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의 손님』– 일본 추리소설
이름이 조금 생소한 ‘오쿠라 데루코’는 일본인 여류작가로, 애거서와 크리스티(1890년 출생)와 비슷한 연대에 출생한 아시아 작가로는 드물게 보는 탐정 소설가다. 일본 근대문학의 선구자인 나쓰메 소세키와 후타바테이 시메이 문하에서 탄탄한 문장력으로 미스터리 한 사건의 인과관계를 설득력 있게 파헤친 그녀가 일본 최초로 1935년 단행본을 출간했을 때는 당대 탐정 및 괴담 분야 쟁쟁한 작가들이 앞다퉈 추천사를 쓸 정도였고, 문학계에서는 ‘탐정소설계의 신성! 대망의 신 여류작가 등장!’이라는 수식어로 크게 주목받았다. 『심야의 손님』이 소설집은 일본 최초의 여류 탐정 소설가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는 단편소설 선집이다.
우아한 필체의 문장력으로 이야기 전개는 에도가와 란포가 말하듯 심령 세계에 심취했던 듯하다. 이는 당시 일본 사회 분위기와도 연관이 있다. 누군가 실종되었고, 시체가 발견되지 않았다면 초현실적인 일이 일어난 듯 소문이 나게 마련이다. 특히 작가는 일본의 귀족사회를 배경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후작의 자제가 사라졌다거나 귀족과 게이샤의 만남에 얽힌 사건들을 파헤치기도 했다. 그러나 마치 초현실적 심령 세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하다가도 마지막에는 지극히 현실적인 당위성으로 사건을 해결한다. 저자의 필력과 통찰력이 돋보이는 부분은 바로 범인의 캐릭터에 대한 설득력이다. 비록 범죄를 저질렀지만,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상황을 설정함으로써 범인에게 기묘한 설득력을 부여하는 것이다. 마치 사람이 의도를 가지고 살인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알 수 없는 어떤 힘에 의해 사건을 저지르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다. 그런 점에서 오쿠라 데루코는 인간은 어쩔 수 없는 나약한 존재라는 연민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오쿠라 데루코는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소설가이면서 인간을 탐구하여 이야기를 쓰고 있는 것이다.
P. 34 “저는 기미타카의 시체를 인공 미라로 만들 생각이었습니다. 자연 미라처럼 지저분하지 않고 그의 아름다움을 영원히 유지하는 인공 미라입니다. 사실 제가 죽으면 인공 미라로 만들어달라고 하려고 다년간 연구해왔습니다.” (영혼의 천식)
P. 53 울타리를 꼼꼼히 조사하는 중에 다른 나무판자에도 내 코트 이외의 옷감이 걸려 있는 걸 발견했다. 손으로 떼보니 흰색 비단이었다. 동시에 담장 아래 도랑에 꽂혀 있는 뾰족한 무언가가 눈에 띄었다. 주워서 진흙을 씻어내니 고급스런 진주 넥타이핀이었다. (공포의 스파이)
P. 91 겨우 시선에서 벗어나듯 고개를 돌렸다. 참으로 신기한 마력을 가진 눈이다. 나는 마치 끌려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가 그런 눈으로 쳐다보면 아무리 위험하고 무서운 명령이라도 거절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니 조금 섬뜩하기도 했다. (요물의 그림자)
P. 123 누군가가 그녀에게 영적 능력이 뛰어나니 그것을 갈고닦으면 무엇이든 꿰뚫어 볼 수 있는 비범한 사람이 된다고 말했다. 이렇게 부추기는 바람에 그녀는 열심히 심령 연구인가 뭔가 하는 것을 시작했다. 사실 속으로는 자기와 떨어져 있는 동안 나의 행동을 보고 싶은 욕망 때문에 연구를 시작한 것이다. (마성의 여자)
P. 153 아무것도 몰랐다고 해도 단도에는 미와코의 지문이 묻어 있을 테고 우연이라고는 하지만 일하는 사람은 장을 보러 나가서 집에는 미와코 혼자밖에 없었다고 하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범인이 증거라도 남기고 떠나지 않은 이상 혐의를 받는 것은 당연했다. (심야의 손님)
P. 190 나는 그와 친구가 아니었다면 한마디로 거절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을 의지하던 미야코를 생각하면 그녀가 지금까지 어떤 냉대를 받았는지 상상되어 납치를 당한 것이 과연 그녀에게 불행인지 행복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만약 데리고 오는 것이 그녀에게 행복이라면 그의 의뢰 때문이 아니라 그녀를 위해서 노력하겠다고 결심했다.
p. 249 한 달쯤 지나 일본에서 도착한 신문을 보니 ‘모 신탁은행의 보호금고 안에서 미라가 나오다’라는 제목으로 가쓰다 가문이 빌린 금고 안에 있던 트렁크에서 미라가 나왔다는 내용의 기사가 실려 있었습니다. 얼마 안 있어 그 미라는 가쓰다 부인이었다는 보도가 나왔지요. 저와 남편은 얼굴을 마주 보고 쓴 웃음을 지었습니다. (일본 동백꽃 아가씨)
― 저자 : 오쿠라 데루코 (大倉燁子)
도쿄에서 태어났으며, 후타바테이 시메이(二葉亭四迷)와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에게 사사받고 「어머니」, 「형」등의 소설을 발표했다. 결혼 후 외교관인 남편과 함께 유럽으로 건너가 아서 코넌 도일의 작품을 만나게 된다. 이후 탐정소설로 전환하게 되고, 1935년 단편집 〈춤추는 실루엣> 을 발표하면서 일본 최초의 여류 탐정소설가로 데뷔했다. 장편소설로는 「살인 유선형」, 「여자의 비밀」등이 있다.
― 이현욱 (옮긴이)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쓰쿠바대학교 대학원과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프리랜서 일본어 통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북유럽이 좋아!』,『책의 미래를 찾는 여행, 타이베이』,『하루키는 이렇게 쓴다』,『예고도 없이 나이를 먹고 말았습니다』등이 있다.
― 장인주 (옮긴이)
일본어 전문 번역가 모임 ‘쉼표온점’의 멤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글로벌 교육을 받고 자랐다. 연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한 후 바른번역 글밥 아카데미를 수료했다. 현재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일본 도서 기획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기침을 해도 나 혼자 그리고 고양이 한 마리』, 『하루 하나씩 나에게 들려주는 긍정 메시지』 등이 있다.