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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글이 걸어온 길과 나아갈 길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 리대로
1. 머리말
우리 배달겨레는 5000 해가 넘게 이 땅에 살아온 겨레하고 한다. 그러니 적어도 5000 해 앞에서부터 우리말을 가지고 말했을 것이다. 우리 배달겨레말 속에는 우리 한아비들의 삶과 얼과 앎과 발자취까지 들어있다. 우리 한아비들이 어떻게 살았고 어떤 생각을 하고 무슨 말꽃을 피우고 살았는지 담겨 있다. 아프지 않으려면 무엇을 먹어야 하고, 먹지 말아야 하는지도 담겨 있고, 튼튼하게 살려면 어찌해야 하는지, 풀벌레와도 어떻게 어울려 살아야 할지도 다 담겨있다. 그래서 겨레말을 지키고 빛내는 일은 겨레 얼을 지키고 빛내는 일이고 우리 한아비들의 삶과 뜻을 빛내는 일이며 우리가 우리답게 잘 사는 일이다.
우리말이 살고 빛날 때 우리 겨레가 살고 빛난다. 우리말이 시들고 죽게 되면 우리 겨레도 시들고 죽는다. 우리말이 아프면 우리 겨레도 아프고 죽게 된다. 우리 겨레말을 우습게 여기고 남의 말을 더 섬기면 얼빠진 겨레가 되고 그 겨레는 못살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남의 겨레와 나라에 짓밟히고 먹힌다. 그리고 겨레말이 사라지면 그 겨레도 사라진다. 우리 이웃 만주벌에 살던 만주겨레가 그 꼴이다. 그러나 멀리 아라비아에 살던 유대겨레는 2000 해가 넘게 나라를 잃고 떠돌아 흩어져 살면서도 제 겨레말을 지켜서 다시 제 나라를 세웠다. 그 겨레말이 그 겨레에게 어떤 것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우리 겨레는 아주 옛날에도 우리말을 우습게 여기고 남의 말을 섬겼고 오늘날도 그렇다. 옛날에는 중국말, 오늘날엔 미국말을 더 떠받들고 있다. 우리가 만든 똑같은 옷이나 집에도 그 이름을 우리 말글로 지어 달면 헐값에 팔리고, 남의 말글로 그 이름을 지어 달면 더 비싸게 팔린다고 한다. 제 나라말로 된 이름이 멀쩡하게 있는 데도 남의 나라 말글로 이름까지 바꾸고 있다. 그것도 돈이 많고 많이 배웠다는 이들과 나라를 이끄는 이들이 그 짓을 앞장서서 하고 있으니 나라꼴이 좋지 않다. 참으로 답답하고 가슴이 아프다.
이런 못된 버릇은 중국 글자가 이 땅에 들어와 판치고, ‘서라벌’이란 우리말로 된 나라 이름을 ‘신라’란 한문으로 바꾸고 중국의 말글을 섬긴 통일 신라 때부터 1300여 해 이어온 못된 버릇이다. 왜놈들에게 이 나라를 빼앗겼을 때에 왜놈 말글을 배워서 왜놈 앞잡이 노릇을 하면서 저만 잘 살던 무리들이 오늘날엔 아메리카 말글을 배워서 저만 떵떵거리고 잘 살겠다고 설치고 있다. 모두 제 등만 따뜻하고 제 배만 부르면 그만이라는 못된 마음보다. 그래서 우리 말글이 더 시들고 있으니 안타깝다.
이제 우리 말글이 걸어온 길을 되짚어보고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우리말을 지키고 살려야 할지 생각해보련다. 우리말이 무엇이며, 왜 우리말을 지키고 써야 하는지 따져 보련다. 언제부터 누가 우리 겨레말을 힘없는 말로 만들었는지도 알아보고 어떻게 해야 우리말 빛날 수 있는지도 생각해보련다.
2. 왜 우리말을 지키고 빛내야 하나?
가. 말이란 무엇인가?
말은 사람의 생각과 뜻과 마음과 앎과 일어난 일들을 소리나 글자로 서로 주고받는 것이다. 말은 소리로 하는 소리말과 그 소리말을 글자로 적은 글말로 나뉜다. 그래서 글은 바로 말이라고 w하고, 말이란 낱말 속에 글도 들어간다고 말 한다. 글은 말소리가 바로 사라지기 때문에 그 말을 눈으로 볼 수 있도록 적은 것이다. 여기서 글이라고 하는 것은 글자와 똑같이 보면 안 된다. 글자는 글을 적는데 쓰려고 만든 그림이다.
