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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 있는 우리 신화』
사실 나부터도 그렇다. 제우스, 헤라클라스, 아프로디테는 알아도 대별왕, 소별왕, 강림이, 바리, 자청비, 각시손님, 오늘이, 매일이 이런 이름은 잘 모른다. 처음 듣는다. 이들은 우리 민간신화의 주인공들로 수천, 수백 년 동안 겨레의 삶을 지켜보고 보듬어 준 정겹고 설운 민족신의 이름들이다. 우리나라 신화의 질감은 서구신화와 다르고, 중국과 일본과도 다르다. 그리스·로마 신화에서와 같은 화려함은 찾을 수 없고, 중국의 그것처럼 기괴하고 험상궂은 모습도 아니다. 화려함보다 소박함, 기괴함보다 자연스러움, 공포감보다 친근함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훨씬 인간적이다.
인간을 뛰어넘었기에 신이 된 존재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한계를 절감했기에 신이 된 이들도 많다. 우리 민간신화는 시련에 관한 이야기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면서 시련을 극복한 이야기기도 하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희망과 믿음을 버리지 않고 고난을 감내하면서 부딪쳐 길을 찾는 신이다. 무속은 미신이라고 하는 터무니 없는 편견에 빠져 남의 것은 알되 제 것은 모르는 무지의 벽에 갇혀서 소중한 신들을 망각과 방황의 늪에 던져져 있던 우리가 아니던가. 신들은 여전히 묵묵히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신화의 이야기는 정본이 따로 없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터라 전승 지역과 구전자에 따라 편차가 다르다. 근대화 과정에 겪은 억압과 풍상이 흩트리고 퇴색시켜 놓은 면도 적지 않다.
신화는 그 자체로 신성하며 함부로 바꿀 수 없다는 의식이 원형을 나름대로 지켜주고 있다고 생각하는 저자*는 『살아있는 우리 신화』 이 책을 쓰면서 신화란 “사람들의 경외감 속에 소중히 간직하고 가꾸어온 신성한 이야기를 말한다. 신화의 주인공들이 엮어내는 서사는 사람들이 지향하는 본원적 가치를 상징적으로 담아낸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상과 욕망의 상징적 분신인 신화적 주인공들을 통하여 존재의 본질을 투시하는 한편 삶을 두르고 있는 장벽을 넘어서기 위한 분투를 거듭해 왔다. 세월의 가시밭길을 해쳐 현재에 이른 우리의 민간신화는 그러한 몸짓의 신성한 소산이다.”라고 신화에 대해 설명했다.
*저자 신동흔은 충남 당진에서 태어나 호롱불 아래에서 공부했다. 서울대 국문과에 들어가 구비문학과 설화연구로 문학박사가 되었고, 2011년 현재 건국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신화 하면 흔히 「단군신화」를 떠올리지만, 사학자들 중에는 단군신화는 엄연히 우리 역사라고 규정하는 이도 있다. 지어낸 이야기가 신화라고 해도 태초에 단군이 나라를 세우고 지켰다는 것만으로도 단군신화는 가치는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 신화는 태초에 창세기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우주가 생기기 전부터 어떤 신이 나타나 인간을 다스렸다고 하는 것으로 거의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신의 세상이 아닌 인간 세상의 탄생을 말하는 것으로 ‘하늘과 땅은 서로 뒤섞여 하나였다. 어디까지가 하늘이고 어디부터가 땅인지 알 수가 없는, 처음과 끝도 없고, 안과 밖도 없는, 삶과 죽음도, 선과 악도 없는 세상은 끝 모를 혼돈이었다. 혼돈의 우주에서 어느 순간 대역사가 시작되었다.’보통 이런 식으로 시작된다.
인간이 태어나기 전의 이야기로 시작해 어느 순간 인간이 나타나는데, 여기서부터 신화가 시작된다. ‘때가 되자 저절로 인간이 생겨났다고 하기도 하고, 신이 황토로 인간을 빚었다고 하기도 하고, 하늘에서 내려온 벌레가 자라 인간이 되었다고 하기도 한다. 벌레가 자라 인간이 되었다는 진화론적 설정은 우리 고유의 화소(話素)로 옛날 옛적에 미륵님이 양손에 은쟁반, 금쟁반을 들고 하늘에 기원드리니 쟁반 위에 벌레가 다섯씩 떨어졌다. 금벌레는 남자가 되고, 은벌레는 여자가 되어 부부가 되어 세상에 사람이 태어났다.’이런 식이다.
하지만 인간이 태어난 뒤 신들이 인간의 삶에 끼어들었던 자취는 쉽게 찾기 힘들다. 그리스·로마 신화와 달리 방치 해둔 것일까. 아니면 변화무상한 세상에 신들도 끼어드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자기네 세상의 질서를 잡느라 여념이 없었기 때문이었을까. 새로운 세상은 신들에게는 그리 적합한 곳이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새로운 세상은 새로 태어나 거기서 자라난 새로운 존재에게 어울리는 곳이었다. 그렇다면 새로운 세상은 인간에게 낙원이었을까? 한마디로 아니었다.
인간은 놀라운 지혜와 당당함으로 세상의 주역이 되었지만, 만만치는 않았다. 두 개씩 만들어진 해와 달, 여름날의 찌는 듯한 더위와 겨울의 추위로 얼어 죽는 사람이 수두룩했다. 믿기지 않지만, 두 개인 태양의 기운은 땅을 쩍쩍 갈라놓았고 두 개의 달은 홍수로 세상을 휩쓸곤 했다. 인간의 고통은 그것뿐이 아니었다. 해와 달과 물과 불, 짐승도 아닌 인간이 인간에게 고통을 주었다. 이름을 수명장자라고 한 그를 당할 자는 아무도 없었다. 수명장자는 사나운 말과 소, 아홉 마리의 개를 끌고 다니면서 세상을 농락했다. 보다 못한 옥황상제가 하늘에서 내려와 응징하지만 죽이지는 않았다.
(1)‘인간 세상의 일은 인간에게’가 우리 신화의 기본 논리다. 수명장자를 다스리고 세상을 평정할 영웅은 이 땅에서 태어나야 했다. 옥황상제 천지왕은 수명장자를 벌하고 난 뒤 귀로에 잠시 백주할멈이 사는 초가에 머물렀는데 문득 이상한 소리를 듣고 할멈에게 여쭈었다.
“옆방에서 옥빗으로 머리를 빗는 소리가 은은한데 누구입니까?”
“저의 외동딸 총명아기입니다.”
옥황상제가 한번 만나기를 청하자 총명아기 사뿐히 들어와 절하니 그 자태가 하늘궁전의 선녀보다도 고왔다. 그날 밤 둘은 인연을 맺었는데, 신과 인간의 첫 결합이었다.
사흘 동안 머물던 옥황상제가 하늘로 가면서 “자식을 낳거든 이름을 ‘대별이, 소별이’라고 짖고 나를 만나겠다고 하면 이것을 전해 주시오.”하고는 박씨 두 개를 주고 떠났다. 과연 총명아기가 쌍둥이 아들을 나았고 이들이 자라 아버지를 만나겠다고 하여 박씨를 주었고, 그것을 심었고, 하늘에 닿은 줄기를 타고 올라가 아버지를 만났고, 자식임을 확인하는 첫 번째 시험은 아버지가 아들들에게 활을 주었고, 그것으로 그때까지 둘이었던 해와 달을 쏘아 하나씩 없애게 되었고, 두 번째 시험은 누가 더 예쁜 꽃을 키워서 피우느냐였는데 대별이 더 예쁜 꽃을 키웠으나 심판 당일 소별이가 몰래 바꿔치기해 결국 이승을 차지한 소별이 수명장자와 한판 싸움을 벌여 이겼고, 수명장자를 산산이 부수어 살과 뼈를 허공에 뿌리니 그것이 수천, 수만의 파리와 모기, 빈대, 벼룩 따위가 되어 세상에 흩어졌으며 엄격히 법을 지어 형벌로 다스리자 점차 법도가 서기 시작했으나, 그래도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이 끊이지 않으니 이전보다 더 좋아진 것인지 나빠진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한편, 대별은 죽은 영혼들이 혼란스럽게 맴돌고 있는 저승세계를 정리한 뒤에 영혼이 머물 곳으로 극락과 지옥을 분별해 이승의 삶에 대한 응보를 받게 하는 일을 했다. 이승에서 선하게 살며 고초를 겪은 영혼은 극락에서 안식과 평화를, 악행을 저지르고 부귀를 누린 자는 지옥에서 죗값을 치르게 했다. 하지만 지옥에 든 영혼도 죗값을 치르고 회계하면 극락에 갈 수 있는 법도 마련했다. 이 이야기는 제주도 신화 「천지왕본풀이」의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2) 인간 세상에서는 새 생명을 잉태해 주는 신이 있는데, 흔히 삼신할미, 삼승할망이라고 부른다. 제주도의 ‘명진국따님애기’는 삼승할망이라고 부르고, 내륙에서는 ‘당금애기’또는 ‘삼신할미’라고 부른다. 삼승할미는 호호백발 할머니가 아니라 아리따운 처녀의 모습이다. 동해용궁 아버지와 서해용궁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용궁따님애기는 한두 살에 이미 아버지 수염을 뽑고 어머니 젖가슴을 잡아 뜯더니 커서도 제 버릇을 고치지 못했다. 참다못한 아버지가 딸을 죽이려고 하자 어머니가
“내 손으로 낳은 자식을 어찌 죽이리까. 그러지 말고 무쇠장이를 불러다가 무쇠상자를 만들어 동해바다에 띄워 인간세상으로 보냄이 어떠하리까?”
“그렇게 합시다.”
용궁따님애기가 무쇠상자에 갇히면서 어머니에게 하소연했다.
“어머님아, 나 홀로 인간 세상에 가면 무엇을 하며 살리까?”
“인간 세상에는 아기 마련해주는 생불왕이 없으니, 그 일을 맡아 하고 얻어먹거라.”
“아기를 어떻게 마련합니까?”
“아버지 몸의 흰 피 석 달 열흘, 어머니 몸의 검은 피 석 달 열흘, 아홉 달 스무날을 채워 출산시켜라.”
“어디로 어떻게 출산을 시킵니까?”
미쳐 대답을 듣기도 전에 아버지 불호령이 떨어져 무쇠상자는 닫히고 동해바다에 떠돌다 어느 육지에 다다랐다. 무쇠상자를 발견한 임보로주는 애기씨의 사연을 듣고 무엇을 할 줄 아느냐고 물었고, 무엇이든 시켜만 주면 하겠다고 하여, 임보로주, 즉 임박사가 우리 부부가 쉰 살이 되도록 자식이 없으니, 아내 몸에 아기를 넣어달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아이가 생겼으나 아홉 달 스무날이 넘어도 아기가 나오지 않았다. 출산을 못 시키니 산모가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놀란 용궁따님애가가 하늘을 우러러 울기 시작했고, 임보주로도 용궁따님애기를 원망하면서 울었다. 그 울음소리를 들은 옥황상제가 사연을 알아보게 하였고, 임박사가 원통해 우는 소리라고 듣고는 인간세상에 생불왕으로 들어 앉을 이가 있는지 알아보라고 하였고, 명진국에 한 착한 따님애기가 있는데, 그 애기씨를 생불왕으로 세우는 것이 마땅하다고 해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러나 이 애기씨 옥황상제를 뵙고는
“상제님예, 철도 모르고 때도 모르는 어린 처녀가 어찌 생불왕이 될 수 있습니까?”하고 원망하자
“아비 몸에 흰 피 석 달 열흘, 어미 몸에 검은 피 석 달 열흘, 살을 살아서 석 달, 뼈를 살아서 석 달, 아홉 달 스무날을 채워서 아기 어미 뻣뻣한 뼈를 늦추어 열두궁 자궁문으로 출산시키면 되느리라.”고 했다.
