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화 우크라이나 마지막 만찬
빌의 아버지는 오데사 장교에게 황무지를 가리키며 너무 척박해서 씨를 뿌리자니 종자만 아까울 것
같아 미루고 있는데 아들 체르노빌이 돌아오면 건강 여부에 따라 경작을 할지말지를 상의를
해봐야겠다고 말했다.
오데사 장교는 피아를 구별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벌어졌던 전투에서 자신이 쏜 총에 빌이 부상당한일로
황무지를 옥토로 만들려는 계획에 차질이 생길 것 같아 미안해서 창고와 거친 황무지를 바라보며
고개만 끄덕였다.
곁에서 듣고 있던 요하나는 체르노빌과 주상절리에 함께 가고 싶었는데 찾아오겠다는 약속은 했으나
아픈 이별 생각에 울컥 올라오는 눈물에 고개를 숙였다.
저마다 제각각 자기의 생각에 빠져 있을 때 루카스는 문득 숲정이마을에서 겪은 황무지 농사 경험을
빌의 아버지에게 말했다.
“저도 숲정이 마을에서 작은 황무지를 개간해서 여러 가지 곡물농사를 지었어요.”
“그래요? 힘들 텐데 개간은 어떻게 하고 곡식은 잘 자라던가요?”
“30여명이 필요한 식량이라 얼마 되지 않은 작은 땅인데 개간 이라하니 이렇게 큰 농사를 짓는 농부 앞에서
말하자니 부끄럽네요. 하하하.”
“작은 땅이라도 농사는 농사고 개간은 개간 이지요 농사 경험을 듣고 싶어요.”
루카스의 대답은 다소 긴 설명이었다.
“처음엔 땅을 파고 잡초를 베어 거름을 삼기도하고 번식력이 좋은 자운영을 옮겨 심어 무성하게 키웠더니
다른 풀들과 섞여 자라 땅이 조금씩 살아나서 그다음엔 호밀, 콩. 옥수수. 땅콩 해바라기 등을 심었지요.
그런데 여러 풀과 함께 자란 작은 곡식은 수확하기가 번거롭지만 그걸 일상으로 알고 수확 했지요.
하지만 옥수수나 해바라기는 키가 커서 수확하기가 매우 좋았어요. 그렇게 점차 비옥한 토지로 만들어
호밀의 비중을 높여 갔는데 우린 소량의 곡물로도 만족하는 작은 땅이라 가능했지만 여기서도 통할지
모르겠습니다.”
“와~좋은 생각입니다 저긴 잡초도 무성하게 자라지도 못했는데 잡초부터 심어야겠어요.”
농사에 문외한인 오데사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듣는지 다른 생각을 하는지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빌의 아버지가 먼저 가서 저녁식사 준비를 하겠다고 하자 그제야 오데사는 식사가 준비되면 가겠다고 말했다.
리나는 식사 준비를 돕겠다며 집을 향해 따라갔다.
빌의 아버지는 오자마자 1미터가 넘는 긴 악기를 들고 나오더니 여러 차례를 끊어가며 큰소리로 불었다.
멀리 퍼지는 소리. 리나는 무슨 신호 같은 생각에 무슨 악기냐고 물었다.
빌의 아버지는 우크라이나 전통악기라며 말했다.
“단순히 음의 높낮이만 있어서 산간에서는 양몰이 기구지만 결혼 장례 축제 탄생을 알리는 용도로 쓰는데
신호라고 하시니 어떻게 아셨어요?”
“예. 저희 마을에서도 늑대가 나타났다고 알리는 신호로 피리를 목에 걸고 다녔어요.”
“아~저는 지금 큰잔치를 준비하니 빨리 오라고 우리 농장 집사들을 부르는 신호였어요.”
“아~ 그렇군요.”
잠시 후에 아이들 3명과 어른 부부 4쌍이 탄 트럭이 급히 왔다. 빌의 아버지는 농장주라기보다 친근한
이웃처럼 마을 사람들에게 잔치의 분담을 시켰다.
여자들은 리나 일행과 어울려 익숙한 솜씨로 잔치음식을 만들고 남자들은 양을 잡아오자 여자들은
‘보르시치’라는 우크라이나 가정식 수프를 만들었다. 양고기와 채소인 당근. 양배추. 오이. 토마토에 비트를
넣고 마지막으로 향긋한 레몬을 넣어 만든 비트 색 수프였다.