그런데 사람이 쓰는 말은 사람을 하늘과 땅에 사는 모든 것의 우두머리로 만들었다. 힘이 세기로는 사람보다 코끼리와 고래가 더 셀 것이고, 사납기는 호랑이나 사자가 더할 것이다. 크기로는 숲속의 나무가 더 크고, 아름답기는 꽃이 더 아름다울 것이다. 사람보다 하늘을 나는 새가 더 빨리 날면서 멀리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그들을 마음대로 다루고 이끌고 있다. 사람이 말글을 쓰기 때문이다. 말글로 사람들이 뭉치고 힘을 모으고, 말글로 더 큰 힘을 쓸 수 있는 연모와 틀을 만들고 그걸 잘 부려 더 큰 힘을 내기 때문이다.
나. 힘센 겨레말이 힘센 나라를 만든다.
어떻게 사람이 모든 것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나? 말과 글로 마음과 뜻과 생각, 앎과 일어나는 일들을 주고받고 여럿이 하나로 뭉치고, 연모와 틀을 만들고 부려 써서 더 큰 힘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좋은 말과 글자를 가진 겨레와 그 말글을 잘 부리는 나라는 그렇지 못한 겨레나 나라보다 더 힘세고 잘 살 수 있었다. 말은 사람을 온 누리 우두머리로 만들고, 좋은 나라말도 그 나라를 좋은 나라로 만든다.
일찍이 3000 여 해 앞서부터 한자란 글자를 가지고 잘 부려 쓴 중국 한족은 수천 해 동안 동양의 우두머리로 지냈고, 일본도 우리보다 500 해 앞서 ‘가나’란 제 글자를 만들어 쓰면서 우리보다 앞선 나라가 되었다. 유럽에서도 그리스나 로마가 2-3000 해 앞서서부터 제 글자를 가지고 잘 부려 씀으로서 힘센 나라가 되었고, 이탈리아는 750여 해 앞에 단테가 제 겨레말로 좋은 글을 써서 힘센 겨레로 만들었고, 영국도 500여 해 앞에 셰익스피어가 우리 한문과 같은 라틴어를 버리고 제 겨레말로 좋은 글을 써서 힘센 나라가 되었고, 스페인은 세르반테스가 제 겨레말로 좋은 글을 쓰면서 힘센 나라가 되었으며, 독일도 뒤 늦게 200 해 앞에 괴테가 제 나라말로 좋은 글을 쓰고 제 겨레말 살리는 바람을 일으켜서 잘 사는 나라를 만들었다. 모두 그 겨레말을 잘 부려서 쓰고 빛내면 그 겨레도 그 겨레의 나라도 빛난다는 것을 알려주는 일이다. 이제 우리도 우리 말글을 갈고 닦아 힘센 나라를 만들자.
다. 우리말이란 무엇인가?
5000 해 앞에 우리 한아비들이 주고받던 말이 우리말의 뿌리요, 그 뿌리에서 새로운 말도 태어나고 사라지면서 내려와 오늘날 우리가 모두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우리말이다. 우리말 속에는 여러 겨레와 나라말이 들어오고 나가고 다듬어져서 우리말이 된 것도 있다.
그런데 참된 우리말은 많이 배우지 않는 사람과 어린 아이와 늙은이도 귀로 들어서 알 수 있는 말, 우리글자로 쓰면 서로 쉽게 알 수 있는 말이다. 남의 나라에서 들어와 남의 글자로 쓰고 그걸 눈으로 봐야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는 말은 우리말이 아니다. 한자나 로마자로 써야 그 말뜻을 알 수 있는 말, 귀로 들어서는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말은 우리말이 아니다. 그런 말은 버리거나 쉬운 우리말로 바꾸거나 없으면 새로 만들어 써야 한다. 우리 겨레끼리 누구나 모두 알고 함께 쓰는 말이 우리말이다.
라. 우리 글자는 어떤 글자인가?
요즘 어떤 이들은 한자도 오랫동안 우리가 썼으니 우리 글자라고 말한다. 그러나 한자는 우리 글자가 없을 때 오랫동안 썼지만 우리 글자는 아니다. 우리 글자는 1443년에 조선 4번째 임금인 세종이 만들어 1446년부터 쓴 한글(훈민정음)이다. 세종은 우리 글자가 없어 중국 글자인 한자를 빌려 쓰다 보니 여러 어려움이 있어 우리가 누구나 쉽게 읽고 쓸 수 있는 진짜 우리 글자를 만들었다.
어떤 이는 한글은 세종이 만든 것이 아니고 아주 옛날부터 있었다고 하는 데 아주 크게 잘못된 말이다. 훈민정음 해례본과 조선왕조실록에 뚜렷하게 세종이 새로 만든 글자라고 적혀있다. 또 그 만든 까닭과 만든 본바탕도 밝혔다. 또 어떤 이는 세종 때 훈민정음과 한글이 똑 같은 말이 아니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한글은 훈민정음의 또 다른 새 이름이다. 세종이 만든 훈민정음을 정음이나 언문이라고 부르던 것에 새로 토박이말 이름을 지어 붙인 것이다. 다만 처음에는 28자였는데 지금은 우리말을 적는 데 없어도 되는 4글자는 안 쓸 뿐이고 그 적는 틀이 다를 뿐이지 전혀 훈민정음과 다른 새 글자가 아니다.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서 중국 문자로는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어리석은 백성들이 말하고 싶은 바가 있어도, 끝내 제 뜻을 펴지 못할 사람이 많다. 그래서 내가 이를 딱하게 여겨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니 사람들이 모두 쉽게 익혀 날마다 쓰기 편안하게 하고자 하노라.” 라고 세종은 말씀을 하셨다. 한글은 우리 빛이고 목숨이다. 한글을 주신 세종께 엎드려 큰 절을 하자.