명진국따님애기가 인간 세상의 생불왕을 명 받고, 임박사네 집으로 들어가 비단 치마 벗어놓고 짚자리에 올라앉아 아기 어미 열두궁 뼈를 늦추어서 자궁문을 열고, 은가위로 아기 코를 건드리니 양수가 터지고 고운 아기가 나왔다. 참실로 배꼽 줄 묶고 은가위로 싹둑 자르고 아기를 번쩍 치켜드니 응애응애 목놓아 울었다. 아기 울음소리에 수양버들 아래에서 울고 있던 동해용궁따님애기가 놀라 들아보았다.
“나는 동해용궁따님애기로 인간 세상에 생불왕으로 왔는데, 너는 대체 누구냐?”
“나는 명진국따님애기로 옥황상제의 분부를 받고 인간 세상 생불왕으로 내려왔소.”하고 답했다.
용궁따님애기는 자기가 잉태시킨 아기를 누구 마음대로 출산시키느냐며 달려들어 머리채를 잡고 흔들었다. 명진국따님애기가 억울해 옥황상제께 하소연함으로써 둘을 하늘로 불러올렸다. 옥황상제는 둘에게 시합을 시켰는데, 두 번의 시합에서 명진국따님애기가 모두 이겼다. 이로써 이승에서의 일은 명진국따님애기가, 저승의 일은 용궁따님애기가 맡도록하였다. 이후 인간을 보살피고 인간에게 자식을 불어넣고 순산시켜주고, 병 없이 아기가 자라도록 보살피는 일은 이 명진국따님애기 즉 삼승할망, 즉 삼신할미의 역할이 되었다.
내륙지방에는 당금애기 또는 삼신할머니라고 부르는 이야기가 있지만 좀 길다. 동해안 지역에서 전승되는 자료를 기초로 삼신할머니 이야기를 요약하면
당금아기씨 원 같은 방 안에 누워 있는데
얼굴은 돋아오는 반달이요
어찌 곱게도 어여쁘게 맴짜게 잘도 생겼는지
백옥같은 젖통을 내놓고 누웠으니
시준님*이 난데 없이 상사병이 일어난다. *시준님은 화주승
얼굴이 붉으락 희락 붉으락
시준님도 도술로 피우더니만
난데없이 왕거미가 되어가지고
병풍으로 굼실굼실 넘어간다.
아가씨 머리맡에 쪼그리고 앉더니만
아가씨 자는데 단침 이불 속으로 굼실굼실 기어들어가더니
아가씨 가는 허리를 아드밥싹 끌안고
죽을지 살지 살지 죽을지
바꿈 줄여 끌안고 입을 쪽쪽 맞춘다.
우리 신화에서 드물게 보는 애로틱한 대목이다. 신성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이것이 현실적인 삶의 모습이다. 인간의 삶에서 성만큼 강렬하고 진솔한 유혹이 또 있을까. 자신의 분신을 낳는 과정이며,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과정이 성인 것이다. 하늘이 아는 성스러운 일 말이다. 신은 인간과 질적으로 다른 고상한 존재임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신성한 결연의 과정을 인간적·세속적으로 전하는 우리의 사제(司祭)들이다.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혼례라는 통과의례를 거치면 거부할 권리조차 없이 옷을 벗기고 사내의 몸을 받아들여야 했던 우리네 여인들에게 사내의 손질은 왕거미 같은 느낌이었을지 모른다.
‘삼승할망’혹은 ‘삼신할머니’라고 부르는 그 아름다운 처녀 신들은 이제 정말로 할머니가 되어 있을까. 사람들이 그 이름조차 알지 못하고, 찾아주지도 않는 지금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의술이 발달하고 출산하는 방법도 발달해 아이들이 탈 없이 술술 태어나는 세상, 아마도 그들은 이런 세상을 사랑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을까.
(3) 그리스 신화에도 그렇지만 우리 신화에도 신들이 아주 많다. 그것도 아주 가까이에 있다. 하늘에 옥황상제, 바다나 강, 호수에는 용왕이 있고, 땅에는 지부사천왕이, 산에는 산신이, 마을에는 마을 수호신 가신(家神)과 조상신이 있다. 마을신은 당산에 모신다. 골매기신·본향(本鄕)이라고도 하는 이 신은 서낭당이나 큰 바위 혹은 큰 나무 같은 마을의 신성한 장소에 깃든 것으로 여긴다. 신이 깃든 나무는 신성한 것으로 여겨 함부로 손대지 않으며, 때에 따라 띠를 두르고 음식을 갖춰 정성을 드리곤 한다. 삼신과 칠성, 제석신도 집 안에 모시고 안녕과 풍요를 빌곤 한다. 신들 가운데는 낯선 곳에서 찾아오는 무서운 신도 있다. 무서운 질병을 갖고 오는 ‘손님마마’는 강남천자국에서 산을 넘고 강을 건너서 온다. 저승사자는 그보다 먼 곳 황천수 건너 저승으로부터 이승으로 건너와 수명이 찬 사람들과 신들의 노여움을 산 사람들을 붙잡아 데려간다.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모르는 존재이기에 그만큼 무섭다.
무속인들의 숭배 대상이고 연극과 뮤지컬로 꾸며져 널리 알려진 신화의 주인공은 ‘바리’다. ‘바리데기’라고도 하는 우리 민족 숭배신이다. 저승신으로 염라대왕과 저승사자보다도 먼저다. 홀홀단신, 어린 몸으로 저승을 다녀오고 병든 아버지를 구해낸, 그래서 오구신이 된 바리는 길 위의 신이다. 하지만 그녀는 일찍이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았다.
먼 옛날 이땅 어디에 오구대왕이 다스리는 불라국이 있었다. 젊고 유능한 왕은 길대부인을 왕비로 맞아 아들을 낳고자 하였으나, 딸만 여섯을 낳자 근심이 쌓였다. 그런 길대부인이 일곱째를 잉태했다. 이번에는 태몽이 남달랐다. 궁궐의 대들보에 청룡·황룡이 엉켜 있고, 보라매와 백마가 보인데다 양어깨에는 해와 달이 돋기도 했다. 태몽을 전해 들은 오구왕은 무릎을 탁 쳤다.
“이번에는 반드시 태자 대군을 보리라.”
그러나 이번에도 딸이었다. 오구왕은 “내가 전생에 죄가 많아 천지신명이 딸을 일곱이나 점지하셨구나. 보기도 싫으니 함에 넣어 서해바다에 버려라.”고 명령했다. 길대부인은 임금의 명을 돌이킬 힘이 없었다.
어머니와 생이별한 바리는 노부부에게 발견되었고, 바리를 버린 것이 죄스러워 오구왕은 웃음을 잃고 마침내 병석에 눕고 말았다. 세상의 용한 의원을 불러대고 좋다는 약을 써보았지만 한번 자리에 누은 왕은 일어날 줄을 몰랐다. 그런 어느 날 노승 하나가 길대부인에게 시주를 받고, 떠나면서 오구왕에 대해 “이는 일곱째 공주를 버린 탓으로 하늘이 내린 벌입니다. 왜 공주를 찾지 않으십니까?”라고 했다. 그러면서 “서천서역 지나 저승 깊은 곳 동대산 동수자의 약수를 구해다 먹이면 대왕을 살릴 수 있고, 그 일은 공주만이 할 수 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길대부인은 여섯 딸들을 불러놓고 노승의 말을 전하며 부탁했으나 콧방귀만 뀌면서 그 험한 서천길을 갈 수 없다고 했다. 보다 못한 시종 하나가 바리공주를 찾겠다면서 떠났고 태양서촌에서 바리공주를 찾아 마침내 어머니와 만나게 했다. 아버지 병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자기가 아버지를 살리겠다고 나섰다. 바리는 엎어지고 넘어지면서 서천서역으로 떠나, 냇가에서 빨래하던 할머니 빨래를 도와주고는 길을 물으니 할머니는 곧장 가다가 열두 고개를 더 넘어야 한다고 했다. 천태산 마고할미가 바리공주를 시험한 것이었다. 마고할미가 말한 열두 고개라는 것은, 노인 죽은 짝지고개, 할머니 죽은 망령고개, 총각 죽은 몽달고개, 처녀 죽은 보따리고개, 시아버지 죽은 호령고개, 시어머니 죽은 잔소리고개, 아이 죽은 사랑고개, 손주 죽은 처실고개, 며느리 죽은 조실고개, 사위 죽은 도둑놈고개, 나무 많아 청산고개, 돌 많은 돌산고개들이다. 고개를 넘을 때마다 귀신이 막아섰으나 바리를 막을 수는 없었다.
천신만고 끝에 저승에 도착해 약수를 구했으나, 오구왕은 이미 죽었다는 소문을 들은 바리는 맥이 탁 풀렸지만, 큰아이는 걸리고, 둘째는 없고, 셋째는 안고 길을 재촉하는데 어디선가 행상소리가 들렸다.
널 널 너하오 너가리 넘차 너하오.
간다 간다 떠나가네. 오구대왕님 떠나가네.
황천길이 멀다더니 대문 앞이 황천이네…
북망산천이 멀다더니 저기 저 산이 북망산일세…
널 널 너하오 너가리 넘차 너하오.
바리공주는 뛰어가 상여를 부여안고 약수를 구해왔으니 제발 나를 보고 가라고 울부짖었다. 길대부인도 마지막 모습을 딸에게 보여주라고 했다. 바리는 천태산 마고할미에게서 받은 꽃으로 아버지의 시신을 쓰다듬고, 아버지 입에 약수병을 기울이자 아버지가 숨을 쉬면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 후에 바리는 나라도, 부귀도 물리치고 오구신이 되어 저승으로 가 저승으로 들어가는 영혼들을 인도하게 되었다. 그리고 세 아들은 시왕이 되었다. 저승으로 가는 길에는 바리가 있다. 우리의 영혼이 육신을 떠나 저승으로 들어가는 날 그를 만나게 된다. 자신을 버린 아버지를 용서하고 그와 하나가 된 바리공주, 제 몸을 던져 아버지 죄를 씻으려 나선 바리, 그가 감싸지 못할 원한이 무엇이며, 그가 씻지 못할 죄가 무엇인가. 삶 자체가 한을 피할 수 없고 죄를 면할 수 없다. 바리는 무당들에게 각별한 존재다. 온몸을 바쳐 신성한 직무를 감당하면서도 천대와 외면을 벗어날 수 있었던 천민 사제들이 조상신으로 모시는 존재가 바로 바리다. 자신의 초상을 본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4) 신화의 꽃은 뭐니뭐니 해도 영웅들의 이야기와 사랑 이야기다. 하지만 우리 신화는 웅장함이나 화려함보다 시련과 고통이 두드러지는 모습이다. 대별왕과 소별왕도 그렇지만 바리와 한락궁, 당금애기의 존재도 고독과 인생살이의 한으로 거기에 맞서 분투하는 인간의 모습들이다. 그렇다고 그런 이야기가 전부는 아니다.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었던 복수와 염라대왕을 만난 강림도령의 이야기를 만나보자.
