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스와 크로노스
헬라어에서 때와 시기를 나타내는 단어로 카이로스와 크로노스가 있습니다. 카이로스는 ‘정한 때’, 즉 어떤 이벤트적인 시간을, 크로노스는 중립적으로 연속으로 흐르는 시간을 말합니다.
시간은 우리 일상의 자연스런 일부분으로 간주됩니다. 마치 공기와도 같습니다. 그래서 특별한 관심을 주지 않고 살다 보면 띄엄띄엄 세월의 빠름을 말하기도 합니다.
모두에게 세월이 빠른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이들에게 세월은 너무 느려서 심장이 터질 것 같을 수도 있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그 때를 기다리는 자들입니다.
때를 아는 지혜는 모든 지혜에 가장 뛰어난 지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만물을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습니다(전 3:11). 그래서 때를 아는 것은 인생을 가장 아름답게 살아가는 지혜 중의 지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때를 감추고 계심으로써 사람들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알 수 없도록 하셨습니다(전 3:11). 이런 상태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지혜는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과 ‘먹고 마시고 수고하며 낙을 누리는 것’입니다(전 3:12-13).
그 때에 관한 전적인 권한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스라엘의 회복의 때를 묻자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행 1:7).” 여기서 때와 시기는 각각 크로노스와 카이로스입니다. 크로노스도, 카이로스도 하나님께서 정하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기록된 말씀을 통해서, 혹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어떤 이벤트가 있을 것임을 미리 말씀해 주십니다.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암 3:7).” 이렇게 하시는 것은 그 일이 일어날 때 그것이 하나님께서 하신 것임을 사람들이 알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기록된 말씀을 유심히 관찰하거나 기도 중에 하나님께 집중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이벤트가 있을 것임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때는 좀처럼 알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카이로스의 때가 올 것임을 알고 있지만 그게 언제인지는 알지 못하고 기다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열 처녀가 신랑이 올 것을 알지만 그 때를 알지 못하고 기다리는 것과 같습니다.
믿는 자들은 카이로스의 때를 기다리며 크로노스의 시기를 지나는 사람들입니다. 카이로스는 크로노스의 선 위에 띄엄띄엄 박혀 있는 보석과 같습니다. 그 보석 하나를 보고 크게 기뻐하다가 또 다른 보석을 향해 기다리며 살아갑니다.
기다림은 종종 고통스러운 과정이 되기도 합니다. 가나안 땅을 주신다는 약속은 430년만에 이루어졌으며, 그 기간의 반쯤은 이집트의 노예로 살아야 했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유대인들은 70년을 기다려서야 예루살렘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카이로스의 때 사이에 있는 크로노스는 무엇일까요?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무익한 시간일까요? 하나님께서 낭비하고 계신 시간일까요? 아닙니다. 크로노스는 사람들을 위한 시간입니다. 이 시간 동안 사람들은 변하기도 하고 성숙하기도 합니다.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고, 소망과 절망의 씨가 뿌려집니다. 하나님께로 향해 가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합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은 백성 답게, 악인은 악인 답게 변해 갑니다. 마침내 때가 차서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는 카이로스가 될 때, 하나님의 의와 공의가 모든 사람에게 온전히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의인의 고난은 크로노스 속에서 다듬어져 가는 담금질입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욥 32:10).” 우리 인생의 어느 한 순간도 하나님의 시선에서 벗어난 적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침묵하고 계신 것 같을 때, 그 침묵의 유일한 목표는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멀리 계신 것 같은 때가 더 가까이 가야 할 때입니다. 버림 받은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더 매달려야 할 때입니다. 믿음은 카이로스를 바라보며 크로노스의 때를 인내로 사는 것입니다. 그 인내의 때를 ‘기뻐하며 선을 행하고, 먹고 마시고 수고하며 낙을 누리며 사는 것’이 때를 아는 지혜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참으로 어지러운 세상이지만 지금도 우리가 누려야 할 기쁨과 평안이 있습니다.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너머 올람 안에 있는 자들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롬 14:17). 이 선물이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풍성하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