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숟가락
김효연
파란시선 0167∣2025년 10월 30일 발간∣정가 12,000원∣B6(128×208㎜)∣145쪽∣ISBN 979-11-94799-15-3 03810∣(주)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
•― 신간 소개
우린 믿어요 당신과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 것처럼
[꽃과 숟가락]은 김효연 시인의 세 번째 신작 시집으로, 「꽃과 숟가락」 「지역 뉴스」 「나의 미성년」 등 59편이 실려 있다.
김효연 시인은 2006년 [시와 반시]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구름의 진보적 성향] [무서운 이순 씨] [꽃과 숟가락]을 썼다.
김효연의 시는 부조리한 세계를 냉소로 대응하지만 결코 현실을 회피하거나 좌절을 말하지 않는다. 권력의 폭력을 거부하고 여리고 약한 이들과 공감하며 소수자를 옹호한다. 그녀의 시적 변증법은 냉소의 태도를 냉소주의로 기울게 하지 않으며 슬픔을 절망의 나락으로 빠트리지 않는다. 존재의 울음을 웃음으로 상승하는 기운을 지녔다. 그만큼 의지적인데 「간극」처럼 여자의 울음이 종내 웃음으로 나타나며, 「비등점에 서다」의 경쾌한 활력과 「쿡, 쿡쿡」의 유쾌한 유머 그리고 「축, 합격」과 「종편」의 풍자도 같은 맥락을 지닌다. 실존의 감각인 슬픔을 명랑으로 끌어올린다. 김효연의 시는 밥과 일과 함께하면서 생의 명랑한 슬픔으로 피어나고 있다. “속이 꽉 찬 양털구름/더는 떠돌고 싶지 않아/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비행접시 타고 몰래몰래 내려와/다 같이 터 잡고 벙글어/조잘대는/수다들”(「수국입니다」). 시인은 여전히 할 말이 많다. “놓치고 깨지는 박자와 리듬”을 거머잡아야 하는 단독자의 숙명이 있다(「이 모든 것은 금붕어」). (이상 구모룡 문학평론가의 해설 중에서)
•― 추천사
시인의 미학적 관점(‘꽃’)과 일상인이 늘 맞닥뜨리는 현실적인 삶(‘숟가락’)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김효연의 시는 태어난다. 해체된 공동체에 관한 분노, 성찰, 전망이 김효연이 지향하는 시 세계이고 이는 시집 [무서운 이순 씨]에서부터 일관된 시적 개성이다. 극단적으로 양극화된 빈부격차 사회의 시스템 앞에서 “저 거대한 철벽을 어떻게 베고 자를 수 있”을까 의심하며 절망하지만(「지역 뉴스」) “거침없이 공을 날리며 웃고 떠들었을” “광장”, “쌍욕과 삿대질이 귀를 들쑤시는 그곳” “시끌벅적한 선술집으로 가야” 하는 체질은 생래적인 듯하다(「소주병」). 그 “광장”에서 불려 나와야 할 이름들은 “국적을 잃은 입”을(「관계의 예의」) “흑룡강”에 떠내려 보낸 탈북민 ‘아이’와(「닭발」) “석 달 동안 비닐하우스에서 깻잎만 따다가/눈에서 코에서 들깨 순이 파릇 돋아”난 캄보디아 소녀와(「동생이 나타났다」) “임대아파트”에 사는 ‘아이’들과(「강남은 따뜻한가요」) “35m 크레인에 오르”는 “37년” 근속 근로자들이다(「미쳐야 미친다」). 그들은 내 이웃이자 나의 아버지, 누이, 친척들이지만 또한 우리가 애써 지나쳐 버린 이름들에 다름 아니다. 그러니 “밤새 말을 긷느라 입안이 다 헐어 거무튀튀 떨어진 입술”을 가진 시인의 자의식은 ‘내’가 쓴 한 줄, 한 편의 시가 “노래일까 울음일까”라고 시니컬한 어조로 묻지 않을 수 없다(「꽃과 숟가락」). “허공에 걸린 현수막이 달려와 따귀를 철썩” 치는 일상을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시인의 관점과(「지역 뉴스」) “신분과 계급장을 벗겨” 낸 사람들이 “한 방에서 다른 형을” 사는 요양병원의 고통을 목격하고 감내해야 하는 일상인의 시각은(「모텔 수도원 감옥」) 늘 대립과 동조를 반복한다. 이런 과정에서 태어난 풍자와 반성(“책을 먹고 밥을 읽는다고 비웃어 주세요”, “도서관이 떠내려가고 시장이 뛰어도 밥은 싹싹 바닥이 훤하도록 읽지요”, 「우리의 증거」)은 지금, 여기에서 시인이 존재해야 할 위치가 어디인지를 묻는 김효연의 시가 가진 흔치 않은 개성과 미덕이라 생각한다.
―김형술 시인
•― 시인의 말
비 오는 경주
초록 보를 두른 무덤들
꿈틀대는 저 죽음들은 전갈처럼 불친절하고
능과 능 사이
경계를 지우는 푸른 안개
삶이든 죽음이든 먼저 하는 것은
앞서가는 것이다
•― 저자 소개
김효연
2006년 [시와 반시]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구름의 진보적 성향] [무서운 이순 씨] [꽃과 숟가락]을 썼다.