옛날 이땅 한곳에 동경국이 있었고, 버물왕이 그곳을 다스렸는데 왕은 아들만 아홉 형제를 두었지만, 그리 행복하지 못했다. 그 형제들 가운데 여섯을 잃고, 겨우 셋을 거두었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큰아이가 열두 살, 가운데가 열한 살, 작은 아이가 열 살이 되었을 때 궁궐 뒤 연못가에서 놀고 있었는데 웬 스님이 지나가며 쯧쯧 혀를 차자 아이들이 뒤쫓아가 “스님 왜 저희를 보고서 혀를 찹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스님이 “보아하니 온몸에서 복록이 넘친다만 앞으로 3년을 넘기지 못하겠으니 어찌 안타깝지 않을까.”하는 것이었다.
형제들이 궁궐로 들어가 아버지, 어머니께 스님을 말을 전하자 얼굴이 잿빛이 된 버물왕이 사람을 시켜 스님을 데려오게 하고는 스님으로부터 아이들이 3년 안에 죽는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사람이 죽을 길이 있다면 살길도 있지 않겠습니까? 방법을 알려주시면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
“지금 바로 아이들을 집에서 내보내 3년간 세상을 떠돌면서 장사하게 하면 혹 운수를 벗어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광양땅 과양생이를 조심해야 합니다.”고 말하고 떠났다. 그날 이후 아이들은 궁궐을 나서 장사 하면서, 감당하기 벅찬 운명의 날들이 계속되었다.
그렇게 3년이 지나자 형제는 고국인 동경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발길을 옮기는데 마음도 몸도 무거워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해도 저물고 배가 고파 고을의 커다란 기와집으로 들어가 먹을 것을 청하자, 젊고 예쁜 주인집 각시가 겨우 식은 밥 세 숟가락을 물에 말아 내주었다. 그것도 감지덕지 받아먹은 형제는 장사하던 재물을 거둬 각시에게 주자 주인집 각시 얼굴빛이 바뀌더니 형제들을 집 안으로 데려가 고기와 술까지 한 상 가득 내주며 권했다.
형제들은 못 먹는 술을 석 잔씩이나 마시자 휘청거리며, 머리 간 데 발 가고 발 간 데 머리 가서 그만 풀썩 꼬꾸라지고 말았다. 주인집 각시 입가에 웃음을 띠고 “저 귀한 재물이 이제 내 것이야!”하면서 광에서 3년 묵은 참기름을 내와 숯불에 졸여 귀속에 소르르 부으니 삼형제 구름산에 얼음 녹듯 말한마디 못하고 죽고 말았다. 주인 각시가 누구던가. 광양땅 과양생이 아내 과양각시였다. 이들 부부가 늘상 해오던 일이었다. 과양생이와 과양각시는 죽은 형제를 둘러매고 집 뒤 연화못에 큰 돌을 매달아 풍덩 빠뜨리니 속절없이 가라앉고 말았다.
며칠 뒤 각시가 동정을 살피려고 대바구니에 빨래를 담아 못에 가보니 난데없이 붉은꽃·노란꽃·파란꽃, 삼색 꽃이 물 위에 떠 있었다. 과양각시 그 꽃을 꺾어다가 대문에 꽂아 두니 참으로 볼만했다. 그런데 꽃들이 성질이 고약해 각시가 집 밖으로 나가면 머리채를 잡아끌고 밖에서 들어와도 머리채를 잡아끌었다. 과양각시 꽃이 곱기는 하다 마는 행실이 고약하다며 꽃 세 송이를 손바닥에 놓고 박박 비벼서 화로 숯불에 털어 넣어버렸다. 꽃들은 바스락 타버렸다.
그날 밤 청태국에서 시집와 혼자 살고 있는 청태할망이 찾아와 불씨를 좀 빌려달라고 했다. 각시 고개짓으로 화로를 가리켰고 청태할망 화로를 뒤지다 말고, “화로에 불은 없고, 삼색 구슬이 오골오골 나오니 왠일이오?”한다.
과양각시 쪼르르 달려가 구슬을 재깍 빼앗고는 “만지지 마, 내 구슬이야!”구슬 세 개를 굴려보고 만져보다가 입에도 넣어봤다. 감촉이 감미롭고 상큼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구슬이 사르르 녹으며 목구멍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열 달 뒤 과양각시가 산기를 느껴 청태할망을 불러 해산했는데, 아들을 셋이나 낳았다. 자식이 없던 과양생이와 각시는 입이 함박처럼 벌어졌다. 삼 형제 재주는 커가면서 점점 더해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알았다. 형제들이 열다섯 살이 되던 해에 나라에서 인재를 뽑으니, 삼 형제가 나란히 1,2,3등을 하고 금의환향했다. 삼 형제가 부모에게 큰절을 올리는데, 셋이 바닥에 손을 대고 엎드리더니 일어나지를 않았다.
“애들아 됐다. 이제 그만 일어나거라.”재촉해도 일어나지도 움직이지도 않아 과양각시가 달려가 큰아들 머리를 들어보니 눈동자가 돌아갔고, 둘째는 입에 거품을 물고 있고, 막내는 온몸에 검은 피가 엉켜 있는 것이 아닌가. 세 아들은 모두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세상에 이런 법도 있는가. 이게 무슨 일인가.”하고 넋 나간 과양각시가 펄쩍펄쩍 뛰었지만 속절없는 일이었다.
자신의 과업을 인정했으면 좋으련만 과양각시 아들 셋이 급살한 것은 누군가의 음모라며 원님께 “이대로는 못 살겠다. 어떻게 된 일인지 영문이나 밝혀주오.”하면서 상소했다. 김치원님이 아무리 생각해도 영문을 알 수가 없어 고민하는데 “당신 밑에 영특하다고 소문난 강림도령이란 자가 있지 않소”하는 마누라 말에 “강림두령이 아무리 솜씨가 좋아도 이 일을 어찌 해결하겠소?”하자, 마누라가 “저승에 보내 염라대왕을 불러오면 되지요.”한다. 긴가민가하면서 김치원님이 강림도령을 불러 일을 맡겼다. 이때부터 강림도령의 고민이 시작됐다. 열여덟 명이나 되는 마누라들한테 물어보았지만 신통한 답을 내는 년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하는 생각에 수십 년 만에 첫번째 마누라를 찾았는데 “설운 낭군님아, 이게 얼마 만이오. 무슨 바람이 불어 여기까지 다 찾아왔소”하는 마누라 방에서 이불을 뒤짚어 쓰고 끙끙대자 “이러는 이유가 무엇이요, 이유나 압시다”하는 마누라에게 사정을 이야기했다. 마누라가 처방을 주자 그에 따라 강림도령 어찌어찌해 저승에 당도해 염라대왕을 만났고, 당돌하게도 염라대왕의 팔뚝을 부여잡고 포승줄로 꽁꽁 묶었다.
염라대왕이 강림도령에게 포박됐다는 이야기도 그렇지만 염라대왕이 이승에 오겠다는 약속을 받고 돌아와 보니 단 3일간 일어난 일이 3년이 지나있었다. 집에 돌아온 강림도령 3년을 하루같이 기다린 마누라와 회포를 풀고 있는데, 마누라에게 눈독을 들이면서 주변을 맴돌던 김생원이란 자가 김치원님을 찾아가 “저승 간다던 강림도령이 각시 집에 숨어 살림을 차리고 있습니다.”라고 모함하여 고자질했다. 강림도령 원에 붙잡혀 와 “염라대왕을 잡아 오라고 했거늘 어찌 혼자란 말이냐!”고 다그치자 “조금 있으면 염라대왕이 행차할 테니 놀라지 마십시오”했고, 이내 먹구름이 일더니 염라대왕이 나타나 “이승의 왕이여 무슨 일로 나를 청했단 말이오”그러자 김치원님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다른 게 아니라 이 광양땅 과양생이 아들 삼형제가 한날 한시에 태어나 한날 한시에 죽은 연유를 여쭈려고 대왕님을 청하였습니다.”고 하였다.
염라대왕이 “그러면 당장 과양생이 부부를 불러오도록 하오.”했고, 그들을 데려오자 “너희 아들 삼형제가 죽었다고 하니 어디에 묻었는지 고하라”고 했고, 부부가 가르쳐 준 곳을 파보니 시체는 보이지 않았고 칠성판만 묻혀 있었다. 그리고 같이 뒤천당 연화못으로 가 금부채로 물을 모두 빼내니 버물왕의 아들 삼형제의 죽은 시체가 나타났다. 염라대왕이 삼형제에게 “원수는 내가 갚아 줄 테니 아버지, 어머니를 찾아가도록 하라. 너희를 기다린 지 오래다.”하고는 과양생이 부부의 팔다리를 줄로 묶은 뒤 소를 사방으로 몰게 하니 이게 능지처참이 아니던가. 아름다운 설화인지 기막힌 설화인지 모를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5) 우리 민간신화의 주류는 무속신화다. 오랫동안 민간생활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생사고락을 함께해 왔기 때문이다. 무속은 민중 신화, 나아가 민족 신화라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제의(祭義)를 통한 신화에서 질긴 생명력을 부여한 덕에 생생하게 그들을 만날 수 있다.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에는 천지라는 큰 못이 있고, 상상봉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김일성 부자의 이야기까지….
한때 백두산 일대는 아름다운 산천으로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이었으나 어느 날 흑룡이 나타나 물골을 막아버림으로써 사람들이 모두 떠나 폐허가 되었다. 그러나 백장군이라 불린 백씨총각만은 남아 지키고 있었다. 어느 날 백두산 마을을 다스리던 봉왕의 외동딸이 백씨총각을 찾아왔다. 흑룡의 조화로 초목과 오곡이 모두 말라 죽어 사람이 살 수 없게 되어 사람들이 떠났는데도 혼자 남아 흑룡과 싸우려 한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것이었다. 공주는 백씨총각에게 “예로부터 청석봉 옥장천 물을 석달 열흘간 마시면 천하무적의 장사(壯士)가 된다는 말이 있다.”면서 옥장천을 찾아보자고 했다.
둘이 그 샘을 찾아서 마시고 천하무적 장사가 된 백장사는 공주와 땅을 파기 시작해 거대한 물줄기를 솟게 했다. 그것이 천지라고 한다. 그러나 그때 검붉은 흑룡이 다시 나타났다. 하지만 백장사는 예전의 백씨총각이 아니었다. 흑룡의 불칼은 백장사의 무쇠칼을 당하지 못했다. 싸우다 어디론가 숨어버린 흑룡은 영영 사라졌다. 그러나 지금도 가끔 흑운과 백운이 교차하며 번개와 천둥이 치고, 비가 오고 우박이 쏟아지고 또 폭발의 위험을 안고 있는, 조화가 무쌍한 백두산은 마음 놓을 수가 없다. 그것은 흑룡이 앞으로 어떤 조화를 부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백장군 부부가 천지를 지키고 있는 한 무사하지 않을까.
