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콤
신동재
파란시선 0170∣2025년 12월 15일 발간∣정가 12,000원∣B6(128×208㎜)∣167쪽
ISBN 979-11-94799-20-7 03810∣(주)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
•― 신간 소개
내일은 총알이 날아오지 않는 세상으로 등교한다
[마콤]은 신동재 시인의 첫 번째 신작 시집으로, 「소파(小波)」 「한 방 같은 건 필요 없어요」 「난 바스마티 라이스, 치킨 마크니도 같이」 등 50편이 실려 있다.
신동재 시인은 1987년 태어나 울산, 부산에서 자랐고, 경인교육대학교 졸업,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21년 [현대시]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마콤]을 썼다.
신동재 시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삶과 시의 동일성, 아니 좀 정확하게 말해 상통성이다. 많은 문학 교과서는 삶과 문학의 근본적인 불일치, 문학 언어는 ‘낯선’ 표현으로 일상 언어의 무심한 지각의 자동성을 깨뜨리고 각성을 유도한다고 말한다. 신동재의 시가 그런 문학적 기능에 무심하진 않을 것이다. 그는 매우 모범적인 문학도이다. 그렇다면 삶과 시의 동일성은 거꾸로 이해하는 게 타당할 터이다. 즉 시가 삶에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시에 일치하는 것이라고. 요컨대 시인은 시를 쓰기 전에 이미 시를 살고 있는 것이다. (이상 정과리 문학평론가의 해설 중에서)
•― 추천사
신동재는 늘 환하고 수줍은 미소로 사람을 맞이한다. 성실과 성의로 다져진 말과 동작에서 두터운 믿음이 불빛처럼 번져 나오는 사람. 그가 세상의 어둠 속으로 홀로 걸어 들어간다. 그를 따라간다. 시인이 우리에게 세계의 민낯을 보여 준다. 그의 첫 시집 [마콤]에는 울음과 절망이 가득하다. 종교를 타락시킨 배교자들이 넘쳐난다. 교사를 폭력과 착취로 몰아붙여 죽음으로 내몬 악마 같은 학부모들이 우리의 이웃이라는 사실 앞에서 독자는 아연실색한다. 죽어 간 교사들의 아픈 영혼이 선연하다. 고통받는 자들의 비명―송곳이 귀에 박힌다. 신열이 온몸을 달군다. 신동재가 시로 써낸 절망향(絶望鄕)은 다른 나라 다른 도시 다른 집에 사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여기에 살고 있는 지금의 ‘우리’가 환영(幻影)에 불과할지도 모른다고 시인이 질문한다. 우리가 외면했던 타인의 고통이 마침내 ‘나’에게 돌아올 때, “악의 평범성”과 “선의 평범성”이 구별되지 않을 때(「올라」), ‘나’는 누구에게 구원을 바랄 것인가. 시의 무력함을, 시인의 무기력을 산산이 부서뜨리는 신동재의 시는 “21세기 한국”과 “18세기 청나라”의 시간 구분을 무너뜨리고(「화신과 허션」), 일본과 만주와 네덜란드 같은 공간의 한계를 초월한다. 시인이 살고 있는 이곳에서는 “데용”과 “더용”이 한 사람이다(「De Jong」). 또한 “‘나’인지 ‘안’인지” “na가 아픈지, an이 아픈지” 분간할 수 없다(「소릉(昭陵)」). 시인은 아수라 백작이고 다중인격 히어로 문 나이트(Moon Knight)이다. 이 시집에는 고향에서 타향으로 이향하고 싶어 하는 욕망이 동짓날의 어둠만큼 그득하다. 내용은 뜨겁고 형식은 ‘침착’하다(「내용 + 형식」). 신동재는 “여기와 저기 사이”에서(「보레알로펠타」) “아무는 것과 아물지 않는 것 사이”에서 “탁한 것과 밝은 것이 구분되지 않을 때까지”(「비급(祕笈)」) “매일 새로운 나라로 걸어가”는 시인이다(「동(童)과 시(詩)」). 좋은 사람의 좋은 시집을 만날 때, 나는 행복하다.
―장석원 시인
•― 시인의 말
안은 병들고 아픈데
밖은 건강해 보인다
병원에서 학교에서 광장에서 생각했다
불일치를 말하는 건 버거웠다
언행의 불일치
내용과 형식의 불일치
인격의 불일치
나는 시 속에서 꿰매진다
고 믿었다
솔기들은 금방 뜯어졌다
온갖 불일치가 다시 쏟아져 나왔다
겉은 다듬을 수 있었지만
속은 자꾸 흘러내렸다
나는 균열 중인 집이었다
•― 저자 소개
신동재
1987년 태어나 울산, 부산에서 자랐다.
경인교육대학교 졸업,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21년 [현대시]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마콤]을 썼다.
