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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창세기19장1~11절
제목 : 롯의 환대, 소돔의 적대
소돔 성문에 앉아 있던 롯은 두 천사를 영접하여 자기 집으로 모십니다.
그날 밤, 소돔 성 사람들은 집을 에워싸고 손님들을 끌어내라고 요구합니다.
롯도 아브라함처럼 부지중에 두 천사를 환대하며 영접하지만, 소돔 백성은 그들을 욕보이려고 무리 지어 몰려옵니다.롯은 잘못된 방법으로 손님들을 지키려 하지만, 오히려 자신까지 위험에 처합니다.
1. 나그네를 대접하는 롯(1~3절)
1) 롯이 소돔 성문에 않아 있다가 두 천사를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려 절합니다(1절)
“[1] 저녁 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며”
저물 때에 - 소돔성의 타락상을 바로 살필 수 있는 최적의 때입니다.
왜냐하면 음란과 방탕, 각종 사악한 죄악들이 활개 치는 때는 주로 어두운 밤 시간이기 때문입니다(잠 7:7-9).
*잠7:7~9 “[7]어리석은 자 중에, 젊은이 가운데에 한 지혜 없는 자를 보았노라[8]그가 거리를 지나 음녀의 골목 모퉁이로 가까이 하여 그의 집쪽으로 가는데[9]저물 때, 황혼 때, 깊은 밤 흑암 중에라”
이런 의미에서 어두움은 성경상 죄악의 신세를 상징합니다.
따라서 예수께서 이 세상에 빛으로 오셨을 때에도 어두움을 사랑한 유대인들은 그를 영접치 않고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요 1:4-11;19:15).
*요19:15“[15]그들이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이르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16]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그들에게 넘겨 주니라”
오늘날 여전히 어두움의 때에 처해있는 우리들(눅 22:53) 역시 불법과 각종 죄악의 올무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항상 깨어 근신하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살전 5:6).
*살전5:6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두 천사 - 타락한 소돔 성을 불로 심판할 목적을 띠고 하나님께로부터 파송된 '분노의 천사'(삼하 24:16)들입니다(18:22).
성문에 앉았다가 - 고대 사회에서 성문은 재판장소, 사업 거래소, 고지(告知)) 장소및 사교생활의 주요 무대였습니다.
따라서 성문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붐볐는데 롯이 그곳에 앉아 있었다는 것은 지도층 인사로서 그곳 거민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음을 추측케 해줍니다.
일어나 영접하고 - 숙부 아브라함에게서 볼 수 있었던 것과 동일한 나그네 대접 행위입니다.
이러한 롯의 친절은 소돔 주민들과는 달리(4-9절), 희미하게나마 아직도 롯에게 남아 있는 경건성의 반영입니다(벧후2:7,8).
*벧후2:7,8 “[7]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 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8](이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
그러나 그의 결정적인 잘못은 죄악으로 가득 찬 타락의 도시 소돔을 과감히 떠나지 않고 계속 그들 속에 함께 섞여 산 데 있습니다(살전 5:22).
*살전5:22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2) 두 천사가 거리에서 밤을 새우리라 하십니다(2절)
“[2] 이르되 내 주여 돌이켜 종의 집으로 들어와 발을 씻고 주무시고 일찍이 일어나 갈 길을 가소서 그들이 이르되 아니라 우리가 거리에서 밤을 새우리라”
내 주여 - 이 역시 아브라함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롯도 천사들의 신분을 알지 못한 채 단순히 일반적인 존칭어를 사용한 것에 불과합니다.
거리에서 밤을 새우리라 -'거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레호브'는 '넓은 공터', 즉 성문 안의 '광장'을 의미합니다.
삿 19:15에 의하면 집으로 초대받지 못한 여행자들은 이러한 성읍의 길거리에서 유숙하곤 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천사들이 롯의 초대에도 불구하고 거리에서 밤을 지새우려 한 까닭은 소돔의 타락상을 구체적으로 시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3) 롯이 간청하매 그제서야 천사들이 돌이켜 그 집으로 들어갔습니다(3절)
“[3] 롯이 간청하매 그제서야 돌이켜 그 집으로 들어오는지라 롯이 그들을 위하여 식탁을 베풀고 무교병을 구우니 그들이 먹으니라”
식탁(미쉬테) - '솨타'(마시다, 술취하다)에서 온 말로 '마실 것', '향연'의미합니다. 이는 여행 끝에 지친 나그네들을 위해 우선적으로 음료수나 포도주를 대접한 것을 나타냅니다.