물길을 지져버리는 흑룡의 불칼, 그에 맞서 파낸 거대한 연못, 흑구름 백구름과 맞부딪친 한판 승부, 영웅을 되살리는 여인의 눈물, 쉽게 만날 수 없는 대륙적 상상력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흑룡이란 필경 자연재해일 것이다. 예고 없이 불쑥 찾아와 사람들의 삶을 뒤흔들곤 하는 그것은 화산 폭발을 연상시킨다. 하늘을 향해 거침없이 솟아오르는 검은 불꽃, 흑룡이 아니겠는가. 백두산은 원래는 화산이었다. 백장군과 공주가 파냈다는 천지는 대자연에 맞서 분투하며 삶의 터전을 닦은 인간 의지의 상징이 아닐 수 없다.
(6) 바람·돌·여자가 많다는 삼다도에 많은 것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민간에 전해지는 신화다. 지금까지 만난 신화의 대부분이 제주도가 고향이다. 제주도에는 마을 신을 본향이라고 하는데, 한라산 또는 푸른바다를 바라보는 본향이 여럿 있다. 한라의 마을 신들은 영웅적 면모가 두드러지고 하늘과 땅, 산과 바다를 마음껏 가로지르며, 그 몸짓에 거침이 없다.
소천국은 강남천자국 백모래밭에서 태어났다. 그가 천기를 짚어보니 제주 땅 일송당에 배필이 될 백주또가 살고 있었다. 소천국은 일송당으로 백주또를 찾아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둘은 5형제를 낳고 여섯째를 잉태 했을 때 백주또가 소천국에게 말했다.
“소천국님아, 아이들이 이렇게 많이 나는데 놀고서 살 수 있겠습니까? 이 아이들을 먹여 살려야 하니 나서서 농사를 지어보오.”
이튿날부터 소천국이 주변 땅을 개간하기 시작했는데, 백주또가 점심을 해 가지고 왔으므로 밭 가에 두고 가라고 하고 혼자 밭을 갈고 있었다. 그때 태산절 중이 지나가다가 소천국에게
“잡숫던 밥 있으면 한술 주시어 허기를 면하게 해주오.”
소천국이 아내가 두고 간 것을 가르키자 태산절 중이 밥 아홉동이와 국 아홉동이를 하나도 남기지 않고 먹고 가버렸다. 그런 줄 모르고 소천국이 점심을 먹으려다 보니 밥과 국이 한 점도 없었다.
시장기를 참지 못한 소천국은 밭 갈던 소를 잡아서 찔레나무 적꼬치에 꿰어 구워 먹었다. 그러고도 허기가 차지 않아 건너 묵은 띠밭에서 풀을 뜯고 있던 남의 검은 암소까지 잡아먹었다. 그때서야 겨우 배가 찼다. 그리고는 소 없이 밭을 갈기 시작했다. 백주또가 빈그릇을 찾으러 밭으로 나와서 보니 소는 간데없고 남편이 배떼기로 밭을 갈고 있었다. 백주또가 기가 막혔다. 그것도 남의 소까지 잡아먹으니 도둑놈이 아니냐며 같이 살 수 없다면서 헤어져 따로 살기로 했다. 백주또가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세 살이 되자, 부모 없는 자식을 만들 수 없다며 지아비를 찾아갔다.
미워도 자식이라고 소천국이 아이를 끌어안자 아이가 제 아버지 수염을 잡아당기면서 가슴을 두드렸다. “이놈이 지어미 뱃속에 있을 때도 일이 글러서 살림을 분산시키더니 태어나도 행실이 이러니 죽일 수도 없고, 동해바다에 버리리라.”면서 무쇠상자에 넣어 동해바다에 훌쩍 띄워버렸다. 얼마 뒤 용왕국에 풍운조화가 일어나더니 밤에 글 읽는 소리가 들려 용왕이 딸들에게 무슨 일인지 알아보게 하였다. 상자 속에는 도령이 단정히 앉아 글을 읽고 있었다. 용왕이 물었다.
“그대는 어디서 왔는가?”
“해동조선 남방국 탐라섬에서 왔습니다.”
“무엇하러 왔는가?”
“강남천자국 반란을 막으러 왔습니다.”
용왕이 범상치 않게 여겨 딸들에게 음식을 내주라고 하였으나, 큰딸과 둘째 딸은 싫다고 하고 셋째 딸이 흰밥과 시루떡을 지어내주었다. 그러나 백주또의 아들 궤네깃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조선 남방국 장수님은 무엇을 잡수십니까?”
“내 나라가 작다지만 돼지도 소도 통째로 먹습니다.”
막내딸이 용왕에게 아뢰자 용왕이 돼지 잡고, 소를 잡아 주고는 둘을 부부로 맺어주었다. 그렇게 날마다 돼지 잡고, 소를 잡으니 용궁의 창고가 다 비어가기 시작했다.
“이러다가는 나라가 다 망하겠다. 여자는 출가외인이라 했으니 서방을 따라가거라.”하고는 타고 온 무쇠상자에 셋째딸까지 넣어 바다에 띄워 보냈다. 무쇠상자는 바다를 떠돌다 강남천자국에 이르자 여기서도 풍운조화가 일어났다. 왕이 무쇠상자를 가져오게 했으나, 도저히 열리지 않았다. 일관에게 물으니 천자가 네 번 절해야 열린다고 해 천자가 절하자 상자가 열렸다.
“그대는 어디서 왔는고?”
“나는 조선 남방국 소천국의 아들로 어머니 나라를 침범한 오랑캐를 토벌하러 왔습니다.”천자가 기지창검과 갑옷을 내주자, 적을 크게 무찌른 소천국 아들 궤네깃또를 천금상과 만호부로 봉하려 했으나 싫다고 하면서 “본국으로 돌아가게 해주오.”한다.
천자가 그 뜻을 받아들여 큰 배를 지어 양식을 가득 싣고 떠나게 했다. 궤네깃또가 제주섬에 도착하니 그 기세가 대단하고 소란했다. 소천국이 하인을 시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소천국님이 죽으라고 무쇠상자에 넣어 띄운 아드님이 3천 군사를 이끌고 아버지를 치려고 돌아왔습니다.”하는 보고를 받고 놀라 도망가다가 그만 죽고 말았다.
궤네깃또는 재물을 준비해 아버지, 어머니 제사를 지냈다. 이일이 있은 뒤로 귀네기 오름에서는 돼지잡고 소를 잡아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생겼다고 한다.
신화에 보면 소천국은 이 땅의 무지랭이인데 반해, 백주또는 이국땅에서 바다를 건너왔다고 되어 있다. 토착신과 이주신의 만남이고 또 백주또에게는 소가 농사일에 꼭 필요한 도구지만 소천국에게는 먹잇감으로 보일 뿐이었다. 결국 서로 융화를 이루지 못하고 갈라지는 갈등 속에 궤네뒤또는 갈등을 확인시켜주는 존재다. 그러나 궤네깃또는 땅과 바다를 평정한 존재다. 소천국과 백주또는 어슬프게 죽었지만, 새로운 세상이 시작됨을 알리는 상징이기도 하다. 한라인들의 자부심은 바다와 대륙을 평정한 원시의 힘과 문명적 능력을 한 몸에 갖춘 절세영웅이고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시고 있다. 이들에게 돼지 아니라 소 한 마리를 통째로 바쳐도 아깝지 않을 터이다.
(7) 한라산 백록담에서 솟아난 ‘천자또’는 일곱 살이 되자 이미 천문지리에 통달하고 하늘의 명을 받은 한라산 수호신에다 세화마을 사람들로부터도 추앙을 받았다. 그 무렵에 서울 남산 가는대밭에서 백조애기가 태어나니 천자또의 외손녀다. 백조애기가 아버지 눈에 나 집에서 쫓겨나자 용왕국으로 가 외삼촌들의 도움으로 도술을 익힌 뒤, 아버지에게 지난 잘못을 사죄하고 용서를 빌었으나 아버지는 매정하게 저 갈 데로 가라며 내쫓았다. 백조애기는 눈물을 머금고 한라산 외할아버지를 만날 요량으로 남해로 갔으나 사공이 “제주 여인은 밖에 못 나가고 뭍의 여인은 제주를 못 가는 법이니 배를 빌려줄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백조애기가 요술을 부려 배를 얻어타고 제주에 닿아 백록담에 올랐으나, 외할아버지 천자또는 보이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외할아버지를 찾았으며 외할아버지가 “너는 무슨 음식을 먹느냐?”고 하고는 방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방에 들어가자 피냄새가 진동을 했다. 사연을 물으니 외할아버지가
“어떤 놈이 감히 내 외손녀가 오는데 겁탈을 하려 했단 말이냐? 그놈을 죽였으니 이후로는 그놈이 사는 마을과 인연을 끊어리라.”고 한다. 백조애기가 생각하니 오던 길에 멍동소천국의 소도둑에게 속아서 까닥하다가 당할 뻔한 생각이 났고, 천자또는 이미 그 일을 알고 있었다. 멍동소천국에 엄벌을 내린 천자또는 자신의 손녀인 백조애기가 자신을 대신해 세화마을의 성김을 받도록 했다. 이때부터 백조애기가 세화마을 본향이 되었고, 2월 영동 손맞이 제사, 7월 마불림 제사, 4월 시만국 제사를 받도록 했다.
이 신화에 보면 천자또가 손녀딸에게 음식은 무엇을 먹느냐고 묻는다. 그만큼 정갈한 음식을 먹느냐는 뜻이겠고 또한 순결을 목숨처럼 여겼던 것이 제주 사람들이다. 한라는 미개의 땅이 아니라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어떤 결벽성을 지니고 있다. 거꾸로 된 세상을 바로 보는 이들이 그들이었다. 천자또와 백조애기를 섬기는 사람들에게, 그들을 자신의 표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그런 차별적 통념은 이미 그들의 것이 아니다.
(8) 우리 민간 신앙에서 가장 많은 기원의 대상은 산신일까, 조앙신일까 아니면 성당황? 아니다. 칠성신이다.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찾는 신이 칠성이다. 세상 어느 땅에나 칠성님은 있다. 등에 일곱 개 별 모양이 있다고 해서 그렇게 불렀다. 북두칠성이 그 신이다.
칠성님이 혼인할 나이가 되었으나 용모와 재주가 걸맞은 짝을 찾기 어려웠다. 수소문 끝에 겨우 지하국 매화부인을 아내로 맞아 칠월칠석날 혼인했다. 겉으로 보기에 둘은 천생연분이었으나 세월이 흘러 3대 독자 칠성님과 4대 무남독녀 외동딸인 매화부인이 자식을 기다리는 마음은 한량없었다. 그래서 명산을 찾아 아들을 점지해 달라고 기원했다.