마. ‘한말글’이란 우리 말글을 통틀어 부르는 이름이다.
일찍이 주시경 선생은 1910년 일본 제국에 나라를 빼앗기니 우리말을 국어라고 부를 수 없게 되니 우리말을 ‘한말’이라고 새 이름을 지어 불렀고, 우리 언문이나 암글이라고 부르던 우리 글자 이름을 ‘한글’이라고 새 이름을 지어 불렀다. “한겨레의 말, 한겨레의 글”이라는 뜻이었는데 ‘한글’이란 이름은 왜정 때부터 ‘한글’이란 학술지를 내고, ‘한글날’도 만들면서 뿌리를 내렸으나 ‘한말’은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우리 말글을 통틀어서 부를 때는 ‘한말글’이라고 부르고 있다. 20여 년 전에 한말글사랑겨레모임(공동대표 리대로, 밝한샘)을 만들어 활동하면서 한말글연구학회도 나오고, 2005년부터 한글학회 부설 한글문화협회를 한말글문화협회로 이름을 바꾸어 부르고 있다. 한자가 아직도 설치고 있어 한글을 내세우다보니 나온 새 이름이다.
2. 한말글이 걸어온 길
우리 배달겨레는 단군 때로부터 5000 해 동안 나라를 이루고 살아왔다. 그러니 그 때부터 우리 겨레말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글은 없어서 그 보다 더 늦게 2000여 년 앞서부터 있던 세 나라인 고구려, 백제, 신라 때부터 중국 한자를 들여다 썼다. 그리고 신라가 중국 당나라의 힘을 빌려서 고구려와 백제를 무너트리고 당나라 말글과 문화를 하늘처럼 섬기면서 우리말이 힘없는 말이 되고 중국 말글의 곁가지로 살아왔다.
가. 중국 말글 종살이
신라 22대 지증왕 4년 (서기 503년)에 ‘서라벌’이란 나라 이름을 ‘신라’라 바꾸고, “거서간, 니사금, 마립간, 차차웅” 들 우두머리 불림 말을 중국처럼 ‘왕’이라 바꿔 부르면서 우리말이 흔들렸고, 35대 경덕왕((742~765년 임금) 때에 관직과 땅이름, 사람이름까지 중국식으로 바꿔서 중국 말글 종살이를 하게 되었다. 그게 지금까지 1300여 년 동안 이어온 것이다.
사람이름도 “연개소문, 박혁거세, 을지문덕”처럼 한자를 썼더라도 우리식 이름이었는데 “김춘추, 김유신”처럼 중국식 성씨를 만들어 세 글자로 이름을 짓기 시작해서 오늘까지 내려오고 있다. 그 때엔 우리 성씨도 없었고, 이름이 없는 사람도 많았다. 땅이름은 중국 땅이름을 그대로 들여다가 붙인 것도 있어 경상도와 전라도 지방에 가면 중국 땅이름과 똑같은 곳이 많다. 내가 중국에 가 있을 때 중국 절강성 장개석의 고향에 가니 그 곳 땅이름이 ‘봉화’인데 경상도 ‘봉화’와 똑같았다. 전라도 전주시는 중국에 있는 전주시와 이름이 같다고 자매결연도 맺었다고 한다. 부끄러워할 일이다.
나. 우리말 홀로서기 첫걸음
우리 한아비들도 중국 말글을 섬기면서도 우리말을 지키려고 몸부림을 쳤다. 신라 때에 중국 한자를 쓰더라도 우리식인 ‘향찰’과 ‘이두’란 글 적기를 한 것이 우리말 홀로서기 첫걸음이다. ‘향찰’은 우리말을 한자의 소리와 뜻을 빌려 적은 것으로 진짜 우리식 글 적기라고 볼 수 있다. 처용가에서 “셔블 밝기 달에”를 “東京明期月朗=동경명기월랑”으로 적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 우리식 글 적기인 ‘향찰’이 사라지고 우리말을 한문으로 적으면서 조사와 어미만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적었다. 이것을 ‘이두’라고 한다. 이두는 설총이 만든 것이라는 데 설총은 중국 한자와 중국 문화를 잘 알고 중국을 오간 경덕왕 때 사람이다. 그런 그가 한문은 우리말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이두 글 적기 방식을 널리 알리고 힘을 썼던 것이고, 그가 가장 먼저 우리 말글 홀로서기를 한 분이다. 그리고 고려시대에 유행한 ‘구결’이란 우리말 적기가 있었다. 이렇게 한자를 빌려서 우리말을 적는 향찰, 이두, 구결 식 글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글자 ‘가나’가 되었다고 한다.
