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령 옛길을 기억하십니까? 서서히 잊혀져 가는 길입니다. 동서를 관통하는 빠르고 편한 길이 생겨 옛길을 이용하는 이들이 드뭅니다. 옛길의 추억으로 옛길을 따라 미시령을 넘어보기로 했습니다. 옛길은 한적하고 조용했습니다. 우리는 숲길을 산책하듯 운전하며 고개를 넘을 수 있었습니다. 한껏 속도를 늦추고 차창을 열고 심호흡을 해가면서 굽이굽이 돌아갑니다. 운전자에게도 미시령의 경치를 즐길 기회가 주어집니다.
길가의 나무들은 숲 터널을 이룰 정도로 잘 자라고 있었습니다. 도로변의 풀들과 이름 모를 작은 들꽃들도 눈에 들어옵니다. 속도를 늦추고서야 들꽃이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된 것입니다. 깨알 같은 들꽃 무리들을 보면서 하늘이 열린다는 시인의 노래를 기억해 냅니다. 숲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더 푸르고 나뭇잎 사이를 뚫고 비취는 햇살은 주렁주렁 열린 빛나는 보석들입니다.
옆자리의 아내와 많은 말을 주고받게 됩니다. 경치로 시작된 대화가 주변 이야기에 추억까지 가세하여 가는 길이 정담으로 채워집니다. 옆 차선의 차량과 경쟁하듯이 달리게 되는 고속 운행의 길에서는 긴장 속에서 침묵하기가 일쑤이고 다른 차량의 운행에 신경을 쓰느라 경치를 즐기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옛길은 느긋함과 여유를 가지고 접어드는 것이 좋습니다. 굽이가 많은 길을 천천히 돌아가노라면 돌아가야 하는 인생의 애환을 떠올리게 하는 감상에 빠지게도 합니다. 고개 정상 휴게소는 문을 닫았습니다. 퇴락해가는 시설들의 쓸쓸함이 세상의 이야기 한편을 들려줍니다. 속도와 효율성에서 뒤쳐지면 세상에서도 이처럼 도태될 것이라는 사실을 지적하며 교훈하려는 것 같습니다.
속도와 경쟁 속에서 살아가도록 강요된 세상살이 속에서 조금이라도 더 앞지르는 것이 마치 인생의 승리를 쟁취하는 것인 양 운전하는 이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이들에게 밀리고 뒤쳐지는 나는 엉뚱하게도 인생의 경쟁에서 뒤진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운전과 인생살이는 분명히 다른데, 어리석게도 무리한 환원을 했던 것이지요.
▲ ▼ Get lost in the beauty of Misiryeong Ridge! 어느 가을날의 미시령옛길
속도와 시간이 중요시 되는 때에 이를 거스르는 시도들도 있습니다. 이베리아 반도의 어느 도시를 순례하는 순례자들은 걷는 중에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 창조했다는 체험의 보고들을 합니다. 800여 km를 30-40일간 갖은 고생을 감수하면서 걸어가는 길이랍니다. 이들이 현대인의 삶의 방식인 시간과 속도에서 놓여나 패배자의 모습으로 인식되는 느림으로 걸어가는 고통스러운 긴 도보여행에서 자신에게 중요한 삶의 발견과 깨우침이 허락되었다는 것입니다.
속도와 시간은 인간의 탐욕과 맞닿는 경향이 있어 소유와 성과를 앞세우게 하고 우리를 경쟁 관계로 몰아넣습니다. 속도와 경쟁이 있는 곳에서는 겸손과 양보, 그리고 협력이라는 미덕들이 밀려나고 희생적 사랑도 빛을 잃게 됩니다. 요즘의 길들은 돌아가지 않습니다. 막히면 뚫거나 다리를 세워 그저 직선으로만 나아가려고 합니다. 현대인의 살아가는 행태도 이들과 닮아 있습니다.
속도와 경쟁의 혼란과 부담 속에서 자아성찰이라는 느림이 더 요긴해진 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회심을 위하여 멈춤을 받아들이는 일에도 주저하지 않아야 하겠지요. 시간에 매여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기다리기도 하고 멈추기도 하고 휘돌아서 맞추어 보려는 시도가 필요하다는 당당한 지혜를 세워가는 노력이 필요한 때입니다.
