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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해 전 필자는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차를 빌려 요세미티를 향해 달리던 중, 어느 삭막한 벌판에서 떨어지는 해를 바라보다 새로운 일을 벌이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오랫동안 가슴에 품었던 사업이었다. 그때 불현듯 다음 한 문장이 떠올랐다. “죽기 전에 청바지 한번 입고 싶다”이걸 가슴에 품고 가꾸다가 마침내 일을 벌였다. 그 문장을 그대로 사업의 슬로건으로 잡았고 남자생활의 청바지 브랜드‘블루진블루’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때는 청바지 사업을 하기 전이라 입은 옷이 우리 옷이 아니다.
누구라도, 언제고 사는 건 만만하지 않다. 인간의 몸을 받아 산다는 건 분명 가치 있고 재미있는 일이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 얼마 남지 않은 저 고지까지만 올라가면 목도 축이고 한가로이 풀을 뜯으며 쉴 수 있겠지” 그런 마음으로 마지막 시동을 걸어 올라가 보지만 막상 가보면 꿈같은 쉼터는 없다. 또 넘어야 할 고개가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돈과 권력과 명예를 거머쥐어 잔뜩 거만하고 여유로워 보이는 사람도 한 자락만 들춰보면 그것이 겉치레일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는 게 버겁기는 그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누구의 삶도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다. 아무도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 산전수전 겪었지만 또 겪어야 한다. 산전수전, 파란만장은 특별한 사람들만의 케이스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살아보니 누구 할 것 없이 저마다 십자가를 짊어지고 있고 비슷한 면적의 그림자를 껴안고 있다. 한 여인이 결혼해서 겉보기에 그저 그만한 가정을 이루고 평범한 할머니로 나이 들어 가는 데도 돈과 인간관계에서 비롯되는 수치와 모욕과 상실 그밖에 여러 파괴적인 갈등을 경험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살아남아 알 수 없는 내일을 향해 걸어가는 이 세상의 모든 평범한 사람들이 실은 산전수전 다 겪고 헤쳐 나온 작은 영웅들인 것이다.
| 한신의 각오 |
살다보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가 있고 뒤로 물러서야 할 때가 있다. 인내가 보약일 때가 있고 공격이 최선일 때가 있다. 인내해야 할 때 참지 못하고 공격하거나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 머뭇거리면 삶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 버린다.
이 점, 중국 한나라 건국의 일등공신, 천하맹장 항우마저 무릎을 꿇게 했던 장수 한신의 인생 드라마가 가르쳐주는 바가 크다. 몰락한 왕족이었던 한신은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지만 포부가 남달랐다. 언젠가 기회가 오리라 믿고 부지런히 무술과 병법을 익혔다. 하지만 큰 뜻을 펼치자면 우선 살아남아야 했다. 포부와 실력을 모두 숨겨야 했다. 한껏 몸을 낮추어 기둥서방이 되어 밥을 빌어먹고 동네 아낙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살던 젊은 시절. 어느 날 마을 불량배로부터 “자신 있으면 칼로 한번 겨루든가 아니면 내 가랑이 밑을 기어가든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피할 수 없는 제안을받는다. 그는 기꺼이 불량배의 사타구니 밑을 기어감으로써 비굴하기 짝이 없는 인간임을 스스로 증명했다. 훗날 그는 초나라 왕이 되어 고향을 찾아가 그 불량배를 무관으로 임명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때 내가 인내할 수 있었기에 오늘날 왕이 될 수 있었다.”한신에게 그깟 불량배 몇 명쯤은 일도 아니었으나 뜻을 펴기 위해 몸을 낮추어야 한다는 심지를 굳게 세웠기에 순간의 만용을 피할 수 있었고 자신의 명을 보존하며 미래를 준비할 수 있었다.
아무리 힘이 넘쳐도 싸우지 않고 물러서야 할때가 있는 법이며 그것 역시 그 사람의 바닥에 단단한 각오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단 한 번의 각오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한신의 경우처럼 갖은 모욕과 수치, 시련을 견디어내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각오는 현실의 힘으로 자리 잡는다. 불과 망치 속에서 연장이 단련되듯 사람의 각오는 현실이라는 그라운드에서 차이고 내동댕이쳐지면서도 살아남을 때 뼛속 깊이 새겨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훗날 사마천은 한신에 대해 이렇게 썼다."한신이 밥을 빌어먹고 모욕을 받으면서도 사색하고 탐구하기를 멈추지 않았기에 훗날 적은 수의 병력으로도 대군에 맞서 싸워 반드시 이겼고 공격하면 반드시 빼앗았다. 이는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일이 아니다. 평소의 쉼없는 단련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 랜스 암스트롱의 각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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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스 암스트롱의 모습들.
