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냥은 상냥과 다르지만
김령
파란시선 0168∣2025년 10월 30일 발간∣정가 12,000원∣B6(128×208㎜)∣128쪽∣ISBN 979-11-94799-16-0 03810∣(주)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
•― 신간 소개
우는 것들의 힘으로 공중이 자란다
[성냥은 상냥과 다르지만]은 김령 시인의 두 번째 신작 시집으로, 「숲속에 누군가 있었네」 「산다」 「거기」 등 55편이 실려 있다.
김령 시인은 전라남도 고흥에서 태어났으며, 2017년 [시와 경계]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어떤 돌은 밤에 웃는다] [성냥은 상냥과 다르지만]을 썼다.
김령 시인이 주목하는 것은 바로 현실적 삶을 구성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 존재 자체를 부인당하는 고통의 모습들이다. 어쩌면 우리는 끝내 그 고통의 원인을 알아낼 수도, 그래서 해결한다고 약속할 수도 없을지 모르겠지만, 그렇기에 더욱 우리의 삶과 분리되지 않은 채 꽉 껴안은 모습 그대로의 고통 말이다. 그것은 시 「공중은 누구의 것인가」에서처럼 “영업 중, 임대합니다라는 팻말을/동시에 내건 가게”의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고, “구치감”에 갇힌 채로도 “여기가 내 집이라고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겠다고” 말하는 결혼 이주 여성의 모습과도 꼭 닮아 있다(「주황과 노랑 어디쯤」).
그저 평범한 일상을 지낸다는 것은 어쩌면 주어진 일들을 감당하면서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기에도 때로는 벅찬 일이다.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누군가 울고 있”는 소리에 대해 무감각한 것 또한 사실이다. ‘나’ 역시 “숨어서 울고 있”는 한 사람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일상이 “행복한 건지 불행한 건지” 도통 판단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 자체가 그저 “숨”과 “울음”의 구별 없이 “토해 내”듯 내뱉어진 시간을 견디는 일일 수밖에 없을지도 모를 일이다.(「공중은 누구의 것인가」)
생각해 보면 문득 낯설어지는 우리의 삶에 대해 주목하고 있는 김령 시인이 이처럼 일상의 시간들에 가려진 죽음과 고통에 주목하는 것은 희망이라는 단순한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는 「헤이」에서처럼 “녹으면 드러날 수밖에 없는 모서리들”에 대해서 “사랑하게 될까”를 언제나 고민하고 있을 뿐이다. 시집 [성냥은 상냥과 다르지만]을 읽는 일은 그렇게 평온해 보이는 우리 삶의 수면을 뚫고 위로 솟아오른 것들 그러니까 “손가락 하나로도 무너질 수 있는” 것들(「모년 모월 모시」), 또는 “시간도 공간도 아닌” 것들에 대한(「거기」) 김령의 관심을 따라가 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만일 그렇다면 우리 역시 “모서리”를 사랑할 수 있게 될까. (이상 남승원 문학평론가의 해설 중에서)
•― 추천사
“당신의 이름을 지우면/수없이 이름을 바꾸어 달려”오는 것은 무엇인가(「천천히 그러나 불가역적인 멸망」). 어느 날은 ‘당신’의 모습으로, 어느 날은 ‘살아남은 나에게로’ 불어오는 것의 정체는 무엇인가(「시인의 말」). 김령의 시는 그것에 대해 단번에 응답하지 않는다. 쉽게 이름 붙이지 않는다. 생활로부터 은연히 벗겨지는 멜랑콜리, 희미하게 빛나는 ‘당신’의 여백을 모두 수집하고서야, “쏟아지는 빗방울 중에서/네가 보낸 함선을 찾”아내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서야 겨우, 그것이 내는 소리를 받아 적는다(「장마」). 김령의 시는 여운이 깊은 지형을 찾아 떠돈다. 읊조린다. “독당근 맨드레이크 피마자 미치광이풀 옻나무 노란각시버섯 무당버섯 애광대버섯”, 계절이 흐르고 다시 가만히 읊조린다. “란타나 히아신스 히간바나 수선화 은방울꽃 극낙조화 로벨리아”, 김령은 아름다운 형상과 “독을 품은 것들”을 동시에 부려 놓는다(「여름」). 어린 시절 함께 뛰어놀던 동무들과 “교복 차림” “무거운 가방을 메고” “화르르르 계단을 오”르는 아이들을 겹쳐 놓는다(「겹잎」). 사랑의 주변에서 떠도는 우울과 그리움, 그 양가적인 정동이 시인의 텅 빈 마음에 들어와 불을 켤 때, 거기 단정과 수수함이 발아한다. ‘나’와 ‘당신’의 거리에서 생성된 언어는 반듯하고 감정은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김령은 불온한 미래를 길어 와 시를 쓴다. “확실히 나는/먼지로 돌아가겠구나”라는 결말을 노래하면서도 사랑의 씨앗을 부지런히 뿌린다(「숲속에 누군가 있었네」). 김령은 가까이에 놓인 물질로부터 삶의 한 면이 닳아 가는 것을 기록한다. 그것이 위험물이거나 삶을 진전하는 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라 할지라도 김령의 언어는 끝끝내 그것의 꼬리를 따라간다. 그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시인가 시인인가. 김령은 그것을 위해 자신의 영혼으로부터 언어를 길어 올린다. “바람이 불자 연두색 나뭇잎들이 보채듯 몸을 뒤집는다”(「없는 사람」). “성냥을 발음하는 순간” “핑크빛 아름다운 얼굴”이 상냥하게 변한다(「성냥을 사야 할까」). 그때 ‘당신’의 빈자리로부터 세계가 화르륵 열린다. 김령의 백지는 검정이다. 김령은 밤새 자신의 심장에 언어의 성냥을 긋는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당신’의 얼굴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한다. 시와 성냥. 사랑과 상냥. 김령의 단아한 서정이 새로운 옷을 입고 당신을 그을리고 있다.
