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수구리의 우리 고대사 : 사마천 사기등 중국 고대문헌의 지리적인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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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장안성(평양성)에 설치한 안동도호부 위치가 지금의 진황도시다
1) 중국 바이두 백과 사전에는 741년 당나라 지도에 안동도호부(장안성, 평양성) 위치를 하북성 진황도시에 표시하고 있다
2) 고구려 장안성(평양성)에 당나라가 안동도호부를 설치했으니 고구려 장안성(평양성)은 진황도시에 있었다
따라서 고구려 멸망시의 장안성(평양성)은 고구려 중심 지역이기에 하북성은 고구려 영토로 추정할 수 있다
※주) 후한서 동이열전의 동옥저에서 고구려를 멸망시킨 당나라 고조(측천무후) 아들 장회태자가
진황도시에 고구려 장안성(평양성)이 있다라는 주석을 붙였다
☞ 『후한서後漢書』「동이열전東夷列傳」
"濊 北與高句驪沃沮" "高句驪 東與沃沮" "東沃沮 在高句驪蓋馬大山之東, 其山在今平壤城西."
예濊 (동예, 하북성 창주시滄州市)의 북쪽에 고구려와 (동)옥저가 있고, 고구려 동쪽에 (동)옥저가 있다
동옥저는 고구려 개마대산蓋馬大山(갈석산碣石山) 동쪽에 있고, 蓋馬大山(갈석산碣石山) 은
고구려 평양平壤 서쪽이다 따라서 고구려 평양성(장안성) 위치는 진황도시秦皇島市(산해관) 부근이다.
■ 사마천 사기에 따르면 춘추시대 연나라 위치는 연내책제진(燕內措齊晉, 제나라와 진사라 사이)이니
춘추시대 연나라는 북경(하북성 북부) 지역에 없었다
(사마천 사기의 연내책제진 燕內措齊晉 : 제齊나라와 진晉나라 사이에 연燕나라가 끼여 있었다)
1) 연소공세가에서 사마천이 연나라는 진(晉)나라와 제(齊) 나라 사이에 끼여 있었다고 했으니
진(晉)나라와 제(齊) 나라 사이의 중간이 하남성 정주시 부근이다
따라서 정주시에서 약 700km(약 1천 5백리) 북쪽인 북경은 제나라외 진나라 사이가 아니니
춘추시대 연나라는 북경(하북성 북부) 지역에 없었다
2) 연소공세가에서 BC 675년 연나라 군대를 중심으로 안양시의 위(衛)나라, 상구시의 송나라와
공동으로 낙양의 동주 혜왕을 공격하여 혜왕의 동생 희태를 주나라 왕으로 세웠고,
1년이 지난 후에 정주시의 송나라가 연나라를 공격하여 연나라 중보를 인질로 잡았다고 했다
(1) 낙양에서 북쪽으로 700km정도의 1천 5백리 거리의 북경에 있는 연나라가, 안양시의 위衛,
상구시의 송宋나라와 연합하여 낙양을 공격할 명분은 없었고(위衛나라 원한 전쟁임)
(2) 정주시의 정鄭나라가 낙양에서 북쪽으로 700km정도의 1천 5백리 거리의 북경으로 가서
연나라 중보를 인질로 잡기는 어려웠을 것이니
춘추시대 연나라는 북경(하북성 북부) 지역에 없었다
☞ 『 < 사마천 사기(史記) 卷三十四 연소공세가(燕召公世家) 태사공왈(太史公曰) >』
연나라는 밖으로는 만맥(蠻貉)과 가깝고 안으로는 제(齊)나라와 진(晉)나라 사이에 끼어 있었다.
또한 험하고 강한 나라 사이에서 가장 약소한 나라로서 거의 몇 번이나 망할 뻔했다.
[원문] 燕 [外]迫蠻貉, 內措齊晉. 崎嶇彊國之閒, 最為弱小, 幾滅者數矣.
☞ 『 < 사마천 사기(史記) 卷三十四 연소공세가(燕召公世家) >』
연나라 장공 16년(BC 675년) 송宋나라, 위衛나라와 공동으로 주 혜왕을 공격하자 혜왕이 온溫으로 달아났고, 혜왕의 동생 희퇴(姬頹)가 주나라 왕이 되었다. 연나라 장공 17년(BC 674년) 정나라가 연나라의 중보(仲父)를 잡고 혜왕을 주나라로 돌려보냈다(혜왕이 주나라 왕으로 복귀했다)
[원문] 燕莊公十六年 與宋衛, 共伐周惠王, 惠王出奔溫, 立惠王弟穨為周王. 燕莊公十七年 鄭執燕仲父而內惠王于周.
■ 연(燕)나라를 언(匽)이라고 기록한 중국 고대 사서는 없으니 언(匽)은 연(燕) 나라가 될 수 없다
1) 죽서기년, 춘추좌전, 사마천 사기 등 중국 고대 사서에서 연(燕)나라를 언(匽)으로 기록한 사서는 없으니
언(匽)은 연(燕) 나라가 될 수 없다
2) 중국 하북성 보정시와 북경부근에서 고고학 유물을 발굴했으니 춘추시대 연나라 위치를 확정할 수 있는
연(燕)의 금문은 발견되지 않았다(춘추시대 연나라는 호타하를 넘지 않았으니 너무나 당연한 결과다)
3) 보정시와 요령성 대능하, 객좌현에서 언匽)의 명문이 발견되었다
-. 하북성 보정시 부근에서 출토된 언왕직과(匽王職戈)에서 언왕직(匽王職)의 명문이 발견되었다
-. 요령성 대능하 유역에서도 언왕직검(匽王職劍)에서 언왕직(匽王職)의 명문이 발견되었다
-. 요령성 개좌에서 주나라 제후의 그릇 모양과 다른 언후우(匽侯盂, 언 제후의 그릇)에서 언후(匽侯)의 명문이 발견되었다
(주나라 제후의 그릇은 손잡이가 세로 방향인데, 언후의 그릇은 가로방향이다)
4) 연(燕)의 금문이 발견되지 않으니 언(匽)이 연(燕)이라고 중국이 주장해서
언왕직과(匽王職戈)를 연왕직과(燕王職戈)로 부르고, 언왕직검(匽王職劍)을 연왕직검(燕王職劍)으로 부르고
언후우(匽侯盂)는 연후우(燕侯盂)로 중국이 공직적인 명칭으로 사용한다
(언匽은 서주 말 주 목왕 시대에 동이족 왕 이었던 서언왕의 언偃과 혼용해서 사용하는 글자이기에
언왕匽王이나 언후匽侯는 연나라 군주가 아니라, 고조선의 군주로 추정할 수 있다)
첫댓글 중국 바이두백과에서 확인한 안동도호부의 위치와 고구려강역의 추정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