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한 증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증인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택하신 것은 증인으로 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사 43:10).”
그들은 때론 하나님께 잘 순종하여 많은 복을 누리기도 하였지만, 보다 오랜 기간 동안 불성실한 증인으로 살았습니다. 출애굽이후 지금까지 약 3,500년 기간 중 나라의 형태를 제대로 유지하고 있던 기간은 약 600년 정도입니다. 이런 수치로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이 실수가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성경의 기록에 비추어보면 이스라엘은 참으로 훌륭한 증인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범사에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때 누리는 복도 받아보았고, 불순종하여 어긋난 길을 갈 때 당하게 되는 재앙도 받아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실 때, 순종하여 누리는 복과, 불순종할 때 받는 저주를 모두 기록해 두셨습니다. 그러므로 순종할 때 누리는 복을 받아 누리고, 불순종할 때 받는 저주를 받는 경험을 그대로 후세에 남기고 있는 이스라엘은 결국 하나님을 바르게 증거한 셈이 됩니다. 만일 복을 받은 내용만 후세에 전했더라면, 반쪽 증인밖에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모든 복과 저주를 있는 그대로 기록함으로써 결국 하나님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모두 하나님의 증인들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드러냅니다. 순종할 때 주시는 복도 드러내고, 불순종할 때 주시는 화도 드러냅니다. 불순종하는 자녀들을 바로 징계하지 않으시고 오래 기다리시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인내와 사랑의 크기를 드러내기도 합니다. 지혜뿐만 아니라 어리석음을 통해서도 하나님이 증거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증인으로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정직입니다.
성경은 정직한 기록입니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을 가감없이 정직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경험한 수치를 감추지 않았고, 사도들의 실수를 감추지 않았습니다. 이런 태도는 우리가 증인으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한 가지 중요한 힌트를 줍니다. 바로 정직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은 모든 정직의 뿌리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분칠하지도, 비하하지도 아니하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시작점입니다.
종종 우리 안에 깊이 감추어 있는 숨은 동기들이 있습니다. 잠재의식에 깊이 잠겨 있어 의식의 수준에서 알기 어려운 것들입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지 못하게 만드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자 하면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 정체를 밝혀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믿음의 여정의 일부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정직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 감추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이런 부분들을 묻지도 않았는데 일부러 드러낼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부분들이 드러날 때 과도하게 부인하고, 변명하고, 화낼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이 자기 자신의 일부임을 인정하고 조용히 받아들이는 것이 정직입니다. 저항할수록 거짓 자아는 강화되고 인간관계가 왜곡되며 마음의 평화는 멀어집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높이기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는 분입니다. 모든 권세는 그분께 있습니다. 하나님은다윗이 밧세바를 범하여 아이를 잉태한 사실을 감추고자 그녀의 남편 우리아를 전장에서 죽게 한 사건을 선지자 나단을 통하여 드러내셨습니다. 이 일로 다윗은 크게 수치를 당하였지만 묵묵히 그 수치와 징계를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수치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베드로는 그의 열정만큼이나 많은 실수를 하는 사람이었지만 그의 실수가 드러나는 것에 저항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당시 최고 사도의 권위로 자신에게 불리한 기록을 제거하려고 시도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의 행적이 있는 그대로 오늘까지 전달되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에도 위로를 받고 소망을 얻게 됩니다. 베드로의 정직함이 주는 유익입니다.
하나님과 자기 자신 앞에서 정직하다면 이웃에게 정직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내세울 것도 없고 감출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그대로의 나를 내가 받아들이고 그 가운데서 기쁨과 감사로 살 수 있다면 굳이 이웃에게 감출 것도 없을 것입니다.
증인이란 세상적인 관점에서 남들보다 나은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정직하게 사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정직으로 이끄실 것입니다. 정직한 증인은 부흥으로 가는 열쇠입니다. 그래서 부흥의 열쇠는 우리 안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