미롭다. 우리들 이웃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 평범한 장삼이사들의 사연을 통해 시인은 우리들이 아무런 각성 없이 살아가는 매일의 일상적인 삶에도 “무릇 모든 인생이 애처로운 것이”기는 하지만 범상함과 거룩함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박영미 시인의 이번 시집에는 보석처럼 아름답고 존재에 대해 의미 있는 성찰로 달콤한 향기를 내뿜고 있는 시들이 그득하다. 그 많은 좋은 시 가운데서 역시 시인 자신의 개인사적 곡절이 아로새겨진 시들이 깊은 감동을 준다.
아버지와 나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부산에 사셨던 둘째 고모는
나를 보면 우시곤 했다
아버지를 쏙 빼 닮았다고
어느 해 거제도 옛 포로수용소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나도 쏟아지는 눈물 때문에
고개를 들 수조차 없어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맘먹었다
거울을 보며
함흥 전투에서 가족을 그리는
간절한 편지를 보내고 사라진
지금의 나보다 훨씬 젊은
6.25 때의 아버지를 생각하다가
병상에 누운 엄마를 생각하다가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생각 한다
-「아버지」전문
병상에 누운 어머니는
더 이상 나를 마중 나오시지 못한다.
늘 버스 정류장까지 나오시던 어머니는
어느 날부터인가 등나무 그늘까지만 나오더니,
아파트 현관까지 나오시더니,
엘리베이터까지,
그냥 그 자리에 앉아 나를 배웅하시더니,
이제는 누운 채로
잘 가.
어머니가 보시지 않는
내 길은 쓸쓸하다
어머니가 없는
내 길은 아득하다
일곱 아들보다도 나은
딸이 되게 해달라고
간절히 빌어주신
방 목사님의 기도가 하늘에 닿아
꼭 그만큼만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어머니 3」전문
식물인간처럼 이태 째
누워만 있는 엄마가
식사를 한다
장농에 큰 베개를 두개씩 가져다 놓고
그에 기대앉아 턱받이 까지 하고
언니가 떠먹여 드리고 있다
운동이라곤 숨쉬기 운동만 하는 엄마가
그래도 아직
생명의 끈을 붙잡고 있는 건
먹는 일의 귀중함이다
“그래, 우리 엄마 착하지,
엄마, 사랑해요.“
한 시간을 씨름하며
엄마는 밥 반 공기를 다 드시고
다시 자리에 누웠다
엄마는 아기가 되고
언니는 울컥, 엄마가 된다
-「거룩한 식사」전문
어머니의 영정을 머리맡에 두고
동산병원 영안실에서 언니와 함께
잠을 잔다
엄마는 온통 국화꽃 속에서
단아한 모습으로 앉아 계시고
나와 언니는 일상의 잠자리를 폈다
삶과 죽음의 교차
이 엄숙한 현실
엄마는 뭐라 말씀하실까
*메멘토 모리?
아니,
돌아가시기 전 꿈속에서
울고 있는 나를 향해, 엄마는 웃으며 말씀하셨지.
“감사하다고 캐라”
“감사하다고 캐라.”
....................................
*죽음을 잊지 마라
-「어머니5」전문
인용한 시들을 재조립해보면 시인의 가족사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아버지의 얼굴을 본 적 없는 시인과 거룩한 식사를 떠먹이는 언니를 홀어머니가 키운다. 그 어머니가 이태 째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다가 끝내 작고한다. 기독교 용어로 하늘의 부름을 받고 돌아(소천)한다. 그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전 “감사하다고 캐라/감사하다고 캐라”라고 말씀하신다.
형극과 인고의 세상을 보내며 견뎌온 어머니의 인생을 생각해보면 ‘감사’는 너무나 큰 인생에 대한 긍정이다. 박영미 시인의 이번 시집 『거룩한 식사』를 관통하는 시정신은 바로 이 거대한 긍정의 정신이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긍정만큼 창의적인 태도는 없다. 일상에서도 그렇고 시에서도 사무사와 긍정의 정신을 견지하고 있는 박영미 시인의 삶의 태도가 어디에 기인하고 있는지를 눈치 챌 수 있는 대목이다.
나는 행복한 할머니가 되고 싶다
시골 집 마당 가득
아이들이 뛰노는....