석 달 열흘을 기도하고 아이를 생산하던 날 아픔이 계속되더니 아들이 하나도, 둘도 아닌 일곱이 태어났다. 칠성님은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에 기뻐하며 부인을 찾아갔다가 천지를 진동하는 아이들의 울음소리에 그만 기가 질리고 말았다. 산짐승도 날짐승도 아닌데 아기가 일곱이라니? 칠성님 산모를 돌아보지도 않고 돌아서 버렸다. 남편의 행동에 억장이 무너진 매화부인이 식음을 전폐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칠성님이 찾아가 밥은 먹으라고 달랬으나
“이보시오 칠성님! 공들일 때는 무슨 말이고, 공들여 낳은 자식은 보기 싫단 말이 왠 말이오. 나는 세상을 하직해 염라대왕한테 갑니다. 당신은 새장가 가시구려.”하고는 죽었다. 자식 때문에 부인이 죽자 자식까지도 꼴도 보기 싫어졌다. 하인을 불러 아기들을 고기밥이나 되게 내다 버리게 했다. 그러나 그때 천지가 개벽한 듯 번갯불이 오락가락, 장대비를 퍼붓더니 땅에서 소리가 들렸다.
“그 아이는 하늘이 아는 아기니라 어찌 함부로 버리려 하느냐? 하루에 젖 세 번, 물 세 번만 먹이면 탈 없이 자라리라.”칠성님이 놀라 아이를 버리지 못하고 유모에게 맡겼다.
칠성님은 그후에도 아이 돌볼 생각은 않고, 천하궁 용예부인을 후실로 얻어 일곱 형제들과는 따로 살았다. 일곱 형제가 자라 아버지, 어머니는 누구이며, 어디 사느냐고 졸라대자 유모가 사실대로 말해 주었다. 그래서 형제가 아버지를 찾아 나섰다. 한때는 아이들을 버렸지만, 아이들이 찾아오니 반가웠다. 하지만 용예부인은 달랐다. 머리가 지끈지끈하고 사지가 떨렸다. 용예부인이 점점 죽어가는 시늉을 하자, 칠성님이 점쟁이를 불러 점을 봤다. 부인과 짠 점쟁이가 일곱 형제의 간을 먹어야 낳는다고 하니 칠성님까지 고민고민이 되었다. 일곱 형제가 아버지로부터 사연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 정 그렇다면 우리 간을 꺼내 가세요.”하고는 아버지와 산에 올라가 간을 꺼내게 하려는데 흰사슴으로 변한 어머니 매화부인이 나타나 자신의 간을 내주었다. 자식들이 간을 아버지께 전하고, 칠성님이 자리에 누운 용예부인한테 전하자 용예부인 화색이 변했다.
간을 먹는 척 입술에 피를 바르고 슬쩍 자리 밑에 숨기고 일어나
“그 간을 먹으니 정신이 맑아지고 기운이 납니다. 신통하기도 하지.”
그때 일곱 형제가 방으로 들어오자 용예부인이 기겁을 하고 칠성님은 자리 밑에서 간을 꺼냈다. 모든 것이 탄로 난 줄 알고 허겁지겁 방문을 열고 도망가는데 마른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 용예부인을 때렸다.
칠성님과 일곱 형제는 매화부인의 제사를 지내고, 나중에 일곱형제가 한날한시에 죽으니 영혼이 밤하늘의 별이 되었다. 북두칠성이 그 별이다. 인간 세상을 두루 내려다보고 불쌍한 이들에게 복을 주고, 명을 주고, 보살펴주는 칠성님은 이렇게 탄생했다.
(9) 인간관계에 있어서 부자관계 혹은 모자관계보다 복잡하고 감 잡을 수 없는 것이 남녀관계다. 동·식물을 막론하고 원초적인 종족 보존의 원리가 작동하기 때문일까? 둘이 하나가 되는 순간을 목표로 끝없이 상대를 향해 다가가고자 하는 욕망이라는 전차가 사랑 아닐까. 문제는 그 하나 됨의 시간이 영원이 아닌 순간이라는데 있다. 긴 갈구와 짧은 충족, 이래저래 남녀가 만나서 사랑을 나누고 삶을 함께한다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사랑을 수식하는 말로 ‘아름다움’이란 말이 쓰이지만, 그 말이 얼마나 문화적인지 설사 어떠한 문화적인 형식이 있다 하더라도 남녀관계에 있어 원형적 본질이 바뀔 수는 없다. 그것이 남녀관계의 마력이 아닐까? 서양 신화와는 질감이 다른 우리의 신화에도 사랑 이야기가 있다.
주년국의 주년뜰에 김진국과 조진국이 부부가 되어 살았다. 고대광실 높은 집에 느린 종이 아홉, 빠른 종이 아홉이나 되는 큰 부자였다. 하지만 부부 나이 마흔이 되도록 자식이 없어 시름이 컸다. 하루는 김진국 대감이 세상 구경을 나갔는데, 잘린 나무에서 새싹이 돋는 봄이었다. 봄을 가만히 보니 까마귀 둥지에서 새끼를 쳐놓고 어미가 벌레를 물어다 주고 새끼들이 오골오골 받아먹고 있었다. 또 길가에 다 쓰러져 가는 집에서는 거지 아이들이 배고픈 줄도 모르고 부모와 어울려 노느라고 웃음꽃을 피웠다.
집에 돌아온 김진국이 안에 능화자리, 밖에 꽃멍석을 깔아놓고 은당병 금봉채를 꺼내어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도 보았지만 웃음은커녕 한숨만 나왔다. 아내가 통영칠반에 음식을 차려서 내왔지만, 숟가락 들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내가 까닭을 물었지만 못 들은 척 대답이 없으니 아내의 두 눈에서 눈물이 글썽해졌다.
“서방님아! 아버지 몸의 뼈를 빌고, 어머니 몸의 살을 빌어 이 몸이 생겨나 이 세상 나올 적에 어머니 아버지 나 하나를 고이 길러 그대와 천상배필을 이루어 나이 마흔이 되도록 한솥밥을 먹고, 한 자리에 잠을 잤거늘 죽을 일이든, 살 일이든 어찌 말이 없단 말입니까?”
“부인님아! 그 말씀 듣고 보니 가련합니다. 우리가 고대광실 높은 집에 산들 그게 다 무슨 소용입니까? 까마귀도 새끼를 쳐서 벌레를 잡아 먹이고, 초막 안의 거지도 아이 새끼 놀리느라 해지는 줄 모르는데, 우리는 자식이 없으니 까마귀만도, 거지만도 못합니다.”
그 말에 아내가 말을 잇지 못해 부부가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수심이 더해갔다.
그때 동개남 은중절 화주승이 시주를 청하러 왔다가, 이 광경을 보고는 자식이 없는 사연을 듣더니
“우리 절 부처님이 영험하니 공을 잘 들이면 아들 자손을 볼 수 있습니다. 백미 일백 석과 물명주·강명주·초록명주와 은 백 근 열량을 정성껏 준비해서 수륙제를 들이소서.”
부부는 그 말을 믿고, 석 달 열흘 찬바람 밤이슬 맞아가며 정성을 다해 준비해 은중절로 향했다. 그런데 막상 길을 나서자 얼마 안 가서 힘겨워지고 발이 콩꼬투리처럼 부풀어 걷기가 힘들었다. 잠시 쉬어가기로 하고길가에서 쉬고 있는데, 지나가던 서개남 무광절의 스님이 사연을 듣고는 뜻밖의 말을 했다.
“그런 일이라면 멀리 갈 일 없이 우리 무광절에 수륙제를 들이십시오. 우리 절에 정성을 올려 덕을 본 사람이 여럿입니다.”
부부는 발도 아프고 해서 “그리하십시오”라고 해 버렸다.
동개남 은중절에서 공양을 기다리던 스님이 그 사실을 알고 벌컥 화를 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부부는 은중절 대신 무광절에 정성을 드리고 나서 아이를 잉태하고는 태몽을 꾸었는데, 김진국 대감이 청감주에 호박전을 안주로 술을 마시고 조진국 부인은 흰송낙(여승이 쓰는 모자)을 품에 안은 꿈을 꾸었다. 해몽하는 사람을 불러 물으니, 딸을 낳을 꿈이라 했다. 그런데 그때 하녀인 정술데기가 자신은 붉은 송낙을 품에 안고, 소주에 돼지고기를 안주로 먹는 꿈을 꾸었다고 자랑했다. 김진국 대감이 하녀를 타박하자 꿈풀이 하는 이가 나서서 말했다.
“이 또한 태몽입니다. 아들을 낳을 꿈입니다.”
그 뒤에 조진국 부부가 아이를 낳으니, 해몽대로 여자아이였다. 부부는 아이 이름을 ‘자청비’라 지었고, 같은 시에 하녀 정술데기는 아들을 낳으니 이름을 ‘정수남’이라 했다.
외동딸 자청비는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 용모는 여자인데, 행동거지는 남자 같았다. 가만히 있기를 싫어하고 일을 벌리기 좋아해서 이일 저일에 참견했고 비단 짜는 솜씨도 남달랐다. 자청비와 달리 정수남은 허우대만 멀쩡할 뿐 행동거지는 꿈뜨기 짝이 없었다. 틈만 나면 낮잠 자기 일쑤고 그저 먹은 일에만 재빨랐다.
“어휴 저 더럽고 게으른 녀석!”
자청비가 아무리 타박해도 헛일이었다.
그 뒤에 자청비는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하겠지만 이야기를 옮기려면 너무 길므로 요약하면
자청비가 열다섯 되던 해에 베틀에서 비단을 짜고 있는데, 정술데기가 주천강에서 빨래를 해와 늘고 있었다. 가만히 보니 정술데기 손이 너무나 곱고 하해 그 영문을 물으니 주천강 여울에서 빨래를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해 “나도 빨래하면 손이 고와질까?”물었고 “우리 같은 종들도 그런데 상전님은 더 고와집니다.”고 하여, 집안의 빨래를 모두 거둬 빨래를 하고 있는데, 옥황의 문곡성 문도령이 글공부를 나가다가 주청비를 보고 ‘아가씨가 너무 곱구나. 어찌 그냥 지나치리, 물이나 얻어먹고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수작을 걸었다.
주청비가 너무 급히 마시면 체한다면 바가지에 갈대잎을 띄워 주었다. 그리고 물었다. “도령은 어디서 온 누구며 어디로 갑니까?”공부하러 간다고 하자, “내 동생도 공부하려고 동행을 찾는 참인데, 벗 삼아 함께 가면 어떨까요.”하고 청했다. 그리고 잠시 집에 가서 남장을 하고 와서 문도령을 따라 3년을 물아래 거무선생한테서 공부했다. 문도령이 부모님께서 편지를 보내 ‘서수왕아기와 결혼하라 하신다’며 떠나겠다고 하자 못내 썹썹했던 자청비가 “이제 이 물을 건너면 이별인데 여기서 3년 묵은 떼나 씻고 가자”고 해 자청비는 주천장 위쪽에서 문도령은 아래쪽에서 목욕을 하는데, 문도령이 자청비가 띄워 보낸 버들잎에 “눈치 없는 문도령아, 3년간 한방을 쓰고 남녀 구분도 못하는 문도령아”라는 글짜가 쓰인 것을 보고는 놀라 위를 보니 삼단 같은 머리채를 드리우고 뛰어가고 있는 자청비를 따라가 자청비를 품에 안았다.
어느새 동이 터고 수탉이 울자 자청비가 말했다.
“이제 날이 밝았으니 떠날 때가 됐습니다. 옥황에 가면 언제 다시 오렵니까?”그러자 문도령이 박씨 하나를 내주며 말했다.
“이 박을 심어 박이 열려 따게 될 때까지는 돌아오지요.”
