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실 오디세이
박종현
파란시선 0166∣2025년 10월 30일 발간∣정가 12,000원∣B6(128×208㎜)∣113쪽
ISBN 979-11-94799-14-6 03810∣(주)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
•― 신간 소개
두려움이 자라면 뿔이 된다 뿔이 자라면 길이 된다
[밤실 오디세이]는 박종현 시인의 네 번째 신작 시집으로, 「밤실 오디세이―밤실」 「뿔」 「입동」 등 63편이 실려 있다.
박종현 시인은 경상남도 창녕에서 태어났으며, 1990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1992년 [현대문학] 추천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쇠똥끼리 모여 세상 따뜻하게 하는구나] [절정은 모두 하트 모양이다] [한글 날다] [밤실 오디세이], 명상수필집 [나를 버린 나를 찾아 떠난 여행 1, 2] 등을 썼다. 제2회 박재삼사천문학상, 제35회 경남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시는 그 시를 쓴 시인의 마음 경계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시를 쓴다는 것은 시인의 마음을 밝히는 일이며, 그 마음의 경계를 밝히는 것이라 하겠다. 하나의 마음이 사물을 만나 빛을 밝히고 그림자를 만든다. 하나의 달이 천 개의 강을 비추는 것처럼, 마음은 인간의 모든 경계에서 달처럼 비춘다.
시는 때로 세밀한 표현의 디테일도 중요하지만, 큰 그림도 그릴 줄 알아야 한다. 이번 박종현 시인의 시집 [밤실 오디세이]는 인생사의 희노애락(喜怒哀樂)과 생로병사(生老病死)를 베를 짜듯 직조해 놓고 있다. 고향에 대한 예찬이면서 동시에 삶에 대한 하나의 거대한 서사이다.
시는 배워서 아는 것이 아니라, 직관에 의해 성찰하는 것이다. 시인은 ‘삶/죽음’의 경계를 ‘걷다’라는 말로 표상하고 있다. 시인에게 걷지 못하는 것은 죽은 것이다. 그래서 “게도 사람도 자벌레도/해와 달, 별도 걸어서 하루를 건넌다/심지어 동백나무나 애기똥풀도 해를 등진 채/제 그림자가 가리키는 길을 따라 걷는다”. 그리하여 박종현 시인은 “걷는 이를 바라보는 일은 그가 남긴 그림자를 사랑한다는 뜻”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림자를 가진다는 것은 살아 있음이요, 사랑하는 표상이다. 그래서 “동백나무나 애기똥풀도 해를 등진 채/제 그림자가 가리키는 길을 따라 걷는다”. ‘삶-사랑’의 표상을 걷는 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고향집 뒤란에 선 늙은 회화나무 내가 먼 길을 나설 때마다/담 너머 긴 그림자를 드리워 내 걸음을 배웅해 주다가도/내가 쳐다보면 짐짓 돌아서서 딴청을 피운다”라고 읊고 있다. 이 회화나무 그림자의 걸음이 사랑으로 환치되자, 회화나무는 부모님과 같은 반열에 오르고, 시인은 “나를 키워 준 이가/또 한 분 계셨다”라고 성찰한다. 시인에게 고향의 회화나무는 ‘나’를 키운 분이다.(「밤실 오디세이―회화나무 그림자」) (이상 성선경 시인의 해설 중에서)
•― 추천사