다. 진짜 우리 글자인 한글(훈민정음)이 태어나다.
세종은 어려서부터 책을 많이 읽고 머리가 좋아서 임금이 되어 훌륭한 일을 많이 해 힘센 나라를 만들었다. 더욱이 백성들을 끔찍하게 사랑한 세종은 1443년 우리 글자인 훈민정음(한글)을 만들었으나 한자 나라인 중국과 그 한자를 섬기는 최만리 같은 사대주의자 들 때문에 3년 동안 그 쓰임과 훌륭함을 연구하고 보여준 다음 1446년부터 쓰게 했다. 세종이 설총 다음으로 우리 말글 홀로서기에 나선 큰 어른이고 참된 우리말 홀로서기 밑바탕을 닦아준 분이다. 이때부터 우리 말글을 한말글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과 중국 말글을 섬기는 무리들 몰래 만들다보니 언제부터 어떻게 만들었다는 것은 적어놓지 않아서 어떤 이는 한글이 고조선 때부터 있었던 글자라느니, 일본 신대문자를 보고 만들었다느니 헛소리를 많이 하고 있다. 모두 제 것을 우습게 여기는 무리들이 제 글자인 한글을 업신여기는데서 나온 잘못된 말이다. 세종임금이 혼자 다 만들었으며 그 아들딸들과 아주 가까운 사람들 도움을 조금 받았다는 것이 뚜렷하다. 그리고 그런 엉뚱한 소리는 우리 말글 홀로서기에 아무 도움이 안 된다. 헛심 쓰기일 뿐이다.
라. 조선시대 한말글을 지키고 살린 이들
한글은 세종과 세조에 이어 성종 때까지 나름대로 살리려고 애썼으나 연산군 때부터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나 최세진(崔世珍 : 1465?~1542)이 우리 말글을 연구하고 보급하는 데 힘썼으며 오늘날 “기역, 니은, 자모 명칭이 그가 지었다고 한다. 송강 정철(松江 鄭澈. 1536~1593)과 고산 윤선도(1587 선조20∼1671 현종12)가 우리 말글로 가사를 쓰고 서포 김만중(김만중, 1637∼1692) 은 송강과 고산이 우리 말글로 가사를 쓴 것은 잘한 일이라면서 우리 말글로 구운몽 같은 소설을 쓰고 그 뒤에 허균이 우리 말글로 소설을 쓴다. 여기서 서포 김만중은 세종 다음으로 애쓴 한말글 쓰기 운동가다.
그리고 왕실이나 양반집 여인들이 한글로 편지를 많이 쓴 편이고 한문책을 국역하고 공문서로도 가끔 쓴 일이 있다. 김슬옹 박사 연구 자료에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한글(언문)과 관련된 이야기가 947건이 있다.” 고 한다. 그렇게 한글이 목숨을 이어오다가 대한제국 개화기에 널리 쓰이게 된다.
마. 한글이 널리 쓰이게 한 기독교와 서양인들
19세기에 서양인들이 기독교를 이 땅에 알리는 수단으로 성경을 우리 말글로 만들면서 한글이 널리 쓰이게 된다. 한글과 똑같은 소리글자인 로마자를 쓰는 서양인들이 한자보다 한글이 좋다는 것을 알았기에 한글로 성경을 만들었다. 중국 한문이 공문서로 쓰이고 한문이 출세 수단이라고 여기던 조선인들은 우리 말글로 쓴 성경을 보면서 한글이 훌륭함을 깨닫게 된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한글 때문에 기독교도 살고 한말글도 살게 되었다.
그 서양인들 가운데 1886년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처음 세운 신식 교육기관인 육영공원 교사로 온 미국인 헐버트가 한국에 온지 3년만인 1889년에 한말글로 쓴 ‘민필지’란 세계 사회지리 배움책을 써서 한글이 빛을 본다. 그는 가장 처음 영문으로 한글이 세계 으뜸 글자라는 논문을 써서 세계에 알린 한글 세계화 개척자다.
바. 드디어 우리 글자를 ‘국문(나라글자)’이라고 하다.