오매불망 문도령을 기다리는 동안에 정수남이 상전인 자청비의 마음을 얻으려고 온갖 수작을 부렸다.
“문도령이 돌아오기는 이미 틀렸어요. 그러지 말고 나하고 인연을 맺어 함께 삽시다.”커다란 허우대로 늑대가 병아리를 채듯 은근슬쩍 다가와 자청비를 안았다. 날이 저물고 인적이 드문 곳에서 우악스런 사내와 단 둘뿐이니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이에 자청비가 “이왕 이렇게 된 일이니 그리 하자꾸나. 그러나 밤을 지새우려면 움막이라고 있어야겠으니 어서 돌을 모아다가 움막을 지어봐.”하고는 정수남이 돌을 쌓으면 자청비는 구멍을 내어 밤새도록 실랑이를 하는 가운데 날이 새고 말았다. 정수남은 화가 났다. 이에 자청비가 “그러지 말고 내 무릎에 누워봐. 내가 이를 잡아 줄께”이에 화가 풀려 정수남이 무릎을 베고 눕자 밤새 잠을 못 잔 정수남은 스르르 잠이 들고 말았다. 참미래 덩굴 꼬챙이로 정수남의 귀를 푹 찌르니 정수남은 얼음산 녹듯 죽고 말았다. 하인을 죽여놓고 혼자 돌아가자 부모님이 물었다.
“하인을 데리고 길 떠나더니 너 혼자 돌아오니 어찌 된 일이냐?”
자청비가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자, 아버지가 대뜸 딸을 꾸짖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 계집아이가 종을 죽이다니.”
“아버지는 자식보다 종이 더 중하단 말씀입니까?”
“그 종은 죽을 때까지 우리 집을 위해 일할 사람이야. 그걸 모른단 말이냐?”
“그 종이 하던 일을 내가 다 하겠습니다.”
그리고도 아버지의 구박이 이어져 수모를 당하고 있는데, 인근에 사는 사라장자 집 뒷산에서 부엉이 하나가 울더니 집안이 흉험이 들었으므로 그새를 잡아 주면 시집 안 간 셋째딸을 배필로 주고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한다는 소문이 퍼졌다.
자청비는 그 부엉이가 정수남의 혼령인 것을 알고 그날 밤 사라장자 집 뒷산에 올라 “수남아, 수남아 네가 나 때문에 원한이 맺혔구나. 이리 내려와 내 품에 안기거라.”하자 부엉이가 자청비 가슴에 안겨 퍼덕이다가 숨을 거두었다.
다음 날 아침 자청비가 부엉이를 들고 사라장자한테로 가자, 사라장자 반색을 하고 “무엇이든 원하는 것이 있거든 말해보구려”했다.
“장자님은 서천꽃밭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긴히 쓸 곳이 있으니 환생꽃을 얻었으면 합니다.”
“그건 그리하리다. 하지만 그 전에 내 소원을 들어주구려. 나한테 시집 안 간 셋째 딸이 있으니 배필로 받아주구려.”
그러나 여러 날이 지나도 여자인 자청비가 셋째 딸을 안을 생각을 안 하자 서천꽃밭의 꽃을 줄 리가 없었다. 사라장자가 사위를 불러 연고를 묻자, 자청비가 “어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긴한 일을 앞두고 있어서 정성을 모으려고 그리한 것입니다. 길 떠났다가 돌아오면 해결될 일입니다.”고 하여 사라장자에게 약속대로 환생꽃을 얻어 정수남이 죽은 자리로 갔다. 자청비 환생꽃으로 온 몸을 문지르고 때죽나무 회초리로 죽은 몸을 세 번 두드리자 “아이고 아씨, 낮잠을 너무 오래 잤습니다.”하고 일어났다. 자청비 부모님께 종을 살려서 데려왔다고 하자,
“뭐라고 네가 사람을 죽였다가 살렸다가 하니 요망하기 짝이 없구나. 잡 안을 망칠 아이다. 어서 네 갈 데로 가거라.”하면서 내쫓았다.
자청비 비옥 같은 뺨에 염주 같은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면서 아버지, 어머니와 이별하고, 정들었던 베틀과도 이별하고 눈물다리 건너서 발길 가는 대로 걸어갔다. 자청비는 세상을 이리저리 방황하면서 갈 곳 없어 헤매던 어느 날 해 저문 산중에 희미한 불빛을 발견하고 거기로 향했다.
안을 보니 할머니가 베틀에 앉아 베를 짜고 있었다. 인기척을 내자 할머니가 “이 깊은 산중에 처녀가 왠일인고? 어서 들어오구려”할머니는 “나는 주모할미”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저녁을 차리러 나갔다. 그 사이 자청비가 베틀에 앉아 베를 짜자 할머니가 들어와 그 모습을 보고 “젊은 처녀가 어찌 이리 솜씨가 좋을꼬? 나보다 낫구나. 이런 재주 있는 처녀를 어찌 그냥 보내리. 내 수양딸이 되어 함께 살면 어떨까?”하므로 그렇게 하기로 하고 “이 비단은 어디에 쓸 비단인가요?”하고 물었다. “옥황 문도령이 서수왕아기와 혼인할 때 쓸 비단”이라는 말을 듣고 자청비는 눈물을 다르르 흘리더니 비단 자락 끝에다 ‘자련하다. 자청비, 불쌍하다. 자청비’라고 새겨 놓았다. 그리고 그 비단은 하늘로 올라갔고, 문도령이 그것을 보고는 자청비가 보고 싶어 안달이 낳다.
그리고는 시녀를 시켜 옛날 자청비와 목욕하던 곳의 물을 퍼오게 했고, 시녀들을 우연히 만난 자청비가 시녀들을 따라 하늘로 올라갔고, 달 밝은 밤 둘이 해후한 후, 문도령이 부모님을 설득해 서수왕아기와 혼인을 파기하고 자청비와 혼인할 것을 청하니, 옥황의 부모님 둘을 시험에 들게하고 불칼을 건너는 시합에서 자청비가 이김으로써 둘이 배필이 되었고, 둘의 혼인을 시기한 이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자청비 낭군대신 출전해 반란을 막겠다고 하고, 대신에 서방님은 사라장자 셋째 딸과 살다가 오라는 말에문도령은 사라장자 셋째 딸과 단꿈에 빠져 세월 모르던 문도령이 하늘로 올라가려고 하자 사라장자 딸이 문도령이 안 돌아올까 봐 걱정되어 말을 거꾸로 태워 보냈다.
하늘에서 자청비가 낭군의 모습을 보니 말을 거꾸로 타고 있어 “그새 나 보기가 싫어져서 저렇게 등을 지고 오는구나. 이래저래 어찌 살랴.”탄식하고는 옥황에서 갖은 곡식 종자를 얻어 인간세상으로 내려와 부모님을 찾았고 그간의 사연을 다 말했다.
“설운 아기야, 네가 살려온 종이라도 데리고 가거라.”하므로
자청비는 정수남을 데리고 세상의 농사일을 돌보러 나갔다. 사람들의 밭을 갈아주고 곡식 종자를 나누어주어 풍년이 들게 하니, 자청비는 중세경, 정수남이는 하세경이라는 농사신이 되었다. 자청비가 하늘에서 곡식 종자를 받아올 때 메밀씨를 깜박 잊고 안 가져와 다시 올라가 받아오니 지금껏 메밀이 다른 곡식보다 늦게 자라는 이유가 그것이다.
자청비가 하늘을 떠나 내려올 때 문도령과 관계는 어찌 되었는지 헤아리기는 쉽지 않다. 헤어졌다고 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다고 하는 자료도 있다. 다만 문도령이 상세경이 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헤어지고 말고가 무슨 상관이랴. 중요한 건 사랑의 본질 또는 인간의 본질에 있지 않을까 싶다. 욕망, 집착, 행복, 갈등, 회한 … 이 모두가 만남과 나눔의 길에서 펼쳐진다. 그래서 사랑은 간단하지 않은 것니다. 자청비와 한 몸처럼 움직이는 정수남처럼 … 한편의 터무니 없는 아이러니고, 한편의 운명적 귀결처럼 보이기도 하는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
(10) 우리 신화의 주인공은 왜 여성이 많을까? 우리네 삶이 좀 독특하기 때문이다. 철들만하게 되면 부모가 정한 짝을 만나서 좋든 싫든 살아야 하는 관습 말이다. 사랑해서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했으니 사랑하는 방식이다. 그게 어떻게 사랑이냐고 할 수 있겠으나, 그렇게 살아온 것이 우리들 방식이고 삶이다. 부부의 이야기는 자식이 등장하는 것이 일반적이겠지만, 자청비와 문도령의 이야기처럼 자식이 등장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성주풀이’와 ‘궁상이’신화도 그렇다. 성주풀이 신화다.
천하궁과 지하궁에서 한날한시에 경사가 났다. 천하궁 천사랑과 지하궁 지탈부인이 짝을 맺었다. 둘이 혼인한 지 열 달 만에 사내아이를 낳으니, 용의 소리를 낸다하여 ‘황우양씨’라고 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재주가 남달랐다. 흙으로 집터를 닦고 나무를 깎아 집 짓는 장난을 하는 데 그 솜씨가 놀라웠다. 청년이 되자 천하궁과 지하궁의 큰 공사는 모두 그의 차지가 되었다. 혼인할 나이가 되자 사방을 유람하면서 색시감을 찾다가 계룡산 자락의 작은 마을에서 물 긷던 처녀를 만나 배필로 삼았다. 신과 인간의 만남이었다.
막막부인이라고 한 아내와 덩그런 기와집에서 행복하게 살던 어느 날 대청마루에서 낮잠을 자는데 전에 없이 꿈자리가 어수선했다.
“예감이 안 좋군. 그동안 너무 태평하게 살았어.”
그러면서 갑옷과 투구를 꺼내 입고는 정신을 가다듬고 집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 무렵 천하궁에서는 난데없이 비바람이 불어닥쳐 기둥이 무너지는 변고가 일어났다. 옥황상제가 걱정하며 천하궁을 다시 세울 일을 의논하자 신하가 황우양씨라야만 이 일을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하자 상제가 키 큰 처사를 시켜 황우양씨를 불러오게 했다.
키 큰 처사가 황우양씨 집에 도착해 동정을 살피니, 갑옷에 투구 쓰고 엄한 자세로 경계하고 있는지라 담장 밖에서 우왕좌왕, 궁리를 짜내고 있을 때 황우양씨집 조왕신인 할아버지가 “왜 그리 허둥되는가?”하고 물었다. 옥황상제 명으로 황우양씨를 데리러 왔는데, 저렇게 엄하게 지키고 있으니 데려갈 방법이 없어 그런다고 했다. 그러자 조왕신 할아버지가 “내일 아침 동틀 무렵이면 갑옷과 투구를 벗고 부모님께 문안을 드리러 뒷동산에 오를 테니 그 틈을 타서 잡도록 하게”하고 일러 주었다.
“고맙습니다.”고 인사하고는 생각해보니 이상했다. 그래서 “황우양씨를 잡아갈 도리를 알려주는 까닭이 무엇입니까?”하고 묻자, 조왕신 할아버지가 말했다.
