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간 교회개혁에 관심을 가지면서 교회 분쟁이 있는 곳을 주의 깊게 관찰하였습니다. 때로는 직접 분쟁 당사자들을 만나기도 하고 통신수단을 통해 접촉을 하기도 했습니다. 한결 같이 분쟁 중심에 있는 분들은 교회내 갈등이 다급하였고 처절하였습니다. 이런 마음만큼이나 이들은 가등이 서로에게 상처를 남기지 않고 원만하게 해결될 수 있는 길이 없을까 여기 저기 도움을 구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이들은 노회와 총회를 찾게되지만 노회와 총회는 적어도 열에 아홉은 갈등을 봉합하고 치료하기보다는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고 악화시키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결국 이런 이유로 찾는 곳이 교회개혁 단체들입니다. 교회 갈등에 관여해 온 교회개혁단체들이 많이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 교회개혁 단체들은 목사들 중심으로 결성되어 있습니다.
교회개혁을 하는데도 비용이 들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든든한 교회를 후원으로 두고 있는 목사들이 이런 운동을 하는 것이 보다 쉬울 것입니다. 대신 목사들 중심의 교회 개혁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환경의 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목사를 우선시 하는 교권주의, 지금까지 받아왔던 신학교육의 틀, 선배 목사들 통해 배운 도제교육의 영향, 총회와 노회 그리고 교회헌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대부분의 교회 갈등이 목사들의 부패와 이에 대한 교인들의 갈등에서 비롯된다는 것에 비추어 이들이 객관성있게 교인들의 편에 서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죄과가 목사에게 확실하게 있다고 판단되지 않을 경우 소극적으로 응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일반교인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교회개혁 단체들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보면 목사들의 눈치보지 않고 하고 싶은 말 할 수 있는 곳을 찾으려는 사람들의 자발적인 참여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하는게 더 정확한 해석일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그 속에는 목사들이 나눌 수 없는 파격적인 내용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몇 년 전 모 개혁카페에서 일천번제 폐지운동을 할 때 저는 왜 그런 지엽적인 문제만을 다루는지 의아했습니다. 실제 한국교회의 병폐는 헌금에서 나오고 헌금의 핵심을 십일조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십일조 폐지를 위한 운동을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당시 십일조 폐지를 논하는 것 자체가 이단시 여겨지던 때였으므로 아무리 개혁적인 사람일지라도 거부감을 가질만 했습니다.
십일조 논쟁에서 십일조의 의미가 현재 한국교회에서 잘 못 해석되고 있다는 글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감사하게도 다른 분들도 십일조에 관한 성경적 해석들과 역사성 등에 관한 글들을 퍼나르고 쓰기 시작하여 이제는 십일조는 한국교회에서만 기형적으로 강조하는 맘몬 신앙임을 많은 분들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의 모든 헌금 제도가 맘몬이즘적입니다. 그렇지만 다른 헌금을 사실 교회 재정의 일부분만을 차지합니다. 주로 십일조가 대부분이므로 한국교회의 맘몬을 타파하는데는 십일조를 성경적으로 거부하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입니다. 이런 시각의 변화가 결국 개혁에 대한 마인드를 운동으로 승화시킨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금 교회 여기 저기에서 갈등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갈등의 현장에 교회 개혁단체들이 직간접적으로 개입하고 있습니다. 교회 갈등이 일어나면 대부분 교인들은 감정적으로 고조되어 있습니다. 이 때 작은 것 하나라도 더 해지면 폭발할 것입니다. 갈등속에 들어간 개혁 단체가 오히려 이런 감정을 자극하여 갈등을 폭발시키는 것을 봅니다.
거의 이전투구가 일어납니다. 그 과정에서 갈등 당사자들끼리 감정적인 골이 파이고 상처가 깊어져 결국은 갈등이 해결되고 나서도 교회를 떠나거나 교회 자체가 갈라지는 일들이 대부분입니다.
최근에 진행중인 교회 갈등을 관찰하며 교훈을 얻습니다. 광주중앙교회, 분당중앙교회, 강북제일교회, 목동제자교회의 분쟁을 보면 교회 갈등이 있을 때 어떻게 나아가야 할 것인지 그 길이 조금이나마 보이는 것 같습니다. 광주중앙교회는 서로가 아무런 배려 없이 마주 보고 달리는 기차와 같이 서로 감정적인 대립을 했습니다.
