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롤로그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마루금에 접근하거나 귀가하려면 더 가고 싶은데 중간에서 그만 둬야 하고, 힘에 부쳐도 더 가야하는 경우도 있다. 이번 구간은 밀재와 암치가 대중교통으로 접근과 귀가가 수월하다. 당일 산행으로는 무리고 이틀 산행으로 기획했다. 지난 4구간은 밀재까지 진행해야 했었다. 여러가지 사정으로 지경재에서 중도하차하면서 계획을 변경하게 된 것이다. 이틀산행이면 토요일과 일요일이 좋지만 토요일엔 여동생 환갑이라 제주에 갔다와야 해서 금요일과 일요일에 결행하는 것으로 정했다.
우려와 달리 아직까지는 대중교통이 원활하게 연결하면서 접근과 귀가가 적절하게 이루어졌다. 영산기맥을 마치면 땅끝기맥에 이어 호남지역 산줄기를 학교에 재직하는 동안 모두 연결하고 싶다. 대중교통만 잘 연결된다며 못할 것도 없다.
★ 산행개요
- 산행코스 : 지경재-깃대봉-모악산-불갑산(연실봉)-밀재-가재봉-분성산-장암산-태청산-월랑산-고성산-촛대봉-고산-양치치
- 산행일행 : 단독산행
- 산행거리 : 도상거리 32km(첫날 10.7km, 둘째날 21.3km), 실제거리 41.2km(첫날 14km, 둘째날 27.2km), 접속 3km(둘째날)
- 산행일시 : (첫날) 2024년 5월 31(금) 09:30~15:40(6시간 10분), (둘째날) 2024년 6월 1일(일) 08:30~18:30 (10시간)
★ 기록들
<첫째날>
함평행 첫차를 타야하는데 시간 계산을 잘못하면서 7시 10분차를 타게 되었다. 타고 보니 500번 버스 출발시간에는 도저히 댈 수 없다. 부득이 두번째 버스를 타야했다. 한번 틀어지니 끝까지 다 틀어져 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걱정할 일도 아니다. 어차피 첫날은 산행거리가 짧아서 빨리 끝날 테니깐...
9시 30분, 500번 버스는 지경재 팻말이 있는 지점에 부려줬다. 복숭아 과수원을 우회하여 숲길로 들어가서 산행채비를 했다. 바지를 갈아입어야 하기 때문에 보는 사람이 없더라도 도로에서는 할 수 없었다. 외딴 민가에 가까워질수록 개짓는 소리가 시끄럽다. 커다란 흰개가 집요하게 따라다니며 나를 괴롭힌다. 어쩔 수 없이 우회하여 마루금을 찾아들어갔다.
마루금에 복귀 후 선답자 후기에 등장하는 군 사격장 경고판이 나타나며 군사지역 안으로 진입하게 되었다. 주말이면 괜찮겠지만 평일이라 혹시나 하며 훈련장 가까이 다가서는데 지척에서 총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사격훈련하는 중이라 빠르게 현장을 이탈하는 수밖에 없었다. 교육장이 있는 화신골재로 조금스럽게 내려서자마자 길건너 벌판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만약 겨울이나 초봄이면 훈련장에서 보였을지도 모르겠지만 잡풀이 우거진 덕에 내 모습은 감춰줬다. 이외로 훈련 목적으로 군인들이 등산로를 넓게 만들어서 깃대봉까지 편하게 오를 수 있었다
230.7봉을 지나자 노은재에서는 모악산으로 편하게 이어졌다. 11시 50분 모악산에 도착하자마자 점심식사를 하기위해 의자에 자리를 폈다. 부부인 듯한 산객이 보인다. 기맥하면서 산행하는 사람을 처음 보는 것 같다. 연실봉까지 가는 길도 넓고 편안했다. 그늘이 좋아서 간간히 놓여진 나무 의자나 평상에 눕고 싶어진다. 정자가 있는 구수재를 지나 불갑산 연실봉에 도착했다.
밑으로 불갑사가 보이고 처음으로 영산기맥 분기봉인 내장산이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왠걸 함평군에서는 함평 최고의 봉우리라며 모악산이라는 비석을 세워놨다. 가끔씩 지역이기주의 때문에 시,군 경계에 있는 산봉우리 이름을 달리하는 경우가 있다. 이곳 역시 영광군과 함평군 경계에 있는 곳이라 서로가 자기네 산이라고 주장하는 모양이다.