청일전쟁에서 중국이 일본에게 진 뒤 우리는 중국의 얽매임에서 풀려나게 되었다. 1895년 고종은 칙령 1호에서 우리 글자를 국문이라고 부르며 나라 공문서에 정식으로 쓰도록 한다. 그리고 1896년 서재필과 주시경은 우리 한글로만 써서 ‘독립신문’을 만든다. 그리고 주시경은 독립신문사 안에 ‘국문동식회’란 우리 말글 연구모임도 만들고 그 독립신문 제이권에 쓴 ‘국문론’에서 우리 말글을 살려서 쓸 때 우리나라가 빨리 발전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주시경은 지석영 선생과 다른 여러분들과 함께 1907년에 나라 안에 ‘국문연구소’를 만들어 우리 말글을 쓸모 있게 바로잡으려 애쓰고, 스스로 가르친 상동학원 제자 최현배,김두봉 들과 함께 1908년에 민간 국어연구학회(한글학회 처음 이름)를 만든다.
사. 토박이말을 살려서 쓴 주시경 선생.
1910년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지만 우리 말글을 갈고 닦는 일은 그치지 않는다. 나라를 잃으니 우리말을 ‘국어’라고 할 수 없으니 ‘국어연구학회’란 이름을 쓸 수 없어 1911년에 ‘조선어강습원’이라고 바꾸고 ‘배달말글몯음’이라고 부르다가, 1913년에 ‘한글모’라고 이름을 바꾸고 주시경이 회장이 된다. 우리 글자에 ‘한글’이라는 이름을 처음 붙인 것이다. 그래서 ‘한글’이란 이름을 주시경이 지었다고 본다. 그 때 주시경은 제 이름을 ‘한힌샘’이라고 바꾸고 맏딸 ‘송산’은 ‘솔메’, 맏아들 ‘삼산’은 ‘세메’, 둘째 아들 ‘백산’은 ‘흰메’, 둘째 딸 ‘춘산’은 ‘봄메’, 셋째 아들 ‘왕산’은 ‘임메’, 고쳤던 것이다. 우리말 사전인 ‘말모이’를 다 만들어 갈 즈음 1914년에 갑자기 이 땅을 떠난다. 세종 다음으로 우리 말글을 홀로세우는 일을 잘 한 분이다. 나는 서울시에 '한글 마루지 사업'을 추진하게 하면서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뒤 한글학회 근처 공원에 주시경, 헐버트 선생을 기리는 조형물을 만들게 해서 지금 진행하고 있다. 올 한글날 즈음에 완공될 것이다.
아. 일본 말글에 짓밟힌 한말글
이 나라는 일본 말글 나라가 되고, 우리말을 못 쓰게 하고 땅이름도 우리 토박이말을 버리고 한문으로 바꾸고 사람 이름도 한자로 쓰게 하더니 끝내는 우리식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게 하는 창씨개명 정책을 강행한다. 그리고 학교에서 우리말을 가르치지도 않고 쓰지도 못하게 한다. 그래서 우리말과 겨레까지 사라질 번했다.
오늘날까지 우리를 괴롭히는 이 한자 섞어 적기는 일본식 말글살이다. 1886년 한자혼용 신문인 한성주보를 내는 데 관여한 일본인 ‘이노우에 가쿠고’가 뒷날 왜정시대에 “일본처럼 한자를 섞어 쓰는 말글살이에 길들여서 장차 조선을 지배할 목적으로 그렇게 했다.”고 털어 논 일이 있다.
그리고 1895년 국비로 일본과 미국을 유학한 유길준이 ‘서유견문’이란 책을 한자혼용으로 썼다. 그는 일본 게이오대학을 설립하고 명치유신 이론을 만들어 이 땅과 동남아를 쳐들어가게 한 ‘후쿠자와 유키치’의 애제자로서 제 스승이 서양을 돌아보고 쓴 ‘서양사정’을 본 따서 한자혼용체 글을 썼다. 1906년 6월 6일 대한매일신보는 "한국 유년에게 한자혼용 일문 교과서를 익히게 하는 것은 어린아이의 뇌수를 뚫고 일본의 혼을 주사하고자 함이다"라고 쓰고 있다.
우리는 조선시대까지도 한자만으로 글을 쓰거나 한글만으로 글을 썼다. 중국 한문책만 읽고 과거 시험을 보고 나라 공문서도 한문으로만 쓰던 조선 사람들이 왜정 학교에서 한자혼용 말글살이에 길들어 우리 토박이말을 버리게 된다. 이제 일본식 말글살이인 한자 섞어 쓰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3. 우리 말글을 지키고 빛내기
가. 우리말 지킴이 조선어학회
한글모(국어연구학회)는 일제 탄압이 심하고 1914년에 주시경이 갑자기 이 세상을 떠나게 되어 모임 활동이 중단되었다가 1921년에 그 제자들 중심으로 조선어연구회로 다시 출범해서 활동을 활발하게 한다. 이들은 1926년에는 한글날(가갸날)도 만들고 1931년에 조선어학회로 이름을 바꾸고 한글맞춤법, 표준말, 로마자표기법 들 말글 규정을 정하고 우리말 사전을 만든다. 1942년에는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을 33분을 왜놈들이 잡아다가 모진 고문을 해서 이윤재, 한징 두 분은 감옥에서 세상을 뜬다. 조선어학회는 참으로 크고 알찬 일을 많이 했다. 그 어떤 독립운동 단체보다 가장 중요한 독립운동 단체였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이 분들을 잊어버리고 고마워하지도 않고 그 뜻을 이어가지 않고 있다. 참으로 부끄럽고 못난 일이다. 나는 서울시에 한글이 태어나고 자란 광화문 일대를 한글문화관광지로 만드는 '한글 마루지 사업'을 하게 하면서 경복궁 앞 열린시민마당에 "조선어학회 항일 투쟁 기념탑"을 세우게 했는데 올 한글날 즈음에 완공 할 것이다.