―정우신 시인
•― 시인의 말
그 모든 날을 지나와
어쨌든 살아남은
나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 저자 소개
김령
전라남도 고흥에서 태어났다.
2017년 [시와 경계]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어떤 돌은 밤에 웃는다] [성냥은 상냥과 다르지만]을 썼다.
•― 차례
시인의 말
제1부
여름 ‒ 11
성냥을 사야 할까 ‒ 12
겹잎 ‒ 14
미니 달 ‒ 16
숲속에 누군가 있었네 ‒ 18
방시(傍視) ‒ 20
없는 사람 ‒ 22
산다 ‒ 24
장미 혹은 장마 ‒ 26
흰 밤 ‒ 27
제 그림자를 보고 짖는 개 ‒ 28
메시지 ‒ 30
제2부
주황과 노랑 어디쯤 ‒ 33
공중은 누구의 것인가 ‒ 34
노랑미친개미 ‒ 36
파라다이스 트리 스네이크 ‒ 38
우리는 가지런히 ‒ 40
리트머스 ‒ 42
13.22㎡ ‒ 44
일요일 ‒ 46
로보러버 ‒ 48
주사위뱀 ‒ 50
화식조 ‒ 51
미끼 ‒ 52
장마 ‒ 54
틈 ‒ 56
제3부
천천히 그러나 불가역적인 멸망 ‒ 59
헤이 ‒ 60
버퍼링 ‒ 62
괜찮아지는 중 ‒ 64
하루는 길고도 길어 ‒ 66
거북 ‒ 68
어느 날 내가 여름날 아스팔트에 반쯤 먹다 버려진 아이스크림 같을 때 ‒ 70
영수증 ‒ 72
제임스 웹 ‒ 74
모년 모월 모시 ‒ 75
똥! ‒ 76
거기 ‒ 78
이름 ‒ 80
아그네스모텔 사거리 ‒ 82
불면 ‒ 83
제4부
옻나무가 있는 집 ‒ 87
프랑 ‒ 88
호떡보살 ‒ 90
내게 강 같은 평화 ‒ 92
나는 발목을 자를 수도 없으므로 ‒ 94
알파 센타우리는 빛의 속도로 4.3광년 ‒ 95
dx3906 ‒ 96
디지털 장의사 ‒ 98
가을들 ‒ 100
기대어 살다 ‒ 102
당근마켓 ‒ 104
고스톱 ‒ 106
보온병에 내려 둔 커피 마셔요 ‒ 108
오른쪽 발목의 가려움증 ‒ 110
해설 남승원 가볍게 건네는 안부 ‒ 111
•― 시집 속의 시 세 편
숲속에 누군가 있었네
확실히 나는
먼지로 돌아가겠구나
애써 되살린 옛길을
먼지들은 금세 덮을 것이다
연리지 위를 오르는 산다람쥐
길 위를 걷는 나도
코끼리새와 큰뿔사슴처럼
호모 하빌리스가 그러했듯
호모 에르가스터가 그러했듯
아직 불어오지 않은 바람아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야
너도 먼지로 돌아가겠구나
어둠이 바위를 물들이는 동안
한생을 다 살고 난 나는
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셈 치고! ■
산다
1.
첫눈이 왔다
온다는 말이 사무치다
이상도 하지 쉬는 날 아침
새벽에 눈을 뜨고 말끔한 정신으로
커피를 내리고
찻잔을 잡는 오른손을
왼손이 가만 쥐어 본다
우에무라 나오미를 마음에 담았지만
라인홀트 메스너를 좋아한다
살아남는 일, 오로지
살아남는 일
2.
어젯밤 꿈에 당신이 다녀갔다
이제 나는 낮과 밤의 간극이 없다
말을 타고 한참 달리다 멈춰 서
자신의 영혼을 기다리는 인디언처럼
꿈은 언제나 한 계절씩 늦었다
너무 외로워서 잎을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나무처럼
밤의 행성들 사이에 서 있다
질량이 별의 운명을 결정한다
*우에무라 나오미: 일본인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 등정. 1984년 북미 매킨리 등정 후 하산길에 실종.
*라인홀트 매스너: 이탈리아 산악인. 최초로 히말라야 팔천 미터급 무산소 단독 등정. 현재 생존. ■
거기
어디선가 탁탁 울리는 소리를 골똘히 따라간다
화덕에 나뭇가지를 꺾어 넣다가
감나무 잎들 사이
붉어 오는 하늘에 눈길이 머문다
깨꽃처럼 환하던 여름 저녁
저 얼굴 저 표정을 뭐라고 이름하나
물이 흘러가다 바위에 부딪혀
잠시 옆으로 비켜섰을 때의 고요 같은
징검다리를 건너려 막 발을 떼었으나
아직 다가오는 돌을 밟기 전의
뭉쳐 있는 공기 같은
하루가 저물어 갈 때
검은 점선이 천 개쯤 내리는
점선과 점선 사이의
불그스름한, 아직
시간도 공간도 아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