술래잡기 공차기, 물놀이, 땅 따먹기도 하며
해질녘 까지 놀이에 열중하다
내가 저녁 먹으라고 부르면
사금파리 대신 소꿉놀이 하던
플라스틱 소꿉들을 버려두고
내 품으로 달려 들어오는
그런 행복한 할머니가 되고 싶다
여름 밤, 평상에 누워
별자리를 보다가
어린 시절 내 할머니가 가리켜 주시던
삼태, 조물신이, 북두칠성 자리를
틀리지 않게 가리켜 주고
굽게 보이는 은하수가 곧게 직선에 가까워지면
가을이 온다고 알려 주는
그런 할머니가 되고 싶다
가끔씩 떨어지는 별똥별이
어디로 흘러갔는지도 애기해 주고 싶다
까치밥이 달린 키 큰 감나무 아래서
쌩.떽스의 어린 왕자와 같이 놀았던
어젯밤 꿈 얘기를 들려주며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해마다 시골집 나무 기둥의 키 높이가 자라가는
그런 아이들을 가진 할머니,
마침내 내 나이 들어
더 이상 삶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 않을 때도
훌쩍 자란 그들을 바라보며
다시금 두 손 모아 감사 기도드리는
그런 할머니가 되고 싶다
-「나는 행복한....... 」전문
가슴이 따듯한 아름다운 시이다. 행복한 할머니! 박영미 시인은 이미 행복한 할머니가 되었다. 아들이나 딸이 결혼하여 손자를 낳기 전부터도 시인은 아름다운 시를 통해 인생의 진정한 아름다음을 체득한 할머니, 지혜가 가득하고 공공선에 대한 헌신의 마음이 가득한 할머니였다. 실제로 ‘문학과 삶’ 공부시간에 보면 언제나 진지하고 앳된 소녀같이 수줍어하시는 박영미 시인의 첫 시집을 축하하고, 앞으로 문학 여정에 큰 성공이 있길 진심으로 기원하다. 충분히 그럴만한 지혜로운 분이다.<끝>
김용락(시인, 경북외국어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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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미 시집 <거룩한 식사> 해설(2012. 3. 22)
인생에 대한 거대한 긍정의 시
영국의 비평가 매슈 아놀드는 “시는 인생에 대한 비평이다”라고 말했다. 시가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답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정의이다. 사실 시가 무엇인가를 정의하기도 쉽지 않지만, 인생이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도 그 못지않게 까다로운 게 사실이다. 혹자는 아예 시와 인생을 같은 것으로 등치시키기도 하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나날의 평범한 일생이 인생일 수 있고,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실존적 고민을 인생의 요체로 생각할 수도 있다. 더 나아가 공동체의 공공선에 이바지 하는 헌신적인 삶의 과정을 참다운 인생으로 요약할 수 있고, 신에 대한 경외나 수행자처럼 자신의 삶을 묵묵히 일구는 것을 인생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인생을 ‘비평’하는 것이 시라면, 비평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문학공부 하는 과정에 흔히 비평이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이 때 비평은 탐구의 대상이 되는 텍스트의 본질을 분석하고 해석하여 진리를 밝혀내는 작업을 말하다. 그렇다면, 인생에 대한 비평은 십인십색인 사람들 각각의 삶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여, 그 속에 들어있는 삶의 근원적인 진실을 끄집어내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박영미 시인의 시집 『거룩한 식사』에 실린 시편들은 시인 자신의 인생에 대한 폭넓은 비평이자 진리를 탐구하는 치열한 지적 노력의 산물이라 할 만하다.
동양문화권에서 오래 전부터 ‘글이 곧 사람이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시인의 자기표현이 시라는, 시에 대한 일종의 표현주의적 관점과 성정론(性情論)을 대변한다. 시는 말 그대로 시인의 인간적인 품격을 드러내는 도구라는 뜻이다. 일찍이 공자가 중국의 시집 <시경>에 대해 그 유명한 “시삼백 이언이 폐지하니 사무사(子曰, 詩三百 一言以蔽之 曰 思無邪)”라고 했다는 ‘사무사’와도 통하는 말이다. 품성에 사특함이 없고 순정한 상태를 이르는 이 말은 동양문화권에서 문학의 오랜 교범 역할을 해 온 것도 사실이다. 시는 자기 자신을 닦는 도구이기도 하지만, 타인을 훈육하는 도구이기도 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시는 시인 자신의 사상이나 감정을 언어라는 통로를 통해 표출하는 기제이면서, 또 달리는 그 표현된 시를 통해 어두운 세상을 재도(載道)해야 한다는 효용론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박영미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오래 전에 공부한 매슈 아놀드와 동양의 문학관이 떠오른 것은 어쩌면 자연스런 일인지도 모른다. ‘삶과 문학’ 이라는 둥지 안에서 함께 시 공부를 한지가 10여 년이 넘지만 언제나 맑고 흐트러짐 없는 단정한 품세와 헌신성은 존경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 그러니까 사무사(思無邪)와 ‘사람이 곧 글이다’는 명제가 박영미 시인에게 와서 비로소 맞춤옷을 입은 것처럼 자연스런 모습이 된 셈이다.
