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개요
- 산행코스 : 양고살재-갈미봉-벽오봉-방장산-연좌봉-쓰리봉-시루봉-갓바위-입암산-분기점
- 산행일행 : 단독산행
- 산행거리 : 실제거리 21km, 하산거리 3km
- 산행일시 : 2024년 6월 26일(일) 08:40~19:35(10시간 55분)
★ 기록들
목포에서 첫 시외버스를 타고 고창문화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택시로 갈아탔다. 택시기사가 산객 여럿을 양고살재까지 태워준 얘기를 했다. 양고살재는 고창의 장수 박의가 청나라 맹장 양고리를 조총으로 쏘아죽인 것을 기념하기 위해 네이밍한 곳이다. 실제 박의는 양고리를 수원 인근에서 죽였지만 고창 사람들이 박의를 추앙하기 위해 아무 관계도 없는 고개에 이름을 갖다 붙였다. 8시 40분, 스틱을 펴고 가파른 방장산 오름길을 따라 갔다. 방장사에 들러 합장기도를 올리고 허름한 산신각 옆으로 희미하게 이어진 산길을 따라 올라가보니 정상적인 등산로와 마주하게 된다.
9시 30분 갈미봉에 도착한 후 포장된 도로를 넘어서자 두갈래 길로 나뉜다. 하나는 등산로, 또 하나는 산악오토바이용이다. 산악오토바이 매니아를 위한 배려다. 대개는 오토바이타고 산에 오는 것 자체를 금하고 있다. 벽오봉에 이르자 곧바로 억새봉이 환화게 열려있다. 사실상 벽오봉은 억새봉과 일봉이명인 셈이다. 활공장으로 사용되고 있어 고창읍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온갖 인증샷을 남기느라 여념이 없다. 길은 더할 나위없이 좋다. 이때까지만 해도 내장산 분기점까지 당연히 길은 편하게 이어질 줄 알았다.
<양고살재 - 전북 고창과 전남장수의 경계>
<방장사>
<왼쪽은 등산로, 오른쪽은 오토바이용>
<벽오봉 - 하필 거기다 모자를 걸쳐났다>
<고창읍내>
<모자를 벽오봉에 걸치고 턱걸이하는 아재>
<억새봉>
<따라오는 마루금>
10시 30분 방장산(734m)에 도착했다. 부부산객이 보이길래 인증사진을 부탁했다. 사실상 영산기맥 중 가장 높은 봉우리이자 주봉이다. 지리산, 무등산과 함께 호남의 삼신산이라 불리운다. 원래 이름은 방등산 또는 반등산이었지만 명나라를 떠받들던 조선 사대부들이 중국의 방장산을 닮았다는 이유로 이름을 방장산으로 고쳤다고 한다.
쓰리봉이 보이길래 부부산객이 왜 쓰리봉인지 아느냐고 묻는다. 봉우리가 원투쓰리네요. 웃자고 한 얘기지만 실은 써래봉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제일 유력하다고 한다. 실제로 세번째 봉우리라 쓰리봉으로 와전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문바위재를 거쳐 10시 46분 봉수대, 10시 53분 연좌봉 그리고 11시 5분 675.9봉으로 이어졌다. 그러고보니 봉우리가 세개가 아니고 네개다. 쓰리봉을 오르는데도 한번에 오를 수가 없다. 이 역시 서너번 오르내리막을 거쳐야 가능했다. 11시 43분 쓰리봉에 도착한 후 식사를 하기 위해 적당한 곳을 물색했다. 텐트 쳐도 될 정도의 넓은 공간이 보이길래 식단을 차렸다. 20여분간의 소박한 식사를 마치고 가파른 내리막을 따라 장성갈재에 안착했다. 전라북도 정읍과 전라남도 장성의 경계이기도 하다. 갈재는 노령의 우리말이다. 억새가 많아서 갈재라고 했지만 실제로 억새는 보이질 않는다. 옛날에도 그랬다. 그리고 장성갈재는 일제강점기 때 낸 길이고 실제 갈재는 조금 더 가야 있다.
<쓰리봉과 저멀리 갓바위가 보인다>
<쓰리봉에서 본 방장산과 지나온 산군>
<산성이 아니고 참호용 돌무더기>
<시루봉과 갓바위>
<시루봉과 입암저수지>
<장성갈재>
조국통일기념비를 뒤로 하고 마루금을 찾아들어가니 국립공원공단에서는 이곳에 샛길 금지안내표지판을 설치해 두었다. 영산기맥이 샛길이란 의미다. 공단에서 영산기맥 종주자를 잠재적인 범법자로 만들고 있었다. 목포시 등 지자체에서 영산기맥 탐방로로 지정해서 등산로를 정비하는 것과 달리 이 사람들의 하는 행태는 조금만 위험하거나 비용이 든다고 생각되면 샛길이라는 이유로 막아버리고 있다. 희미한 마루금을 따라 가는게 쉽지 않다. 대개는 조릿대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희미한 길이 분산되면서 끊기기를 반복했다. 옛 군벙커를 지나 갈재옛길에 도착한다. 한양에서 해남까지 이어지는 호남의 관문이었다고 하지만 두세명 지나갈 정도로 좁고 초라하다.