나무데크를 따라 내려오다가 암릉구간을 넘어서자 온갖 표지기가 달려있는 노루목에 이르렀다. 막연히 일반 등산로를 마루금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따라갔다. 황홀한 단풍나무 숲길을 지나 계단을 거의 다 내려갈 무렵 산길샘을 열어보니 마루금이 아니다. 300개가 넘는 계단을 다시 올라서 분기봉인 장군봉에서 어떻게 방향을 틀었는지 찾아봐도 흔적이 없다. 다시 노루목까지 가면서 분기점을 찾아보지만 오리무중이다. 어쩔 수 없이 산길샘에 의지하여 마루금을 개척해가기로 한다. 가시덤불에 이어 통신탑 인근 벌목된 큰 나무들로 인해 돌파하기가 만만치 않다. 어렵사리 노루목에서 이어지는 포장도로에 이르자 선답자들이 어떻게 이길을 통과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바로 노루목에서 포장도로따라 올라오면 2분도 걸리지 않는데 무려 30분 이상이나 소요되었다.
밀재 가는 길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무척 희미했다. 아마도 일부 선답자는 용문사 길이나 다른 샛길을 이용했을 것이란 추정을 해봤다. 358봉을 넘어 금산고개에 이르자 길이 확 열렸다. 이 역시 수양산 가는 길을 정비해서 그런 것이지만, 마루금에서 조금 벗어난 수양산에서 밀재로 방향을 마루금도 뚜렷하진 않았다.
밀재는 15시 38분에 도착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옷을 갈아입은 후 운 좋게도 5분 정도 기다리자 버스가 왔다. 광주 송정공원역에 하차한 후 KTX타고 편하게 목포까지 갈 수 있었다.
<둘째날>
목포에서 6시 21분 SRT 타고 광주송정역에서 하차한 후 송정공원역까지는 걸었다. 역에 도착하자마자 500번 버스가 들어왔다. 일단 승차한 후 밀재간다고 하니 문장터미널에서 하차하면 된다고 했다. 6월 1일부터 광주-영광간 버스 운행이 많이 축소되어 인근에라도 갈 수 있으면 고마운 마음으로 무조건 승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1시간 또는 재수없으면 2시간을 더 기다려야 할지 모를 일이다.
문장터미널에 하차한 후 가민시계를 눌러 3km 떨어진 밀재까지 걸어올라갔다. 밀재까지는 40분이 소요되었다. 8시 30분 시간당 3km 주행을 염두에 두고 발을 떼었다. 돌아가는 교통편을 고려하여 조금 서두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가재봉에 이어 뱃재까지는 1시간 정도밖에 소요되지 않았다. 칠봉산은 언제 지나쳤는지 연정재에 내려서고 보니 칠봉산을 통과한 것을 알 수 있었다. 11시 8분 조그만 비석이 풀숲에 감춰져 있는 분성산에 도착했다.
11시 17분 상무대C.C 바로 앞인 사동고개(덤바위재)에 내려섰다. 장암산 들머리 평상에 서젊은 부부가 딸아이 둘과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갑작스런 나의 등장에 어리둥절해한다. 장암산 오름길은 간벌을 잘 해놓은 덕에 길은 좋지만 햇볕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30분을 헉헉거리며 올라가다 가마터를 만나자 배가 고프다는 핑계로 의자에 걸터앉아 점심상을 차렸다. 마침 약수터가 있어 물을 마시고 머리도 감았다. 음용불가라는 팻말이 있었지만 그런 말을 믿지 않은지 오래되었다. 물은 시원하고 깨끗했다. 과일주를 반주 삼아 찬은 김치종류밖에 없어도 넉넉하게 즐길 수 있었다.
마루금은 넓은 길이 아닌 좁은 길이다. 능선에 이르자 장암지맥 분기지점으로 표기되어 있다. 배낭을 부리고 200m 떨어진 장암산을 갔다오기로 한다. 나중에 장암지맥도 답사해야 하는 곳이다. 장암산에는 너럭바위와 정자가 있고 주변 조망을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영광대마산업단지가 펼쳐져 있고 내 전 회사의 e모빌리티센터도 그 안에 어디쯤엔가 위치해 있다.
