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는 작정하고 떠나는 답사가 있고 즉흥적으로 떠나는 답사가 있습니다.
전 후자 쪽을 좋아합니다.
한 곳의 답사를 마치면 그 자릴 뜨기 전에 다음 장소를 물색하고 거기서 가까운 곳의 답사처를 결정하는 편입니다.
무작정 가다 보면 어떤 곳은 문을 닫아 들어갈 수 없는 곳도 있습니다만 대개는 문난한 답사로 이어집니다.
답사하면 유명한 곳을 먼저 떠올립니다.
책으로도 소개되었거나 공부에 도움 될만한 곳 또는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곳에 먼저 눈이 갑니다.
당연한 겁니다. 저도 그랬었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답사에도 빈부격차가 생기듯이 눈높이에 제한이 생기더군요.
이름 없는 건물을 대하거나 그런 곳에 가면 왠지 신경을 덜 쓰게 되고 하찮게 여겨졌습니다.
그러다 이래선 안 되겠다 생각하고 품평에 상관없이 다니게 되었습니다.
속된 말로 급이 낮은 문화재 또는 유사한 건물들을 통해 한 가지 깨달은 사실은 격식에 치우치지 않는 자유분방함이
많이 발견된다는 점입니다. 어딘가 어설퍼 보이지만 남들이 생각지 못하는 기발한 발상들 말입니다.
그것들이 오히려 전통을 통한 새로운 것을 생각하게 하는 훌륭한 동기가 되기도 합니다.
구니 서당은 차를 몰고 지나가는 길에 설핏 눈에 보였지만 한참이나 차를 몰고 가다 후진으로 다시 돌아와 들린 곳입니다.
그야말로 발길 닿는 대로 들어가 본 곳입니다.
서당은 문중에서 그들 집안의 자녀들을 가르치기 위한 초등학교에 속합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개인이 자신들의 학교를 따로 세운다는 건 교육열에 대한 남다른 열정과 거기에 따르는 재력이 뒷받침해 줄
때에야 가능한 일입니다. 거기엔 집안에 우러러 볼만한 높은 벼슬아치가 있을 때 더욱 그러하겠지요.
김굉필(金宏弼, 1454년 ~ 1504년 10월 7일)은 조선 전기의 문인, 교육자, 성리학자, 화가로 호(號)는 한훤당(寒暄堂)·사옹(蓑翁),[1] 또는 한훤(寒暄), 말곡(末谷[2])이며 자(字)는 대유(大猷),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점필재 김종직의 제자로 김일손, 김전, 남곤, 정여창 등과 동문이었다. 《소학》에 심취하여 스스로 '소학 동자'라 칭하였고, 《소학》의 가르침대로 생활하였다.
-위키백과에서 발췌
김굉필을 흠모하며 그처럼 공부하여 등용문에 들어가고 싶다는 열망을 갖고 공부에 전념하였을 후손들이 보이는 듯합니다.
공부란 자고로 일정한 장소를 정해두고 매일매일 반복학습을 해야 하는 일입니다.
어쩌다 맘 내키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우린 지난한 학교 생활을 통해 터득하지 않았습니까.
하다못해 글쓰기도 그림 그리기도 일정한 반복 훈련 없인 불가능한 일입니다.
제가 여기 한옥의 뜰안이란 카페를 통해 글을 올리는 것도 따지고 보면 개인적인 훈련입니다.
누가 얼마나 자주 내 글을 읽고 안 읽고는 저완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뭔가를 기록하고 작으나마 나의 글을 통해 남들이 조금의 도움이라도 된다면 그걸로 전 백 프로 만족합니다.
답사 역시 생각나면 어쩌다 다녀오는 식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뭐 대단한 곳만 골라 다니는 것이 아니라면 가까운 곳에 우리가 등한이 여긴 문화재 또는 유사한 장소는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거기 갔다 온다고 돈 많이 드는 것도 아닙니다. 약간의 기름값과 점심 한 끼 사 먹을 돈 있으면 당장이라도 훌쩍 다녀올 수 있습니다.
여름 휴가 어디로 갈까 고민하고 계신가요 가까운 문화재 답사하며 시원한 카페에서 냉차 한 잔 마시고 저녁에 영화관에 가서 영화 한 편 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