나. 한말글 시대를 열다.
1945년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에 패함으로 우리는 미국 군사정부가 3 년 동안 통치하게 되었다. 다행히 미군은 우리 말글을 영어와 함께 공용어로 쓰게 하고, 우리 말글로 공문서와 교과서를 만들어 쓰게 했다. 미국 군정청은 1946년부터 한글날을 공휴일로 정하고 온 국민이 기념하도록 했다. 조선어학회 회원인 안재홍이 미국 군정청 장관, 학무국 편수과장에 최현배, 부과장에 장지영이 들어가서 교과서를 우리 말글로 만든다. 그리고 조선어학회(그 때 회장 이극로)는 우리말 도로 찾아 쓰기와 한글 교사 양성에 힘쓴다.
이 모두 왜정 때 조선어학회가 한글날도 정하고, 한글 쓰기 규정을 만들고 우리 말글 말광을 만들었기에 될 수 있었다. 만약에 조선어학회가 그런 일을 안했다면 조선시대처럼 한문을 쓰거나 왜정 때처럼 일본 말글로 공문서도 쓰고 교과서도 만들었을지 모른다. 우리는 조선어학회 학자와 애국지사들이 고마운 줄 알아야 한다.
다. 우리 토박이말 도로 찾아 쓰려 애쓰다.
광복 뒤 조선어학회가 일제가 짓밟아 죽인 우리말을 도로 찾아서 쓰고 새 우리말을 만들어 쓰려고 애쓴다. 왜정 때 방정환이 ‘어린이’라는 새말을 만들어 쓴 일은 참 잘한 일이고 광복 뒤에 ‘건널목’이란 새말도 만들어 썼다. ‘한성’이나 ‘경성’이라 부르던 땅 이름을 우리말 ‘서울’로 썼다. 주시경, 서재필이 만든 독립신문에 보면 ‘서울’이라고 썼다. 음악 용어에서도 “높은 음자리표, 도돌이표”같은 새말을 만든다.
그런 일 가운데 1948년에 서울사대 이기인 교수가 일본말과 영어로 된 생물학용어를 우리 말글로 바꾸어 ‘사리갈말 말광’을 만든 일은 참으로 으로 잘한 일이다. ‘사전’이라고 하지 않고 ‘말광’이라고 한 것은 주시경이 '말모이'라고 한 일과 함께 오늘 우리가 본받고 이어가야 할 일이다. 그 마음으로 다른 학술용어나 전문용어를 이렇게 우리말로 바꾸었다면 우리말이 살아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제 한말글로 학문도 할 때이다.
라. 조선어학회는 한글학회로 이름을 바꾸다.
조선어학회는 대한민국을 세운 뒤에 그 이름을 '한글학회'로 바꾼다. 남쪽은 나라 이름을 대한민국이고 북쪽은 나라 이름에 조선이라는 이름이 들어갔으니 남쪽 단체나 기관 이름에서 조선이라는 말을 그대로 쓸 수 없었다. 그래서 조선체육회가 대한체육회로 바꾸듯이 조선어학회도 1949년에 회의를 열고 정인승이 제안한 한글학회로 이름을 정하게 된다. 그리고 한글학회는 한글만 쓰기 운동에 나서고 우리말 큰사전 만들기를 마무리 한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한글 지키고 갈고 닦는 일을 한다.
마. 일본처럼 한자를 혼용하자는 세력들
이승만 대통령 때는 중간에 한글파동이 있었지만 한글사랑 정신이 그대로 이어졌다. 그런데 1961년 박정희, 김종필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한일회담을 강행하면서 1964년부터 일본처럼 교과서에 한자를 섞어서 만든다. 또 우리 토박이말로 된 “이름씨, 그림씨” 같은 토박이말 말본 용어를 “명사, 형용사”란 일본식 한자 용어로 통일한다. 대한제국 끝 무렵인 주시경 선생이 시작한 우리 말글 살리기가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백성이 일어나 나라를 구한다는 말이 있는 데 1967년에 젊은 대학생들이 국어운동대학생회를 만들어 한글학회와 함께 그들에 맞서 싸운다. 그러니 정부는 1968년에 “1970년부터 한글전용을 하겠다.”다고 발표하니 1969년에 일본처럼 한자혼용을 주장하는 경성제국대학 출신 이희승과 이숭녕들이 중심이 되어 한국어문회를 만들어 한글학회에 맞선다. 이 한글과 한자 싸움은 지금까지 이어진다. 나는 1967년부터 국어운동대학생회를 만들고 지금까지 45년 동안 이 싸움에 판 앞에서 싸우고 있다.
