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의 아름다움
김동원 시인
세계는 불편한 것이 오히려 아름다움을 만든다. 지진은 지구의 불완전한 화폭이다. 변화하고 들끓고 드러나고 숨는다.화가는 ‘붓’을 통해 사계(四季)의 구상과 추상의 점(點) · 선(線) · 면(面)을 넘나든다. 겨울 폭설의 단순미는, 봄의 현란한 색채 혁명으로 옮겨 간다. 천지 만물은 모두 오브제objet이다. 초록의 나뭇가지는 허공의 의자에 앉아 바람을 만진다. 빛과 어둠은 사물의 심리와 내면의 음영을 그려낸다. 상상력이 정신의 여백이라면, 이미지는 가상과 현실의 은유이다. 형태의 실험장인 자연은, 무의식의 변형장이다. 창조와 파괴를 통해 표현 추상과 아방가르드를 동시에 추구한다. 화산 폭발과 번개로 불의 그림을 펼치기도 하고, 해일과 폭우로 물의 미학을 선사하기도 한다. 이렇듯, 화가는 색(色)과 공(空)의 화법으로, 칠하거나 깎고 새기거나 빚어서 형상을 만든다. 해와 달의 구도도 알고 보면, 지구란 화폭 속에서 나타났다 사라지는 마술적 사실주의를 구현한다. 상징은 시공을 통해 사물의 몸을 색의 정신으로 감각화한다. 천지를 지극(至極)으로 모시면 명작이 탄생하고, 스쳐 지나가는 순간 졸작이 된다.
이번 2025 장애예술인 희망기획전「봄의 소리Ⅱ」는, 4人 4色이 펼치는 환상과 사실주의, 빛과 어둠의 탐색, 색과 오마주를 통한 고통스런 기억의 재현이다. 각자의 트라우마는 작품에 감동과 울림의 숨결을 불어 넣어 놀라운 세계로 탄생한다. 위대한 작품은 평면과 공간 속에서 타인의 상처를 어루만질 때 빛난다. 네 명의 작가는 서로 다른 미술의 경향을 추구하고 있으며, 각자의 해석에 따라 다양한 이미지로 드러난다. 이런 모호하고 다층적인 조형은 화폭 속에서 새로운 목소리를 낸다. 회화는 태초의 아름다움을 순수한 마음으로 비춘 거울이다. 절박한 그림만이 관객을 움직이지만, 신작은 신비로운 떨림을 준다. 피카소가 형태를 해방시켰다면, 마티스는 색채의 자유를 꿈꿨다. 칸딘스키는 색의 시인이자 연주가이다.4人 4色 역시 독창적 화법으로 색채의 번짐을 구현하고 있다. 고독한 화가는 굴욕과 핍진, 절망과 욕망 사이에서 빛을 찾는다. 이번 전시회는 대상을 재현하는 사실주의 방식도 선(選)보이지만, 현대 미술의 한 장르인 미니멀리즘을 통해 새롭게 공간을 장악한다. 존재와 비존재와의 경계를 통해 판타스틱한 세계를 추구하는가 하면, 음영(陰影)을 통해 내면세계를 파 내려가는 작품도 보인다. 21세기는 보는 미술에서 생각하는 미술로 옮겨가고 있다. 기존의 예술에 사로잡혀 관점이 축소되면, 화폭 구성에 갇히게 된다. 빛나는 작품은 과감히 인식의 틀을 벗고 뛰쳐나갈 때 명작이 된다. 색채를 다루는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진정성이 희박하면 졸품이 된다. 한 사람의 위대한 화가의 출현은 별의 탄생과 비견된다. 시대의 유행에 좇지 말고, 어둠 속에서 자신만의 아트art를 찾을 때까지, 대상의 살점과 뼈를 드로잉해야 한다. 이번「봄의 소리Ⅱ」전(展)은, 색채의 비명이 들릴 때까지 붓을 밀고 화폭 속으로 들어간 화가들의 흔적이다.