[밤실 오디세이]에는 [오디세이]와 「도화원기」가 포개져 있다. 예컨대 「밤실 오디세이―얀테」에는 “나 돌아가리라/무릉도원 둥지 튼/밤실”, 이렇게 적시되어 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좀 이상하지 않은가. [오디세이]는 귀환의 서사다. 그리고 오디세우스는 우여곡절 끝에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 데 성공한다. 이에 비해 「도화원기」는 방문의 서사이며 안타깝게도 실패담이다. 즉 도화림(桃花林)을 잠시 다녀온 무릉의 어부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복숭아꽃들로 찬연한 숲 너머의 마을을 다시는 찾지 못한다. 이처럼 이타카와 도화림은 겹쳐질 수 없는 공간이며, 그 의미의 자장과 벡터는 다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박종현 시인은 이 두 곳을 ‘밤실’로 끌어당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까닭은 ‘밤실’이 과거 시인의 실제 고향이자 지금은 “마음속 지도” “세상 한가운데”이기 때문이다(「밤실 오디세이―밤실」). “세상 한가운데” 곧 시인의 내면 중심에 자리한 ‘밤실’의 중력은 이타카와 도화림의 시공간을 휘어 버릴 만큼 강력하다. 요컨대 ‘밤실’은 박종현 시인이 유년 시절을 보낸 고향이자 종국엔 돌아가길 희망하는 귀착지이지만 그곳은 영원히 닿을 수 없는 잃어버린 미래다. 그런데 박종현 시인의 이 낭만적 상실감은 고통(노스탤지어(nostalgia)의 한 축인 ‘알고스(algos)’ 혹은 「도화원기」 끄트머리에 적혀 있는 유자기가 앓는 ‘병(病)’) 속으로 휘말리지 않는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이에 대해서는 단박에 말할 수 있는 소이연이 있는데, 바로 시인의 ‘어머니’다. 이제는 하늘의 별이 된 시인의 ‘어머니’는 봄이면 “꽃다지” “그 노랑을 가꾸기 위해” “또 봄을 몰고 오”시는 분이며(「밤실 오디세이―봄을 몰고 오시는 어머니」), “살아생전” “시 한 편도 읽지 않았”지만 “아들의 시는 안 읽고도 다” 아시는 분이다(「밤실 오디세이―시 읽는 별」). 그러니 이렇게 말해도 되지 않을까. 바로 저 ‘어머니’가 이타카이자 무릉도원이며 ‘밤실’이라고, 그리고 다름 아닌 ‘시’라고 말이다. 따라서 박종현 시인의 시 쓰기는 그리고 그가 쓴 시는 ‘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오디세이일 수밖에. 다만 갸륵하다.
―채상우 시인
•― 시인의 말
애써 찾아낸 나에겐 내가 없었다
눈만 감으면 쉬 닿는
나를 낳아 준 자궁인 밤실
산과 들녘, 골목과 허물어진 담장 가장자리
내 허울 한 움큼이 그림자처럼 나타났다 스러졌다
다시 눈을 감는다
아직도 찾아 헤맨다
•― 저자 소개
박종현
경상남도 창녕에서 태어났다.
1990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1992년 [현대문학] 추천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쇠똥끼리 모여 세상 따뜻하게 하는구나] [절정은 모두 하트 모양이다] [한글 날다] [밤실 오디세이], 명상수필집 [나를 버린 나를 찾아 떠난 여행 1, 2] 등을 썼다.
제2회 박재삼사천문학상, 제35회 경남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 차례
시인의 말
제1부 밤실 오디세이 1
밤실 오디세이―밤실 ‒ 11
밤실 오디세이―고과살 ‒ 12
밤실 오디세이―부부 ‒ 13
밤실 오디세이―가위눌림 ‒ 14
밤실 오디세이―회화나무 그림자 ‒ 15
밤실 오디세이―나는 굴피집에 산다 ‒ 16
밤실 오디세이―천국행 ‒ 17
밤실 오디세이―오백 원짜리 ‒ 18