한자파들은 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회장 진태하)를 만들어 일본식 한자혼용운동에 나서더니 요즘은 어문정책정상화추진회(회장 이한동)란 모임까지 만들어 한글만 쓰는 말글살이는 위헌이라는 헌법소원까지 냈다. 그리고 새누리당 박인숙 김세연 의원들을 내세워 초등학교에서부터 한자를 가르치고 교과서에 일본처럼 한자를 섞어서 적자는 법안까지 냈다. 이들은 일본처럼 한자검정시험제도를 만들어 돈벌이에 열심이고 한자 붓글씨 학원이 돕고 있다. 끈질긴 친일 반민족 세력들의 마지막 발악이다.
바. 미국말 종살이로 가다.
통일신라 때부터 우리 말글 홀로서기를 가로막던 한자 세력이 물러나는 가 했더니 이 세력은 20여 년 전부터 영어 섬기기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김영삼이 김종필과 함께 정권을 잡고 한자조기교육과 영어조기교육을 하겠다고 나서면서부터 시작된 일이다. 김종필은 그 뒤 김대중에 붙어서 국무총리를 하면서 다시 한자와 영어 섬기기에 나서고, 여기에 학술원, 국어원, 조선일보와 포항제철 박태준도 함께 우리 한글을 못살게 구니 우리 말글이 바람 앞에 등불 꼴이 되었다. 통일 신라 때에 당나라 관직과 중국식 이름짓기에 나선 것처럼 영문으로 회사 이름과 공공기관 직제 이름을 바꾸고 있다.
우리말을 배우기 전에 미국말을 가르치고 대학에서 영어과가 아닌 다른 학과 강의를 영어로만 하고 있다. 영어를 우리 공용어로 하자는 얼간이가 판을 친다. 주시경이 공부한 배재학당 후신인 배재대학교는 국문과를 없애겠다고 한다. 사립초등학교 학부모들은 영어로 교육을 하게 해달라고 정부 청사 앞에서 시위까지 하고 있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고 하더니 1300년 전 통일 신라가 당나라 글과 문화를 그대로 받아 들여서 오늘날까지 한문에 짓눌려서 살게 한 것과 똑같은 짓을 되풀이하고 있다.
4. 한말글이 나아갈 길
가. 한말글이 홀로서야 한다.
아직까지 우리 한말글은 남의 말글에 눌려 살고 있다. 아주 옛날에는 우리 글자가 없어서 중국 한자를 빌려서 쓸 수밖에 없기에 중국 말글에 눌려 살았다. 그래서 우리 문화는 지금까지 중국 문화의 곁가지였다. 2000여 해 동안 한자를 썼으나 아직도 한문으로 쓴 우리 문학작품보다 2000년 해 앞서 중국인 공자나 맹자, 노자가 했다는 말을 쓴 논어나 사서삼경을 가장 훌륭한 책이라고 국립 교육방송에서까지 가르치고 배우는데 시간과 힘을 쓰고 있다.
일본 종살이를 하던 왜정 때 길들어진 한자 혼용 말글살이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것도 그 꼴이다. 거기다가 이제는 미국말 식민지가 되겠다고 발악을 하고 있다. 이제 우리 한말글로 좋은 글을 쓰고 서로 아는 것을 알려주고 배울 때이다. 그래서 우리 말꽃을 피우고 우리 한말글로 학문도 해서 노벨 문학상, 과학상을 탈 사람도 나와야 한다.
나. 어떻게 한말글이 홀로 설 수 있나?
첫째, 우리말을 우리 글자인 한글로만 적는 말글살이를 하는 것이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책도, 정부에서 쓰는 공문서도, 신문도, 시와 소설과 논문도 우리 말글로만 쓰는 것이다. 둘째, 이제 일본 한자말과 영어를 우리 토박이말로 바꾸는 노력을 많이 해야 한다. 우리말이 없으면 새로 만들어야 한다. 셋째, 일본 말투, 미국 말투 글을 쉬운 우리 말투로 바꿔야 한다. 넷째, 사람이름과 회사이름, 모임의 이름도 우리 말글로 짓고 쓰는 것이다. 중국 한자나 미국 영문이 아닌 우리 말글로만 이름을 지어야 한다. 넷째, 우리 말글로 빼어난 문학작품, 학술논문, 그 밖에 좋은 글을 많이 쓰는 것이다. 다섯째, 우리 말글을 우리 스스로 우리 말법에 맞게 바르게 써야 한다. 그리고 이름도 우리 말글로 짓는 방법을 연구하고 실천해야 한다.
