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렴 사연(수기) 공모전
제목 : 나눔, 봉사, 은혜로 이어온 30년
제출자 : 김 명 한
소속 : 대구광역시 상수도 사업본부 고산정수사업소
1. 섬마을 초등학교에서 온 편지
연필로 또박또박 쓴 섬마을 초등학교에서 온 편지를 읽으며 학생들과 함께한 2박3일 간의 여정이 주마등같이 스치며 잔잔한 감동이 일어 감상에 젖어본다.
2016년 3월 28일부터 31일 까지 대구의 문화 탐방과 경주의 역사 유적지 답사 체험이 끝난 후 섬마을로 돌아가 고마움을 전하는 편지가 왔다. 1996년 김향선 학생의 편지가 특히 생각난다. 아저씨의 초대로 첨성대, 불국사, 석굴암, 대릉원, 박물관 등을 구경하고 아저씨 집에서 삼일을 머물며 사모님이 해주신 맛있는 식사와 따뜻한 친절이 너무 고마웠어요. 바다에 갇혀 섬에서 살다 아저씨 덕분에 좋은 구경 했습니다. 가는 곳마다 일일이 설명해 주시고, 사진도 찍어 주시고 아빠처럼 친절을 베풀어 주신 고마움 잊지 않고 저도 자라서 아저씨처럼 훌륭한 일을 한다하네요. 또 우방랜드에서 돈을 잃어 버려 울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울고 있길 래 선물사라고 10,000원을 준 생각이 나는데 잊지 않고 고마움을 표시한 편지가 생각난다. 어떤 학생은 돈이 많은 사람이 하는 줄 알았는데 생각과 달라서 놀랍다고 한 학생도 있었다. 30년 동안 31회째 매년 빠지지 않고 섬마을 소규모 학교 학생들을 대구 문화탐방과 경주 유적지를 돌아 볼 수 있게 하여 낙도어린이 들에게 꿈을 키워주기 위함이다.
1. 월일 거름회의 모태
1985년 5월 1일 대구시 위생처리관리소를 시작으로, 대구시청, 대구상수도 사업본부 고산정수사업소를 거치면서 공무원의 길을 걷게 된 오늘날 까지 공무원으로서 스스로가 느끼고 생각하는 청렴결백한 공무원이 되고자 애써왔다. 천성적으로 근검절약을 지녀온 나는 군대 3년을‘인생의 축소판’이란 말이 있듯이 군대에서 받은 월급을 쓰지 않고 적금으로 마련한 15만원을 찾아 이승복 어린이 유적지 건립에 기부하였습니다. 성금을 내고 나니 군 생활이 보람차고 긍지가 생겨 앞으로 사회생활을 하면 조금이나마 사회에 환원해야겠다는 다짐이 오늘의 나의 공무원 생활의 밑거름이 된 것 같다. 항상 염원했던 공무원의 첫발을 대구 위생처리관리소에서 시작하였습니다. 아침 회의는 커피로 시작 하는데 구내식당에서 월말 계산으로 한 외상 커피 값이 18만원 정도였습니다. 커피 담당 을 제가 청하여 커피 잔, 커피, 프림, 설탕 등을 사서 여름에는 냉커피도 한잔씩하며 돈도 절약되고 기금도 마련하여 연말에 형편이 어려운 직원과, 일용직 아주머니에게 매년 10만원씩 20만원을 성금으로 주었습니다. 또 동료직원 들의 도움과 협조로 2년 정도 적립하여 중풍에 걸려 몸이 불편한 경비 직원과, 1년 후 아들과 단둘이 어렵게 사시던 직원에게 직원들의 십시일반과 커피 적립금으로 각각 150만원씩 300만원을 드렸다. ‘베풂과 봉사는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한다’ 는 걸 깨달았습니다. 공무원으로서의 자긍심도 생겼습니다. 제 공무원 생활의 이 작은 활동이 평생 베풂과 나눔으로 봉사를 일구어 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 어린이 재단과 만남
공무원 초기에 도시락을 싸서 다녔는데 매월 1일 급식비로 1만원이 나왔습니다. 점심은 도시락으로 해결하였기에 어린이 재단에 성금으로 7,000원을 내니 초등학생과 결연이 되었습니다. 학생의 어머님은 생선 노점을 하셨고 아버님은 관절염으로 일을 하시지 못하여서 집안이 무척 어려웠습니다. 학생과는 명절, 생일, 크리스마스, 어린이날에 만나서 이야기와 선물로 용기를 주었고 새 학기 때는 가방과 학용품 등을 사주면서 격려해 주었습니다. 1년 후 한명을 더 후원하였고 3명까지 후원하게 되면서, 안목을 넓혀 우간다 어린이까지 후원 하게 되어 2010년에는 사랑의 리퀘스트 특집에 출연도 하였습니다. 공무원의 길속에서 차츰 나눔과 봉사로 눈을 돌리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 월일거름회 활동
제가 근무하고 있던 사업소에서 전 직원이 1987년 10월에 산행을 가게 되었습니다. 산중턱에서 너무 힘들어 휴식을 취하는데 소장님도 숨을 몰아쉬면서 오셔서 평소에 의견을 나누었던 월일거름회(한 달에 하루는 좋은 일을 하자)에 대하여 말씀 나누었는데 11월 17일 5,000원의 회비를 주시면서 격려해 주셔서 그 용기로 지금까지 행사를 이어 오게 되었으며 제가 공무원을 마치는 날 까지 아니 더 나아가 평생 계속 하리라 마음가짐을 갖게 되었습니다.