사실 시를 자기표현의 관점에서 보면 독창성이나 개성적인 면이 강조되고, 남에게 영향을 미치는 효용론적인 관점에서 보면 시는 인격수양이나 휴머니티를 가진 헌신적인 인간을 구현하는 데 있다. 이 경우 좀 더 나아가면 사회제도 때문에 고통 받고 있는 민초들의 정서를 반영해 사회악을 고발하거나 사회변혁을 통한 이상적인 세계를 구현하는 데 가지 나아갈 수 있다. 박영미 시인의 이번 시집에는 이런 인생에 대한 비평의 잘 빚어진 시가 가득해 읽는 나를 감동시켰다.
구체적으로 시를 몇 편 읽어보자.
靑路의 겨울에 눈이 내렸다
눈 속에 난 작은 길은
먼 옛날로 뻗어있다
눈 속에 잠긴 마을에는
도회로 나간 맏아들 대신
가로등 몇 개가 빙 둘러서서
말없이 지키고 있고
검게 그을려 투박한 손속에 감추어진
따스하고 정겨운 말들이
눈 빛 속에 조용히 흐른다
추수가 끝난 들녘
막막한 들판에
말없는 하늘이 내려와 잠겨
휴식을 취하고
같이 젖어드는 곳
고만고만한 기쁨과 아픔들이
함께 지붕으로 이어져
수십 년을 내려온 곳
靑路의 겨울에 눈이 내렸다.
* 靑路; 경북 의성군의 작은 마을
-「靑路의 겨울」전문
이 시를 읽으면 마치 밀레의 그림「만종」이나 박목월 시인의「나그네」를 연상시할 만큼 아름답고 평화롭게 느껴진다. 지난 봄과 여름의 뜨거운 햇살이 가져다 준 추수 후의 너른 벌판이 주는 텅 빈 충만과 붉은 놀이 깔린 석양의 아름다움, 그리고 목월의 나그네가 보여준 당위적 이상향에 대한 정서를 이 시는 복합적으로 보여준다.
청로라는 경북 의성의 조그만 시골 마을의 정경을 이 보다 더 평화롭게 그릴 수 있을까? 그리고 ‘청로’를 반드시 의성의 마을로만 한정지을 필요는 없다. 도회지로 나간 맏아들을 대신하는 몇 개의 가로등과 추수가 끝난 들판의 휴식은 정태적인 평화로움으로 가득하다. 우리의 인생도 언제나 이렇게 평화롭고 그윽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천년왕국이나 유토피아의 모습이 바로 ‘청로’의 본모습이 아닐까? 역설적으로 시인은 청로를 통해 현실의 이상향을 추구한다고 할 수 있다.
어물 전 김씨아저씨가 죽었다.
신천 시장 입구 제일 첫 번째 가게인 어물전
그 아저씨가 세상을 떠났다.
동그랗고 하얀 얼굴에
남자답잖게 손이 날렵했던 그는
생선을 잘 다듬기로 소문이 나
그의 가게엔 늘 긴 줄이 서있어 차례를 기다리곤 했다.
동태나 고등어 어떤 생선도
동해바다 그 짙푸른 생기를 간직하고 있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은, 종일토록 일하다
생선 비린내를 채 씻지도 못한 채
서둘러 먼 길을 떠나버린 것이다.
그가 없는 그 가게는 문을 닫았고
순후한 눈빛의 그 아내도
올망졸망 아이들도 가게를 떠났다.
우리네 삶에 드리워진
그 까닭모를 심연에도 아랑곳없이
어느새 시장 통은 다시 북적이고.
나는 오늘도
살아있음이
진눈깨비 속에 빗금 쳐지듯 내려꽃이는
빗줄기에 다름 아님을,
地上에 닿기까지의
한 순간의 기억뿐임을 아프게 체감한다.
