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1. 18. 주일 1부
시92:1-15 추수감사절의 찬송
12-13절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리로다/ 이는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뜰 안에서 번성하리로다.”
오늘 시편 92편의 표제어는 ‘안식일의 찬송시’입니다. 이는 안식일에 주님을 예배하러 가는 기쁨에 대해서 노래하는 시입니다. 안식일의 히브리어 원어인 ‘솨바트’는 ‘휴식하다, 집중하다’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안식일은 세상에 집중했던 Kronos의 삶을 멈추고 휴식하며, 창조주 하나님의 Kairos의 시간속에서 주님께 집중하는 날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Kairos는 말씀을 보고 기도함으로써, 집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평일에 주님이 내게 하신 일을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바쁜 삶의 자리에서 멈추고, 주님이 우리에게 하신 일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럴 때, 염려나 불평이 아닌 감사가 나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Kairos안에 살아갈 때, 기쁨과 회복이 일어납니다.
1. 주님품에 안기면 감사와 찬양이 살아납니다(1-4).
1) 시인이 누리는 감사와 기쁨은 주님의 이름을 높이며 감사 찬양을 드리는 것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주야로 묵상하는 자는 하나님의 지혜와 인도하심을 받습니다.
2) 시인이 증언하는 감사의 내용은 날마다 변함없으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실하심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시인이 누리는 기쁨은 주님이 하시는 일을 기억하며 기쁨에 젖는 것입니다.
3) 먼저 시인은 비파와 수금으로 여호와께 감사의 찬양을 드렸습니다. 제사장들은 아침 저녁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1-3절).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들로 인하여 백성들이 높이 찬양한다고 했습니다(4절).
4) 우리는 지금 어디서 기쁨과 즐거움을 찾고 있는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의인과 악인은 삶 자체가 다릅니다. 세계관이 다르고 마음의 주인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내가 나의 주인이 되어 아무리 선한 삶과 지식으로 충만한 삶을 산다할지라도 죄인이 의인이 될 수가 없습니다.
2. 시인은 주께서 내게 행하신 일을 찬양합니다(5-9).
1) 세상에는 많은 고통과 문제들이 있습니다. 시인도 좋은 환경에서 주님을 찬양했던 것이 아닙니다. 그의 주변에는 7절 악을 행하는 자들의 흥왕과 9절 원수들의 악행을 경험했었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자신의 눈이 아닌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신비를 발견하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Kairos 안에 거하는 길입니다.
2)나의 관점으로 세상의 뉴스를 보면, 세상이 악해가고 망할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역사의 주관자인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고 믿는다면, 하나님께서 영원히 나와 우리 가정과 민족을 위해 일하시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5-6).
3) Kairos의 시간인 영원의 관점에서 보면, 악인의 악행과 여러 문제는 지나가는 그림자 같은 것들입니다, 그래서 7절에도 악인은 풀 같이 자란다고 합니다. 풀은 나무보다 쉽고 빨리 자랍니다. 그러나 그래봤자 결국 풀입니다. 악인은 흥왕하는 것 같지만 금방 쇠합니다.
4) 그 사실을 알기 때문에 시인은 악인과 악행의 현실로 인해, 또한 자신을 힘들게 하는 상황 때문에 위축되고 힘들어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Kairos 안에서 눈을 뜬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신비를 6절에서처럼 어리석은 자는 알지 못하며, 무지한 자는 이를 깨닫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결국 9절에 흩어진다고 합니다. 흩어짐은 혼란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영원하신 지존자의 눈으로 인생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우리 인생은 문제와 혼란에 더욱 빠지게 될 것입니다.
3. 시인은 주께서 주시는 은혜를 감사하며 찬양하고 있습니다(10-15)
1) 주님께서 내 뿔을 높이고, 신선한 기름을 부으셨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심으신 사람은 기름병에 속한 불안정한 은혜가 아니라(사울), 소뿔에 담긴 기름처럼 영원하고 견고한 은혜(다윗)를 부어주십니다.
2) 그래서 하나님은 오늘 본문에서도 우리들의 인생을 금방 없어져 버릴 풀이 아닌, 12절의 종려나무와 백향목과 같은 견고한 나무들로 만들어주십니다(12).
3) 실제로 성경에서 종려나무라고 얘기하는 것은, 대추야자나무입니다. 종려나무는 다 베이고 남은 그루터기를 불에 태워도, 뿌리만 건재하면 다시 싹이 나고, 자란다고 합니다. 요한복음 12:13에서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 하실 때, 사용했던 것이 종려나무입니다. 로마의 압제 속에서 그들에게 승리를 안겨줄 메시아가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확신했던 것입니다.
4) 백향목의 상징은 강건과 웅장입니다. 변치 않는 곧은 기개를 상징하기 때문에, 현재 레바논 국기 한 가운데 백향목이 그려져 있기도 합니다. 이처럼 시인은 어떤 상황과 환경에 있든지, 하나님께서 의인들을 이 나무들처럼 세워주실 것이라는 강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결론: 어떻게 하면 우리도 종려나무와 백향목과 같은 삶이 될 수 있을까요?
1) 여호와의 집에 심겼다는 것은 내가 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심어주시는 것입니다. 심겨졌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지금도 함께 하심을 믿으며 누리는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2) 마28:20절을 실재로 확신하며 누릴때 13-15절과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뜰 안에서 번성하리로다 그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니 여호와의 정직하심과 바위 되심과 그에게는 불의가 없음이 선포되리로다”
3)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같이 성장하리로다.”(12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종려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나무입니다. 곧게 자라고 넓고 푸른 잎사귀를 내며 달콤한 대추야자의 열매를 맺습니다. 백향목도 곧고 키가 큰 나무로 눈이 와도 청청한 푸른 사철나무입니다. 하나님이 의인에게 주시는 축복은 ‘번성과 성장’입니다.
4) 의인은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뜰 안에서 번성하리로다.”(13절)라는 말씀처럼 하나님 안에 거하는 삶, 특히 의인의 믿음은 불신앙이 아닌 진리를 아는 자의 삶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로마서 1장17절을 보면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하셨습니다.
우리의 삶이 여러 문제들로 인해 힘들고 지칠 때가 있습니다. 또 악인의 악행과 흥왕을 보고 낙심과 절망에 빠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나의 눈, 세상의 눈으로 자신의 삶을 바라보지 않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집을 사모하고 말씀을 묵상하며 찬양하고 감사하는 신앙 위에 우리 인생의 나무를 심어야 합니다. 영원하신 지존자이신 하나님의 관점으로 세상과 내 삶을 볼 수 있는 은혜속에 있기를 원합니다. 매 순간 하나님의 Kairos안에서 복된 인생을 살아가기 원합니다. 주변 이웃들에게도 우리 모두가 종려나무와 백향목과 같은 푸른 삶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