가운데 사진의 운동복에‘Live Strong’이라는 그의 슬로건이 새겨져 있다.
우리는 랜스암스트롱(Lance Armstrong)이라는 사이클 영웅을 기억한다. 어려서부터 자전거와 한 몸이 되어 산 그는 25세에 세계적인 선수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그때가 1996년, 선수 생활의 절정기였다. 그는 말기고환암 판정을 받았다. 암이 폐와 뇌까지 전이되어 생존확률이 희박했다. 고환 한쪽을 잘라내고 뇌를 절개하는 대수술을 받았고 이후 16개월간의 모진 항암치료를 견뎌냈다. 그는 다시 사이클 페달을 밟았다. 그리고 이듬해‘죽음의 레이스’로 불리는‘투르드프랑스(프랑스 일주사이클)’에 도전, 우승을 거머쥐었다. 그는 이 대회 7연패라는 불멸의 금자탑을 세웠다.
그가 다시 사이클을 타기 시작하면서 남긴 한 마디의 각오는 지금도 온 세계 시련의 사람들에게 희망의 이정표가 되고 있다. 그는 말했다“. 단1%의 희망만 있어도 나는 달린다”항암치료 후 재기했을 때 실제 그가 우승할 확률은 1%도 안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실낱같은 가능성을 바라고 죽기로 달렸다. 그 각오는 어쩌다 한번 마음이 동해 튀어나온 것이 아니다. 살 확률보다 죽을 확률이 높은 상황에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사투를 벌이는 과정에서 단련되었기에 단 1%의 희망만 있어도 달린다는 각오를 뼛속 깊이 새길 수 있었다.
그는 영웅이 되었고 많은 돈을 벌었다. 자신이 번 돈과 모금한 돈을 합쳐‘랜스 암스트롱 재단’을 설립했다. 세계 암환자들의 투병을 지원하는 단체다. 그 재단의 벽에는다음과 같은 슬로건이 대문짝만하게 걸려 있다. ‘Live Strong(강하게 살아라)’ 그것은 그의 인생철칙이자 재단의 슬로건이며 암환우들에게 보내는 격려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그래서 랜스 암스트롱 재단의 홈페이지 주소도 ‘www.livestrong.org’이다. 재단을 아예‘리브스트롱재단’이라고도 부른다.
경제적인 이유로 자살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다. 굶어 죽을 상황이 아닌데도 주위의 시선이나 상처 입은 자존심을 감당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상황으로부터 도피해버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안타까운 일이고 분명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이지만 다른 한편 생각해보면 너무도 나약하고 사치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불과 30년 전만 떠올려도, 또는 지금 지구 건너편에서 마실 물이 없어 죽어가는 사람들을 생각해봐도 그런 선택이 얼마나 사치스러운 것인지 알 수 있다. 더 벌어야 하고,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만 앞섰지 정작 작은 것 하나라도 성취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감수하고 인간적인 모멸을 견뎌내야 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고 노력도 안하는 것이다.
| 링컨의 기도 |
이렇게 말은 해도 실은 너나할 것 없이 인생의 크고 작은 장애를 견뎌내기에는 너무도 약하다. 그래서 여러 영웅들로부터 배우고 자극받아 또 한발짝 앞으로 나아가보는 것이다. 나는 나약했던 한 인간이 숱한 장애를 이겨내고 세상의 영웅으로 우뚝 선 대표적 예를 링컨에게서 발견한다.
그는 스스로 인정했듯이 나약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 전쟁을 지휘해야 했다. 자기도 전쟁이 무서운데, 두려움에 떨고 있는 병사와 장군들에게 용기를 심어주어야 했다. 링컨의 북군은 마지막 결정적인 전투에서 이기기 전까지는 연전연패였다. 남부의 리 장군이 이끄는 부대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18개월 동안이나 남부군에 의해 수만 병사가 살육되기도 했다. 나라 전체가 공포에 휩싸였고 사람들은 절망했으며 주위의 장군이나 정치가들조차 그를 비난했다. 사면초가 링컨은 이렇게 탄식했다.“ 우리는 지금 파멸 직전에 있습니다. 신(神)조차 우리에게 등을 돌리는 것 같습니다.”