*무릇 모든 인생이 애처로운 것이지만
그의 죽음이 더욱 애처로운 것은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수영 시<도취의 피안>중에서
-「신천 시장 김씨아저씨」전문
팔공산 뒤편 와촌면 산기슭에 앉아
흰 머리가 듬성듬성한 남편과 쑥을 뜯는다
바라다 보이는 건너편 산기슭엔 온통
복숭아 자두꽃 벚꽃이 꿈속처럼 피어있다
흰 빛과 연분홍 꽃 무리 속에
점점이 집들은 떠 있고
그 속에 속절없던 봄날도 누워있고
젊은 남편과 철없는 내가
아이업고 걸어가던 길이 보인다
이제는 돌아갈 길 없는
이 봄날의 환타지
머리가 허연 남편과 나는
하릴없이 쑥만 뜯는다
-「쑥」전문
탑리 제일교회 성도들에게는
詩가 별 필요가 없다
벌써 詩적으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성지 순례를 계획하여 거의 2년이 되도록
매월 10만원씩 적금을 부어 순례 비를 만들고
또 각자 백여만 원 추렴하여 떠나기 사흘 전인데
이 집사님은 키우는 닭 수천 수와
새끼 낳은 어미 소가 달린
소 열 마리 맡길 데가 없어 부인만 떠나고
떡집을 하는 김 집사님은 열흘간이나 떡 방앗간 문을 닫고
어렵게 떠났으나 남편은 수많은 농사일 때문에 그만 두고
이 권사님은 출발 하루 전,
웃자란 마늘 위에 씌워둔 비닐을 뚫어주기 위해
해가 저물도록 밭일을 하고 떠났다
그래도 고되다는 표정 하나도 없이
모두들 환하기만 한 얼굴들 이었다
우리 교회에 내린
이 하나님의 지극한 은총을 무엇에 비할까
-「지극한 은총1」전문
인용한 세 편의 시에는 각각의 인생이 있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죽음의 주인공인 신천시장 김씨아저씨, 흰머리가 듬성듬성한 흰 머리가 듬성듬성한 남편, “닭 수천 수와 새끼 낳은 어미 소가 달”려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가지 못한 이 집사님, “ 열흘간이나 떡 방앗간 문을 닫고 어렵게 떠”난 김 집사님, “ 출발 하루 전, 웃자란 마늘 위에 씌워둔 비닐을 뚫어주기 위해 해가 저물도록 밭일을 하고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 권사님과 같은 탑리 제일교회 성도들의 캐릭터도 흥미롭다. 우리들 이웃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 평범한 장삼이사들의 사연을 통해 시인은 우리들이 아무런 각성 없이 살아가는 매일의 일상적인 삶에도 “무릇 모든 인생이 애처로운 것이”기는 하지만 범상함과 거룩함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박영미 시인의 이번 시집에는 보석처럼 아름답고 존재에 대해 의미 있는 성찰로 달콤한 향기를 내뿜고 있는 시들이 그득하다. 그 많은 좋은 시 가운데서 역시 시인 자신의 개인사적 곡절이 아로새겨진 시들이 깊은 감동을 준다.
아버지와 나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부산에 사셨던 둘째 고모는
나를 보면 우시곤 했다
아버지를 쏙 빼 닮았다고
어느 해 거제도 옛 포로수용소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나도 쏟아지는 눈물 때문에
고개를 들 수조차 없어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맘먹었다
거울을 보며
함흥 전투에서 가족을 그리는
간절한 편지를 보내고 사라진
지금의 나보다 훨씬 젊은
6.25 때의 아버지를 생각하다가
병상에 누운 엄마를 생각하다가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생각 한다
-「아버지」전문
병상에 누운 어머니는
더 이상 나를 마중 나오시지 못한다.
늘 버스 정류장까지 나오시던 어머니는
어느 날부터인가 등나무 그늘까지만 나오더니,
아파트 현관까지 나오시더니,
엘리베이터까지,
그냥 그 자리에 앉아 나를 배웅하시더니,
이제는 누운 채로
잘 가.
