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유명세에 비해 처음 읽어본 <군주론>.
앞뒤 맥락이 잘 안짚혀서 어려운건 둘째치고 문자 그대로 번역된 내용이 거북살스럽다.
당근과 채찍으로 달래가면서 후려치는 일견 사악하지만 일견 현명한 통치술을 강조하는 느낌이라 불쾌하고 오싹하다.
여우의 간교와 사자의 용맹이 어우러진 영웅을 시대가 요구하고..
그 영웅은 짧고 굵은 폭력으로 일거에 권력을 잡은 후 가늘고 오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겉으로 드러난 폭정이 아닌 제도화된 폭력으로 어리석고 간교한 인민을 살살 잘 다스리라는 내용으로 읽힌다.
인민의 재산과 여자는 손대지 말라는 조언도 친절히 덧봍인다.
돈과 여자만 터치안하고 먹고 살 기반만 마련해주면 인민은 불만이 없다.
부국자강을 위해 무기를 인민에게 돌리고 군사를 양성하면 외세의 침입도 막을 수 있고..권력에의 향수로 몸부림치는 귀족의 경거망동도 제어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라는 군사학적 혜안도 돋보인다.
일단 잡은 권력을 잘 유지하기 위해 군주는 <천상천하 유아독종>이 아닌 인민의 지지를 얻는 <공존의 정치>를 해야한다고 강조한다.
<인민의 지지>라는 대목에서 <군주론>을 쓴 마키아벨리가 사실은 <공화주의자>라는 의심이 덜컥 든다.
십 몇 년 전, 노르웨이에서 일어났던 테러.
캠프장에서 수십명을 살해한 극우민족주의자인 안데르스 브레이빅이 탐독했던 책 중의 하나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군주론>의 내용을 모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악의 교사>쯤으로 여기게 된 이유 중의 하나는..<군주론>이 마키아벨리의 의도와는 달리 오독되고, 그 오독된 내용들이 각자의 처지와 입장에 따라 적용, 악용된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나는 궁금하다.
극우민족주의자가 하필이면 왜 <군주론>을 탐독했는지.
혼란스러운 정국의 이탈리아에..
피렌체에서 쫓겨나 18년간 망명생활을 하던 메디치 가문이 재집권을 하는데..
마키아벨리는 <반메디치>라는 누명을 쓰고 모진 고문을 받다가..
조반니 메디치가 교황이 된 덕분에 대사면으로 풀려난다.
그리고 마키아벨리는 <조반니 메디치>에게 헌정하기 위해 이 책을 쓰다가..<로렌조 메디치>로 대상을 바꾸어 헌정한다.
헌정사를 쓰면서까지 메디치가의 눈에 들어 다시 정계에 입문하고 싶었던 마키아벨리.
고문과 투옥으로 뽀사지고 피폐해진 몸에 컴퓨터도 없이 펜에 잉크찍어 책을 썼는데..
마키아벨리의 처절한 구애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메디치는 끝내 마키아벨리를 외면한다.
어쩌면 <군주론>이라는 걸출한 책에서 국가 통치술의 모든것을 전수받았으니..
메디치 입장으로서는 마키아벨리가 썩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우리가 <자기계발>의 입장에서 얻을수 있는 팁은..
내가 가진 지식의 전부를 나보다 큰 권력을 지닌 자에게 아낌없이 퍼주지 말라는 것이 아닐까 싶다.
각설하고..
메디치가의 부름을 받아 정계에 다시 진출하고 싶어던 마키아벨리의 소망은 물거품이 됐지만, 세상에 <쓸데 없는 일>은 없다고..
이 헌정사는 동서고금을 아우르는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군주론>은 참으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책이다.
한 사회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극과 극으로 읽혀질 수 있다는 모 학자의 말에 공감이 된다.
만약 우리 사회가 박정희 신화와 전두환의 광기에 휩싸인 사회라면..군주론을 치떨리는 두려움으로 읽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만약 우리 사회가 <바보> 노무현의 선한 의지가 제대로 꽃을 피우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좌절감을 느낄 때라면..여우의 간계와 사자의 용맹을 지난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리더십를 아쉬워 할 지도 모른다.