밤실 오디세이―누가 왔다 갔나 보다 ‒ 20
밤실 오디세이―송사리의 집 ‒ 21
밤실 오디세이―제비나물이 된 달개비 ‒ 22
밤실 오디세이―보름달 ‒ 23
제2부 밤실 오디세이 2
밤실 오디세이―당산제 ‒ 27
밤실 오디세이―시크릿 하우스 ‒ 28
밤실 오디세이―담뱃굴 모텔 ‒ 30
밤실 오디세이―살바르산 606호 ‒ 32
밤실 오디세이―쇠뜸부기사촌, 무논에서 울다 ‒ 34
밤실 오디세이―도둑댁 ‒ 36
밤실 오디세이―볼기짝에 반짝이는 똥별 ‒ 38
밤실 오디세이―고향집 ‒ 39
밤실 오디세이―시 읽는 별 ‒ 40
밤실 오디세이―장승 ‒ 42
밤실 오디세이―얀테 ‒ 43
밤실 오디세이―봄을 몰고 오시는 어머니 ‒ 44
제3부 섬이 된 바다
뿔 ‒ 47
다이어트하는 청바지 ‒ 48
보톡스 부작용 ‒ 50
코사지, 그녀의 등 뒤에 꽂고 싶다 ‒ 51
부처님 오신 날 ‒ 52
보온용이 아닌 보온병 ‒ 53
자유의 여신상 ‒ 54
이 대 팔 ‒ 56
섬이 된 바다 ‒ 57
염습 ‒ 58
구겨진 ‒ 60
삼지닥나무꽃 ‒ 62
붉은 ‒ 64
설사 ‒ 65
제4부 세렝게티 아빠
은행잎은 침엽수다 ‒ 69
세렝게티 아빠 ‒ 70
입동 ‒ 71
오디, 붉은머리오목눈이가 훔쳐보다 ‒ 72
티사강의 꽃 ‒ 73
늙은 등산화 ‒ 74
나는 더하기였다 ‒ 76
의자―명퇴하던 날 ‒ 77
나는 신이다 ‒ 78
인공호흡 ‒ 80
대퇴골두무혈성괴사 ‒ 81
고양이 키스 ‒ 82
대장내시경 ‒ 83
제5부 비토섬으로 간 여자
오도재―변강쇠의 후예 ‒ 87
첫사랑 ‒ 88
노안 ‒ 89
백반증 ‒ 90
비토섬으로 간 여자 ‒ 91
혹씨 ‒ 92
맹그로브 한 그루 ‒ 94
노루 ‒ 96
실로암 ‒ 97
주상절리 ‒ 98
마다가스카르섬 ‒ 99
환한 세상 하나 만나다 ‒ 100
해설 성선경 달과 천 개의 강 ‒ 101
•― 시집 속의 시 세 편
뿔
두려움이 자라면
뿔이 된다
겁이 많은 짐승일수록
길게 자라는 뿔
꽃사슴 큰 눈 가득 고인 공포가
불쑥 솟구쳐 휘어진 길 하나 낸다
뿔이 자라면 길이 된다 ■
입동
날마다 다니던 산길 모퉁이
떡갈나무 잎 하나 나를 따라오며
자꾸 말을 건다
가을이 깊으면 모두 외로워지나 보다
저도 나도 멈춰 서서 서로를 빤히 쳐다본다
내가 건네고자 하는 말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주름진 떡갈잎이 옷깃을 여미며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애써 참다
돌아서는 내 등 뒤에다
떡깔깔 떡깔깔 웃음을 터트린다
심심해하던 하늘마저 배꼽 잡고 웃는다
가을이 겨울에게
오솔길을 통째로 넘겨주는 순간이다 ■
밤실 오디세이
―회화나무 그림자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은 걷는다
게도 사람도 자벌레도
해와 달, 별도 걸어서 하루를 건넌다
심지어 동백나무나 애기똥풀도 해를 등진 채
제 그림자가 가리키는 길을 따라 걷는다
동백과 애기똥풀이 나눈 얘기들이 모여 꽃으로 핀다는 걸
함께 머물다 간 햇살과 바람은 알고 있다
걷는 이를 바라보는 일은 그가 남긴 그림자를 사랑한다는 뜻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는 먹감나무 낙과와 죽은 딱새는
걷지를 못한다 그림자가 없기 때문이다
고향집 뒤란에 선 늙은 회화나무 내가 먼 길을 나설 때마다
담 너머 긴 그림자를 드리워 내 걸음을 배웅해 주다가도
내가 쳐다보면 짐짓 돌아서서 딴청을 피운다
부모님 말고도 나를 키워 준 이가
또 한 분 계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