•― 차례
시인의 말
제1부
올라 ‒ 11
총기 허용 국가 ‒ 15
닦아 내기 ‒ 18
V ‒ 22
기후(岐阜) ‒ 25
네 안의 네안데르탈 ‒ 28
화신과 허션 ‒ 32
도전과 응전 ‒ 34
제너레이터 ‒ 36
홉스 ‒ 38
제2부
소파(小波) ‒ 43
개운죽 키우기 ‒ 46
켤레 ‒ 50
공간력 ‒ 54
카라다노 구아이가 와루이 ‒ 56
6163 ‒ 59
교과서 낭송가―2037 ‒ 62
기믹 ‒ 66
튤립 피버 ‒ 68
한 방 같은 건 필요 없어요 ‒ 70
제3부
선생님의 토토 ‒ 75
마콤 ‒ 78
내용 + 형식―I assuage my pain with great aplomb ‒ 80
키 큰 사람 ‒ 82
열기 ‒ 84
De Jong ‒ 86
동(童)과 시(詩) ‒ 89
하는 척하기 ‒ 90
난 바스마티 라이스, 치킨 마크니도 같이 ‒ 94
소릉(昭陵) ‒ 96
제4부
이다 ‒ 101
10년 동안 전쟁에서 겪은 일을 기록한 글 ‒ 102
보레알로펠타 ‒ 104
비급(祕笈) ‒ 108
더미 ‒ 110
하이버네이션 ‒ 112
저격수의 거리 ‒ 115
저구루 ‒ 118
404 낫 파운드 ‒ 120
于尸山國 ‒ 122
제5부
산 ‒ 127
이집트 탈출기 ‒ 130
사운드 스케이프 ‒ 132
오디에이션 ‒ 134
어드헤시브 ‒ 138
노바 젤란디아 ‒ 140
서하에 대하여 ‒ 142
에베소의 바울 ‒ 144
‘풍요로움’에 대한 비블리오그래피 ‒ 146
Monk’s House ‒ 151
해설 정과리 지식의 간섭 무늬들과 의미 생산지의 개간 ‒ 154
•― 시집 속의 시 세 편
소파(小波)
마음이 슬플 땐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먹는 한 끼처럼 느려지고 싶다
급하게 먹는 건 피하려고 했다
그럼에도
세상에서 나는 몹시 급한 사람
나는 나를
가장 채근하는 사람
삼십 대 후반이 될수록
갑작스러운 모험이 꺼려졌다
내일은 아쿠아리움에서 물고기를 구경할 것이고
지방간을 줄이려 운동을 할 것이고
그저
소소한 사건들
이길 수 없을 것 같을 땐
왜소해져야겠다고 다짐했다
계란으로 바위 치지 말라는데
그런 얘기를 하는
주둥이를 간질일까 생각했다
세상에서 가장 왜소한 손으로
서예 시간 때 화선지에 먹을 뿌린 적이 있었다
먹으로 칠갑이 된 화선지를 주워서 버리는데
‘더럽혀도 순수하다’
‘더럽혀도 천사이다’
말린 종이 속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그 뻔뻔함에 화가 났다면
내 감정은 화선지에게 진 것이다
친구 손에 들린 탕후루가
‘군침 금지’ 하고 녹아 버렸다
네가 먹어야 할 것을 개미와 나눠 먹지 말 것
이미 그런 것이라면
슬퍼할 수만 없으니
근사한 식당을 다시 예약할 것
‘순수’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건 순수라고 부를 수 있었다
예약이 다 차서 어렵다고
냉정하게 전화를 끊으려는 직원에게
“잠시만…”이라고 말했다
그다음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나의 머릿속은 가장 순수하다 ■
한 방 같은 건 필요 없어요
이제는 베란다 앞에서
한 방을 보내 줍시다
안 된다고 하지 말고
보내 줬다고 말하자고요
한 방 같은 건 됐고
하루 잘 방(房)이 필요해요
무슨 시가 필요합니까 일기 쓰기면 충분하죠
옛날 사람들은 너무 거창하고
한 방투성이었어요
시집을 열 때마다 얼굴을 맞았어요
너무 맵고 세게
보세요 시집이라고 썼지만
나의 일기장입니다
한 방 같은 건 필요 없어요
시 같은 건 필요 없다고요 ■
난 바스마티 라이스, 치킨 마크니도 같이
초등학교 미술 시간에 그림을 그려서 선생님한테 확인받기
집에 와서 그 그림을 재활용통에 던져 놓기
다음 날 학교에 와서 다시 그림 그리는 것을 운명이라고 믿기
뭔가 바꿀 수 없을까 고민했지만 초등학교에는 퇴학이 없음을 알고 단념하기
다른 방식의 인생 전환을 생각하겠다고 결심해 놓고 그림 그리러 또 학교 가기
그렇게 물러서며 살다 보니 벌써 서른일곱 살
내가 시간표를 살아 내는 것이 아니라 시간표가 나를 뺑뺑이 돌리는 삶
열심히 도는데 뭘 가리키는 줄 모르는 것을 두 글자로 ‘수렁’
자성(磁性)을 상실한 나침반이 갈 곳은 쓰레기통밖에 없는 것일까?
초등학생 때부터 나는 왜 자꾸 그쪽으로 몰리고 있나 생각해 보기
내가 놓인 곳마다 다 N극, 주변에는 메마른 추위뿐
오늘 일정을 읽고는 얼어붙는 시늉하기
검지와 중지로 탁탁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을 자판으로 두들기기
이걸 안 들어주니 내가 죽을 것 같다 정치인분들아 제발
입이 아니라 손가락으로 말하는 나의 인간관계들
‘너를 본 게 언제였더라?’가 채팅창에 수두룩하다
살기와 살기를 어떻게 다르게 발음하는지 찾아보고 연습하기
살기
살기
등등
등으로도 말하는 법 터득하기
팔다리 없이 울 때 나는 가장 많은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Draw horizontal, vertical, diagonal lines
쇠를 핥는데 왜 단 것 같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