2. 소돔 사람들의 악행(4~9절)
1) 소돔 백성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쌓습니다(4절)
“[4] 그들이 눕기 전에 그 성 사람 곧 소돔 백성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
노소를 막론하고 - 이처럼 늙은이나 젊은이나 예외 없이 정염(情炎)에 사로잡혀 몰려왔다는 사실은 소돔 성읍이 만연된 도덕성의 부패를 확실히 보여 주는 동시에 그 성읍에 대한 심판의 정당성(13절)을 시사해 줍니다.
2) 밤에 온 사람들이 천사들과 상관하겠다고 하십니다(5절)
“[5]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오늘 밤에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밤에 네게 온 사람 - 두 천사는 완전한 사람의 형태로 왔기 때문에(18:2) 그들의 수려하고 아름다운 용모는 금방 소돔 주민들의 눈에 띠었을 것입니다.
상관하리라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다'는 본래 '경험을 하여 상대방을 아는 것'을 가리키나 여기서는 성교(性交). 즉 동성애(同姓愛)를 가리키는 완곡어로 사용되었습니다(삿 19:22).
남색(男色)을 가리키는 영어 'sodomy'는 소돔 주민들의 이러한 성적 문란에서 파생된 치욕스런 단어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2:24)와 인간의 본성에 어긋나는 동성애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으며(롬1:26,27;고전 6:9) 모세의 율법(레 20:13)을 통해 이 죄를 엄격히 단죄하고 있습니다.
*창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롬1:26,27 “[26]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27]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고전6:9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3) 롯이 문 밖의 무리에게로 나가서 뒤로 문을 닫습니다(6절)
“[6] 롯이 문 밖의 무리에게로 나가서 뒤로 문을 닫고”
뒤로 문을 닫고 - 손님들을 안전히 보호하기 위한 조처로 몸으로 폭도들을 맞닥뜨린 용기 있는 행동입니다.
고대 동방에서는 자기집에 온 손님의 안전을 위해 목슴도 불사한 채 보호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8절).
4) 롯이 손님을 보호하기 위하여 자신의 딸들 대신 희생하여 그들을 막으려합니다(7,8절)
“[7] 이르되 청하노니 내 형제들아 이런 악을 행하지 말라[8] 내게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하건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 내리니 너희 눈에 좋을 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즉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일도 저지르지 말라”
롯이 손님을 보호하기 위하여 자신의 딸들의 순결과 명예를 희생하려 한 것은 소돔 사람들의 막을 수 없는 타락 행위에 대하여 그나마 덜 심각한 죄악으로 대처하려 한 행동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이는 분명 죄로써 죄를 막고자 한 세속적 타협안 이었다는 점에서 비난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악과의 타협은 더 큰 악을 초래하여 문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 뿐 하나님 앞에서의 궁극적인 해결을 가져오지는 못합니다.
따라서 성도는 다른 것들에 대하여서는 자기를 희생하고 봉사해야 하지만 악에 대하여서는 추호의 양보도 없이 끝까지 대항해야 합니다.
*이에 대하여 두 가지로 생각하는데,
첫째는 롯의 가치관이 흐려짐. 할 일하여야 한다하면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함
두 번째는 약혼한 상태 였음. 약혼한 자를 폭행하면 사형죄에 해당하는 중죄입니다. 손님 대신 딸을 내놓겠다는 롯의 제안은 딸들의 예비 신랑들, 즉 같은 소돔 성 사람들을 생각 해서라도 그만해달라는 요구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당시 딸들이 심히 큰 상처를 받았을 것입니다.
5) 그들이 이르되 롯을 밀치며 그 문을 부수려고 합니다(9절)
“[9] 그들이 이르되 너는 물러나라 또 이르되 이 자가 들어와서 거류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 이제 우리가 그들보다 너를 더 해하리라 하고 롯을 밀치며 가까이 가서 그 문을 부수려고 하는지라”
남자를 가까이 아니한 두 딸 - 롯의 이 두 딸은 이미 소돔인과 정혼한 상태에 있는 딸들입니다(14절).
따라서 이 둘을 폭도들에게 색욕거리로 내주려 한 롯의 행위는 딸들 뿐 아니라 정혼한 사위들의 명예까지도 훼손시키는 결례였습니다.
내가...이끌어 내리니 - 족장 시대에 있어서 자녀에 대한 아비의 부권(父權)을 보여 줍니다.
