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레오 버스카글리아가 생각나 책장을 뒤져 오래 전 보았던 그의 책을 군데군데 살폈다.
다들 기억할 것이다.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Living, Loving and Learning>.
1980년대 초반에 번역되어 한때 대단한 인기를 누렸던 책이다.
버스카글리아는 남캘리포니아 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교육학 전공이었지만 심리학에도 정통한 사람이었다.
대학 재직 시절, 아끼던 한 학생이 그만 자살을 한다.
그 뒤 자신이 할 일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여 교수직을 그만 두고
‘러브 클래스’라는 세미나를 개설하여 미국 젊은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심어주는 일을 하다가 1998년 7월
따뜻했던 74년 생애를 마쳤다.
버스카글리아의 책을 보면 아버지, 어머니 이야기가 아주 많이 나온다.
입만 열면 아빠, 엄마 찾는 식이다. 아마 강의 때도 그랬을 것 같다.
그만큼 부모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이야기이고,
또 부모가 그만큼 훌륭했다는 이야기이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버스카글리아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야기
각 한 토막씩 소개한다.
버스카글리아가 유치원, 초등학교 다닐 때 아버지는 아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하루도 빼놓지 않고 늘 물어보았다. “레오야, 오늘은 무엇을 배웠니?”
아들은 아버지의 물음에 답하기 위해 학교에서 배운 것을 기억해내고
그것을 노트에 옮겨 정리하곤 했다. 자신의 사고력과 집필능력이
그때 다 길러졌다고 한다.
누구나 아빠들은 자식에게 “오늘은 무엇을 배웠니?”하고 묻는다.
그러나 거의 모든 아빠들은 얼마간 묻다가 말아버린다.
버스카글리아의 아버지는 매일 빼놓지 않고
아들이 성장할 때까지 그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나도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 “오늘은 무엇을 배웠니” 하고 물었던 기억이 난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동네 놀이터에서 함께 공을 찼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가 멈춰버렸다. 물릴 수 없는 것이 시간이다.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 처음부터 새로 시작할 순 없다.
그러나 이따금씩 장성한 아이들에게 “오늘은 무엇을 배웠니?”하고 질문이 내 속에서 터져 나오곤 한다.
이제 아이들에게 새로운 질문이 필요한 때다.
아, 나는 지금 아이들에게 무엇을 물을 것인가~~~
보기에, 어머니는 더욱 훌륭했던 것 같다.
버스카글리아의 책에 그려진 그의 어머니는 쾌활명랑하고 다소 엉뚱하며
매사에 적극적인 그러나 한편 깊은 인내심을 간직한 여인이다.
버스카글리아가 어렸을 때, 십대 초반으로 짐작되는데,
아버지가 사업을 말아 드시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어버지는 식구들에게 사업파산을 솔직히 털어놓고
용기를 잃지 말자, 우리 이제 무일푼이 되었으니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하자,
하고 호소했다고 한다. 어머니의 응대는 어땠을까?
어머니는 아버지의 사업파산이 최종 확정된 날,
집안의 여러 물건들을 팔아 이것저것 먹을 것을 사오고
마당에서 채소를 뜯어 진수성찬을 만들어 가족들에게 파티를 열어주었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당신 머리가 어떻게 된 것 아냐? 그렇잖아도 없는 판에
그걸 팔아서 먹을 것을 사오다니?”
어머니의 대답은 이랬다.
“오늘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행복해야 할 날이잖아요”
나는 그 대담하고 명랑한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사람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우리에게 진정 결핍된 것이 물질이 아닌
다른 무엇임을 확신하곤 한다.
버스카글리아의 책에 그의 어머니가 보여준 아찔한 모습이 또 등장한다.
버스카글리아는 청년이 되어 부모의 만류를 뿌리치고 파리로 유학을 떠났다.
어머니는 끝내 유학행을 허락하여 얼마간의 돈을 만들어주면서
모든 것을 신중하게 판단하여 결정하고, 스스로 결정한 것은 스스로 책임지라고
마지막 한 마디를 건넸다. 버스카글리아는 파리에서 공부하다가
소비생활을 컨트롤하지 못해 돈이 생각보다 빨리 떨어져
식사도 제대로 못할 지경이 되었다. 어머니에게 다음과 같이 전보를 쳤다.
“굶어죽겠어요. 아들.”
어머니로부터 바로 답장이 왔다.
“굶어라! 엄마.”
어머니로부터 온 전보답장이 강인한 버스카글리아를 만들었음은 물을 필요가 없다.
훗날 어머니는 아들에게 “‘굶어라”고 전보를 치는 것은 가장 하기 힘든 결정이었지만
너를 살리기 위해 감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고 한다.
“굶어죽겠어요. 아들.” “굶어라! 엄마.”
버스카글리아의 어머니에게 박수를!
첫댓글 아들을 살린 엄마에게 저도 박수를 보내고 싶네요. 저도 엄마지만 그 결정하기까지 엄마로써 고민이 많았을텐데... 아이를 믿어주고 믿어준만큼, 기다려주어야한다는 사실, 어려워요.
마침 오늘 아들이 홀로서기를한다고 오피스텔을 알아본다고하네요. 말로는 독립독립외쳤지만 막상 나간다고하니 좀 마음이 안됐는데 이 글을 일고나니 버스카글리아의 어머니처럼 강하게 마음먹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잘읽고갑니다.
훗날 어떤 엄마가 되어야할지를,,그러기 위해선 지금해야할,,나 자신을 어떻게 다듬어야할질 다시금 생각하게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