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구보리 하화중생과 사섭법>
대승불교의 전제인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은 가장 강력한 동사섭입니다.
동사섭同事攝은 사섭법四攝法 중의 하나이고, 사섭법은 그 본질을 동체대비同體大悲에
두고 있습니다. 사섭법은 아래와 같습니다.
(1) 보시섭布施攝: 보살이 중생들에게 재물과 바른 가르침을 주는 것. 보시에는 재시財施
(재물 보시)·법시法施(가르침을 주는 보시)· 무외시無畏施(두려움 없는
마음을 일으키도록 해 주는 것)가 있음.
(2) 애어섭愛語攝: 보살이 중생들에게 부드러운 말과 알맞은 말로 마음을 보듬어 주는 것.
(3) 이행섭利行攝: 보살이 중생들에게 이익이 되는 행동으로 구제 하는 것.
(4) 동사섭同事攝: 보살이 중생들에게 한 마음·한 몸이라는 것을 실천하는 것.
여기서 섭攝은 ‘포섭’ ‘끌어안음’의 의미가 있습니다. 사섭법의 한 가지 한 가지가 실은 무척
행하기 어려운 것들입니다. 상구보리上求 菩提(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하화중생下化衆生
(아래로는 중생을 제도함)은 동사섭에서 출발하는데 이게 생각만큼 만만치 않습니다.
상구보리 해도 하화중생을 하지 않으면 상구보리의 의미가 없습니다. 혼자 깨닫고 혼자
죽는다면, 이 경지를 이룬다 해도 그건 개인적이 일이지 세상에 득이 될게 전혀 없지
않습니까? 또한 하화중생을 하는데 상구보리의 정신이 없으면, 이건 장님이 길을 안내하는
것과 같지 않겠습니까?
상구보리나 하화중생 어느 것이든 정말 행하기 어려운 보살도입니다. 자신을 버리지
않고는 결코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 없는게 바로 상구보리 하화중생입니다.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체는 동체대비입니다.
동체대비의 궁극은 나-타인-우주가 한 몸이라는 사실을 체감하는 것입니다. 불자들은
그것에 다가갈수록 ‘내가 지금 무엇을 해야하는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지금처럼
경제력·정보력 등 삶의 질을 좌우하는 것들의 양극화가 심화될수록 ‘사섭법’의 가치를
되새겨야 할 것입니다.
상구보리가 안 된 상태에서 스님들이 신도들의 인생의 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을 하화중생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정말 복잡한 세간의 일들은 어쩌면 신도 자신들이 풀어
나가는게 답일 지도 모릅니다. 그 답을 찾는 지혜를 보충해 주는 것은 스님들의 몫이
확실하지만 말입니다.
흔치 않게 스님들이 어디에 얼마를 쾌척했다, 보시했다는 보도를 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스님의 선행은 실은 신도들의 공덕을 대신해서 ‘전달자’ 노릇만 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 돈은 신도들이 내게 시주한 것을 모은 것이니, 칭찬은 내가 아니라 신도들이 받아야 한다”
라고 말하는 스님은 아주 드뭅니다. 물론 스님이 자신이 출간한 책의 인세로 보시한 것은
제외하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