당시의 부권은 자식의 생사여탈권(生死與奪權)을 쥐고 있을 만큼 막강하였는데 드라빔 사건(31:29,32). 다말 사건(38:24), 정탐꾼 사건(42:37)등에서 그 예를 볼 수 있습니다.
3. 롯을 보호하는 천사(10~11절)
“[10] 그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 롯을 집으로 끌어들이고 문을 닫고[11] 문 밖의 무리를 대소를 막론하고 그 눈을 어둡게 하니 그들이 문을 찾느라고 헤매었더라”
1) 천사들이 손을 내밀어 롯을 집으로 끌어들이고 문을 닫습니다(10절)
“[10] 그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 롯을 집으로 끌어들이고 문을 닫고”
손을 내밀어 - 안에서 걸어 잠근 문을 열고서는 황급히 집으로 롯을 끌어들인 행동을 의미합니다.
2) 문 밖의 무리를 대소를 막론하고 그 눈을 어둡게 합니다(11)
“[11] 문 밖의 무리를 대소를 막론하고 그 눈을 어둡게 하니 그들이 문을 찾느라고 헤매었더라”
눈을 어둡게 하니 - 왕하 6:18에 나온 것과 동일한 초자연적 역사로 일시적인 시각 장애 현상을 가리킵니다.
즉 하나님께서 조성하신 착시(錯視)현상으로 인해 멀쩡한 눈을 가지고서도 엉뚱한 곳을 헤매었던 아람 군대처럼(왕하 6:19,20), 소돔 거민들 역시 시각 장애 현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랑게(Lange)는 '천계의 신령한 능력과 지상의 마귀적 충동이 정면 충돌한 필연적 결과'였다고 평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벤 에즈라(Aben Ezra)는 '눈과 아울러 마음까지 어둡게 되었다'고 묘사했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환대이며, 믿음은 하나님을 향하 우리의 환대입니다.
죄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냉대이며, 심판은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박대다.
왜? 구원은 환대이며, 믿음도 환대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자비로운 영접이며, 믿음은 그분을 향한 우리의 사랑과 찬양을 통한 대접이기 때문입니다.
롯의 하나님 환대. ‘날이 저물 때’ 두 천사는 소돔의 심판을 선포합니다.
날이 저물 듯 영적으로 어두운 그 성의 운명도 기울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처럼(18:1~8) 롯도 두 천사의 정체를 모르면서도 극진히 대접합니다.
무법천지인 소돔에서 외인들이 밤에 거리에서 경야하지 않도록 간곡하게 만류 합니다.
소돔의 하나님 냉대. 젊은 사람과 늙은 사람 막론하고 사방에서 몰려와 두 천사를 에워싼 것을 보면 소돔이 얼마나 부패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손님을 보호하려고 이미 정혼한 뚜 딸을 성난 폭군들에게 내주겠다는 롯의 제안은, 롯 역시 얼마나 소돔의 가치관에 물들었는지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소돔 박대. 짐승처럼 욕망에 이끌려 ‘힘’을 믿으며 사는 영적 소경들의 눈을 어둡게 하십니다.
그들 마음에 원하는 대로 그냥 두십니다.
눈이 어두워졌는데도 정욕을 끄지 못해 롯의 문을 찾기 위해 안달하는 모습을 보십시오.
그날이 될 때까지 회개하지 않으면, 우리가 행한 대로 행하실 것입니다.
롯은 재판하는 자리에 앉을 만큼 어엿한 소돔 시민이 되었지만, 소돔인들 에게는 여전히 ‘잠시 우거하는’외인일 뿐이었습니다.
소돔은 롯을 냉대하였습니다.
약속의 사람 아브라함을 떠나 물질적인 풍요를 택했지만, 그는 하나님의 축복과 세상의 인정을 모두 얻지 못했습니다.
묵상 Point
1) 롯의 하나님 환대
밝은 ‘오정’에 아브라함을 방문하여 아들 출생과 강대한 나라에 대한 대한 환한 소식을 주신 것과는 대조적으로 ‘날이 저물 때’ 두 천사를 통해 방문하여 소돔의 심판을 선포하신다.
이는 날이 저물 듯 영적으로 어두운 그성의 운명도 기울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처럼 (18:1~8) 롯도 두 천사의 정체를 모르면서도 극진히 대접한다.
아마 무법천지인 소돔 형편을 알았기에 의인들이 거리에서 경야하지 않도록 간곡하게 만류한다.
2) 소돔의 하나님 냉대
소돔 사람들은 두 외인을 성적으로 범하기 위해 롯의 집으로 몰려왔다.
