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인육사건(人肉事件)
(문) 1972년 10월 21일,
우루과이의 학생 럭비팀 선수 45명을 태운 비행기가, 안데스 산맥에 추락했는데,
그중 16명이 72일 만에 극적으로 구출되었습니다.
생존자의 증언에 의하면,
72일이나 목숨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죽은 자의 육체를 먹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인육 먹기를 거부한 몇 사람은,
끝내 아사(餓死)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어느 가톨릭 사제는, 생존한 그들은 인육을 먹은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고기를 먹었다고 하고,
인육을 거부한 아사자는 일종의 자살행위를 저지른 범죄자 취급을 했던 것 같습니다.
가톨릭에서는 자살을 최악의 죄로 보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 사도의 태도에 저는 아무래도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올바른 견해를 가르쳐 주십시오.
문제의 핵심인 인육에 대해서, 먼저 생각해봅시다.
혼이 떠난(죽은) 인간은, 단순한 물체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죽은 육체는, 양고기나 쇠고기와 바를 게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떠난 혼이, 자신의 육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가 문제입니다.
만일 자신의 육체에 집착심이 강하여,
자신의 육체가 찢어지고, 먹히는 것을 알면,
견딜 수 없는 열등감과 복수심을 품을지도 모릅니다.
한편, 사람에 따라서는, 그것에 의해 다른 사람이 죽음의 위기를 탈출하여,
살아남을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인육문제는 죽은 사람의 혼의 상태와, 생존자의 마음의 상태에 달려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인육을 먹는다는 것은 할 수 없겠지요.
왜냐하면, 남이 더욱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며,
마음의 밑바닥에는 신의 사랑이 항상 살아 숨쉬기 때문입니다.
비록 아사라고 하는 최악의 상태가 되어도,
동료의 육체를 먹는 것은, 인간의 양심이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 세상의 아귀계에서는, 자기가 살기 위해서는 인육도 가리지 않지만,
그런 아귀계의 마음을 가진 자는 극히 한정되어 있으며,
또, 그렇게 해서 살아남은 것에 대해서,
그 사람은 언제까지나 그것에 마음의 무거운 짐을 느낄 것입니다.
반면에 인육을 먹지 않고
죽은 아사자들을 자살이라고 몰아 부치는 것 또한 부자연스럽습니다.
자살이란,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생명을 끊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경우의 아사(餓死)가 자살이라고 한다면,
소크라테스의 독배도 자살이 될 것이고,
예수의 십자가도 자살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받기 전에 감옥에서 도망칠 수 있었고,
예수도 십자가 처형을 피할 마음이 있었다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왜 피하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예수가 십자가에 의해서 사랑의 증명을 보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자살은,
현실 도피를 위한 것이지만,
인육 사건의 아사자는 자살이 아닙니다.
그들의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던 것입니다.
목사의 견해는, 너무나 도식적(圖式的)이고 피상적입니다.
죽은 사람의 몸이 그리스도의 몸이었다는 데 대해서는,
한마디로 언어도단(言語道斷)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육을 먹고 살아가는 세상은 지옥밖에 없습니다.
자살의 관념에 사로잡혀,
사람을 살리는 정도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마음의 대화 - 다카하시 신지 저
첫댓글 오늘 말씀도 좋네요.
깊이가 있는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