•― 차례
시인의 말
제1부
꽃과 숟가락 ‒ 11
소주병 ‒ 12
애벌레가 두 번째 ‒ 14
돌고레스 엔카르나시온 델 산티시모 사크라멘토 에스투피냔 오타발로 야화 ‒ 16
뒤끝 ‒ 18
나무랄 데 없는 ‒ 20
지역 뉴스 ‒ 22
관계의 예의 ‒ 24
잔인한 위로 ‒ 26
비활성 폭탄 ‒ 28
간극 ‒ 30
보사노바 혹 카사노바 ‒ 32
가시 돋친 봄 ‒ 34
동상이몽 ‒ 36
비타500 ‒ 38
제2부
동생이 나타났다 ‒ 41
오른손의 가수면 ‒ 44
모텔 수도원 감옥 ‒ 46
나의 미성년 ‒ 48
위대한 요플레 ‒ 50
이전의 세계 ‒ 52
우리의 북두칠성 ‒ 54
메토이소노 ‒ 56
압생트 ‒ 58
출처 ‒ 60
쿡, 쿡쿡 ‒ 62
용봉탕 ‒ 64
수국입니다 ‒ 65
축, 합격 ‒ 66
제3부
종편 ‒ 69
그들의 독서 ‒ 70
날아라 바퀴 ‒ 72
상냥한 월말 ‒ 74
비등점에 서다 ‒ 76
도배 J ‒ 78
날뛰는 마법 주머니 ‒ 80
피노키오를 낳았어 ‒ 82
나는 가정합니다 ‒ 84
상투를 올리자 ‒ 86
알리바이 연인 ‒ 88
안 씨 할머니 ‒ 90
삿뽀르 참치식당 말인가 ‒ 92
이 모든 것은 금붕어 ‒ 94
꼬리 보호구역 ‒ 96
제4부
북어 사람 ‒ 101
배틀 ‒ 102
불안한 추천 ‒ 104
닭발 ‒ 106
아담과 루루 ‒ 108
가정통신문 ‒ 110
강남은 따뜻한가요 ‒ 112
크라우드 펀딩 ‒ 114
이쑤시개가 슬프지 않다 ‒ 116
사이다 ‒ 118
흑백 한식(寒食) ‒ 120
2017년 5월 8일 ‒ 122
미쳐야 미친다 ‒ 124
우리의 증거 ‒ 126
happy new year ‒ 128
해설 구모룡 냉소와 명랑한 슬픔 ‒ 130
•― 시집 속의 시 세 편
꽃과 숟가락
주먹만 한 저건 강렬(剛烈)한 주먹이 아니다. 주먹은 순간에 활짝 필 수 있다. 빨강 노랑 강렬(强烈)하게 오므리고 있는 저건 입이 아니다. 입이 벌어지면 금방이다. 밤새 말을 긷느라 입안이 다 헐어 거무튀튀 떨어진 입술은 튤립이 아니다. 주먹을 펴거나 입이 벌어질 때는 노래일까 울음일까. 숟가락만 한 저건 입이다. 목젖이 닳도록 꿀을 짜낸다. 입과 숟가락은 연인이다. 오슬오슬 조마조마 다투어 피어나는 새포름한 입, 잎들 ■
지역 뉴스
유채꽃 축제가 벌어지는 공원에선 손가락이 찰칵 브이가 찰칵 꽃 무더기 사람 무더기
큰길 옆에서 우렁차고 확신 담긴 투쟁가
‘죽을 수는 있어도 비워 줄 수는 없다’는 붉은 글씨
부엌칼 가위 아님 짜장면 같은 걸쭉한 입만 가진 사람들
저 거대한 철벽을 어떻게 베고 자를 수 있어 허접한 사생활 다 까발리며 독 올라 대들고 있는지
이제 저들은 평범한 주민이 아니고 축제 함께할 이웃도 아니다 이념이나 구호만큼 단단해지려 웃음 모두 삼켜 버렸다 아무리 핏대 올려도 보잘것없는 가게들 결국 텅텅 지워지고 말 텐데
봐, 고개 올려 쳐다봐 높이 볼수록 뭐 죽는 게 별거라고
국밥집 아주머니와 미장원 이모 치킨집 삼촌이 달려들어 내 머리카락을 쥐어뜯는다 해도 결코 별것은 아니야 그런 죽음은 그냥 흔해서 귀하지도 않으니까 순간 허공에 걸린 현수막이 달려와 따귀를 철썩
보잘것없는 것들이 뭉치면 확성기가 되고 투쟁 조끼가 되어 주머니마다 신념이 담긴다
행상 트럭 위 오렌지 사과도 일렬횡대 한 치 흐트러짐 없다 ■
나의 미성년
한마디로 엿 같은
엿가락에 끈적끈적 달라붙는 쥐새끼
창문 틈새나 술병에 가학적으로 쑤셔 넣는 담배꽁초
습한 지하방에서 불결한 바늘로 수놓은 화려하고 거친 문신
퀵 서비스로 애인을 모시는 오토바이
나날이 삐딱해지는 베개
할머니 쌀통 냉장고를 파고 뒤지는 넝쿨손
지평선을 줄넘기하며 튀기는 화성 언어
발랑 까뒤집힌 시꺼먼 개털
영혼의 순수를 갈아 넣는 게임방
거침없이 회전하고 상승하는 칼
인생에 절대 없을 기숙사 담장
내일까지 물고 있는 다이너마이트
날마다 상영되는 마술쇼
때가 둥둥 떠다녀도 흘러넘쳐선 다치는 욕조
타자마자 나가라 울어 대는 엘리베이터
죽기 살기로 여닫는 금지된 장난
엄마 아빠 열쇠를 노리는 복면
뒷면은 없고 오직 나아가는 정면
그래서 헌법과 공장이 돌아가고
뒷골목에선 팡파르의 계보가 울리며
금 간 창문은 악을 쓰며 울어 재낀다
지루한 머리통에 누리끼리한 오줌 발사
가래침에 딱성냥을 그어 대는
그러니까 시들어 가는 지구를 살리고 있는 나의 미성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