“황우양씨의 죄를 이를 테니 들어보게. 서방은 냄새나는 버선을 벗어 부엌에 팽개치니 그 아니 괘심하며, 아내는 식칼을 쓱쓱 갈아 부뚜막에 얹어 놓으니 그 또한 괘심하지 않은가.”
키 큰 처사는 뒷동산 고목나무 속에서 밤을 꼬박 새우고 새벽에 갑옷을 벗고 올라오는 황우양씨를 잡아 꽁꽁 묶었다.
“이게 무슨 짓이오.”
“나는 옥황상제의 명을 받고 내려온 처사입니다. 천하궁 누각이 무너져 성주를 이룩해야 하니 어서 나와 함께 갑시다. 한 시가 급하오.”
이에 황우양씨 석 달만 말미를 달라고 간청했으나, 처사가 안 된다고 해 겨우 3일의 말미를 얻어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서는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이루며 끙끙대자 부인이 물었다. 처음에는 “당신은 알아도 소용없는 일”이라고 하다가 마지못해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하고는“지금 나한테는 부러진 송곳 하나 없으니 무얼 가지고 천하궁을 짓는단 말입니까.”했다.
이에 부인이 “대장부가 그만한 일로 이래 걱정을 합니까. 일은 나한테 맡기고 잠이나 자세요.”한다.
그 말에 근심이 풀릴 리 없지만, 말을 하고 나니 졸음이 밀려와 잠들고 말았다. 잠든 사이에 막막부인이 먹을 갈아 부적을 짓고, 천하궁 지하궁으로 소지를 올려 간청하자 각종 연장과 옷감, 심지어 말 한 필까지 보내왔다.
잠에서 깨어난 황우양씨는 아내가 정성으로 준비를 마친 것을 보고는 아내에게 넙죽 절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고 길 떠날 채비를 했다. 그때 막막부인이 당부의 말을 했다.
“서방님, 길 가는 도중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누가 말을 걸더라도 절대 대꾸하면 안 됩니다. 또 천하궁 성주를 이룰 때 새 재목을 탐하지 말고 헌 재목을 중히 쓰도록 하십시오.”
“허어 대장부가 길 떠나는데 말도 많습니다. 알아서 할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렇게 집을 떠나 얼마 뒤 소진뜰을 지나는데 마치 지하궁에서 돌성을 쌓고 돌아오던 소진항을 만났다. 그냥 지나치려고 하는데 소진항이 말을 걸어왔다. 황우양씨가 대답을 않고 그냥 지나가자
“사람이 불러도 대답을 안 하니 후레자식이군.”
“가만히 있는 사람을 모욕하니 그대야말로 후레자식이군”이렇게 말을 섞고 말았다. 소진항이 ‘그럼 서로 비겻군’하면서 어디 가느냐고 물어 천하궁 성주를 이루려고 간다고 하자, 소진항은 “지금 내가 천하궁 터를 닦고 오는 길인데, 나를 안 만났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거기에는 내가 만지던 돌과 나무가 깔려있을 텐데 다른 사람이 만지면 목살이 퍼져 가는 자취는 있어도 오는 자취는 없을 것입니다.”고 하며 겁을 준다.
“그럼 어찌해야 합니까?”
“나하고 옷 바꿈, 도(道)바꿈을 하면 아무 탈이 없을 겁니다.”
“그러지요.”하고는 입고 있던 도포 적삼을 벗어주고 다 헤진 베옷을 받아 입었고, 타고 가던 좋은 말도 내주고 비루먹은 당나귀로 바꿔탔다.
이것이 불찰이었다. 황우양씨와 옷을 바꿔입은 소진항은 막막부인 홀로 남은 집으로 갔으나 부인이 대문을 걸어 잠그고 있었다. 소진항이 남편행세를 하면서 큰소리로 “서방님이 돌아오면 문을 열어야 하거늘 열린 문을 닫고 들어가니 이 무슨 짓이냐?”그러자 부인이 “우리 남편은 천하궁 성주를 이룩하기 위해 가셨는데, 벌써 돌아올 리 없소. 말투가 다른데 어찌 그대가 내 서방이겠소?”
“순식간에 성주를 짓느라고 음성이 달라졌을 뿐으로 여기 옷가지를 보아라”고 하면서 바꿔입은 옷을 담장 안으로 던졌다.
“도포 적삼은 내 솜씨가 맞지만 땀 냄새가 다르니, 죽이고 뺏어 입었는가 살리고 입었는가?”
그래도 대문이 열리지 않자, 소진항은 대문에 부적을 붙이고 주문을 외워 대문을 부수었다. 그리고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이래도 내 말을 듣지 않겠느냐? 네 서방은 벌써 저세상 사람이 됐으니 이제 나를 섬기거라.”
그러나 막막부인 오늘 밤은 돌아가신 친정아버지 제사로 제사를 모시고 난 뒤에 섬기겠다고 핑계 대고, 이튿날은 제사를 지내고 나서 내 몸에 일곱 가지 귀신이 들었으므로 지금 혼인을 맺으면 나도 죽고 당신도 죽는다고 핑계를 대면서 우선 사태를 모면하고 있었다.
한편, 천하궁 성주를 빨리 이루려고 분주한 황우양씨가 꿈을 꾸었는데 꿈자리가 영 사나웠다. 초경 꿈에는 테두리만 남은 갓을 보고, 이경에는 수저가 부러져 보였고, 삼경에는 신발이 흙 속에 묻힌 것을 보았다. 바로 점쟁이를 찾아가 꿈 해몽을 부탁하자 점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말했다.
“쓰던 갓이 테두리만 남은 것은 그대 집이 간곳없이 주춧돌만 남았다는 뜻이고, 수저가 부러졌다는 것은 부인과 이별한다는 뜻이며, 신발이 흙 속에 묻혀 있는 것은 그대 부인이 다른 남자를 섬긴다는 뜻이오.”
황우양씨는 마음이 몸시 급해졌다. 한해 걸릴 일을 한 달에, 한 달 걸릴 일을 하루에 해서 사흘 만에 천하궁을 훌륭히 지었다. 그리고는 허겁지급 집에 도착하니, 집은 쑥대밭이 되어 주춧돌만 남았고 우물 안에는 올챙이가 우글우글했다. 넋을 놓고 앉았을 때 까마귀가 까옥까옥 우는데 까마귀 그림자가 주춧돌에 어리었다. 황우양씨 주춧돌을 바라보다가 밑에 옷조각이 삐죽 나와 있는 것이 보였다. 꺼내 보니 혈서가 또렷했다.
“서방님 살아서 오시면 소진뜰 우물에서 만나고, 죽은 혼이 오시거든 저승에서 만납시다.”
그 길로 소진뜰 소진항의 집으로 가서 우물 옆 버드나무 위로 올라가 동정을 살폈다. 막막부인은 더 이상 소진항의 청을 거절할 수 없자 우물에서 목욕하고 백년가약을 맺기로 하고 나오는데 황우양씨가 불렀다.
“부인, 그동안을 못 참고 다른 사람을 섬기고 있단 말입니까?”
“여자의 말을 가벼이 여긴 탓이니, 누구를 책망한다는 말입니까? 내가 어찌 다른 남자를 섬기겠습니까? 그보다는 원수 갚을 일이 급하니 이리 내려오십시오.”
막막부인이 남편을 마루 밑에 숨겨두고, 소진항과 방안에서 합한주를 마셨다. 그때 황우양씨가 술과 약에 취한 소진항을 꽁꽁 묶고 호통을 쳤다. “이놈, 네 죄를 모른다고 하지는 않겠지?”
황우양씨는 소진항을 장승으로 만들어 길가에 세우자 한자리에 박혀서 오도 가도 못하고 사람들의 눈총을 받게 됐다. 부부는 원수를 갚고 소진뜰을 떠나니 달리 유숙할 곳이 없었다. 날이 저물어 갈대밭에서 지내는데 치마를 벗어 포장을 쳐놓고 밤하늘 별을 보고 그동안의 일을 두고 정담을 나누었다. 부인이 말했다.
“서방님 우리가 혼인한 지 오래되도록 아이를 두지 못했으니, 앞일이 걱정입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니 남은 평생 금실이나 좋게 지냅시다. 우리가 죽은 뒤에 집집마다 성주로 들어가서 집안이 잘되게 보살펴주면 사람들이 우리를 섬겨주고 먹을걸 줄테니 그리합시다.”
황우양씨는 집집마다 들어가 성주신이 되고, 막막부인은 터주신이 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들을 모신 집치고 잘못되는 집이 없었다고 한다.
(11) 얼마나 궁상맞았으면 ‘궁상이’라고 불렀을까. 하지만 원래는 천하장사에다 큰 부자였다. 아내 또한 천하절색이었다. 그런 궁상이가 배선이하는 친구를 사귀게 되면서 꾀임에 빠져 도박으로 전 재산을 날리고 결국은 아내까지 걸고서 도박을 했다가 아내마저 잃고 말았다. 궁상맞게 쭈그리고 앉은 남편을 보고 아내가 한마디 했다.
“무슨 일입니까? 좋은 일이나 궂은일이나 애기를 해야지 그렇게 앉아 있으면 어떡합니까?”
“배선이와 바둑놀이, 고패놀이(동해안 별신굿의 한 굿거리, 심청굿에서 연행한 무녀가 맹인 흉내를 내는 굿놀이)하다가 전 재산이 날아갔습니다. 배선이 말이 부인을 걸고 내기하자고 해 그리했는데 지고 말았습니다. 해놓은 약속이라 안 지킬 도리가 없으니 어찌합니까.”
“저지른 일이니 어찌합니까. 내가 어떻게든 해보겠습니다. 어느 날에 온다고 했습니까?”
배선이가 오기로 한 날 궁상이 아내는 예쁘장한 하녀에게 자신을 옷을 입혀 단장하게 하고는 자신은 하녀의 옷을 입고 얼굴에 거미줄을 쓰면서 배선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배선이가 설렁설렁 집으로 들어와 두 여인을 살펴보더니
“여보게 궁상이, 아무리 내기를 했지만 내가 어찌 남의 부인을 데려가겠는가? 저 하녀나 데려가겠네”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궁상이 부인으로 치장한 하녀가
“이보세요. 내가 가겠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살아온 정이 있는데 어찌 지금 바로 가겠습니까? 석 달 열흘 뒤에 오시면 내가 그대를 따라가겠습니다.”라고 한다. 서로 짰는지 모르지만 하녀도 보통 똑똑한 게 아니다.
배선이가 돌아가자 진짜 아내가 남편에게 말했다.
“억대같이 큰 소 한 마리만 사다 주오.”
궁금했지만 소를 구해다 주자 제 손으로 밤낮 포육을 떠서 말리기를 거듭하니 소 한 마리가 솜처럼 되었다. 그리고 포육을 솜으로 삼아 옷을 지었다. 열두 개 주머니에는 낚시바늘과 낚싯대도 넣었다.
그렇게 석 달 열흘이 지나자 배선이가 왔다. 부인이 따라나서면서 시집올 때 입었던 나삼 족두리와 궁상이 입던 구슬옷도 챙기고 물명주 한 필도 함에 넣고서 길을 나서면서 배선이한테 말했다.
“불쌍한 궁상이를 저렇게 두고 가겠습니까. 데려가서 마당이나 쓸게 합시다.”배선이가 생각하니 일리가 있는지라 궁상이까지 데리고 길을 나섰다. 하지만 배선이는 물을 건너다 궁상이를 바다에 집어넣을 작정이었다.