남녀 어린아이들은 넓은 마당에서 뛰어 놀다가 음식 냄새에 부엌으로 들어오더니 남자 아이가 요하나를
찬찬히 바라보며 다가가더니 깜짝 놀라며‘예쁜 누나한테서 꽃향기가 나요.’라고 말하자 여자 아이가 따라 말했다.
“예쁜 언니한테서 꽃향기가 나요.”
“어? 그래 진짜? 네 머리 꽃에서 나는 게 아니야?”
“아니야 이건 만든 꽃이잖아요.”
곁에서 일하던 아이 엄마가 말했다.
“재들은 또 이상한 소리를 하네 하여간 웃기는 아이들이야. 예쁜 여자만 보면 저렇게 꽃 향기가 난다고 그래
여기서 음식을 만드니까 옷에서 음식 냄새가 나지 무슨 꽃향기야.”
음식을 만들던 사람들이 모두 웃자 요하나가 물었다.
“여기 애들은 다 그러나 보죠?”
“왜?”
“체르노빌도 그러던데요?”
“엥? 빌이 아가씨보고 그랬다고요?”
“네.”
“호호호 그럼 체르노빌이 아가씨를 무척 좋아 하나보다~ 빌만 전혀 그런 소리를 안했는데 그렇지요 여러분~
호호호호...”
“맞아요. 하하하하.....”
요하나는 ‘꽃향기는 사랑’이라는 빌의 말이 생각나고 빌이 좋아 한다는 말에 무척 행복했다.
그사이에 오데사는 골똘한 생각을 실행에 옮겼다.
“루카스 씨 저 척박한 땅에 호밀보다는 키 큰 해바라기와 옥수수 씨를 뿌리면 풀과 구별되어 수확이 쉽고
잘 자란다는 말이 맞겠지요?”
“예? 하하하 다른 생각을 하시는 줄 알았는데 다 들으셨네요? 처음 농사는 호밀보다 콩과 식물이니 그게
낫겠지요? 그리고 신께서 때에 맞춰 이른 비와 늦은 비만 내려 주신다면.”
루카스의 말에 오데사는 희색이 만연했다.
“아, 그럼 비록 척박한 땅이지만 뿌린 데로 거두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해바라기와 옥수수 콩 몇 부대를
창고 안에 넣어 줍시다. 오직 자란다는 믿음으로 뿌리면 루카스와 오스카의 신 그리고 해바라기 아가씨의
신께서 잘 자라게 도와주시겠지요?”
“아멘!”
루카스와 오스카도 화답을 하는 아멘에도 힘이 실리며 말했다.
“십분의 일의 기적을 행하신 신께서 도우시면 가시밭과 돌밭이라도 옥토가 되어 씨가 자라면 새들이 먹고
땅이 먹어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어 체르노빌 황무지 땅이 살아나고 이 마을 사람들이 먹을 충분한
생명의 양식이 되겠습니다.”
병사와 운전자일행은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터지는 아멘과 박수에 루카스 가족은
오랜만에 행복한 웃음을 마음껏 웃었다. 오데사의 명령에 병사들은 곡식 부대를 메고 창고로 향했다.
오데사는 아직 남은 해를 바라보며 농촌 풍경을 그린‘장 프랑수와 밀레’를 떠올리며 말했다.
“빌이 추수를 마치고 감사기도를 하는 모습이 밀레의 그림 한 폭처럼 아름답게 그려집니다.”
“맞아요. 숲정이 마을에서 우리도 그렇게 기도를 했어요.”
“아, 루카스씨 그곳 숲정이 이야기 좀 들려주시겠어요?”
루카스와 오스카는 두서없이 생각나는 대로 번갈아가며 숲정이 마을을 이야기했다. 둥그렇게 모여든 사람들은
이색적인 채식주의자 가족이 집시들이 떠난 마을을 찾아와 살아가는 생활사를 큰 관심으로 들었다.
아직도 해가 남았다. 만찬을 생각하자 갑자기 배가 고파온 오데사가 가자고 말했다.
일행은 서둘러 빌의 집으로 향했다. 마당에 깔린 자리에는 50여명의 일행이 앉아도 충분할 정도로 넓었다.