작은 마치재에 이어 마치로 내려섰다. 길게 이어진 가파른 오르막길을 밧줄을 잡고 용을 쓰면서 이번 구간 최고봉인 태청산(593.3m)에 이른다. 부부산객이 허름한 복장을 하고 헉헉대는 내가 불쌍한지 빵 하나를 먹으라고 건내지만 사양한다. 호두과자도 있고 배낭에는 오늘 암치까지 진행하는데 적당한 먹거리가 있어 굳이 받지 않아도 되었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그들과 헤어진 후 편백나무로 덮힌 몰치에 도착한다(14:00). 군감뫼를 지나고 별 특징이 없는 월랑산에 이르렀다. 오른쪽으로 급하게 틀면서 장성추모공원 입구인 깃재에 내려섰다(15:20).
<영광대마산업단지>
<육군 보병학교와 포병학교 - 두 아들이 교육차 이곳을 들렀다 간 곳이다>
<가운데 UFO처럼 생긴 건물이 장성추모공원 장례식장(?)>
고성산 오름길을 힘들게 올라가다가 어느 순간 임도로 떨어졌다. 당연히 임도가 고성산으로 안내하는 줄 알았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임도로 내려서는 것이 아니고 임도 거의 붙어서 희미한 산길을 따라 올라가야 했었다. 그런데 임도의 형상을 보면 마치 올라가는 길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임도를 따라 올라가는 길이 있겠거니 생각하고 1km 정도를 벗어나 산길샘을 보니 고성산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더 멀어지기 전에 고성산으로 방향을 잡고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낙엽 때문에 한발짝을 디디면 반발짝은 미끄러지길 수백번, 암릉구간을 찾아 리찌산행을 시도했다. 우연찮게 석성의 흔적도 만났다. 사람이 다니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보수했을리는 없을테고, 아주 짧은 거리지만 거의 완벽한 모습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임도로 내려서서 가파르게 고성산까지 올라서기까지는 50분정도가 소요되었다(16:40).
마루금을 벗어난 댓가로 30분을 허비한 셈이다. 막상 가미치로 내려서는 길도 마루금이지만 길도 희미하고 험해서 시간은 더욱 지체되고 있었다. 가미치에도 편백나무 숲으로 덮혀져 있다. 편백나무 숲에는 독성 때문에 잡목들이 살 수가 없다. 그래서 걷기에는 더할 나위없이 좋다. 낙엽 때문에 바닥 푹신하고 걸리적 거리는 잡목이 없으니 최고의 등로라 할 수 있다. 촛대봉 아래에서 배낭을 부려 놓고 잠깐 쉼을 가지면서 남아있는 호두과자와 오디주를 다 비웠다. 고산정상에는 "만나서 반갑송"(고성군에서 작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내리막은 이미 정비를 잘 해놔서 달려도 될 정도로 편안했다.
18시 30분 밀재에서 등산 시작하고 10시간만에 암치에 이르렀다. 실제거리는 27km가 찍혔다. 옷을 가라입고 도로 따라 내려가다가 마을 주민을 만났다. 7시쯤이면 버스가 올라온다고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네이버에는 버스도착시간이 뜨지 않는데 그 분 덕에 소중한 정보를 알게 되었다. 그 분 말대로 버스가 도착했고 장성역에 편하게 갈 수 있었다. 인근 식당에 들러 소머리국밥을 주문했는데, 소고기를 넉넉하게 넣어줘서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다. KTX 타고 집에 들어오니 10시가 넘어서고 있었다. 하루가 꽉찬 느낌이 좋다.
<덤바위재>
<공사중인 임도. 마루금이 아니다>
<우연찮게 마루금이 아닌 곳에서 발견한 석성의 흔적>
<설악산에서 백두대간-호남정맥-영산기맥을 잇는 986km 산줄기 산행을 하고 있다>
<석성의 흔적>
<뒤따르는 마루금 : 고성산-월랑산-태청산-장암산>
<가야할 마루금. 오른쪽 상단은 삼태마을>
<만나서 반갑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