느림 속에서만 깨닫게 되는 진리도 있습니다. 이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할 것이지요. 삶의 진솔한 의미를 찾게 해줄 것입니다. 이번 여름 휴가에서는 광풍노도처럼 밀려오는 속도와 시간에서 한 발짝 물러서거나 비켜나 인생을 관조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제야 세미함으로 다가오는 자연의 음성이 들려질 수도 있을 것이니까요.
적당한 기다림 속에서 차향이 우러나듯 인생도 여유와 기다림 속에서 그 향기가 더해질 것입니다. 느림을 통하여 얻을 지혜와 즐거움을 생각하면서 미시령 옛길을 넘습니다.
미시령옛길에서 손호익
▲ ▼ 백두대간 미시령옛길을 자전거로 달린다. 옛길 정상(해발 767m)까지의 업힐 구간은 결코 쉽지 않은 코스
▲ ▼ 미시령옛길에서 바라 본 설악산 울산바위(Ulsanbawi Rock)
▲ ▼ 미시령옛길 정상의 휴게소 주차장에서 바라 본 속초시와 동쪽 바다
▲ 미시령옛길 정상의 미시령 표지석 옆에서 바라 본 인제군의 산과 계곡
※ 자료 사진 출처: '미시령에서' 플리커(Flickr) 사진앨범
▶ https://www.flickr.com/photos/misiryeong/albums
미시령옛길 관련 글 더 보기:
* 구름바다 위를 달리는 천상의 드라이브, 미시령옛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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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시령옛길 정상의 미시령 휴게소 건물 철거 시작 (2016년 7월 18일~)
▶ http://cafe.daum.net/misiryeong/Tzsf/44
* 미시령옛길로 가는 길 알아 보기
▶ http://cafe.daum.net/misiryeong/Tzsf/31
* 미시령옛길 정상휴게소 폐쇄된 채 방치, 마땅한 활용 방안 없어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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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시령옛길 운행시 유의해야 할 사항들 (봄철 해빙기와 장마철 호우시, 낙석에 유의하세요!)
▶ http://cafe.daum.net/misiryeong/Tzsf/20
* 빠른 터널을 두고 느린 옛길을 이용하는 사람들
▶ http://cafe.daum.net/misiryeong/U00C/152
* 미시령옛길 -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
▶ http://cafe.daum.net/misiryeong/U00C/147
* Online travel guide to Misiryeong Ridge and surrounding areas
▶ https://www.pinterest.com/misiryeong
▶ https://www.flickr.com/photos/misiryeong/albums
▲ ▼ 좋은 사람과 드라이브하고 싶은 날, 드라이브하기 좋은 길, 여기는 미시령옛길입니다!
* 가을 색이 짙어 가는 '미시령옛길'은 드라이브 코스로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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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문서는 2018년 10월 25일, 마지막으로 수정(업데이트)되었습니다. ♣
Last Modified (Updated) on October 25, 2018
첫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집을 떠날 때부터 모든 순간이 추억이 되는 여행이 진정한 여행이 아닐까요?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는 것이 여행의 목적은 아니지요. 언제나 빠르고 바쁘기만 한 우리네 인생에 정말 필요한 쉼표는 이런 여유와 느림의 미학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세상이 빠르게 돌아갈수록 천천히 걷고, 천천히 세상을 바라보고 싶은 요즘입니다.
우리의 여행 행태는 목적지 하나에만 집착할 뿐, 여행을 준비하고 여행의 모든 과정을 즐기려는 노력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지요. 우리의 여행길이나 인생길 모두 목표만큼이나 과정도 중요하다고 생각할 때, 우리네 인생은 더 여유롭고, 더 의미있고, 더 즐거워 질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름다운 음악에는 쉼표가 있고, 아름다운 그림에는 여백이 있습니다. 우리들 인생살이에도 가끔은 쉼표와 여백이 필요합니다. 오늘 하루도 즐겁고 행복한 날 만드세요.
