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순원의 《나무들 비탈에 서다》
1985년 문학과 지성사에서 펴낸 한국문학선집 23권 『카인의 후예』에 수록된 《나무들 비탈에 서다》는 황순원의 대표 중편소설 중 하나다. 황순원 선생은 1915년 평안남도 대동군에서 태어나 평양 숭덕소학교와 정주 오산중학교를 졸업하고 동경에 유학했는데 시집 『방가』를 간행했다가 일제 경찰에 의해 구류를 당하기도 했다. 1939년 와세다 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돌아와 1946년 월남해 서울 중고등학교 교사와 경희대 국문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2000년 86세를 일기로 서울에서 세상을 떠났다.
황순원 하면 교과서에도 실린 단편소설 《소나기》가 먼저 떠오른다. 윤초씨 증손녀 딸과 소년의 사랑이란 감정과 어머니 아버지와의 대화를 통해서 그 증손녀 딸이 결국 죽었다는 비애의 소식까지 소년은 혼자 집어삼켜야 했던 가슴앓이가 절절이 그러나 풋풋함으로 아련히 가슴에 남아 있다. 그러면서 배경이 되는 개울가는 나의 안태 고향 고두방지 개울과 꼭 닮았고 그래서 더욱 아련하다. 지금은 콩크리트 다리가 놓였지만 징금다리를 뛰어 건너던 그때 나의 어린시절이 그립다. [소나기 전문은 따로 붙였다]
《나무들 비탈에 서다》의 등장인물은,
― 동호 : 이상주의자이자 사색가로 자아가 강한 성격이다. 연인 숙이에 대한 아련한 감정을 지니고 있으면서 창녀 옥주에게 동정을 바치게 되고 이 일로 숙이에게 죄책감을 느껴 자살한다.
― 현태 : 호탕하고 자신감 있는 성격으로 세 친구 중에서 리더격이다. 사업을 하는 아버지 덕분에 부유한 집안에서 밝은 미래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전쟁 때 있었던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죄책감에 빠져 전후 방탕한 생활을 이어간다.
― 윤구 : 실리를 추구하는 현실적인 성격을 지녔다. 그 때문인지 다른 친구들과는 다르게 전후 스스로 새로운 세상에 잘 적응해나간다. 윤구는 은행장의 딸이자 자신이 가르치던 미란을 통해서 도약해 보려고 했지만, 미란의 낙태 사망 사건으로 은행에서 쫓겨나 양계장을 경영하게 된다.
― 숙이 : 동호의 연인으로 동호가 자살한 이유를 찾기 위해 전우들에게 물으러 다니던 중에 현태에게 겁탈당한다. 그렇게 임신한 아이를 낳기로 결심하기도 한다. 순수함과 모성 그리고 용서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나무들 비탈에 서다》의 줄거리는 전쟁 중에 만나게 된 현태, 동호, 윤구는 서로에게 의지하며 군 생활을 이어간다. 숙이라는 여인과 사귀고 있는 중에 군에 오게 된 동호는 숙이를 자신의 여자로 만들지 못한 채 군에 와서 순결을 지키고 있다. 이를 탐탁치 않게 생각하던 현태는 어느 날 동호를 데리고 색시집으로 가 한 여자를 만나게 해 준다. 동호는 자신의 몸이 더럽혀졌다는 생각에 괴로워하다 숙이로부터 온 편지를 불태워버리고 옥이라는 색시를 찾아간다. 옥이 와의 만남에서 동호는 숙이를 생각하면서도 무언가 안정감을 찾으려 하던 중에 옥이라는 여자가 다른 남자와 나누는 정사 소리?를 듣고는 질투심에 그들을 쏴 죽이고 자신도 자살을 한다.
자살하기 전 숙이에게 편지 한 통을 남기고 이 편지를 현태가 간직하게 된다. 윤구와 현태는 제대를 하고 현태는 아버지 사업을 이어 받고 착실하게 살다가 어느 날 길에서 마주친 모녀를 보고 전쟁 중에 자신이 죽인 모녀를 생각하며 괴로워하다 회의에 빠져들어 술을 마시며 방탕하면서도 권태로운 삶을 살게 된다. 한편, 윤구는 군대 오기 전에 지내던 가정교사 집에서 다시 학생을 가르치는 일을 하다 그 집 딸 미란과 결혼까지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미란은 윤구 몰래 현태와의 만남을 가지고 그사이에 윤구에게 찾아와 윤구의 아이를 가졌다고 한다. 윤구는 그 아이가 누구의 아이인지 몰라 결국 미란에게 아이를 지우게 하나 미란은 수술 후유증으로 죽게 된다. 또한 자신을 두고 동호가 자살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숙이는 군 친구들인 윤구와 현태를 찾아가 동호에 대해 묻지만, 그들은 아무 말도 해주지 않는다. 어느 날 술에 취한 현태를 찾아 온 숙이는 현태에게서 동호가 여자를 죽인 후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자신에게 남긴 편지가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이에 숙이는 실망하게 되고, 어는 조용한 곳에서 현태와 함께 동호의 편지를 읽어 보고 싶다고 한다.
소설의 주인공들은 모두 비탈에 선 나무다. 그 비탈에서 가지치기를 당하던 지 강하게 뿌리를 내리고 서던 지 해야 하는 나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