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오늘부터 2편으로 이어집니다.

[조은친구(오위찬)]

벼

                       하 병 연

높고 낮음이 없는 녹색 세상 일렁 거린다

몇날 며칠을 달리고 달려왔을

햇빛이 이제야 몸을 뉘인다

수많은 기공이 열리고

녹색으로 다시 빛난다

많고 적음이 없는 하늘도

지상으로 내려와

푸른 이불 덮는다

벼의 마음을 가득 품고 따뜻하다

내 가슴에도 벼가 자란다

나의 우주의 물기를 머금은

한 두둑 논

일생동안 거두어진

마음 물꼬가 틔워진다

벼는 흠뻑 나를 마시고

어린아이처럼 자꾸 커 간다

수줍게 작은 가슴이 생겨나고

은밀한 곳에서는 잔털이 나고

벼꽃이 온몸에서 톡톡 피어 나온다

온 세상에 향기를 비처럼

고르게 고르게 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