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보살의 본원>
붓다께서는 생사를 초월하는 것을 목표로 수행을 하셨다고 경전에서는 밝히고 있습니다.
인간의 생사 초월은 인간의 목표의 최종단계입니다. 그렇다고 진시황처럼 불사不死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닙니다. 초기 부파불교까지도 붓다는 아라한이고, 거기에 성문과 연각이
더해졌을 뿐입니다.
기원전 100~200년 전 초기 보살 개념이 등장했습니다. 보살의 모티브는 힌두의 여러
신이었지만, 좀 더 중생들과 친근한 구제와 원력을 보살의 정체성으로 발전시켰던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의 보살은 힌두의 신들과 달리 중생들 위에 ‘군림’하는 경우는 상상할 수 조차
없습니다.
붓다의 경우는 여러 생의 수행을 통해 현생에 ‘붓다’를 이룬 것이 라고 하며, 깨닫기 전의
수행 중인 붓다의 전신前身 삶을 보살이라고 지칭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붓다인
석가모니불을 왜 현재불이 아니라 ‘과거불’이라고 부르는지 의아합니다.)
보살의 개념은 확장되어 붓다를 이루기 전의 모든 수행자를 지칭 하거나, 중생을 위해 성불
成佛을 능동적으로 유예하는 각자覺者의 개념으로까지 발전하게 됩니다. 또한 초기 보살은
각각의 원願들이 분명합니다.
중생을 위해 ‘어떻게 하겠다’는 목표가 뚜렷했다는 것인데, 후대 로 갈수록 만능의 보살이
되어 버립니다. 게다가 불·보살이 거의 같은 원을 공유하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약사불과
약왕보살의 차이가 분명치 않게 되는 지경에 이릅니다.
오래 전에 불·보살의 서원誓願을 정리해 해설서를 내려고 준비한 적이 있습니다.
법장비구가 48가지 원을 세워 성취된 세계가 극락 정토이고, 약사불은 병고病苦 등으로
고통 받는 중생들을 구제하겠 다는 12대원이 있습니다. 천수경 끝의 여래 10대 발원은
실제로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한 일체의 부처가 일체의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발원인
것입니다.
이렇게 불·보살들의 각각의 원들을 모으려 자료를 수집하다 보니 문제가 생겼습니다.
경전에 밝힌 불·보살의 명확한 서원이, 실은 몇 불·보살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화엄경에 가장 빈번히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문수보살은 대지혜大智慧(대지문수), 보현보살은
대실행大實行(대행보현)으로 그저 한 가지만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물론 대지혜와 대실행이면
사실상 수행의 완성이긴 합니다.
하지만, 화엄경·법화경의 무수한 불·보살의 명호에 비하면 그 보살들의 원願, 즉 중생을 위한
회향은 상당 부분 겹치거나 내용 없는 이름만으로 존재하는 불·보살도 허다합니다. 다만,
화엄경 제36품 보현행원품은 독립된 경으로 인정받을 만큼 거룩한 내용이니 기회가 되면 한번
읽어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어쨌든 대승불교의 모든 불·보살의 복잡한 개념은 중생들이 느끼는 고통도 다르니 불·보살의
원력도 다르다, 그것을 불·보살의‘방편’이라는 말로 정리를 할 수 있습니다.
다행히도 우리에게는 인간으로서 궁극의 경지에 도달하셨던 실존 인물인 고타마 싯다르타
(붓다)가 있습니다. 인류의 정신적 진화의 마지막을 보여주셨다고 해도 되고, 종교적으로는
부정할 수 없는 깨달음의 실체를 증명해주신 ‘그분’이 있기에 방편方便을 방편이라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유명한 관음기도 도량이 많은 편입니다. 큰 불이 나서 거의 소실된 도량을
복원해야 했던 낙산사가 대표적입니다.
그런데 연인원으로 비교해 가장 많은 불자들이 몰리는 도량은 대구 팔공산 갓바위
불상입니다. 흔히 한 가지 소원을 이뤄준다고 소문이 난 약사여래불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통일신라 때 조성된 높이 4m에 달하는 이 불상의 본래 이름은 관봉석조여래좌상
冠峰石造如來坐像으로 머리에 관을 쓴 독특한 양식의 불상입니다. 이 돌로 된 관冠을 머리에
이고 있는 모습이 학사모學士帽를 연상시켜 특히 입시기도에 ‘기도빨 좋은’ 불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013년 한 방송에서는 갓바위에 기도하러 오는 연인원을 공개한 적이 있는데
무려 1년에 1,300만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