도덕적인 덕치로 맹자왈 공자왈 그리스도 가라사대 어쩌구 했던 이전의 도덕정치나 신정정치에 반발하며..
마키아벨리는 긴장과 갈등을 안고 있는 <현실정치>에 천착하여 이 책을 썼다고 한다.
문자적으로 액면 그대로 읽기에 불편한 이유인지도 모른다.
<현실>이 이러하니 살아남으려면 필요악을 행하라..
통치술이든 자기계발이든 틀린 말은 아닌데..나는 불편하다.
<교육현실>이 이러하니 불편해도 적응하라..고도 들린다.
<사실>이라고 해서 모두 <진실>은 아니라고 조용히 뇌까려보는데..당최 무기력하다.
그래..마키아벨리..니가 갑이다.
영리하고 위험한 세키.
<뱀발>
문제작이라 함은 문제가 있는 작품이 아니라 그만큼 의견이 분분한 센세이션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뜻이겠죠.
공화주의자인 마키아벨리가 쓴 <군주론>의 내용의 의외성 때문에 이 책은 마키아벨리의 <일탈>로 여겨지기도 한다는데.. 마키아벨리의 이후 저작인 <로마서 논고>를 보면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합니다.
<로마서 논고>를 통해 <군주론>에 대한 재해석작업이 이루어지기도 했다고 하네요.
폭력의 조언자며 악의 교사라는 악평도 있고..
엄혹한 통치술로도 읽히고..
바람직한 통치자를 위한 지침서로도 이해되어 정치인들끼리 덕담 얹은 선물용으로 쓰이고..
경영학의 리더십을 가르치는 교본으로 쓰이기도 하고..
신자유주의의 무한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위한 자기계발서로도 읽히고..
마키아벨리의 처절한 포트폴리오로 평가되기도 하는..
참으로 흥미진진한 책입니다.
여름의 한가운데에서 재밌는 책을 통해 <인간>에 대해 두루 생각해보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첫댓글 나름, 완고한 도덕성을 가지고 있노라, 자부했었던 것 같은데,
마키아벨리에 대한 내 안의 편견을 걷어내고 보니 의외로 나는 마키아벨리적 인간이지는 않은가,
새삼 자신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가장 와 닿았던 건, 인간에 대한 적나라한 통찰.
때로, 편리성을 앞세워 나에게나 남에게나 꽁깍지 씌운채 바라보지는 않았던가
다시 돌아봅니다.
시선이나 생각의 차이를 차치하고
허경주, 그대가 '갑'이요~~ㅋ
마키아벨리즘과 마키아벨리를 구별하라는 말이 있던데..아마 <군주론주의>를 마키아벨리즘으로 이해하는게 아닌가 싶기도하구요~
마키아벨리는 <자유주의적 공화주의자>라고..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생각보다 나이브하고 유순한 사람이라는ㅋ 의심을 했는데..
왜냐면 부연설명 없는 원전번역본이 쫌 무서웠슴다요.
그래서 군주론의 부정적인 맥락만 보려 노력한게 아닌가 반성도 되더만요..
토론때 쌤 얘기 들으면서,
내 편견과 아집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되었슴다요.
이렇게 배우는 것이겠죠..
글고 저는 갑이 아니라..
걍 갑갑하죵~ㅋ
@카이저 소제 진지하게 여러권 찾아보고 공부해온 허쌔미 봄서, 딸랑 한권 읽고 와서는
주저리 주저리 말 많았던 거 아닌가 자체 반성했었는데...
우리 쫌 멋진 여인네인듯~ 일케 자발적 반성도 너무 잘하고..ㅋㅋ
@별바라기 박쌔미도 끼워서리 우리 정말 흔치않은 머찐 여인네들임~ㅎㅎ
이해의 과정을 심화시키는, 서로에 대한 대화와 경험을 강도깊게 토론하는 그대들이 진짜 멋진 여인네들임 ㅎ
자유론 후속도서 고민중에 군주론 추천한 종협쌤 덕분에 이번 기회에 공부 제대로 했슴다요..
아..분위기 정말 훈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