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적 인생의 보람을 즐기며 산 전인평 박사
-한국음악평론가협회의 「제34회 서울음악대상」 수상에 즈음하여-
음악학박사(Ph.D.) 宋芳松(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희수(喜壽: 77세)의 인생 황혼기에 이르는 동안 이 사람은 이번처럼 반가운 소식을 전해 듣고 삶의 보람을 느낀 적이 흔하지 않습니다. 이런 보람을 안겨준 것은 다름 아니라 제가 아끼고 좋아하는 전인평(全仁平) 박사가 한국음악평론가협회의 「제34회 서울음악대상」을 수상한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이 수상소식을 들었을 때 얼른 떠오른 사자성어(四字成語)는 “만사(萬事)가 반드시 올바른 곳으로 되돌아간다”는 뜻의 사필귀정(事必歸正)이었습니다. 사필귀정이 떠오르도록 만든 전인평 박사와의 끈끈한 인연은 다음과 같은 여러 사연에 기인합니다.
1990년 초 이 사람이 건강악화로 입원 중이었을 때, 유네스코 한국위원회(Korean National Commission for UNESCO)로부터 실크로드 탐사 관련 소식과 더불어 음악 분야의 탐사팀원으로 필자를 추천하련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건강 회복 중이었기 때문에 당시 중앙대 전인평 교수를 추천하였습니다. 추천했던 이유는 그가 현지에서 인도음악을 공부한 경험자이고, 또한 東洋音樂(1989)이라는 개론서의 저자였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이것이 전인평 박사와 제가 끈끈한 인연을 맺게 된 첫째 사연입니다.
두번째 인연은 이 사람이 영남대(嶺南大: 1980~1998)를 떠나 한국예술종합학교(韓國藝術綜合學校) 전통예술원의 재직시절(1998~2008)에 맺어졌습니다. 전인평 박사가 Asian Musico- logy라는 영문학술서의 창간호를 2002년에 출간했을 때, 프레스센터 19층의 기자클럽에서 만나 축하 및 격려의 박수를 아끼지 않았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를 격려할 때 “과부(寡婦)만이 과부의 서러움을 알아준다”는 옛말을 상기시켰던 이유는 이런 사연 때문이었습니다.
1988년 한국음악학(韓國音樂學 Korean musicology)의 차세대를 위한 토론의 광장으로 한국음악사학회(韓國音樂史學會)을 설립한 때부터 韓國音樂史學報라는 음악학술지를 1년에 2회씩 출간하면서 결권 없이 현재까지 제60집을 출간하였습니다. 이렇게 강산이 세 번 변하는 동안 학보를 발간하면서 이 사람은 몇 차례 어려운 고비를 넘겼습니다. 원래 작곡가인 전인평 박사가 한글학술지도 아닌 영문학술서를 출간하느라고 격어야 할 그의 마음고생을 제가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한발짝 먼저 어려움을 경험한 선배로서 그에게 위로와 격려의 박수를 아낄 수가 없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기만 합니다.
정년퇴임 이후에 전인평 박사와 더욱 공고해진 세 번째 인연은 근래 그가 출간한 두 책에 대한 서평과 관련되었습니다. 두 책이란 전통음악의 작곡가들이 결성한 신악회(新樂會)의 회장인 전인평 박사의 지도 아래 펴낸 신악회50년사(2017) 및 그의 역저 한국창작음악사(2017)입니다. 신악회50년사의 서평에서 이 사람은 신악회의 기록이 현대 국악사의 사초(史草)임을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창작음악사의 서평에서는 이 책이 우리 현대음악사의 실록(實錄)임에 주목하자고 제의하였습니다.
1960년대 초 양악의 그늘 아래 겨우 명맥을 이어오던 국악의 길을 외롭게 걸어갈 때, 뜻을 같이하는 전인평과 같은 동지를 만났음을 저는 소중한 인연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전인평 박사처럼 성실하게 꾸준히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지기(知己)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해서 이 사람은 전인평 박사로부터 학문인생의 활력소를 찾았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본래 작곡가인 전인평 박사를 제가 누구보다 친근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음악학자도 펴내기 어려운 여러 분야의 음악이론서 20여권을 전인평 박사가 출간했습니다. 예컨대, 동양음악(1989)을 비롯해 새로운 한국음악사(2000)․실크로드음악과 한국음악(2000)․아시아음악연구(2001)․인도음악의 멋과 신비(2003)․한국음악 장단의 역사와 논리(2005)․아시아음악의 어제와 오늘(2008)․동북아시아음악사(2012)․아시아음악 오디세이(2013)․한국창작음악사(2017)․인도 그리고 인도음악(2018), 이상의 훌륭한 저서들은 한국음악학의 분야에서 높이 평가 받아야 할 연구업적입니다.
이렇듯 작곡 및 이론 분야를 넘나들며 활동하는 전인평 박사의 창작활동 및 연구활동을 생각할 때면, 해금(奚琴)을 생각하게 만드는 까닭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해금은 줄을 활대로 문질러서 소리는 내는 찰현악기(擦絃樂器: bowed string instrument)입니다. 이 해금은 줄을 뜯거나 튕겨서 소리를 내는 가야금이나 술대로 줄을 쳐서 소리내는 거문고 같은 안현악기(按絃樂器: plucked string instrument)와 서로 구분됩니다. 해금의 소리가 관악기처럼 오래 지속되기 때문에, 본래는 현악기이지만 합주시에는 관악기로 구분되기도 합니다. 작곡가로 알려진 전인평 교수가 여러 음악이론서를 펴내는 음악학자로도 꼽히기 때문에, 그의 학술활동이 해금의 역할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가을의 단풍이 봄철의 꽃처럼 아름다운 까닭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만드는 이유도 따로 있습니다.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 곧 고희(古稀)라는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인평 박사가 우리들에게 보여준 학자적 삶의 진지함과 결실은 가을철의 단풍을 연상시키는 탓이기도 합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하면서 살 때, 그를 행복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작곡할 뿐 아니라 이론분야에도 관심을 가지고 끊임없이 노력한 전인평 박사야 말로 행복하고 보람된 삶의 소유자라고 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이번 「제34회 서울음악대상」 수상의 축사 제목을 “학자적 인생의 보람을 즐기며 산 전인평 박사”라고 붙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제 학문인생의 성공적 삶을 아름답게 잘 마무리하기 위해서 돈․여자․건강, 이상 세 함정 중에서 건강의 덧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긴 이 사람이 전인평 박사에게 바라는 것은 일에 너무 욕심을 내지 말고 자신의 건강을 생각하고 속도를 조금 늦추라는 권고입니다. 대한민국작곡상(1984)을 비롯해 KBS국악대상 작곡상(1996)․난계악학대상(2003)·한국음악대상(2016) 등의 수상에 이어 이번 한국음악평론가협회의 「제34회 서울음악대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전인평 박사! 아무쪼록 건강하기를 기원합니다.” (2018년 10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