올 여름 동해안을 방문하는 피서객들이 많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고성의 북부지역(간성읍, 거진읍, 화진포, 통일전망대 등)을 방문하시는 분들은 인제 용대삼거리에서 '진부령'을 이용하거나, 미시령 쪽으로 오시는 분들도 미시령옛길을 이용하면 교통 지정체를 피하고 백두대간의 풍경과 자연을 감상하면서 여유롭게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습니다. 미시령에 오실 땐 옛 추억을 따라 미시령옛길로 천천히 돌아오세요! 피서철 안전하고 즐거운 여행 만드시고, 오가시는 길에 인제 용대리 황태마을 도로변 식당과 특산품 매장에 들러 맛있고 영양 많은 황태요리도 드시고 저렴한 황태도 마니마니 구입해 가세요!! ^^
■ http://www.yongdaeri.com
시간의 의미를 되찾은
호기심으로 가득찬 사람들과
생명이 살아 숨쉬는 자연
온화한 풍경과
계절의 변화가 주는
아름다움과 평화를 느끼며
나도 옛길을 따라 갑니다.
*@.@*
아무 생각없이 빠르고 편한 길만 따라 터널을 이용했었는데, 다음에는 옛길을 이용해 봐야겠습니다.
미시령 굽이굽이 고갯길이 보여주는 백두대간의 아름답고 수려한 풍경은 '미시파령'으로 불렸던 수백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새로운 길(터널)이 뚫리면서 북적되던 인파와 차량들에서 벗어난 덕분에 오히려 미시령옛길의 청정함과 아름다움을 호젓하게 누릴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쯤이면 강화 고려산도 서서히 가을빛에 물들어 가고 있겠지요? 봄날 고려산을 온통 핑크빛으로 물들이던 진달래와 고천리 들판의 들꽃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기만 합니다. 북쪽나라 철새님들이 강화도를 찾아 올때 쯤, 탐조여행 겸 강화도를 다녀 올 예정입니다. ^J^
빨라진 만큼 많은 것을 놓치고 스쳐 지나가게 되니, 빠른 것이 항상 좋은 것 만은 아닌 듯 합니다. 조금 더디 가더라도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길로 돌아가는 것도 여행의 백미지요. 오늘도 많은 이들이 미시령과 관련된 추억들을 떠올리며 꼬불꼬불한 미시령 옛길을 천천히 돌아갑니다. 어차피, 빨리 가든 천천히 가든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만큼만 사는 것이므로 천천히 가는 길을 택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지요...
법정스님은 '아름다운 마무리'에서 "오래된 것은 아름답다. 거기에는 세월의 흔적이 배어있기 때문이다. 그 흔적에서 지난날의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지요.
늦가을, 미시령 옛길에서 바라 본 설악산 울산바위 (2013년 11월 3일)
늦가을, 미시령 옛길에서 바라 본 설악산 울산바위 (2014년 11월 10일 | 사진: Kim Dong Won)
저는 설악산과 동해를 함께 볼 수 있는 속초를 좋아하는데요, 서울과 수도권에서 2시간 남짓 거리에 있는 속초의 동해 바다로 자주 여행을 떠납니다. 겨울철 폭설에 의해 차량통행이 통제되는 때를 제외하면, 저는 미시령을 넘을 때 미시령옛길을 이용합니다. 옛길을 이용하면 속초쪽에서 고개 정상으로 오르는 방향에서 설악산 울산바위의 장엄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정면에서 볼 수 있고, 고개 정상에 위치한 주차장에서 잠시 쉬면서 속초시 전역과 동해 바다를 조망할 수 있답니다. 백두대간의 산세와 자연을 감상하면서 비싼 터널통행료도 절감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 여러분들도 속초에 오가실 때 미시령옛길을 이용해 보시길!
* 미시령옛길로 가는 길 (카카오맵 지도)
▶ http://kko.to/QHXIL0Md2 (인제군 용대리 쪽)
▶ http://kko.to/2txbcyMK0 (고성군 원암리 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