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성장씨 주부(문핵)공파 종중과 용산재
결성장씨 주부(문핵)공파 종중은 조선시대 훈련원주부 문핵공이 충청남도 연기군 동면 용호리에 삶의 터진을 잡은후 대대로 후손들이 몇백년 동안 그곳에서 집성촌으로 부락을 이루고 살면서 조상의 시제 및 벌초 행사등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종중이 출범한 것으로 보이며, 정부의 세종시 건설에 따라 2006년 선산 및 마을 전체가 정부에 수용 되면서 그곳에서 운영 되어오던 종중이 세종특별시 전의면 달전리에 종산을 마련하여 조상의 묘소를 이전 하고 재실 용산재를 신축하여 시제등 행사를 그곳에서 진행하며, 현재에도 종중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용호리 전경
문핵공의 출생년도는 전해지지 않으나 공의 후손중 족보에 출생년도가 최초로 기재되기 시작한 공의 6세손(석양공) 출생년도가 1747년이고, 공의 맏형(문한) 막내 손자(홍정)의 출생년도가 1647년으로 기록되어 있어 이를 비교해볼 때 공은 1600년 전후에 출생한 것으로 예측할수 있다. 이 시기는 조선시대 선조임금의 재위기간(1552년~1608년)으로 공의 출생당시 시대의 상황을 알수 있다. 당시에는 정확한 인구조사가 이루어져 있지 않으나, 전해오는 여러 자료에는 그당시 조선의 인구가 약 천만명 내외로 알려져 있다. 공의 조부 및 부친의 묘소가 인근에 위치한 노송리에 소재하고 있으며, 이곳에는 현재에도 결성장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종중관련 계책자
문핵공이 사셨던 충청남도 연기군 동면 용호리는 현재 세종특별시 연동면으로 바뀌었으며, 용호리의 옛지명은 주변의 산세가 마치 용의 모양을 닮았다하여 용산으로 불리어왔다. 용산은 상룡, 중룡, 하룡으로 마을이 구분되어 불려지며, 공의 후손들이 주로 거주한 곳은 하룡마을이다. 마을 주변으로는 농사를 지을수 있는 농경지가 소재하고, 후면으로는 야산이 마을을 감싸고 있다. 하룡마을 서쪽으로는 청주에서 내려오는 미호천이 유유히 흐르고 있는데 이곳은 미호천의 하류로서 내가 어릴때에는 강으로 불렀으며, 맑은 물이 항상 흘러가고, 동진나루가 소재하여 강 건너에 위치한 연기면에 가려면 나룻배를 타고 다녔다. 이곳을 지난 미호천은 조금 내려가면 신탄진에서 내려오는 금강과 만나는데 이곳의 지명이 합강리이다. 이곳에서 합쳐진 물이 공주, 부여, 강경을 거쳐서 서천과 군산 사이를 가로질러 서해바다로 흘러간다.
용호리 농사 풍경
마을 후면의 산너머에 종중의 기존 선산이 있었다. 현재의 세종특별시 보롬교에서 동측으로 바로 보이는 산이다. 남서향의 야산으로 미호천이 감싸고도는 조용하고 아늑한 곳이다. 이곳에 약 15대에 걸친 조상의 묘소가 모셔져 있었고 해마다 음력 10월 10일이면 후손들이 문핵공의 시제를 성대하게 모셔왔다. 산 하단에 종산과 묘소를 관리하는 재실집이 있었고 그곳에는 관리인이 살면서 묘소관리와 시제 준비를 하였다. 이곳에서 준비된 제물을 묘소까지 지게로 날라서 시제를 모셨다. 이날을 시작으로 며칠간을 공의 후손들 시제를 모셔왔다.
현재의 선산은 2006년 기존 선산의 수용으로 종중원들이 공주, 부여, 괴산, 진천등 충남북 일원 수십군데의 후보지를 답사하여 그중에 교통, 지형, 풍수등이 가장 좋은 이곳을 선산으로 결정하였으며, 약 15,000평 규모의 임야와 부속토지 약 1,000평으로 구성되어 있다. 2010년 임야 하단 일부에 묘지 허가를 받아 약 1년 정도의 조성공사 기간을 거쳐 이곳으로 조상의 묘소를 완전히 이전 하였다
달전리 종산 전경
달전리로 선산을 이전한 종중은 선산 입구에 2014년도에 조상의 시제를 모시고 종중 행사를 진행할수 있는 재실과 부속 건축물을 신축하고 남은 재원으로 주변에 농경지를 구입 하였다. 재실은 곤좌간향에 정면 5칸, 측면 3칸, 이익공 팔작지붕의 전통 한식 목조 건물로 재실의 이름은 기존의 선산이 위치해있던 옛지명을 사용하여 용산재라 지었다. 재실을 출입하는 사주문의 이름은 論語 속 고사인 過庭之訓(과정지훈)의 庭을 인용하여 문을 드나들 때마다 선조의 정신을 돌아보고 배우며, 후손에게 가르친다는 뜻으로 顧庭門(고정문)이라 지었다.
용산재 전경
용산재에는 수백년 동안 이어진 선조님들의 삶과, 후손에게 전통을 물려주기위한 종중원의 노력이 재실과 사주문의 이름에, 건축에 들어간 돌과 나무 하나 하나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용산재의 대들보에는 龍 檀君紀元 四三四七年 甲午 四月 十二日 竪柱上樑 坤坐艮向 後昆大吉 應 天上之三光 備 人間之五福 龜(용 단군기원 4347년 갑오 4월 12일 수주상량 곤좌간향 후곤대길 응 천상지삼광 비 인간지오복 구) 라고 쓰여있다. 이를 간략하게 해석하면 대들보 최상단에는 龍 자를 거꾸로, 맨 하단에는 龜 자를 적어 놓아 하늘의 용과 땅의 거북이 건물을 지켜주고, 2014년 4월 12일 곤좌간향에 기둥을 세우고 종도리를 올린다, 이후로의 모든 후손이 大吉하길 기원하고, 이건물에 하늘의 해, 달, 별이 빛을 내리어 모든 이에게 오복을 누리게 하소서 라는 기원이 담겨져 있다.
용산재는 어려운 세월을 함께하며 소박하게 사셨던 조상들이 마련해놓은 재산으로 종중원들의 많은 정성과 노력을 기울여 세워놓은 소중한 건물이다. 용산재의 신축은 결성장씨 주부(문핵)공파 종중의 커다란 里程標(이정표)로서 후손 대대로 선조들의 삶을 돌아보고 미래를 준비할수 있는 훌륭한 장소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종중원들의 가장큰 바램이다.
2020년 5월 장 황 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