폭력적인 방법으로 외지인을 상대하고 길들이려 한다.
젊은 사람과 늙은 사람을 막론하고 사방에서 몰려와 에워싼 것을 보면 소돔이 얼마나 부패했는지 알 수 있다.
손님들을 보호하려고 이미 정혼한 두 딸을 성난 폭군들에게 내주겠다는 롯의 제안은, 한편으로는 무법한 자들의 방탕한 행동으로 그가 얼마나 괴로움을 겪으며 살았는지 보여주지만(벧후 2:7), 동시에 롯 역시 얼마나 소돔의 가치관에 물들었는지 보여준다.
아무리 의도가 좋더라도 이는 한 가지 악을 막기 위해 다른 악을 동원하는 타협적인 태도일 뿐이다.
어쩔 수 없다고 합리화하는 불의는 없는가?
3) 하나님의 소돔 박대
짐승처럼 욕망에 이끌려 ‘힘’을 믿으며 사는 영적 소경들의 눈을 어둡게 하신다.
그들 마음에 원하는 대로 그냥 두신다.
눈이 어두워졌는데도 정됵을 끄지 못해 롯의 문을 찾기 위해 안달하는 모습을 보라. 심판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롬 1:26~27).
하나님은 그날이 될 때까지 회개하지 않으면, 우리가 행한대로 행하실 것이다.
4) 소돔의 롯 냉대
롯은 재판하는 자리에 앉은 만큼(성문에 앉음) 어엿한 소돔 시민이 되었지만, 소돔인들에게는 여전히 ‘잠시 우거하는’ 외인을 뿐이었다.
약속의 사람 아브라함을 떠나 물질적인 풍요을 택했지만, 그는 하나님의 축복과 세상의 인정을 모두 얻지 못하는 가련한 인생이 된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라 하면서도 빛으로 살지 못한채 양다리 걸치는 회색의 삶은 아닌지 돌아보자.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9-11절 롯을 소돔 땅의 불한당들에게서 보호하십니다.
롯은 악한 소돔에서 주변인으로 살았을 것입니다(9절).
그럼에도 그는 의인의 삶을 살았습니다.
불의와 폭력이 만연한 세상에서 정직하고 의롭게 산다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롯을 악인과 함께 망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3절 아브라함처럼 롯도 나그네를 환대합니다.
아브라함이 정오의 나그네에게 그늘을 제공한 것처럼, 롯은 밤중에 온 나그네에게 숙소를 제공합니다.
무법천지의 소돔에서 그들을 노숙하게 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기 때문에 만류하는 나그네를 강권하여 집으로 들입니다.
나그네를 대접할 뿐 아니라 위협에서 보호하려는 세심한 배려였습니다.
나는 어떤 방식으로 우리 시대의 약자들을 섬기고 있습니까?
내 편리가 아니라, 도움을 받는 이들의 필요를 따라 섬기고 있습니까?
4,5절 롯이 나그네를 환대한 것과 달리, 소돔 사람들은 나그네를 겁탈하려고 몰려옵니다.
손님 대접이 미덕이던 당시 문화를 감안한다면, 나그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소돔이 얼마나 악한 도시인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자기 욕망을 채우려고 약자에게 다수가 힘을 합해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일상이 된 소돔의 모습에서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이 덧보이지 않습니까? 나도 무심코 다수의 폭력에 가담하지 않도록 주의합시다.
8절 롯은 나그네를 보호하기 위해 자기 두 딸을 대신 주겠다고 제안합니다. 나그네를 환대하고 보호하는 주인의 역할을 최선을 다해 감당하려 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의 제안은 다른 문제를 야기합니다.
그가 감당하려는 희생은 그의 딸이 감당할 몫이지만 딸의 의사가 배제된 대안이었고, 악을 피하려고 다른 악을 허용한 것이기에 바르지 않습니다.
소돔에서 머문 시간이 그를 소돔의 문화에 젖어들게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제안이 실현되지 않도록 막으심으로 롯의 부족함을 메우십니다(참조. 20:1-18; 26:1-11).
불의와 악을 대항하는 방식이 선하고 의롭지 않다면, 그 불의와 악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기도]
공동체-악한 사회에서 약한 자로 사는 이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소서.
열방-기후변화로 물 부족 사태가 더욱 심각해지는 가운데, 전 세계 인구의 1/4은 심각한 물 부족 지역 에 살고 있다.
세계 각국이 수자원을 잘 보전하고 관리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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