리나의 ‘의자’ 시리즈는 판타스틱fantastic하다. 시간과 공간을 확장 또는 수축시키는 감각과 시점은 그로테스크하다. 하여, 그녀에게 의자는 새의 은유이자 꿈의 환유다. 작품「블루빛 숲속」(116.8 × 91cm , oil on canvas)의 의자는 몽환적이자 시적이다. 현대인의 잃어버린 꿈과 행복을 ‘의자’를 통해 성찰케 한다. 마치, 의자의 입술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푸른 말을 듣는 것처럼, 억눌린 그녀 자신이 ‘블루’가 된다. 특히,「눈부시게 행복했던 나를 본다」(116.8 X 80.3 cm, Oil on canvas)는 초현실주의를 연상시킨다.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려는 자신만의 독창적 구도를,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색채의 마술을 부린다. 그녀의 의자는 샤갈과 나란히 ‘몽마르뜨 언덕 카페 거리를’ 날며, 잠시 파리지앵Parisien이 된다. 서로의 기분을 너무나 잘 간파한 ‘의자와 화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감미로운 연인의 관계다.
송진현의「기억. 그리고」시리즈에서 보듯, 원근법의 발견은 그림의 환영 효과를 극대화한다. 이런 구조는 전경과 후경을 동시에 보여준다. 미적 효과를 내기 위해 화면의 구성과 분할은 중요하다. 무의식적 욕망을 드러내는 음영(陰影)은 대상에 심리적 깊이를 준다. 화폭 밖의 관찰자를 통해 점과 선, 면과 입체, 빛과 어둠은 두고 온 ‘기억의 흔적’을 환기시킨다. 색의 다양한 톤을 바꾸어 화가의 내면 풍경을 비추고 있다. 특히,「기억. 그리고」(65.1 × 90.9, Oil on Canvas, 2014)는, 명암의 강렬한 콘트라스트contrast로 인해 압도된다. 캄캄한 어둠의 윤곽선은, 빛을 찾아가는 ‘기억’의 암울함을 보여준다. 서로가 밀치며 갈등하는 빛과 어둠의 긴장을 보고 있으면, 왠지 가슴이 아프다. 적막한 구도의 청색톤 역시, 외지고 쓸쓸한 삶의 그늘을 작품 속에 명징하게 투영하였다.
문성국의「春- 깨어나다」(90.9x65.1cm, oil on canvas, 2022」는, 겨울 흰 눈이 녹아 봄을 깨운 계곡물 소리가 음악처럼 들린다. 그의 ‘봄, 여름, 가을, 겨울’ 풍경은 사실화의 정점에 놓인 작품이다. 세잔에게 사생(寫生)은 추상으로 가는 과정이라면, 그에게 리얼리즘은 정묘한 대상을 주관화하는 작업이다. 대상의 어떤 부분은 버리고, 압축과 상상력을 통해 재구성된다.「秋- 물들다」(90.9x65.1cm, oil on canvas, 2022)는온갖 색채가 가을 단풍 속에서 감성처럼 번지고 있다. 색이야말로 사물의 감정이며, 시간의 말을 공간 속에 풀어놓는 알레고리allegory이다. 하여화가는, 지수화풍토(地水火風土)란 경이로운 음색을 버무려 사계의 조화음을 만든다. 하늘과 땅은 그 자체가 화경(花經)이며, 음양의 붓으로 천의무봉의 그림을 그린다. 특히,「귀로」(116.8×91.0cm, oil on canvas, 2012)는 현대인의 고독한 삶의 그늘을,시시각각으로 움직이는 색채의 변화를 통해 인상주의 화법으로 그려내고 있다. 눈에 보이는 색채를 통해 보이지 않는 정신을 동시에 드러내는 이 기법은, 세계의 정확성을 추구한다.
이교광의「마그리트에 대한 오마쥬1」(72.7 X 60.6 cm, 아크릴 채색, 혼합재료 2021) 시리즈는, 주관과 객관, 안과 밖, 현실과 초현실의 문제를 집요하게 물고 있다. 패러디parody가 이미 만들어진 작품의 내용이나 형식을 모방하되, 모방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새롭게 변주한 창조적 표현 기법이라면, 오마주hommage는 ‘영화에서 존경의 표시로 다른 작품의 주요 장면이나 대사를 인용’하는 프랑스어이다. 대상의 사실성과 전혀 다른 요소들을 작품 안에 배치하는 데페이즈망(dépaysement) 기법은, 이미지의 배반과 모순의 극치다. 작품「SEEING#3」(90.9 × 72.7cm, 아크릴 채색, 혼합재료 2024)은, 현대 미술의 한 장르인 팝아트를 통해 대중문화의 이미지를 적극 수용한다. 소비문화와 대량생산의 경계에 선 이 예술 사조는 신자유주의에 그 뿌리가 닿아 있다. 그의 작품의 특징은, 마그리트처럼 신비한 분위기와 고정관념을 작품 속에서 얼마나 깨고 싶어했는지를 모던하게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