잘 알다시피 링컨은 백악관에 기도실을 만든 사람이다. 그는비난과저주, 공포와 무기력함에 쫓겨가다시피 매일 기도실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무릎을 꿇었다. 뒤에 링컨은 자신의 기도에 대해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지금까지도 지혜가 터무니없이 부족하여 여기 말고는 달리 갈 곳이 없다는 압도적인 확신에 이끌려 지금까지 무릎을 꿇어 왔습니다.”나는 기도에 관한 이 솔직하고도 장엄한 고백에 충격을 받았고 늘 가슴에 새기고 산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지 뒤로 물러서야 할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어떤 길로 가야할 지 확신하지 못할 때가 더 많다. 확신이 서도 그 길을 꿋꿋이 걸어갈 자신이 없을 때가 많다. 우리에게는 옳게 판단하는 지혜도, 장애를 헤쳐 나갈 용기도 필요하다. 하지만 둘 다 부족하다. 링컨 같은 사람조차“지금까지도 지혜가 터무니없이 부족하다”고 고백했는데, 범인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남군의 위협, 정적들의 모함, 동료들의 회피 등 사면초가에 휩싸여 있던 링컨은 기도를 통해 어떤 길로 가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었고, 그 길을 흔들림 없는 용기로 개척해나갈 수 있었다. 그는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온갖 의심과 불안으로부터 해방되어 확신을 가지고 사람들을 설득해 나갈수있었다. 항상 지혜가 넘치고 늘 확신에 차 있으며 용기가 충만하다면 왜 기도를 하겠는가. 100% 행복하다면 왜 굳이 내면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하겠는가. 우리가 완전하다면 왜 무릎을 꿇겠는가. 작은 삶도 살자면 대단한 각오가 필요하고 그 각오를 지속시켜 나가자면 우리는 그만큼 강해져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조금도 강하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다.
나는 기도를 통해 지혜와 용기를 얻어 세상의 영웅이 된 링컨의 진면목을 그의 최후에서 보았다. 자고로 사람과 나무는 누워봐야 그 크기를 알 수 있다고 했다. 총탄에 맞아 쓰러진 링컨은 성자로 추앙받았다. 무려 2천만 명이 그의 장례열차를 지켜보았고 링컨과 함께 가겠다며 자살을 시도한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그의 진면목은 시신이 고향 마을로 운구되어 입관을 위해 사람들이 몰려나왔을 때 비로소 드러났다. 고향 사람들은 링컨을 가리켜‘링컨 아저씨’,‘ 에이브 삼촌’,‘ 사랑하는 에이브’,‘ 에이브 형’…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를 대통령으로서가아니라 동네 친구, 아는 형, 조카나 삼촌으로 대했던 것이다. 이 위대했던 인간은 죽어서까지도 겸손으로 위대함을 입증해보인 것이다. 그의 지혜와 용기, 겸손의 미덕은 기도에서 비롯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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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바지 사업을 구상하던 때의 기억이 떠올라 얼마 전 다시 미국 서부를 찾아갔다. 이번에는‘LA~그랜드캐년~LA’구간을 왕복 20시간 차를 몰아 황량한 서부 벌판을 달리며 청바지 사업의 미래를 구상했다. 사진은 UCLA 캠퍼스 내 파웰 도서관 앞 벤치에서 찍은 것. 입은 옷이 달라졌다. 청바지(블루진블루 클래시컬), 검정 드레스셔츠와 속에 받쳐 입은 이너셔츠 모두 우리가 만든 옷들이다.
첫댓글 아~~ 이 아침에 감동을 주시는 군요. 감사합니다.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우물쭈물 하다 내 이럴 줄 알았어.) 갑자기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 생각납니다.
늘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이고 도전하는 지기님의 말씀 되새깁니다.
항상 좋은글 올려주셔셔 감사드립니다^^
어려운환경에서도 사색하고 탐구하는자세, 배움에감사합니다.
겸손..배려,,자신을 뒤돌아 보게 만드시네요,,
전 아직도 부족한듯 하네요..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