월일거름회를 조직하여 회원들과 십시일반으로 꾸준히 마련한 회비가 2년 후 빠듯하지만 낙도 어린이들을 초청할 정도의 회비가 모금 되었습니다. 지도를 살펴보니 전남 진도 섬 지역이 거리도 멀고 방문하기도 힘들 것 같아 그 중에서 낙후된 곳부터 초청하기로 결정하고 회원들에게 의견을 물어 보았는데 왜! 하필이면 전라도냐며 다른 지역을 알아보라고 다들 반대를 했습니다. 초등학생들이 무엇을 압니까? 천진난만 하고 순수한 어린이들 입장에서 생각해서 진도 어린이들을 초청하고 싶다, 라고 의지를 굽히지 않고 추진하기로 하였습니다. 회원들의 마음은 돌렸으나 막상 낙도 어린이들을 초청 하려니 여러 가지 난관이 생겼습니다. 먼저 추진하는 저부터 전라도에 가 본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전남 진도가 먼 나라처럼 느껴졌습니다. 경북교육청, 전남교육청, 여러 방송국과 신문사로 문의해 보니 직접 가보라는 대답과 풍금이나 사주라는 저희들의 본뜻과는 다른 대답만 들었습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전남 광주시에서 우리 사업소로 견학을 오신 분이 있었는데 그 분과 대화를 나누며 길을 찾아보았습니다. 20명 정도 낙도 어린이들을 대구, 경주로 초청하여 미래 꿈을 키워주고 싶다는 저의 순수한 마음을 받아들이시고 도움을 주겠다고 하시며 오히려 좋은 일을 하신다며 격려하여 주셨습니다. 그 분의 연결로 전남 진도군 조도면 내병도리, 외병도리 배광영 선생님께 연락을 드리니 낙도 어린이 초청에 흔쾌히 응해 주었습니다. 오랫동안 봉사와 사회 헌신을 꿈꾸며 공무원의 길을 묵묵히 가며 청렴결백한 의지와 함께 마음에 갖고 있던 작은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가슴이 먹먹하고 까만 눈망울의 섬마을 아이들을 만난다는 생각에 눈물이 날 정도로 기뻤습니다.