호의를 베푸는 듯 궁상이를 데려가겠다는 배선이의 양두구육(羊頭狗肉)이 음습하는 것 같다. 그가 본색을 드러낼 때 궁상이에게 남은 건 배신자를 위해 세상에서 사라져 주는 것뿐이다. 그런 운명을 이미 간파했을 아내는 왜 배선이더러 궁상이를 데리고 가자고 했을까? 아마도 믿는 구석이 있었을 게다. 석달 열흘 동안 쇠고기 포육을 떠서 남편의 옷을 지은 아내의 슬픈 정성은 과연 하늘에 통했을까?
배선이를 따라서 간 궁상이는 조각배처럼 물속에 던져졌고 궁상이 겨우 겨우 죽지 못해 거북이 등에 올라타고 너울너울 헤엄쳐서 물가 갈대밭에 닿았다. 한쪽은 갈대밭, 한쪽은 바다로 배는 고프고 갈대 우는 소리마저 슬픔이 되었다. 그때 우연히 보니 옷섶을 씹으니 고기맛이 났다. 다름이 아닌 포육을 씹은 것이니 허기가 가시고 흐려지던 정신이 되돌아왔다.
궁상이 주머니에서 낚시와 낚싯대까지 꺼내 그것으로 고기를 잡았다. 그때 근처에 학 여러 마리가 목을 빼 궁상이를 지켜보았다. 고기를 던져주자 고맙다는 듯이, 소원을 말하라는 듯이 몸짓을 보냈다.
“아내가 저 물 건너에 있는데 나를 저기까지 건너게 해 줄 수 있겠니?”하자 학이 궁상이를 등에 태워 강을 건넜다.
배선이는 궁상이 아내를 닦달해 혼례를 올리고자 했으나, 궁상이 아내 궁상이가 살아서 돌아올지 모른다는 기대로 차일피일 미루다가 “우리가 백년해로 하려면 사람들을 불러 모아 잔치하고 거지들에게 열흘 잔치를 베풀어 달라”고 청하여 잔치를 벌였는데도 궁상이는 오지 않았다. 허나 마지막 사흘을 남겨두고 궁상이가 나타났다. 막맙부인이 구슬옷을 꺼내 이 옷이 몸에 맞는 사람이 내 서방이라고 하여 배선이를 비롯한 거지들이 그 옷을 입으려 했지만 모두 맞지 않았다. 다만 궁상이한테는 꼭 맞았다. 그렇게 해서 남편을 다시 만났고 남편에게 장사하게 해서 재산을 되찾고 궁상이도 죄진 것을 벗고 다시 신선 세계로 올라갔다.
궁상이에게 아내는 생명이었다. 찌지리도 못난 궁상을 떨었지만, 소 한 마리 포육과 주머니의 낚싯대, 낚시바늘, 희망의 끈인 구슬옷과 아내의 성스러운 몸짓은 누가 빼앗고 소유할 수 있겠는가. 너무 커 안기는 커녕 안기기도 벅찬 모성이 아닐 수 없다. 궁상이 아내는 어떤 신이 되었을까. 그저 궁상이만 죄를 벗고 신선 세계로 올라갔다는 이야기뿐이다. 가난에 찌들어 살면서도 신선이 되었다고 하는 풍류는 사치일까? 함경도 지방에 전하는 이 궁상이 신화는 죽은 사람의 영혼을 저승에 보내는 망묵굿(망자 천도굿)에서 볼 수 있는 신가(神歌)다.
(11) 옛적에 숙영이라는 선비와 앵연이라는 처녀가 살았다. 숙영의 집에서 청혼을 넣었으나 연거푸 거절하다가 언덕 사이에 있던 두 집에서 핀 꽃이 서로 수그리고 상대방 집 너머로 들어가 꽃을 피우자 비로소 허락했다. 둘은 천생배필로서 아무런 부족함이 없었으나 석삼년, 아니 부부 나이 마흔이 되도록 자식이 없어 걱정이었다. 어느 날 부부가 의논해 점쟁이를 찾아가 점을 쳐보았다. 점쟁이가 말했다.
“덕을 쌓고 공을 들여야만 자식을 볼 수 있습니다. 정성껏 키운 쌀 서 말 서 되와 노란 초 닷근, 흰초 닷근, 큰초 닷근, 노란종이 닷근, 흰 종이 닷근, 큰 종이 닷근을 갖추어 안애산 금상사로 가서 성불성인께 석 달 열흘 동안 기도하십시오.”
부부는 점쟁이 말대로 석 달 열흘 기도를 하고 돌아와 인물병풍을 둘러치고, 비취이불에 원앙베개를 베고 동침하니 과연 그날부터 앵연의 몸에 태기가 있었다.
열 달 만에 남자애기가 태어났는데 어찌나 잘 생겼는지 해와 달이 돋은 것 같았다. 그런데 아기가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나고 삼칠이 지나도 눈을 뜨지 않더니 석 달 열흘이 지나도 눈을 뜨지 않았다. 부부는 땅을 치며 탄식했다.
“산천도 무정하고 성인도 무정하구나. 인간 영화를 보랬더니 앞 못 보는 소경 자식을 낳았으니 무엇에 쓸까.”
부부는 아이 이름을 ‘거북’이라 짓고, 유모한테 맡겼다. 거북이 세 살이 되었을 때 또 태기가 있고 열 달 만에 아기를 낳으니 역시 남자 아기였다. 이번에는 눈부터 살펴보는데 두 눈이 샛별처럼 초롱초롱 빛났다. 하지만 목욕을 시키려고 아기 등을 만져보니 등 굽은 꼽추였고, 다리는 앉은뱅이였다. 부부는 이번에도 한탄식을 하고 아기 이름을 ‘남생’이라 짖고 유모에게 맡겼다.
부부는 탄식하다가 거북이와 남생이가 다 자라기도 전에 병이 들어서 죽었다. 부모 잃은 두 아이가 재물을 쓰기만 하니 어느새 재산은 바닥이 나버렸다. 두 아이는 서로 손을 잡고 밥을 빌러 나갔으나, 사람들이 병신 둘을 어찌 먹이느냐며 다시는 오지 말라고 박대했다. 형제는 울면서 날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남생이 거북이한테 말했다.
“형님 안애산 금상사를 찾아가서 성불성인에게 빌어나 봅시다.”
소경인 형이 앉은뱅이 동생을 등에 업고 먼 길을 돌고 돌아 금상사 앞 연꽃밭에 이르자 연밭 속에 솥뚜껑 같은 금덩이가 떠다니는 것이었다.
그것을 본 동생이 줍자고 하였으나, 형이 “우리한테 그런 복이 있겠느냐”면서 그냥 가자고 했다. 둘이 절 안으로 들어가니 불목하니(절에서 밥 짓고 물긷는 사람)가 부처님께 아이들이 왔다고 아뢰었다.
“그 아이들이 생기느라 우리 절이 많은 공덕을 입었으니 초당에 들여 공부시키고 밥은 쌀밥을 지어 먹여라.”
부처님이 이렇게 계시하니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을 맞아들였다.
두 아이 때문에 하던 일이 늘어나 성화가 난 불목하니는 부처님 몰래 아이들을 두들겨 패기도 했다. 아이들이 스님들께 하소연하며 말했다.
“우리가 들어올 때 보니 연못에 금덩이가 떠 있었습니다. 건져 오도록 하시지요.”
그 말을 들은 삼천스님이 달려가 연못을 살펴보는데, 금덩이는 어느새 금구렁이로 변해 한쪽은 하늘에, 한쪽은 땅에 붙어 있어 뗄 수가 없었다.
삼천스님 절로 돌아와 아이들을 패주었다. 두들겨 맞다 못한 두 아이 절을 나와서 연못을 살펴보니 틀림없이 솥뚜껑처럼 생긴 금덩이가 떠 있었다. 둘이 금을 안고 법당 안으로 들어와 부처님 앞에 내려놓자, 절이 저절로 움찔움찔 춤을 추기 시작했다. 두 형제가 금으로 부처님을 감싸 달라고 청하니, 이때 부처님 말소리가 울려 퍼졌다.
“거북아, 남생아! 내가 너희 눈을 뜨게 해주고 발을 펴주마.”
그 말이 끝나자 감겼던 거북이 눈이 뜨여 환히 밝아졌고, 남생이 굽은 등이 곧게 펴지고 웅크리고 있던 다리가 곧게 펴졌다. 거북이와 남생이는 그 뒤로 오랫동안 장수하며 성인이 되어 사람들의 성김을 받았다.
◌ 책에서는 신들과 인간, 이승과 저승, 위와 아래, 밝음과 어둠, 가벼움과 무거움, 음과 양의 질서를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애초에 하늘과 땅이 분리되고 그사이 새로운 공간이 생기고 그 세상의 주인이 된 존재에 따라 ‘인간 세상’과 ‘신의 세상’을 만들어졌다. 삶과 죽음, 밤과 낮, 봄·여름·가을·겨울이 변화하는 역동의 땅이었으며, 신의 세상이 하나가 아니듯이 인간 세상도 하나가 아니었다. 이승과 저승의 공존이 그것이다. 하늘이 양이고, 땅이 음이다. 이승을 떠난 영혼이 머무는 공간은 저승이다. 이것이 신화적 우주질서의 기본체계로 인간이 이고 있는 하늘(천상)과 발을 딛고 있는 땅(지하)은 신들의 공간이다.
영혼의 땅인 저승도 극락과 지옥으로 나누고, 지옥은 아래쪽, 극락은 위쪽이다. 또 지옥은 그 종류가 많아 칼산지옥과 무간지옥을 비롯, 수를 헤아리기 어렵다. 저승을 주재하는 신은 시왕(十王)들인데 인간의 영혼을 심판하는 이가 염라대왕이다. 염라국은 지옥편에 가까운 듯하지만,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다. 염라대왕 외의 아홉 왕도 각자 제 나라를 가지고 저승의 일을 관장할 것이다. 지옥의 형상을 묘사한 것은 ‘바리’가 본 모습 그대일지 모른다. 그렇게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뼈와 살을 녹이는 붉은 강을 건너는 영혼의 모습, 가시성, 쇠성에 갇힌 눈 없고 팔 없는 죄인, 다리 없는 죄인, 목 없는 죄인들의 모습으로 불교적인 요소가 짙게 반영된 형상이다. 그렇지만 극락의 형상은 뚜렷한 모습을 보기는 어렵다. 부처님 나라에서는 그 모습을 화려하게 그리지만, 일반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극락은 죄업과 한(恨), 욕망의 굴레에서 벗어나 평온한 안식을 누리는 처소다. 고요한 평화의 세상, 지옥이 땅의 성질을 지니는 데 비하면 극락은 하늘의 성질을 보인다. 아마도 하늘과 맞닿아 있고 햇살처럼 밝고 양털처럼 가벼운 곳이 극락일 것이다. 죽은 뒤 지옥으로 갈 것인지 극락으로 갈 것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앞에서 보았더니 이승에서의 업에 따라 그 길이 정해진다고 하는 것을 알았으니 죄짓지 말고 선업(善業)을 쌓아야지 하는 생각은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