분당중앙교회는 처음에는 비교적 차분하게 갈등을 해결해 나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목사를 지지하는 카페가 만들어지면서 감정적인 자극과 노회의 불필요한 개입으로 갈등이 증폭되었습니다. 개혁을 바라는 사람들이 되도록 감정을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고는 있지만 이미 서로간에 명예훼손 소송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다행히 법원에서 교회 재정장부를 공개하도록 판결되어 지금부터는 그 결과에 따라 사회법으로 진행될 가능성은 높지만 목사 지지파와 개혁파간의 갈등의 골은 깊어진 상태입니다.
강북제일교회는 아직까지는 차분하게 진행되고 있은 것으로 보입니다. 목사 지지파와 안수집사회가 갈등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목사 지지파의 목소리가 다시 커질 경우 언제든지 갈등은 악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목동제자교회는 참 모범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개혁파에서 최대한 감정을 자제하고 언어건 행동이건 비 폭력적으로 법의 테두리 내에서 목사의 부패성을 드러내었습니다. 법은 정목사의 불법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었고 목사를 지지하며 옹호하였던 다수의 사람들이 지금을 서서히 목사 곁을 떠나고 있습니다. 최근 재판과정에서 정목사의 우팔이라고 여겨졌던 사람들이 결정적으로 정목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였고 오히려 정목사에게 횡령한 공금을 교회에 돌려 놓으라는 내용증명까지 보내고 있습니다.
이들은 개혁파들과 대척관계에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지금은 개혁파의 끈질긴 인내와 정의로운 싸움 앞에서 스스로 무너진 꼴이 되었습니다. 혈기가 왕성한 젊은 형제들이 예배시간에 예배를 방해하는 일이 있어도 개혁파들은 이 형제들을 오히려 자제시키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금은 정목사 곁에 있는 부목사들도 정목사를 떠나려 한다는 소식까지 들립니다.
개혁을 주장하는 사람은 싸움꾼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감정을 먼저 앞세워 인격을 모독하여 갈등의 골을 만드는 게 개혁이 아닙니다. 부패성을 드러내고 어떤 것이 개혁되어야 할 것인지 찾아내어 그것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게 하는 일,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 다른 형제들이 갈등으로 고통 받고 있을 때 서로 돕는게 개혁인이 해야 할 일입니다.
갈등이 끝나면 모두가 지쳐 그 곳에 함몰되어서는 개혁이 운동으로 승화될 수 없습니다. 갈등을 통해 오히려 힘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통해 개교회 중심에서 벗어나 다른 형제 교회들에게도 힘을 나누는 것이 개혁을 운동으로 승화시키는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갈등을 지혜롭게 해결한 교회가 오프라인이건 온라인이건 서로 연합하여 갈등이 일어난 교회를 도와 슬기롭게 해결할 수 있는 조언과 도움을 아끼지 않는 마음들이 모아졌으면 합니다. 이것이 교회내 갈등을 허용하신 하나님의 뜻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첫댓글 참 많은 걸 생각해 보게 되네요.
정제된 글.
개혁은 잘못을 고치고 불의한 자들과 싸움이 되니
교회법 안에서 선한 싸움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참된 교회로 만들기는 어렵다고 본다.
애초에 잘못된 카톨릭에서 개혁하여 나온 개혁교회가
성경으로 돌아가지 못하여 실패작임이 드러났다.
지금은 도덕적으로 오히려 카톨릭보다도 더 나쁜 기독교 종교가 아닌가?
참된 교회는 초대교회 때부터 하나님이 감추시고 계시니
그 교회를 찾아 만나야 한다고 간곡히
알리는 바이다.
내 교회를 세우리니,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는
주님이,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계시는가?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닌가?
할렐루야! 교회개혁을 하나님의 법과 하나님이 인정하는 나라법에 의지하여 감정에 호소하지않고 차분한 심정으로 모든것이 합략하여 선을 이룰수있는 길을 모색할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