모두들 긴 여정의 피로가 연기만 보아도 피로가 풀렸다. 빌의 아버지는 신이 난 말을 했다.
“여러분, 음식이 준비되는 동안에 집 뒤 호수에 가셔서 수영을 하시던지 씻고 오세요~”
“와우~”
일행이 우르르 몰려가고 빌의 아버지는 여러 개의 램프를 밝히고 마당에 모닥불도 피웠다.
빌의 아버지는 저장된 포도주와 쨈을 찾아 부엌에 내어주었다. 리나 이자벨라 요하나는 그들과 어울려
우크라이나 최고의 호밀 빵을 만들며 긴 식탁에 뷔페식 만찬음식을 채워갔다.
오리요리와 양 바비큐가 익어가고 기름진 연기가 오르고 부는 바람은 호수의 사람들의 코를 자극하자 참을 수
없다는 듯 서둘러 밝아진 얼굴로 돌아왔다.
“와우!”
그 밤은 모두에게 최고의 밤이었다. 그릇에 듬뿍 수프를 담고 여자들은 양고기를 썰어 담아 주었다.
포도주 잔이 오가고 만찬의 분위기가 익어가자 빌의 아버지는 백파이브를 내오자 집사는 ‘백파이브’를
당연한 듯 받아들고 연주를 했다.
루카스와 오스카도 오랜만에 성찬예배 때만 먹었던 포도주를 마셨다. 음악은 구슬프지만 아름다운 선율의
연주로 사람들의 마음을 녹이기에 충분했다. 만찬이 무르익자 집사는 흥겨운 곡으로 바꾸었다.
모두가 나름대로 흥에 겨운 박수와 무릎을 구부려 앉고 뛰는 격렬한 춤과 서로 손을 맞잡고 둥글게 좌우로
돌며 춤을 추거나 그 음악에 모두 취해 버렸다. 요하나는 연주자를 바라보자 괜히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그사이에도 아이들은 그 큰 눈으로 요하나만 바라보며 빙글빙글 웃음이 가득했다.
그때마다 꽃향기가 난다는 빌의 생각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가끔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떨어냈다.
‘빌은 잘 있을까? 상처는 어떻게 되었을까? 나를 기억할까? 꼭 나에게 돌아 올 거야.’
연주가 끝나자 사람들은 차로 돌아가거나 여름밤을 하늘삼아 눕자 빌의 아버지는 방으로 들어가 많은 모포를
내어 왔다. 사람들은 모포를 받아들고 집안 여기저기서 잠이 들었다.
모두 오랜만의 만찬에 행복한 꿈을 꾸었다. 루카스 오스카 벤 오데사는 거실과 안방을 차지하고 잠이 들었다.
여자들은 특별히 내어준 방으로 안내 되었다. 요하나는 오는 내내 부터 지금까지 빌의 걱정뿐이었다.
음식을 만드는 건 거들뿐 음식도 먹을 뿐 깊은 맛은 음미하지 못했다.
여자들은 첫눈에 하나같이 빌의 방이라고 생각했다. 요하나는 빌의 향기를 찾으려고 살폈다.
이때 벽에 걸린 몇 장의 사진이 지금까지 빌의 인생 여정을 한 눈으로 보여 주었다.
어린 시절. 정비공의 검은 오일 묻은 얼굴. 특등 사수의 멋진 자태와 백선 자국 등등등 요하나는 파노라마처럼
스치는 지난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이자벨라는 요하나의 어깨를 감싸 주었다.
리나는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 밤이 지나고 아침. 빌의 아버지는 밤사이에 갈아 놓은 곡식 자루를 리나에게 건네주며
식량으로 마음에 들지는 모르겠다며 곡물도 씨앗으로 쓰라고 조금 넣어두었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모두 함박웃음으로 긴 일정의 피로를 풀고 유쾌한 출발을 위해 차에 오르고 오데사는 병사에게 민가를
만나면 곡물 한 포대씩 내려놓고 오라고 지시를 했다. 이것이 내 백성이 사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우크라이나의 국화 해바라기도 빌의 농장에서 활짝 피울 날을 상상하며.
오데사와 함께 선도차에탄 루카스와 일행은 ‘체르니 히우’를 거쳐 드디어 소비에트 국경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