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착품
권경욱
파란시선 0159
2025년 6월 20일 발간
정가 12,000원
B6(128×208㎜)
131쪽
ISBN 979-11-94799-04-7 03810
(주)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
•― 신간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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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착품]은 권경욱 시인의 두 번째 신작 시집으로, 「낙과」 「미착품」 「겨울」 등 43편이 실려 있다.
권경욱 시인은 2017년 [베개]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시집 [사라지는 공원에서 우리는] [미착품]을 썼다.
우리는 권경욱이 제시하는 시적 화자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미지를 가져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죽음과는 무관한, 어떠한 외부적 자극에도 스스로를 드러냄 없이 초연히 존재하며, 감정의 지속으로서의 ‘기분’조차 외부화되고 대상화되어 단지 거기 있을 뿐인 어떤 존재. 무생물과도 같은 그런 모습. 그렇기에 이 화자의 양태는 어떤 의미에서는 해탈한 것과 같은 초연한 느낌을 선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한없이 외롭고 초라한 최소화된 존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몰입감 없이 약간의 거리감을 통해 존재할 따름이며, 그렇기에 타인과의 교류도 마음과 마음으로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러한 관조의 태도란 자신이 처해 있는 혼란, 내적 분열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고육지책인지도 모른다. 화자의 어제에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이 지울 수 없는 얼룩의 모습으로 각인되어 있음이 암시되는 시편들을 떠올리자면 무감각하고 무감정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화자의 모습은 일련의 설득력을 지닌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바라보는 것은 어떨까. 예컨대, 화자의 이토록 고요하고 최소화된 존재의 양태가 견딤을 위한 것이라 할 때, 그 견딤은 단순히 자신이 경험하는 감정적・감각적인 혼란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미래에 다가올 어떤 순간을 위해 자신의 상태를 오래도록 지속하기 위한 방법이라면? 예컨대 이 무감각한 고요란 자신이 속한 세계 전체를 조망하기 위한 일련의 시적 방법론으로써 자신이 속한 세계를 새롭게 예술적으로 바라보기 위한 그의 고유한 방식이며, 이를 통해 언젠가 찾아올 가까운 미래에 대한 미세한 예감과 기척에 한껏 귀 기울이기 위한 방식으로도 읽힐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최소화된 무생물적 주체가 아닐까. (이상 임지훈 문학평론가의 해설 중에서)
•― 추천사
[미착품]의 언어는 물비늘로 이루어져 있다. 물비늘의 빛을 머금은 활자는 마음의 공백을 늘린다. 그곳으로 드나드는 묽은 것들을 시인은 소묘한다. 그는 세계의 볼륨을 최대한 낮추고 작업한다. 물빛이 튀듯 활자가 스르륵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활자들이 모여서 직접적인 의미를 발생시키기보다는 여백을 늘리는 데에 치중되어 있다. 완료보다는 지속에 가깝게, 지속보다는 정지의 방향으로 언어가 흘러간다. 그렇다고 언어가 느리거나 희미하지는 않다. 오히려 경쾌하고 거침없이 배열되면서 기존의 의미망을 단숨에 덮어 버린다. [미착품]을 읽다 보면 착란에 빠지게 된다. 물비늘처럼 활자는 활자를 반사시키면서 ‘나’를 재구성한다. 지금 여기가 현실의 ‘생방’인지 ‘연습실’인지, ‘내’가 ‘재생’ 버튼을 누른 건지, 되풀이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아침이 밝으려면/내가 몇 번째 의자에 앉아/얌전히 불타야 하는지는 모르지만”(「무향실」) ‘나’는 물비늘처럼 당도하지 않음으로써 빛나는 물체, 시인이다. “성실한 관찰자”인(「입실」) 시인은 마음이나 기분을 포장할 수 있는 언어의 끈을 지니고 있다. 그가 여백과 휴지의 공간을 깊숙하게 만들어 내는 이유는 아마도 찰나의 물빛을 일상에서 흘러가는 시간보다는 조금은 더 길게 간직하고 싶은 마음에서일 것이다. “작년에 받은 선물을/포장도 뜯지 않고 두는 건//미래를 보관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우산」). 바다 위의 물비늘이 ‘메아리’가 되어 ‘기분’으로 포장된다. 시인은 “반짝이는 건 전부 호수 같다”고 말한다(「호수 앉기」). 그 마음의 호수에 [미착품]을 다시 띄워 본다. ―정우신 시인
•― 시인의 말
주문한 적 없어도
도착하는 마음들
•― 저자 소개
권경욱
2017년 [베개]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사라지는 공원에서 우리는] [미착품]을 썼다.
•― 차례
시인의 말
제1부
생방송 – 11
입장 – 13
매듭 – 16
호수공원 – 20
면접 – 22
너의 작업실 – 25
입실 – 28
영업시간 – 32
연습실 – 35
우산 – 38
무향실 – 40
밝은 정원 – 42
스케쳐 – 44
제2부
배차 – 49
낙과 – 50
승객 – 52
미착품 – 54
종이접기 – 57
인공 눈물 – 58
가방 – 60
기념품 – 62
근린공원 – 63
응시 – 64
야경증 – 66
제3부
산책들 – 71
악몽 – 74
목도리 – 76
검은 별 – 78
마중 – 79
겨울 – 80
환승역 – 81
감은 눈 – 82
퇴화 – 85
캐럴 – 86
메아리 – 89
호수 앉기 – 92
제4부
정적 파티 – 97
이어달리기 – 100
사춘기 – 102
자동 녹음 장치 – 106
귀 – 108
경호원 – 109
폐곡선 – 110
해설 임지훈 당신의 것이 아닌 당신의 X – 113
•― 시집 속의 시 세 편
낙과
식탁이 밝아도
빛은 들이쳐 있다
주문한 적 없어도
아침은 마음의 소실점
잘못 만든 영화처럼
아무리 환해도
자막을 볼 수가 없고
집에서 너무 멀리 나온
길 잃은 남매처럼
내 집에서 길을 잃을 수 없다
나는 마시던 모과차를
바닥에 쏟는다
식탁에 앉은 사람은
남은 설탕으로 사람을 그린다
사람 모양으로 그린다 ■
미착품
창문에 앉은 사람은
창밖을 본다
그것은 규칙도 아닌데
커피가 유리잔에 담긴다
얼음과 함께
그것은 투명한 사실
햇볕이 뜨거운 거리
걷는 사람
유리는 창밖을 비춘다
창틀을 제외하면
거의 실시간으로 보인다
보고 있다는 건
재생되고 있다는 것
그것을 적는 사람
그렇게 적힌 사람
이것을 읽는 사람
누구도 멈출 줄 모른다는 것
창밖을 보는 사람은
바깥을 보는 얼굴을 본다
얼굴을 보는 얼굴을
마감할 수는 없다
커피는 유리잔에 담겨 있다
컵에 물이 맺히고
마지막 손님이 일어날 때까지
창밖을 보는 사람은
매일 반복되는 일이다
점원은 가게를 닫고
내일 주문할 물건들을 확인한다
신선 상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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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을 취소해도
배송이 시작된 상품은 도착할 수 있다 ■
겨울
여기부터 제한구역입니다. 순서대로 통행권을 제시하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질서를 지키며 사라지고 있다. 내겐 주머니가 없다. 차례가 되자 나는 먼저 간 사람의 통행권을 보여 주었다. 그는 미소를 짓는다. 입김이 느리게 흩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