갈재옛길을 넘어서자 시루봉이 버티고 있었다. 사전에 이 봉우리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던 터라 일단 올라가보기로 했다(14시 20분). 리찌용 등산화도 아닌데 두려움 반, 걱정 반으로 나무를 부여잡고 10여미터 올라가보니 더 이상 올라갈 수가 없다. 다시 내려와서 한참을 우회하자 루트가 보인다. 이번에는 올라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10여미터를 올라갔지만 5~6m 남겨놓고 내려와야 했다. 가족들이 이곳에 와 있는 줄도 모르는데, 내가 추락사고라도 당한다면 감당할 수 없을 충격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내려와서 우회하다보니 제대로 된 등산로가 시루봉으로 이어졌다. 시루봉에 오르는 도중에 뒤를 돌아보니 실제 암봉을 오른다 한들 내려서는 것도 거의 불가능한, 그야말로 바윗덩어리였다. 어리석게 감행했으면 큰 일 날 수도 있었다. 1시간을 허비하고 15시 30분 시루봉 정상에 걸터앉아 허탈한 심정으로 500cc 맥주를 한번에 다 비웠다.
<버려진 벙커 내부>
<폐기된 벙커>
<갈재 옛길>
<시루봉을 올라가면서>
<1차 시루봉 암봉 리찌시도..포기>
<2차 암봉리찌 시도.. 결국 포기>
<갓바위가 가까이 보인다>
갓바위 가는 길도 만만치 않았다. 불가피하게 다시 샛길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고 1시간만에 갓바위에 도착했다. 갓바위의 한자말이 입암이기 때문에 내 생각에는 입암산을 이곳으로 하는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입암산으로 이어진 마루금은 대부분 산성을 따라가야 했다. 삼한시대 산성치곤 아직 성한 곳이 많을 것을 보니 오래 전에 보수를 한것으로 보인다. 651봉에서는 급하게 왼쪽으로 꺾으며 내려서야 했다. 산성따라 진행하다가 산길샘 어플을 확인하며 방향을 다시 잡은 곳이기도 한다. 핑계에 앉아서 사과와 남아있는 커피를 비우며 어떻게 귀가할지를 그려봤다(17:35).
마루금은 다시 탐방로로 내려서더니 100여미터 진행한 후 다시 비법정 산길로 들어서야 했다. 귀가를 서두르는 산객 두명을 만났다. 이 늦은 시간 어디로 향하냐고 물었다. 어두워지기 전에 영산기맥 마무리해야 하기에 급하게 그들과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18:10). 19시에 입암산에 도착했지만 정상석도 산패도 보이질 않는다. 눈 앞에 통신탑이 보이는 곳이 분기점이지만 쉽게 길을 내어주진 않았다. 조릿대를 헤치며 올라가는 길보다는 가파른 암릉구간이 더 나을 정도다. 빽빽한 조릿대가 진을 빼게 만들었다. 19시 37분 누군가 영산기맥 분기점이라고 써 붙인 코팅지를 확인하며 분기점에 도착했음을 인지할 수 있었다. 호남정맥에서 갈래친 영산기맥 157km를 덤덤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입암산성 가는 길에 흔하게 보이는 기왓장 파편>
<입암산에서 바라보는 분기점과 호남정맥>
<분기점>
지금부터는 어두워지는 산길을 따라 하산해야 하는 미션이 남아있다. 원래 계획은 신선봉으로 가서 내장사로 하산하려고 했지만 예상보다 두시간이나 늦게 도착하면서 계획을 수정해야 했다. 네이버 지도를 켜고 정읍시 신정동에 위치한 서당제 저수지로 하산방향을 잡았다. 제발 하산길이 뚜렷하길 염원하면서 한발자욱씩 내려서기 시작했다. 다행히 길은 희미하지만 저수지까지 내려오는데는 지장이 없었다. 이주암지 저수지 안쪽에 도착한 후에는 마른 물가를 따라 둑까지 이동했다. 무언지 모를 큰 동물들이 내 등장에 놀랐는지 물속으로 소리를 내며 들어갔다. 수달인가? 도로에 들어서자 완전히 어둠에 잠겼지만 안도할 수 있었다. 1km 정도 더 걸어가자 골프장을 빠져 나오는 택시가 보였다. 옷을 갈아입지도 못한채 택시를 타고 21시 정각 정읍역에 도착했다. 인근 식당에서 육개장을 주문하여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자 음식이 나왔다. 꽉찬 하루가 숨가쁘게 흘러갔다.
★ 에필로그
4월 10일 국회의원 총선 날 발을 들여놓은 것이 영산기맥의 시작이다. 그동안 2010년 이후 두번의 지맥산행을 하다가 그만 뒀지만 이 영산기맥이 세번째 산줄기 산행을 하게 된 모티브가 되었다. 몰아치기일 수도 있지만 물들어올 때 노저어야 한다는 말처럼 내 마음이 산줄기로 강하게 향할 때 몰아쳐서 하는게 낫다. 한 여름이라 내 몸에 남아있는 세 곳의 진드기 상흔 때문에 또다시 물릴까봐 신경 쓰이지만 이 또한 넘어야 할 시련이다. 마라톤 대회와 병행하면서 산줄기를 찾아나서야 하는데 풀코스 230회와 100km 이상 울트라마라톤 32회면 뛸만큼 뛰었다. 이제는 산줄기에 조금 더 에너지를 쏟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한여름과 한겨울은 마라톤대회가 없기 때문에 산줄기에 전념할 수 있어 좋다.
157km 산줄기를 넘어오면서 산인지 들판인지 애매한 곳을 지나가기도 했다. 무안과 함평이 특히 그랬다. 방장산과 같은 명산도 만나고 좋은 사람도 만나 따뜻한 호남의 인심을 느끼기도 했다. 7월엔 땅끝으로 갈 것이다. 무사하게 이어지길 염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