선생님과 대구, 경주 유적지 및 견학 지 그리고 일정 조율을 위해 난생처음 전남 광주로 가서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일정은 학생들 수업에 지장이 없도록 봄방학 때인 2월말에 하기 로 하고 왕복2일, 대구2일, 경주1일 (총4박5일)로 정하고 1989년 2월 월일거름회 첫 행사가 시작되었다. 첫 일정은 2월 23일 새벽에 외병도리·내병도리(학부형배) → 성남도 → 팽목항 → 진도터미널(버스) → 광주터미널(시외버스) → 광주고속버스(도보) → 대구고속버스(88고속도로) → 월일 거름회 회원이 마중 → 숙소(밤늦게 도착) 아침식사 후 도시락 준비하여 매일신문사 → 백화점 → 달성공원 → 제일모직 → 코카콜라 공장 → 앞산공원 → 숙소로 첫날 행사가 마무리되었다. 하늘과 바다만 바라보며 생활하는 낙도 어린이들에게는 모든 견학이 새롭고 신기하였다. 아이들의 즐거워하는 모습에서 그 동안에 계획과 노력이 물거품이 되지 않고 알찬 열매를 맺게 되었다. 낙도어린이 행사가 끝나고 내·외병도리에 도착하여 학부형들이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여 늦은 밤까지 즐기며 대구에서의 추억을 얘기 하였답니다. 자긍심과 공무원으로서 나눔과 봉사활동에 직접 참여하게 되었다는 보람도 느꼈으며, 특히, 아이들 인솔에 참여해 주신 진도 조도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셨던 송기택 교장선생님이 “달구벌의 훈풍”이란 여행 후기는 월일거름회 카페에 올리시어 작은 힘이지만 영호남 민간 가교 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1996년 11월 16일 청백봉사상 을 받았을 때 보다 가슴 한켠에선 공무원이지만 영호남 가교의 한 주춧돌이 되었구나하며 가슴이 벅찼습니다. 낙도어린이 행사가 2회, 3회 거듭되면서 강원도 철원의 묘장 초등학교, 태백의 철암 초등학교, 충남 서산의 대산 초등, 제주도 가파초등, 전남 고흥의 지죽 분교, 신안의 흑산 초등, 도초 초등, 프로기사 이세돌님 의 고향인 비금동 초등, 장성군의 분향 초등, 완도의 넙도 초등 등 수많은 학교를 초청하였고 2016년 3월 27일부터 30일까지 총 31회 984명을 초청하였고, 10월에는 전남 고흥군의 영남 초등학교 초청을 하면 1,000명 이상을 초청하게 되는 월일거름회의 뜻깊은 해이며, 30여년을 한 결 같이 나와 함께한 월일거름회 회원들도 이 일에 보람을 느끼고 더욱 열심히 해주었다.
1. 나봉은회 태동
2010년 9월 시설관리소에서 가창정수 사업소로 전보되었는데 거기에서 최무근씨와 윤영기씨 를 만나 낙도 어린이 초청을 24회에 774명을 했다고 하니 한 두 번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20년 이상 계속하기는 쉽지 않다며 월 1만원씩의 회원이 되어 주면서 격려해 주었고 또 우리 세 명이 2010년 12월 31일 월 5만원씩의 회비로 봄, 가을 연 2회 나봉은 (나눔, 봉사, 은혜)행사를 하기 로 하였다.
1회 행사는 2011년 7월 13일 성가 요양원 어르신들 40여명을 모시고 관광버스로 합천 일원으로 나들이를 가게 되었다. 휠체어에 몸을 맡기신 분, 부축을 해야만 하는 분, 목발을 하신 분 등을 모시고 합천읍에서 점심을 대접하고 나서 합천 댐 아래 영상테마파크에 입장하여 경성역, 영화관, 마차, 1970년대의 서울 거리등을 돌아보시면서 어린이들 마냥 즐거워하셨다. 나봉은회 1회 행사를 마무리하였고, 2016년 5월 18일 나봉은 10회 행사는 고령에 있는 대창 양로원에 선풍기 6대등 60여만원의 경비로 각종 음식과 노래와 오락 등으로 어르신들에게 잠시나마 즐거움을 드렸다. 또 매년 2월과 8월 2회 성요셉 재활원에서 치·맥 행사를 월일거름회와 석이벤트가 앞으로도 꾸준히 하기로 하였다.
1. 월일거름회와 나봉은회
제가 30년을 한 결 같이 활동해온 월일거름회 와 나봉은회가 함께 봉사활동을 이어가기로 하였으며 지금까지 월일거름회 와 나봉은회 후원금이 일억일천오백만원 정도이며 낙도어린이 초청과 나봉은회 행사 지출이 일억칠백사십만원 정도의 비용이 들었으나 그 값어치는 돈으로 따질 수 없는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공무원이 되기 이전 군대에서의 적금 15만원을 사회 기부하며 느꼈던 수 십 년 전의 감동을 오늘날까지도 이어오고 있다. 공무원의 바람직한 자세는 공무원 스스로가 느끼고, 생각하고, 실천할 때 국민들로부터 사랑받는 공무원이 되리라 생각하며, 앞으로도 미력하나마 청렴결백은 물론이고 의미있게 월일거름회와 나봉은회를 베풂과 나눔으로 나의 길을 굳건히 가리라 다짐해 보며, 45명의 회원님들이 있어 무엇이든 할 수 있어 내 생에 최고의 선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