내가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과 한글빛내기모임을 만든 것도 우리말을 살리려는 일이다. 나는 20여 해 앞에서부터 하이텔, 천리안 통신상에서 한글사랑, 우리말 살리기 운동을 했다. 그 때 나는 ‘네티즌’을 ‘누리꾼’이라고 바꿔 쓴 일이 있다. 요즘엔 사진기는 '찍틀‘. ‘사진’은 ‘찍그림’, ‘동영상’은 ‘움직그림’, 단풍은 ‘꼬까잎’, ‘낙옆’은 ‘떨잎’이라고 쓰고 있다. 길이 없으면 만들고 많은 사람이 가면 길이 되듯이, 새말을 만들고 많은 사람이 쓰면 우리말이 된다.
다. 왜 우리말이 홀로서야 하나?
한마디로 우리 겨레가 잘 살기 위해서이다. 제 겨레의 말꽃이 빛나야 그 겨레도 빛나고 그 겨레의 말이 힘센 말이 될 때 그 겨레도 힘센 겨레가 되었다.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 된 것도 말글로 지식과 정보를 주고받고 뭉치기 때문이다. 옛날처럼 중국 한문으로 교육하고 정치하고 지식과 정보를 주고받다가는 문맹자가 많아서 앞서가는 나라, 자주 문화강국이 되지 못한다. 일본 강점기처럼 일본말을 나라말로 정하고 그들의 역사를 국사로 배우고 그들 말글을 쓸 때는 우리 겨레가 살 수 없었다. 우리도 우리 말글을 살려 쓰려고 한 세종 때 문화와 과학이 발전했다. 오늘날 우리 경제와 문화가 빨리 발전한 것도 우리말을 우리 한글로 적었기 때문이다.
5. 마무리 말
지금까지 우리말이 무엇이며 우리말이 걸어온 길과 갈 길을 살펴보고 왜 한말글이 홀로서야 하는지도 생각해 봤다. 지난 수천 해 동안 우리는 남의 말글에 얹혀서 살았기에 우리 한말글이 홀로서지 못했다. 우리 글자가 없었기 때문이지만 이제 세계 으뜸가는 우리 글자인 한글이 있다. 이제 제 말글보다 남의 말글을 더 좋아하고 섬기는 못된 버릇을 씻어버리자. ‘알몸’이란 우리말보다 ‘나체’란 한자말을 더 좋아하다가 ‘누드’란 미국말이 더 높은 말로 아는 마음보를 버려야 한다. 이제 마음 바로 갖기, 우리말 바로 쓰기에 힘쓰고 우리답게 살자.
1300 해 앞서 살던 설총이 한자를 쓰더라도 중국 한문이 아니고 우리말식 한문을 쓰려고 이두를 만든 마음, 570해 앞서 살던 세종임금이 우리 글자를 만들고 널리 쓰게 한 마음과 움직임, 400 여 해 앞서 살던 김만중이 우리 말글로 글을 써야 한다고 외친 일, 120 해 앞서 살던 한힌샘 주시경이 우리 글자와 우리 토박이말을 살려서 써야 우리 겨레가 산다고 외치고 가르친 마음과 일을 본받고 이어가야 한다. 박정희 정권도 '한글 사랑, 나라 사랑' 을 외치면서 한글을 살리려고 했다. 오늘날 한글날을 국경일로 만들고 공휴일을 되찾은 것도 한말글을 지키고 살리려는 일이다.
우리에게 온 누리에서 으뜸가는 우리 글자, 한글이 있다. 우리말을 이 한글로 적는 말글살이가 뿌리내리면 우리는 온 누리에서 으뜸가는 나라가 되고 겨레가 빛날 것이다. 한글이 태어나고 500 해 동안 이 한글을 갈고 닦고 잘 부려 쓰지 않은 것은 바보스럽고 어리석은 일이었다. 이제라도 중국과 일본의 그늘 속에서 살면서 뿌리 내린 그들 말을 쉬운 우리말로 바꿔야 한다. 그래야 한말글이 홀로 설 수 있다.
그런 마음으로 말도 하고 글도 쓰고, 노래도 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답게 사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말꽃이 피고, 다른 나라 사람들이 우리를 깔보지 않는다. 그래야 이제 한글로 피어난 우리 글꽃, 한류가 더욱 세차게 나라 밖으로 뻗어 나간다. 이 일은 마음만 먹으면 될 일이다. 돈과 힘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니다. 이제 망설이지 말고 겁내지도 말자. 하면 된다. 할 수 있다. “정신 차리면 호랑이에게 잡혀가도 산다.”는 우리 속담을 조상들이 우리말 속에 담아 놓았다. 이제 제발 정신 차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