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의 마장을 경계하라>
미국의 한 시립병원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한 시립병원은 행려병자를 주로 돌보며 연고가
없는 중환자들도 치료를 맡고 있는데, 자연히 호스피스 병원 역할도 하게 되었습니다. 병원
직원이 병원 동의 하에 입양한 한 마리의 유기견은 의사, 간호사는 물론 환자들에게까지 서로
좋은 친구 사이로 지내게 되었습니다.
이 병원은 연고가 없는 노인 환자가 많아, 어떤 때는 한 달에 몇 번씩 직원들이 환자의
마지막을 지켜 보기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곳의 간호사가 우연히, 개가 문을
발로 긁고 안으로 들어 가고 싶어 하는 병실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더군다나 개가
그 병실에서 환자와 각별한 애정을 나눈 후 2~3일 안에 그 환자는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도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병원에서는 이런 개의 행동이 환자의 죽음과 연관이 있는지를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놀랍게도 개가 밤을 같이 지내고 난 환자는 모두 수일 내에 사망하니 참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병원에서 일어나는 일이니 의사들이 인과因果를 밝히려는 의학적 노력을 다했습니다.
(인과는 이런 경우 사용할 수 있는 가장 명확한 언어입니다.)
그럼에도 인과관계를 밝히지 못하자 병원 관계자는 동물과 생각을 교환하는 신비한 능력이
있다는 여자를 데리고 와 개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물론 여자가 그 개와 눈빛을 마주치긴 해도,
그 개의 마음을 전한 것은 그 여자였습니다. 개가 전하는 말은 “나는 사람을 사랑해요. 사람이
죽어가는 게 너무 안타까워 조금이라도 같이 있고 위로해 주고 싶어서 그런 행동을 합니다”
였습니다.
이번에는 같은 이유를 밝히기 위해 개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 보았습니다.
개 전문가는 그 놈이 병원에 온 이후의 행동 변화에 대해 직원들에게 상세히 물어보았습니다.
한 직원의 말이 개가 병원에 입양된 지 얼마 지 않아 주변 분위기에 낯설어 할 때, 한 병실의
환자가 그 개를 유난히 사랑해 주었다고 합니다. 개도 어느 날은 침대 위로 올라가 환자의
머리맡에서 같이 잠도 자고 할 정도로 서로 교감이 잘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환자가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개는 같이 자줄 친구를 잃은 것입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개는 매일 불특정하게 병실의 문을 열어달라고 병실 문을 긁고 그 병실의
환자와 밤을 같이 지내는 일이 시작되었는데, 희한하게 그 개가 선택한 방의 환자는 예외 없이
죽는 상황이 반복된 것입니다. 이쯤 되면 사람들은 신비스런 결론에 빠질 충분한 준비를
스스로 하고 있게 됩니다.
사실은 이렇습니다. 이 개는 처음으로 가까이 지냈던 환자가 죽음을 맞는 며칠 동안,
환자에게서 나는 특이한 냄새를 맡은 것입니다. 점차 몸의 기능이 극도로 저하되어서 나오는
질소, 암모니아 같이 평상시에는 잘 나지 않는 냄새를 포착한 것입니다.
개 코의 능력은 인간보다 최소 100만 배 이상이니, 인간이 알아챌 수 없는 아주 미세한
냄새까지 분별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병원의 이 개는 첫 죽음을 맞은 환자의 임종을 앞두고
발산되는 체취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환자에게 유사한 냄새가
나면, 바로 그 병실 앞에서 문을 열어달라고 의사표시를 한 것입니다.
실제 개들의 이런 능력을 활용하려고 의학계에서 연구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특정
암세포의 경우 특정 냄새를 내뿜는데, 냄새를 일으키는 분자 수가 너무 적어 개를 이용해
실험을 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간질환자의 경우 발작 수분 전에 손바닥에 특정 냄새가
나는 전조증상이 나타난다 합니다. 그래서 개를 훈련시켜 간질환자가 외출시 동반하도록
하고, 개가 환자의 손바닥을 세차게 핥으면 발작 예고 3분 전이라는 경고를 받는 것이
된다합니다.
환자는 즉시 쓰러져도 비교적 안전한 곳으로 움직일 시간은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건널목을 건너다 간질로 쓰러지는 것과 인도의 벤치에서 발작을 당하는 것은
생명과 직결될 수도 있습니다.
더욱이 그 환자가 시각장애자일 경우에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우연히 보게 된 KBS 동물의 왕국에서 방영된 내용입니다.
이 정도 사례 수준으로는 신비주의로 흘러도 당사자의 인생 방향이 바뀐다고까지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풀잠자리 알을 우담바라’로, ‘불상이 땀을 흘려 길흉을 예고한다’는 등
이런 것에서 시작해, 종교와 결부만 되면 일단은 무조건 ‘신비주의’로 몰아야 직성이
풀리는 집단이라면, 종교는 그들에게 안온과 지혜를 주는 것이 아니라 집착과 맹신으로
인간의 보편적 지성마저 빼앗아 버리는 꼴이 되는 것입니다.
한창 수행할 때인 30대 중반에 먹고 싶은 반찬을 생각하면, 저녁 공양 공양주가 그 반찬을
내놓는 ‘우연’이 거의 20일 동안 반복 되었습니다. 며칠은 으쓱하며 신기했으나 이 우연이
계속되자 덜컥‘아, 내가 수행의 마장에 걸렸구나!’라는 겁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 신비한 마장에서 벗어나야 된다는 기도를 따로 했습니다. 한 일주일을 밤낮으로
정진하니 그제야 저녁 반찬을 맞출 수 없게 되더군요. 그때의 시원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승가에서는 ‘수행의 마장’이라는 말을 들어보는 것조차 어려운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