어머니가 보시지 않는
내 길은 쓸쓸하다
어머니가 없는
내 길은 아득하다
일곱 아들보다도 나은
딸이 되게 해달라고
간절히 빌어주신
방 목사님의 기도가 하늘에 닿아
꼭 그만큼만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어머니 3」전문
식물인간처럼 이태 째
누워만 있는 엄마가
식사를 한다
장농에 큰 베개를 두개씩 가져다 놓고
그에 기대앉아 턱받이 까지 하고
언니가 떠먹여 드리고 있다
운동이라곤 숨쉬기 운동만 하는 엄마가
그래도 아직
생명의 끈을 붙잡고 있는 건
먹는 일의 귀중함이다
“그래, 우리 엄마 착하지,
엄마, 사랑해요.“
한 시간을 씨름하며
엄마는 밥 반 공기를 다 드시고
다시 자리에 누웠다
엄마는 아기가 되고
언니는 울컥, 엄마가 된다
-「거룩한 식사」전문
어머니의 영정을 머리맡에 두고
동산병원 영안실에서 언니와 함께
잠을 잔다
엄마는 온통 국화꽃 속에서
단아한 모습으로 앉아 계시고
나와 언니는 일상의 잠자리를 폈다
삶과 죽음의 교차
이 엄숙한 현실
엄마는 뭐라 말씀하실까
*메멘토 모리?
아니,
돌아가시기 전 꿈속에서
울고 있는 나를 향해, 엄마는 웃으며 말씀하셨지.
“감사하다고 캐라”
“감사하다고 캐라.”
....................................
*죽음을 잊지 마라
-「어머니5」전문
인용한 시들을 재조립해보면 시인의 가족사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아버지의 얼굴을 본 적 없는 시인과 거룩한 식사를 떠먹이는 언니를 홀어머니가 키운다. 그 어머니가 이태 째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다가 끝내 작고한다. 기독교 용어로 하늘의 부름을 받고 돌아(소천)한다. 그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전 “감사하다고 캐라/감사하다고 캐라”라고 말씀하신다.
형극과 인고의 세상을 보내며 견뎌온 어머니의 인생을 생각해보면 ‘감사’는 너무나 큰 인생에 대한 긍정이다. 박영미 시인의 이번 시집 『거룩한 식사』를 관통하는 시정신은 바로 이 거대한 긍정의 정신이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긍정만큼 창의적인 태도는 없다. 일상에서도 그렇고 시에서도 사무사와 긍정의 정신을 견지하고 있는 박영미 시인의 삶의 태도가 어디에 기인하고 있는지를 눈치 챌 수 있는 대목이다.
나는 행복한 할머니가 되고 싶다
시골 집 마당 가득
아이들이 뛰노는....
술래잡기 공차기, 물놀이, 땅 따먹기도 하며
해질녘 까지 놀이에 열중하다
내가 저녁 먹으라고 부르면
사금파리 대신 소꿉놀이 하던
플라스틱 소꿉들을 버려두고
내 품으로 달려 들어오는
그런 행복한 할머니가 되고 싶다
여름 밤, 평상에 누워
별자리를 보다가
어린 시절 내 할머니가 가리켜 주시던
삼태, 조물신이, 북두칠성 자리를
틀리지 않게 가리켜 주고
굽게 보이는 은하수가 곧게 직선에 가까워지면
가을이 온다고 알려 주는
그런 할머니가 되고 싶다
가끔씩 떨어지는 별똥별이
어디로 흘러갔는지도 애기해 주고 싶다
까치밥이 달린 키 큰 감나무 아래서
쌩.떽스의 어린 왕자와 같이 놀았던
어젯밤 꿈 얘기를 들려주며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해마다 시골집 나무 기둥의 키 높이가 자라가는
그런 아이들을 가진 할머니,
마침내 내 나이 들어
더 이상 삶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 않을 때도
훌쩍 자란 그들을 바라보며
다시금 두 손 모아 감사 기도드리는
그런 할머니가 되고 싶다
-「나는 행복한....... 」전문
가슴이 따듯한 아름다운 시이다. 행복한 할머니! 박영미 시인은 이미 행복한 할머니가 되었다. 아들이나 딸이 결혼하여 손자를 낳기 전부터도 시인은 아름다운 시를 통해 인생의 진정한 아름다음을 체득한 할머니, 지혜가 가득하고 공공선에 대한 헌신의 마음이 가득한 할머니였다. 실제로 ‘문학과 삶’ 공부시간에 보면 언제나 진지하고 앳된 소녀같이 수줍어하시는 박영미 시인의 첫 시집을 축하하고, 앞으로 문학 여정에 큰 성공이 있길 진심으로 기원하다. 충분히 그럴만한 지혜로운 분이다.<끝>
김용락(시인, 경북외국어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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